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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11권, 명종 6년 7월 12일 무술 2/2 기사 / 1551년 명 가정(嘉靖) 30년

대신들과 재상에 관한 법을 의논하다

국역

좌의정 심연원 등이 빈청에 모였다. 전교하기를,

"경연관이 아뢴 재상의 일은 수령이 임의로 낮췄다 올렸다 하는데 만약 체임(遞任)에 임박한 수령이면 해유(解由)106) 에 구애되어 비록 실농(失農)한 곳이 있을지라도 숨기고 보고하지 않기 때문에 백성이 많은 폐해를 받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려면 장차 어떤 계책을 써야 하겠는가? 그리고 지금 각 고을 수령의 침어(侵漁)와 탐오(貪汚)가 전보다 심하기 때문에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이 장차 위축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유지하겠는가? 조정이 매양 이 폐단을 근심해 왔으나 좋은 계책을 얻지 못하였다.

부민 고소(部民告訴)의 법은 본래 조정의 성헌(成憲)이 아니라 성종조(成宗祖) 때에 계청한 자가 있어서 입법한 것이다. 지금 금천(衿川)에서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온 고을이 텅 비게 되고 개와 닭까지도 편안하지 못하다고 한다. 한창 농사철이 되었는데 백성들이 업을 잃고 있다. 조종조에서는 비록 이 법이 없었으나 상하의 구분이 오히려 엄명하였다. 백성이 소복(蘇復)될 때까지는 이 법을 쓰지 않으려 하는데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이조 판서 윤개(尹漑), 좌찬성 신광한(申光漢), 우찬성 김광준(金光準), 좌참찬 임권(任權), 공조 판서 윤사익(尹思翼), 지중추부사 정세호(鄭世虎)·김인손(金麟孫), 호조 판서 송세형(宋世珩)이 의논드리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옛법을 잘 따르는 데 있는 것이니 가볍게 논의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지난 기유년에 재실(災實)의 착오로 인해서 파면되거나 체임된 수령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관(官)의 일이 허술해져서 그 폐해가 백성에게 미쳤습니다. 한때의 폐단을 구제하기 위하여 옛법을 고칠 즈음에 신들도 그 논의에 참여했었습니다. 근래에 농사는 흉년이 들고 백성은 곤궁함이 전보다 심하며, 관리된 자들이 법규를 업신여기고 공무(公務)를 폐함도 옛날보다 심합니다. 그런데 더구나 그 법을 늦추어 놓고 봉행하게 한다면 어찌 될 수 있겠습니까. 사세로 보아 반드시 수령과 하리(下吏)들은 전연 답험(踏驗)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될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민생은 곤폐하게 될 것입니다. 신들의 생각으로는 일체를 《대전》과 신사년의 수교(受敎)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예조 판서 정사룡, 지중추부사 윤원형, 병조 판서 안현(安玹), 형조 판서 이미(李薇), 동지중추부사 신영(申瑛)·유진동(柳辰仝), 예조 참판 심통원(沈通源), 이조 참판 심광언(沈光彦), 한성부 우윤 남궁 숙(南宮淑)은 의논드리기를,

"재상을 답험할 때에 실결(實結)을 재결(災結)이라고 한 것이 10부(負) 이상인 것과 재결을 실결이라고 한 것이 50부 이상이면 수령은 파직하고 전부(田夫)·위관(委官)·서원(書員)·권농(勸農) 등을 죄주는 것은 조종조로부터 시행해 온 지 이미 오래인데 세입(稅入)을 중히 하고 민생을 구휼하는 뜻이 겸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50부로써 10부에 비교한다면 이미 가벼운 것인데 이제 50부면 파직하는 법마저도 아울러 폐지한다면, 다만 백성을 손실되게 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수령·위관·서원 등이 법이 가벼움을 이용하여 제멋대로 올렸다 내렸다 할 것이니 백성을 병들게 하는 폐해를 장차 구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실결을 재결이라고 한 것이 10부 이상이라는 것은 반드시 한 구역 안에서 범(犯)한 것이라야 치죄하는데 그렇다면 어사·경차관이 비록 온 고을을 고루 답험할지라도 적발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결을 재결이라고 한 전지가 10부가 못되고 8∼9부에 이른 것은 비록 10∼1백 군데가 될지라도 면죄된다면 이것이 어찌 입법한 본의이겠습니까. 전부터 합계한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기전(起田)을 진전(陳田)이라 하고 진전을 기전이라고 한 것도 모두 조종의 옛법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하고, 심연원이 아뢰기를,

