헌부에서 고담 부정의 죄목으로 박소립·기대승·윤두수 등의 삭탈 관직을 청하다
헌부 【대사헌 이감, 집의 이영, 장령 황삼성·권순, 지평 윤지형(尹之亨)·신담(申湛)이다.】 가 아뢰기를,
"조정의 화평함은 국가의 복이나, 사림이 안정되지 않음은 성대한 세상의 상서로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비록 아주 미세하더라도 고금의 치란의 기미가 언제나 이에서 말미암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대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은 인정의 같은 바이니, 어진이를 보면 그와 같기를 생각하여 마음으로 진실로 좋아해서 힘써 행하여 중지하지 않는다면 사람마다 모두 선류(善類)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세(治世)에는 이를 진작시키고 흥기시키는 데 항상 간절하였습니다. 그런데 풍속이 퇴폐된 지 이미 오래여서 사습(士習)이 더욱 투박하여, 명색은 선류라 하지만 사실은 선을 좋아하지 않는 자가 있고 겉모습은 장엄한 것 같으나 속은 무지한 자도 있어 양(羊)의 바탕에 범의 가죽을 쓰고 감정을 꾸며 명예를 구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으니, 이는 선을 하다가 생긴 실수가 아니라 선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그 폐단이 부박한 풍습으로 발전하여 사사로이 서로 표방하여 붕당을 맺고는 인물의 선악과 시정의 득실(得失)을 논의하여 신진의 사류들로 하여금 시비를 알지도 못한 채 붙좇아 따르게 하여 사습이 날로 그릇되고 국사가 날로 잘못되게 하고 있으니, 고담 준론(高談峻論)이 나라를 해침이 심합니다.
이미 그러했던 성패의 자취가 명약관화 하건만 사전에도 징계할 줄 모르고 사후에도 경계할 줄 모르시니, 만약 일찍이 이런 풍습을 막지 않는다면 어찌 호오(好惡)의 올바름을 밝혀 장래의 근심을 없애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살피건대 요즘 조정에는 사람 사이에 이론이 없고 일은 안정되어 사대부가 성명(聖明)의 도야(陶冶) 속에 감화되어 다시금 온유하고 돈후한 풍속을 보려나 했더니, 뜻밖에도 부박한 무리들이 소란한 자취를 현저하게 나타냄으로 하여 물론이 격발하고 있으니 마땅히 그 조짐을 막아 물론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전 정랑 박소립 【자품이 대범하고 담박하여 이양이 그 아들 이정빈(李廷賓)을 전조에 천거해 달라 요구한 것을 처음부터 허락치 않았으므로 마침내 미움을 샀다.】 과 사정(司正) 기대승(奇大升) 【다문 박식하여 일찍이 명망을 떨쳤다. 이양이 일찍이 그 형 기대항(奇大恒)을 통하여 한 번 만나볼 것을 요청했으나 끝내 가지 않았으니 그 지조를 알 수 있다.】 은 모두 부박하고 경망한 자질로 오로지 고담만을 일삼아 신진들의 영수가 되었고, 전 좌랑 윤두수가 맨 먼저 부회(附會)하여 서로 찾아다니면서 국사의 시비와 인물의 장단을 모조리 평론의 대상 속에 넣고 겉으로는 격양(激揚)038) 의 이름을 빌어 장차 나라를 위태롭게 할 풍조를 빚고 있습니다. 행 대호군 이문형은 자신이 재상의 반열에 있으면서 스스로 근신하지 못하고 부박한 무리들을 끌어들여 논의를 주도하는 바람에 문하에 끊임없이 객이 출입하고 있으며 삼척 부사 허엽 【일찍이 화담(花潭) 서 선생(徐先生)의 문하에 종유하여 대략 학문의 길을 알아서 언제나 옛사람을 사모하는 뜻이 간절했다.】 과 과천 현감 윤근수(尹根壽) 【윤두수의 아우로 자품이 영리하고 독실한 행실이 있었다.】 