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19권, 명종 10년 8월 13일 을해 2/4 기사 /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양사가 옹성의 역사를 파할 것을 아뢰나 윤허치 않다
국역
양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옹성(甕城)을 쌓아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논계하자 위에서 여러 사람의 의논을 수렴하여 처리하겠다고 하셨으므로 망설임 없이 쾌히 따르실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들으니, 인가(人家)가 없는 곳은 쌓고 인가가 있는 곳은 시기를 기다려 쌓게 한다고 하므로, 신들은 실망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수선(修繕)하는 역사(役事)에 국고(國庫)가 바닥나고 조도(調度)가 탕진되었으니, 이것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지금 거행하는 것은 조금도 이익되는 바가 없어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 통탄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옹성의 역사를 파하여 군정(群情)의 답답함을 풀어주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다시 아뢰니 아뢴 대로 하라고 윤허하였다.
원문
명종 10년 (1555) 8월 13일
명종실록19권, 명종 10년 8월 13일 을해 2/4 기사 /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양사가 옹성의 역사를 파할 것을 아뢰나 윤허치 않다
국역
양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옹성(甕城)을 쌓아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논계하자 위에서 여러 사람의 의논을 수렴하여 처리하겠다고 하셨으므로 망설임 없이 쾌히 따르실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들으니, 인가(人家)가 없는 곳은 쌓고 인가가 있는 곳은 시기를 기다려 쌓게 한다고 하므로, 신들은 실망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수선(修繕)하는 역사(役事)에 국고(國庫)가 바닥나고 조도(調度)가 탕진되었으니, 이것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지금 거행하는 것은 조금도 이익되는 바가 없어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 통탄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옹성의 역사를 파하여 군정(群情)의 답답함을 풀어주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다시 아뢰니 아뢴 대로 하라고 윤허하였다.
원문
원본
명종 10년 (1555) 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