"재상법(災傷法)은 도로 옛법을 따르자는 것을 이미 의논하여 아뢰었으므로 이제와서 감히 다시 논의하지 못하나 지난 기유년에 수령이 많이 파직된 까닭에 영송(迎送)의 폐단을 염려하여 이와 같이 의정한 것입니다. 다만 재상을 심사하고 결정할 때 실지대로 마감하는 것이 나라에도 백성에게도 손해가 없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수령의 직책인 것입니다.

그런데 법령이 조금 늦춰지자 인심(人心)이 해이해져서 수령된 자가 친히 논밭에 나가 보지 않고 하리에게만 맡기기 때문에 비록 곡식이 잘 결실하지 않은 곳이 있어도 재상을 주지 않으므로 심한 경우는 온 고을안에 한 곳도 재상을 준 곳이 없기까지 한 데 아무리 풍년이 든 해일지라도 어찌 한 곳도 재상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옛법을 따르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다만 어사를 보내어 바쁘게 달리며 지나가게 할 뿐이니 어찌 실지대로 살펴서 정할 수 있겠습니까. 깜짝하는 사이에 간사한 자에게 속임을 당하는 일도 또한 많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마땅히 경차관을 보내어 실지대로 답사하게 하여 국세(國稅)가 결손되지 않고 민생(民生)이 원망하지 않게 한다면 어찌 양편이 다 편리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심연원·윤개·신광한·임권·심광언을 의논드리기를,

"부민 고소(部民告訴)의 법은 《대전》에는 원래 장 일백 도삼년이었는데, 그 뒤의 수교에 전가 사변(全家徙邊)으로 되었습니다. 인심이 박하고 악하여 점점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일어나므로 이 폐단을 막으려고 마지못하여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으로 하여금 전혀 원통함을 하소연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니고 자신에게 원통한 일이 있으면 신원(伸冤)하는 것만은 허용하였습니다. 만약 수령의 불법(不法)한 일이 자기의 절박한 화환(禍患)이 아닌데도 이를 고소(告訴)하여 죄를 얽는다면 수령과 백성은 군민(君民)의 분의(分義)가 있는 것이므로 모름지기 서로 경외(敬畏)해야 할 처지인데 될 말입니까. 백성은 수령을 두려워하고 수령은 감사를 두려워하며 감사는 조정을 존경한 뒤에야 등급이 분명해 지고 국세(國勢)가 존엄하게 될 것입니다. 수령이 불법한 소행이 있으면 백성이 비록 고소하지 않더라도 이미 감사가 있고 또 공론이 있어서 자연히 그 죄를 다스리게 될 것인데 어찌 반드시 백성의 고소를 기다린 뒤에 그 죄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윤사익·정사룡·정세호·안현·이미·송세형·김익수(金益壽)·이광식(李光軾)·강현(姜顯)·신영·유진동·남궁 숙(南宮淑)은 의논드리기를,