는 모두가 명성을 좋아하는 사람들로서 경연에 입시하였을 때에 애써 과격한 의논을 펴서 【일찍이 야대에서 기묘년의 일을 극력 진달하여 상의 뜻을 돌려보려다가 도리어 배척을 당했으니 애석한 일이다. 지금 상의 뜻을 헤아리고 애써 영합하여 모두를 죄 주자고 청하니 그 계교가 너무도 흉악하지 않은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의심하고 놀라면서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들 역시 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소립·기대승은 그 관작을 삭탈하여 도하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여 몰려다니는 길을 끊으시고, 윤두수는 관직을 삭탈하고, 이문형·허엽·윤근수는 파직하소서." 【과거에 이양이 그 아들 이정빈을 이조의 낭료(郞僚)로 삼으려 하자 박소립·윤두수가 당시 이조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들어주지 않아 이로 인해 틈이 생겼다. 또 기대승이 당시에 명망이 있으므로 만나보려 했으나 대승이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이감(李戡)도 그 아들 이성헌(李成憲)을 한림으로 삼으려 했으나 한원(翰苑)에서 추천해 주지 않았는데 그때 기대승이 한원에 있었기 때문에 항시 원망하고 있다가 마침내 모함하여 무너뜨릴 계책을 이루게 된 것이다. 또 그들 스스로가 자기들의 하는 짓이 반드시 식자(識者)들에게 미움을 살 줄 알고 자기 일당들과 내쫓을 것을 모의했으나 명목이 없었다. 그런데 자전(慈殿)이 항시 기묘년의 사류를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것과 주상도 싫어하고 있는 것을 알고 마침내 고담이니 격양이니 하는 말로 마구 공격하여 장차 일망타진할 계책을 세운 것이다.】
사신은 논한다. 세상에서는 이양의 당이 박소립 등과 조그만 혐의가 있어서 중죄에 얽어 넣었다 하는데, 겉으로 보면 근사한 말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체로 군자와 소인은 언제나 상반되는 것이 훈유(薰蕕)와 빙탄(氷炭)이 한 그릇에 담길 수 없는 것 같을 뿐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저쪽이 성하면 이쪽이 쇠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다. 그렇다면 비록 혐원이 없다손 치더라도 어찌 원수로 여기지 않겠는가. 만약 소인에게 시기하고 모해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소인이 되겠는가. 이때에 이양의 무리가 하는 짓이 극히 불안정하였으므로 그들이 마음쓴 것은 오직 자기들을 비난할까 염려하는 데 불과했으니 자기들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서둘러 몰아내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더구나 본래 혐분이 있는 자이겠는가. 이것이 박소립 등이 맨 먼저 중상을 당한 이유이니, 앞으로 몇 사람이 또 당할는지를 어찌 알겠는가. 심하다, 양의 어리석음이여. 언젠가 심의겸(沈義謙)을 나무라기를 ‘너는 박소립·기대승·윤두수를 무엇 때문에 좋아하는가? 이문형은 너더러 동방의 성인(聖人)이라고 한다는데 네가 과연 성인인가?’