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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18권, 명종 10년 5월 18일 신해 2번째기사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전라도 도순찰사 이준경이 배사하고 왜변에 대처하는 계책을 아뢰다

전라도 도순찰사 이준경이 배사(拜辭)하고, 이어 아뢰기를,

"그전에는 변방의 환란이 있을 적에 진장(鎭將)이 살해된 적은 있었지만 주장(主將)이 죽은 일은 없었습니다. 신이 나주(羅州)로 먼저 가서 군마(軍馬)를 점검하고 싶지마는 혹시 늦어질까 염려됩니다. 군관(軍官) 김세명(金世鳴)정걸(丁傑) 두 사람을, 숙배(肅拜)를 생략하고 먼저 내려보내 깊은 지역의 각 고을들로 하여금 미리 군마를 정돈하여 대기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요사이 왜변이 이러하므로 위에서도 근심과 염려가 한이 없다. 이는 곧 그전에는 없던 변이니, 경(卿)이 가거든 마음을 다해 조치하여 승리할 계책을 마련하라."

하였다. 준경이 또 아뢰기를,

"요사이 태평한 지 오래되어 군정(軍政)이 해이해졌습니다. 지금 계본(啓本)을 보건대 ‘군졸들이 모두 나가서 싸우지 않았다.’고 했으니 극히 놀랍습니다. 이제 신이 전제(專制)하는 소임을 맡았으므로 엄격하게 군법(軍法)을 밝히어 한번 나아갔다 한번 물러섰다 하는 것에 있어서도 조금이라도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모두 한결같이 군율(軍律)대로 하고자 합니다.

다만 곤외(閫外)의 소임을 맡아서 꼭 군법대로만 일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권세에 줄을 대어 훼방을 많이 받을 것인데, 신은 이를 헤아리지 않고 그대로 하고자 하여 감히 미리 아뢰는 것입니다. 또 그곳의 군졸들은 굶주림이 아주 심하여 쓸 수 없을 것이니, 날래고 용감한 군사 5백 명을 가려서 보내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이준경은 곤외의 중한 소임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기까지 하였으니 비루하다. 비록 비방이 쌓이더라도 헤아리지 않겠다는 말을 하였지만,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임금을 협박한 죄는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뒷날에 성공하지 못할 것을 여기에서 미리 알 수 있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8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70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全羅道都巡察使李浚慶拜辭, 仍啓曰: "古有邊患, 鎭將被殺則有之矣, 主帥被陷則未之有也。 臣欲先往羅州, 簡閱軍馬, 而恐或遲緩。 軍官金世鳴丁傑二人, 請除肅拜先爲下送, 令深處各官, 預爲整齊以待何如?" 答曰: "如啓。 近者變如此, 自上憂慮罔極。 此乃前古所無之變。 卿其往哉, 盡心措置, 以爲制勝之策可也。" 浚慶又曰: "近來昇平日久, 軍政解弛。 今見啓本, 則 ‘軍卒皆不進戰’ 云。 極爲駭愕。 今臣受專制之任, 欲嚴明軍法, 其於一進一退, 少有違令者, 則皆一依軍律。 但受閫外之任, 而必以軍法從事, 則必有攀緣權勢, 毁謗叢集。 臣不欲計此而爲之, 故敢爲預啓。 且彼處軍卒, 飢困太甚, 不可用也。 驍勇軍五百名, 請命擇送。" 答曰: "如啓。"

    【史臣曰: "李浚慶受閫外之重任, 而言及於此, 陋矣。 雖曰不欲計毁謗之叢集, 其所以自私其身, 而要君之罪, 有不可逃矣。 後日之不能成功, 可見於此矣。"】


    • 【태백산사고본】 12책 18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270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