"부민 고소의 법은 《대전》에는 그 죄가 가벼웠는데 《후속록》에 실린 수교(受敎)에는 그 죄를 무겁게 하였습니다. 고소하는 풍습이 지극히 나쁘기는 하지만 전가 사변하는 법은 과중한 것 같습니다. 선왕의 법을 따라서 잘못된 자는 있지 않으니 조종조의 《대전》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온편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재상(災傷)의 일은 알았다. 영상과 우상의 의논을 본 뒤에 결정하겠다. 부민 고소에 대한 일은, 지금 수령들이 백성을 침탈하여 못하는 짓이 없는데, 혹은 이 법에 구애되어 억울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이로 말미암아 백성의 유망(流亡)이 계속되어 나라의 근본이 날로 초췌해 가고 있으니 어찌 이와 같이 참혹한 일이 있겠는가. 수교의 법은 특별히 한때의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조치이기는 하나 도리어 후일의 폐단이 되었다. 《대전》의 법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심연원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지금 민생들에게 어려운 일들이 과연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민생의 폐단을 구제하는 데는 이 법으로 구제할 수가 없습니다. 조정의 이목(耳目)이 먼 지방까지 미치지는 못하나 감사(監司)가 출척(黜陟)의 책임을 맡고 있으며, 또 조정에 이목지관(耳目之官)107) 이 있고 불시(不時)로 파견하는 어사(御史)도 있어서 수령 중에 법을 범해가며 침탈하는 자가 있으면 자연 공론이 있을 것인데, 어찌 이 법으로 백성의 억울함을 구제하려 하십니까. 한번 그 단서를 열어 놓게 되면 자신의 절박한 억울함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불만스런 혐의가 있어도 번거롭게 고소할 것이니 수령들은 장차 수족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수교의 법이 비록 한때의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조치이기는 하나, 이것이 아니면 폐단을 방지하기 어려우므로 《후속록(後續錄)》에 기록하여 이미 성헌(成憲)으로 만들었으니 신들의 생각으로는 가볍게 그 단서를 열어놓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 [註 106] 해유(解由) : 관물(官物)을 관리(管理)함에 하자가 없어 그 책임을 해제하는 문서. 전곡(錢穀) 및 그 밖의 물품을 출납하는 책임이 있는 관원이 교체될 때 그에 대한 문서를 작성하여 후임자에게 인계하며 이것을 호조에 신보하고 호조는 이상이 없으면 이조와 병조에 통보하는데 이때 해유(解由)를 발급한다. 해유가 없으면 실직에 천보(遷補)될 수 없다.
  • [註 107] 이목지관(耳目之官) : 사헌부·사간원 등의 관리.