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양의 질시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소립 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겸에게도 감정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거사하는 처음에는 을사년의 사건을 들어서 모조리 얽어 넣어 기필코 중죄로 다스리게 하려고 했었는데 심의겸이 애써 구원함에 힘입어 죄가 이에서 그쳤으니 그 또한 다행한 일이다. 애당초 야기된 발단은 실상 윤백원이 윤원형과 이양의 말을 가지고 양쪽 사이를 드나든 데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심통원도 많은 작용을 했었다. 아, 기묘년의 일이 아직도 성명(聖明) 아래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을 잡는 덫과 함정이 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명(命)이 나오자 사림들이 깜짝 놀라고 온 서울이 뒤숭숭해졌다. 이감 등이 이 논계를 올린 것은 이양이 주동이 된 것이다. 대저 양이 비록 척리의 친속을 빙자하여 높은 지위에 올랐고 위복과 여탈이 그 손아귀에 있었지만 사림들이 비루하게 여겼고, 조금만 지식이 있는 자라면 모두 침을 뱉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양이 사림에게 늘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 문하에 출입하는 자들은 모두 권세가 무서워서 아첨하는 무리가 아니면 재리나 좋아하는 염치없는 자들뿐이었다. 이감도 흉악하고 괴팍스런 성질로서 주상의 유모를 모친처럼 섬기고 원형을 상전처럼 섬겼는데 그 덕으로 좋은 벼슬을 역임하였다. 뒤에 다시 양과 심복 관계를 맺어 그 권세가 화염처럼 치성했으므로 사림들이 비루하게 여기고 미워하기를 양과 같이 했다. 그래서 역시 분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끝내 용납되지 못할 것을 알고는 밤낮으로 동류를 모아놓고 쓰러뜨릴 계책을 궁리하던 끝에, 사림들의 뿌리는 이황과 조식이니 점차로 그 뿌리를 모조리 제거한 뒤에야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우선 이 몇 사람을 시험삼아 치우고 앞으로 그 흉포를 자행할 셈이었다. 이에 앞서 이감 등이 회의를 할 적에 이중경·김백균 등과 모든 당인(黨人)이 모여 있었는데, 감의 뜻은 죄에 얽어 넣어 모두 베어 내려고 했으나 모든 당인들이 명목이 없음을 걱정하였다. 조금 뒤에 감이 일어서서 돌다가 도로 앉으며 ‘그대들이 내 계책을 쓰지 않았다가는 아마 후회할 것이다.’ 했다. 그러고도 죄명을 찾을 길이 없어서 고담 부정(高談不靖)이란 말로 주상을 현혹시키게 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29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59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역사-사학(史學)
- [註 038]격양(激揚) : 격탁 양청(激濁揚淸)의 준말로 악을 물리치고 선을 발양시킨다는 뜻.