원문

○左議政沈連源等會于賓廳。 傳曰: "經筵官所啓災傷事, 守令任意低昻, 若臨遞守令, 則拘於解由, 雖有失農之處, 匿不以報。 以此民多受弊云。 欲防此弊, 將用何策乎? 且今各官守令, 侵漁貪汚, 有甚於前, 故邦本將蹙, 何以維持乎? 朝廷每憂此弊, 而未得善策。 部民告訴者罪之之法, 本非祖宗成憲, 而成廟朝, 因有啓者而立之矣。 今者衿川, 一人作罪, 闔境空虛, 雞犬亦不得寧, 正當農月, 民失其業。 祖宗朝雖無此法, 而上下之分, 尙且嚴明。 欲限百姓蘇復, 不用此法, 於卿等意何如也?" 吏曹判書尹漑、左贊成申光漢、右贊成金光準、左參贊任權、工曹判書尹思翼、知中樞府事鄭世虎金麟孫、戶曹判書宋世珩議: "爲國之道, 在於率由舊章, 未宜輕議。 往在己酉年, 因災實差錯, 守令罷遞甚衆, 官事虛疎, 弊及於民。 因一時救弊, 增損舊規之際, 臣等亦與其議。 比來歲荒民困, 甚於往時, 爲官吏者, 慢法廢公, 亦甚於舊日。 況乎緩其法而欲以奉行, 豈可得乎? 守令、下吏等, 專不致意於踏驗, 勢所必至, 民生困瘁, 亦由於玆。 臣等之意, 一依《大典》及辛巳年受敎施行爲當。" 禮曹判書鄭士龍、知中樞府事尹元衡、兵曹判書安玹、刑曹判書李薇、同知中樞府事申瑛柳辰仝、禮曹參判沈通源、吏曹參判沈光彦漢城府右尹南宮淑議: "災傷踏驗時, 以實爲災十負以上, 以災爲實五十負以上, 守令罷職, 田夫、委官、書員、勸農等抵罪, 自祖宗朝行用已久。 其重稅入恤民生之意兼備, 而以五十負而比十負, 則已爲輕歇矣。 今竝與五十負罷職之法而廢之, 則非但偏於損下之道, 守令、委官、書員等利其法輕, 恣意上下, 病民之弊, 將不可救。 況以實爲災十負以上者, 必犯一區然後治罪, 則御史、敬差官雖遍歷一邑, 未易摘出。 且以實爲災之田, 未滿十負, 而至於八九負者, 雖十百皆免罪, 則是豈立法本意乎? 自前合計者, 恐以是也。 以起爲陳, 以陳爲起, 竝依祖宗舊規施行爲便。" 沈連源啓曰: "災傷之法, 還從舊規事, 曾已議啓, 今不敢更議。 往在己酉年, 以守令多罷, 慮迎送之弊, 議之如是。 但災傷審定之際, 從實磨勘, 於國於民, 無有損害, 此乃守令之職也。 而法令稍緩, 則人心易至解弛, 爲守令者, 委諸下吏, 不親出入阡陌, 雖有不稔處, 亦不給災, 甚者至於一邑之內, 無一處給災傷。 雖豐穰之年, 豈無一處災傷乎? 此所以欲從舊規者也。 但御史奔忙馳過, 安能一一從實審定乎? 瞥然之頃, 受欺於妄冒者亦多。 臣之意, 宜遣敬差官, 從實踏驗, 勿使國稅, 至於虧損, 民生至於冤憫, 豈不兩便乎?" 沈連源尹漑申光 任權沈光彦議: "部民告訴之法, 元《大典》則杖一百、徒三年, 其後受敎, 爲全家徙邊。 人心薄惡, 漸起陵上之習, 故欲防此弊, 不得已爲此也。 然非使民專不訴冤, 如自己冤憫之事, 則許其伸冤矣。 如守令不法之事, 非自己切迫之患, 而告訴搆罪, 百姓與守令, 有君民之分, 須相敬畏。 百姓畏守令, 守令畏監司, 監司敬朝廷, 然後等級分明, 國勢尊嚴矣。 守令有不法之事, 民雖不告, 旣有監司, 又有公論, 自然治其罪, 何必待民之告訴, 然後治其罪哉?" 尹思翼鄭士龍鄭世虎尹元衡安玹李薇宋世珩金益壽李光軾姜顯申瑛柳辰仝南宮淑議: "部民告訴之法, 《大典》則輕, 而《後續錄》受敎則重。 其罪告訐之風, 至爲非矣, 然全家之法, 似乎過重。 遵先王之法而過者, 未之有也。 遵祖宗《大典》之法爲便。" 答曰: "災傷事, 知道。 見領右相議後發落焉。 部民告訴事, 今守令等侵督百姓, 無所不至, 而或拘於是法, 不得解悶, 由是流亡相繼, 邦本日瘁, 安有如此慘惔之事乎? 受敎之法, 特一時救弊之擧, 而反爲後弊矣。 依《大典》法爲之何如?" 連源等回啓曰: "今民生艱苦之事, 果爲多矣。 然救民之弊, 不可以此法救之也。 朝廷耳目, 雖不及於遠方, 然監司旣任黜陟之責, 又有朝廷耳目之官, 不時御史之行, 守令之犯法侵漁者, 自有公論, 何待此法, 以救民冤乎? 一開其端, 則非徒訴已切迫之冤, 少有不愜之嫌, 紛紜告訴, 守令將不得措手足矣。 受敎之法, 雖曰一時救弊之擧, 然非此則難以防弊, 故已綠於《後續錄》, 已爲成憲。 臣等之意, 恐不可輕易開端也。" 答曰: "知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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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11권, 명종 6년 7월 12일 무술 2/2 기사 / 1551년 명 가정(嘉靖) 30년

대신들과 재상에 관한 법을 의논하다

국역

좌의정 심연원 등이 빈청에 모였다. 전교하기를,

"경연관이 아뢴 재상의 일은 수령이 임의로 낮췄다 올렸다 하는데 만약 체임(遞任)에 임박한 수령이면 해유(解由)106) 에 구애되어 비록 실농(失農)한 곳이 있을지라도 숨기고 보고하지 않기 때문에 백성이 많은 폐해를 받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려면 장차 어떤 계책을 써야 하겠는가? 그리고 지금 각 고을 수령의 침어(侵漁)와 탐오(貪汚)가 전보다 심하기 때문에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이 장차 위축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유지하겠는가? 조정이 매양 이 폐단을 근심해 왔으나 좋은 계책을 얻지 못하였다.

부민 고소(部民告訴)의 법은 본래 조정의 성헌(成憲)이 아니라 성종조(成宗祖) 때에 계청한 자가 있어서 입법한 것이다. 지금 금천(衿川)에서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온 고을이 텅 비게 되고 개와 닭까지도 편안하지 못하다고 한다. 한창 농사철이 되었는데 백성들이 업을 잃고 있다. 조종조에서는 비록 이 법이 없었으나 상하의 구분이 오히려 엄명하였다. 백성이 소복(蘇復)될 때까지는 이 법을 쓰지 않으려 하는데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이조 판서 윤개(尹漑), 좌찬성 신광한(申光漢), 우찬성 김광준(金光準), 좌참찬 임권(任權), 공조 판서 윤사익(尹思翼), 지중추부사 정세호(鄭世虎)·김인손(金麟孫), 호조 판서 송세형(宋世珩)이 의논드리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옛법을 잘 따르는 데 있는 것이니 가볍게 논의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지난 기유년에 재실(災實)의 착오로 인해서 파면되거나 체임된 수령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관(官)의 일이 허술해져서 그 폐해가 백성에게 미쳤습니다. 한때의 폐단을 구제하기 위하여 옛법을 고칠 즈음에 신들도 그 논의에 참여했었습니다. 근래에 농사는 흉년이 들고 백성은 곤궁함이 전보다 심하며, 관리된 자들이 법규를 업신여기고 공무(公務)를 폐함도 옛날보다 심합니다. 그런데 더구나 그 법을 늦추어 놓고 봉행하게 한다면 어찌 될 수 있겠습니까. 사세로 보아 반드시 수령과 하리(下吏)들은 전연 답험(踏驗)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될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민생은 곤폐하게 될 것입니다. 신들의 생각으로는 일체를 《대전》과 신사년의 수교(受敎)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예조 판서 정사룡, 지중추부사 윤원형, 병조 판서 안현(安玹), 형조 판서 이미(李薇), 동지중추부사 신영(申瑛)·유진동(柳辰仝), 예조 참판 심통원(沈通源), 이조 참판 심광언(沈光彦), 한성부 우윤 남궁 숙(南宮淑)은 의논드리기를,

"재상을 답험할 때에 실결(實結)을 재결(災結)이라고 한 것이 10부(負) 이상인 것과 재결을 실결이라고 한 것이 50부 이상이면 수령은 파직하고 전부(田夫)·위관(委官)·서원(書員)·권농(勸農) 등을 죄주는 것은 조종조로부터 시행해 온 지 이미 오래인데 세입(稅入)을 중히 하고 민생을 구휼하는 뜻이 겸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50부로써 10부에 비교한다면 이미 가벼운 것인데 이제 50부면 파직하는 법마저도 아울러 폐지한다면, 다만 백성을 손실되게 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수령·위관·서원 등이 법이 가벼움을 이용하여 제멋대로 올렸다 내렸다 할 것이니 백성을 병들게 하는 폐해를 장차 구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실결을 재결이라고 한 것이 10부 이상이라는 것은 반드시 한 구역 안에서 범(犯)한 것이라야 치죄하는데 그렇다면 어사·경차관이 비록 온 고을을 고루 답험할지라도 적발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결을 재결이라고 한 전지가 10부가 못되고 8∼9부에 이른 것은 비록 10∼1백 군데가 될지라도 면죄된다면 이것이 어찌 입법한 본의이겠습니까. 전부터 합계한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기전(起田)을 진전(陳田)이라 하고 진전을 기전이라고 한 것도 모두 조종의 옛법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하고, 심연원이 아뢰기를,

"재상법(災傷法)은 도로 옛법을 따르자는 것을 이미 의논하여 아뢰었으므로 이제와서 감히 다시 논의하지 못하나 지난 기유년에 수령이 많이 파직된 까닭에 영송(迎送)의 폐단을 염려하여 이와 같이 의정한 것입니다. 다만 재상을 심사하고 결정할 때 실지대로 마감하는 것이 나라에도 백성에게도 손해가 없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수령의 직책인 것입니다.