○癸亥/憲府 【大司憲李戡、執義李翎、掌令黃三省ㆍ權純、持平尹之亨ㆍ申湛。】 啓曰: "朝廷和平, 爲國家之福; 士林不靖, 非盛世之瑞。 始雖甚微, 而古今治亂之幾, 未嘗不由於此, 豈不大可畏哉? 夫好善而惡惡, 人情所同然。 見賢思齊, 心誠好之, 力行而不已, 則人皆可以爲善類矣。 治世之振作興起者, 常切於此, 而俗季已久, 士習益偸, 名爲善類, 而實非好善者有之, 外若色莊, 而內實倥倥者有之, 羊質而虎皮, 矯情而干譽, 無所不至。 此非爲善之過也, 爲善之假, 而其流之弊, 轉爲浮薄之習。 私相標題, 結爲朋比, 臧否人物, 論議時政, 使新進之士, 靡然從之, 莫知其是非, 馴致於士習日誤, 國事日非。 甚矣高談之害人國家也。 已然成敗之跡, 明若觀火, 而前不知懲, 後不知戒。 若不早爲防閑, 則其何以明好惡之正, 絶將來之患乎? 臣等伏見, 邇來朝著之間, 人無異論, 事皆寧靜, 士大夫相忘於聖明陶鑄之中, 庶幾復見溫柔敦厚之風, 而不意浮薄之徒, 顯有不靖之跡, 物論激發, 所當杜漸鎭定。 前正郞朴素立、 【資稟簡淡, 李樑求薦子廷賓於銓曹, 而初不肯許, 遂以見忤。】 司正奇大升, 【多聞博識, 夙擅名望。 李樑嘗因其兄奇大恒, 要與相見, 而終不往。 其操守可知矣。】 俱以浮妄之資, 專以高談爲事, 爲新進領袖, 前佐郞尹斗壽, 先事附會, 互相追隨, 國事是非, 人物長短, 盡入評品之中, 外假激揚之名, 將釀傾危之俗。 行大護軍李文馨, 身在宰相之列, 不自謹愼, 而引進浮薄之徒, 主張論議, 門下之客, 出入不絶, 三陟府使許曄、 【曾遊於花潭 徐先生之門, 粗知爲學之方, 常切慕古之志。】 果川縣監尹根壽, 【斗壽之弟也。 資稟穎悟, 且有篤實之行。】 皆以好名之人, 入侍經幄之時, 務爲過激之論, 【嘗於夜對, 極陳己卯之事, 冀回天聰, 而反被疎斥, 可勝惜哉? 今者揣度上意, 而務爲進合, 請竝罪之, 其爲兇邪, 不亦甚乎?】 使聽聞之人, 至今疑駭, 久而不息, 亦不可不竝罪之。 請朴素立、奇大升, 削奪官爵, 使不得接跡都下, 以絶奔趨之路, 尹斗壽, 削奪官爵, 李文馨、許曄、尹根壽, 竝罷職。" 【初李樑欲以其子廷賓, 薦爲吏曹郞僚, 朴素立、尹斗壽, 時在吏曹, 初不肯從, 以此嫌憤。 且以奇大升有時望, 欲見之, 大升終不見焉。 李戡又欲以其子成憲爲翰林, 翰苑不薦之, 以大升時在翰苑, 常懷憤怨, 遂成傾陷之計。 且自知所爲, 必爲識者所賤惡, 乃與其黨, 謀欲去之, 而無名焉。 以慈殿常不快於己卯士類, 而主上亦頗厭之, 誣以高談激揚, 極其詆斥, 將爲網打之計。】
【史臣曰: "世以爲李樑之黨, 與朴素立等, 因有小嫌, 而構陷重罪。 其跡雖或近之, 其實則不然也。 大抵君子、小人之每每相反, 不啻若薰蕕氷炭之不同器, 故彼盛此衰, 理所然也。 然則雖無嫌怨, 豈不爲仇敵乎? 若使小人, 無忮害之心, 則何故而爲小人乎? 當此之時, 樑黨所爲之事, 極爲不靖, 而其所用心, 不過曰懼其議已也, 則其於異己之人, 不可不汲汲排擯, 況於素有嫌憤者乎? 此素立等之所以先被其中傷, 而自今以往, 又安知其復有幾人哉? 甚矣樑之愚也! 嘗責沈義謙曰: ‘汝與朴素立、奇大升、尹斗壽, 何由而善乎? 李文馨謂汝爲東方聖人, 汝果爲聖人乎?’ 以此觀之, 樑之疾怨之心, 不徒在於素立等, 而其不能無憾於義謙, 亦明矣。 且於擧事之初, 必欲置諸重典, 將以乙巳之事, 羅織成之, 而賴義謙之力救, 罪止於此, 其亦幸矣。 厥初惹起之端, 實由於尹百源, 將尹元衡、李樑之說, 交遊於兩間, 而沈通源亦多主之。 嗚呼! 己卯之事, 尙未能暴白於聖明之下, 反爲陷人之機穽, 可勝慟哉!"】
答曰: "如啓。" 【命出, 士林愕然, 都下洶懼。 戡等之爲是啓者, 李樑爲之主也。 蓋樑雖憑戚里之親, 得躋崇顯之秩, 威福與奪, 亦在其手, 而士林鄙之, 少有知識者, 皆唾而不顧, 以此樑憤嫉士林。 其出入門下者, 非畏威怵禍諂言令色之人, 則皆耆利無取之流也。 戡亦以兇險傾詖之資, 母事上之乳媪, 奴顔元衡, 得以揚歷淸顯, 而復與樑結爲心腹, 故勢焰熾赫, 而士林之鄙惡, 與樑均焉。 亦嘗怨懟, 知其終不爲所容, 日夜聚其同類, 謀議揣度, 圖所以傾陷之者, 以爲士林之根柢, 莫如李滉、曺植, 將漸而盡去根柢, 然後吾等得以大肆, 而先之以此數人者, 姑試之, 而將肆其兇奸也。 先是戡等之會議也, 李重慶、金百均等及他諸人俱在。 戡之意, 欲大構罪名, 斬刈一空, 諸黨患其無名。 有頃戡起, 旋而還曰: "諸公若不用吾計, 恐有後悔。" 云。 然而求之無名, 故題爲高談不靖之罪, 而誣上聰焉】
- 【태백산사고본】 18책 29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59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