그런데 법령이 조금 늦춰지자 인심(人心)이 해이해져서 수령된 자가 친히 논밭에 나가 보지 않고 하리에게만 맡기기 때문에 비록 곡식이 잘 결실하지 않은 곳이 있어도 재상을 주지 않으므로 심한 경우는 온 고을안에 한 곳도 재상을 준 곳이 없기까지 한 데 아무리 풍년이 든 해일지라도 어찌 한 곳도 재상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옛법을 따르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다만 어사를 보내어 바쁘게 달리며 지나가게 할 뿐이니 어찌 실지대로 살펴서 정할 수 있겠습니까. 깜짝하는 사이에 간사한 자에게 속임을 당하는 일도 또한 많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마땅히 경차관을 보내어 실지대로 답사하게 하여 국세(國稅)가 결손되지 않고 민생(民生)이 원망하지 않게 한다면 어찌 양편이 다 편리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심연원·윤개·신광한·임권·심광언을 의논드리기를,

"부민 고소(部民告訴)의 법은 《대전》에는 원래 장 일백 도삼년이었는데, 그 뒤의 수교에 전가 사변(全家徙邊)으로 되었습니다. 인심이 박하고 악하여 점점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일어나므로 이 폐단을 막으려고 마지못하여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으로 하여금 전혀 원통함을 하소연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니고 자신에게 원통한 일이 있으면 신원(伸冤)하는 것만은 허용하였습니다. 만약 수령의 불법(不法)한 일이 자기의 절박한 화환(禍患)이 아닌데도 이를 고소(告訴)하여 죄를 얽는다면 수령과 백성은 군민(君民)의 분의(分義)가 있는 것이므로 모름지기 서로 경외(敬畏)해야 할 처지인데 될 말입니까. 백성은 수령을 두려워하고 수령은 감사를 두려워하며 감사는 조정을 존경한 뒤에야 등급이 분명해 지고 국세(國勢)가 존엄하게 될 것입니다. 수령이 불법한 소행이 있으면 백성이 비록 고소하지 않더라도 이미 감사가 있고 또 공론이 있어서 자연히 그 죄를 다스리게 될 것인데 어찌 반드시 백성의 고소를 기다린 뒤에 그 죄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윤사익·정사룡·정세호·안현·이미·송세형·김익수(金益壽)·이광식(李光軾)·강현(姜顯)·신영·유진동·남궁 숙(南宮淑)은 의논드리기를,

"부민 고소의 법은 《대전》에는 그 죄가 가벼웠는데 《후속록》에 실린 수교(受敎)에는 그 죄를 무겁게 하였습니다. 고소하는 풍습이 지극히 나쁘기는 하지만 전가 사변하는 법은 과중한 것 같습니다. 선왕의 법을 따라서 잘못된 자는 있지 않으니 조종조의 《대전》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온편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재상(災傷)의 일은 알았다. 영상과 우상의 의논을 본 뒤에 결정하겠다. 부민 고소에 대한 일은, 지금 수령들이 백성을 침탈하여 못하는 짓이 없는데, 혹은 이 법에 구애되어 억울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이로 말미암아 백성의 유망(流亡)이 계속되어 나라의 근본이 날로 초췌해 가고 있으니 어찌 이와 같이 참혹한 일이 있겠는가. 수교의 법은 특별히 한때의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조치이기는 하나 도리어 후일의 폐단이 되었다. 《대전》의 법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심연원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지금 민생들에게 어려운 일들이 과연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민생의 폐단을 구제하는 데는 이 법으로 구제할 수가 없습니다. 조정의 이목(耳目)이 먼 지방까지 미치지는 못하나 감사(監司)가 출척(黜陟)의 책임을 맡고 있으며, 또 조정에 이목지관(耳目之官)107) 이 있고 불시(不時)로 파견하는 어사(御史)도 있어서 수령 중에 법을 범해가며 침탈하는 자가 있으면 자연 공론이 있을 것인데, 어찌 이 법으로 백성의 억울함을 구제하려 하십니까. 한번 그 단서를 열어 놓게 되면 자신의 절박한 억울함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불만스런 혐의가 있어도 번거롭게 고소할 것이니 수령들은 장차 수족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수교의 법이 비록 한때의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조치이기는 하나, 이것이 아니면 폐단을 방지하기 어려우므로 《후속록(後續錄)》에 기록하여 이미 성헌(成憲)으로 만들었으니 신들의 생각으로는 가볍게 그 단서를 열어놓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 [註 106] 해유(解由) : 관물(官物)을 관리(管理)함에 하자가 없어 그 책임을 해제하는 문서. 전곡(錢穀) 및 그 밖의 물품을 출납하는 책임이 있는 관원이 교체될 때 그에 대한 문서를 작성하여 후임자에게 인계하며 이것을 호조에 신보하고 호조는 이상이 없으면 이조와 병조에 통보하는데 이때 해유(解由)를 발급한다. 해유가 없으면 실직에 천보(遷補)될 수 없다.
  • [註 107] 이목지관(耳目之官) : 사헌부·사간원 등의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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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議政沈連源等會于賓廳。 傳曰: "經筵官所啓災傷事, 守令任意低昻, 若臨遞守令, 則拘於解由, 雖有失農之處, 匿不以報。 以此民多受弊云。 欲防此弊, 將用何策乎? 且今各官守令, 侵漁貪汚, 有甚於前, 故邦本將蹙, 何以維持乎? 朝廷每憂此弊, 而未得善策。 部民告訴者罪之之法, 本非祖宗成憲, 而成廟朝, 因有啓者而立之矣。 今者衿川, 一人作罪, 闔境空虛, 雞犬亦不得寧, 正當農月, 民失其業。 祖宗朝雖無此法, 而上下之分, 尙且嚴明。 欲限百姓蘇復, 不用此法, 於卿等意何如也?" 吏曹判書尹漑、左贊成申光漢、右贊成金光準、左參贊任權、工曹判書尹思翼、知中樞府事鄭世虎金麟孫、戶曹判書宋世珩議: "爲國之道, 在於率由舊章, 未宜輕議。 往在己酉年, 因災實差錯, 守令罷遞甚衆, 官事虛疎, 弊及於民。 因一時救弊, 增損舊規之際, 臣等亦與其議。 比來歲荒民困, 甚於往時, 爲官吏者, 慢法廢公, 亦甚於舊日。 況乎緩其法而欲以奉行, 豈可得乎? 守令、下吏等, 專不致意於踏驗, 勢所必至, 民生困瘁, 亦由於玆。 臣等之意, 一依《大典》及辛巳年受敎施行爲當。" 禮曹判書鄭士龍、知中樞府事尹元衡、兵曹判書安玹、刑曹判書李薇、同知中樞府事申瑛柳辰仝、禮曹參判沈通源、吏曹參判沈光彦漢城府右尹南宮淑議: "災傷踏驗時, 以實爲災十負以上, 以災爲實五十負以上, 守令罷職, 田夫、委官、書員、勸農等抵罪, 自祖宗朝行用已久。 其重稅入恤民生之意兼備, 而以五十負而比十負, 則已爲輕歇矣。 今竝與五十負罷職之法而廢之, 則非但偏於損下之道, 守令、委官、書員等利其法輕, 恣意上下, 病民之弊, 將不可救。 況以實爲災十負以上者, 必犯一區然後治罪, 則御史、敬差官雖遍歷一邑, 未易摘出。 且以實爲災之田, 未滿十負, 而至於八九負者, 雖十百皆免罪, 則是豈立法本意乎? 自前合計者, 恐以是也。 以起爲陳, 以陳爲起, 竝依祖宗舊規施行爲便。" 沈連源啓曰: "災傷之法, 還從舊規事, 曾已議啓, 今不敢更議。 往在己酉年, 以守令多罷, 慮迎送之弊, 議之如是。 但災傷審定之際, 從實磨勘, 於國於民, 無有損害, 此乃守令之職也。 而法令稍緩, 則人心易至解弛, 爲守令者, 委諸下吏, 不親出入阡陌, 雖有不稔處, 亦不給災, 甚者至於一邑之內, 無一處給災傷。 雖豐穰之年, 豈無一處災傷乎? 此所以欲從舊規者也。 但御史奔忙馳過, 安能一一從實審定乎? 瞥然之頃, 受欺於妄冒者亦多。 臣之意, 宜遣敬差官, 從實踏驗, 勿使國稅, 至於虧損, 民生至於冤憫, 豈不兩便乎?" 沈連源尹漑申光 任權沈光彦議: "部民告訴之法, 元《大典》則杖一百、徒三年, 其後受敎, 爲全家徙邊。 人心薄惡, 漸起陵上之習, 故欲防此弊, 不得已爲此也。 然非使民專不訴冤, 如自己冤憫之事, 則許其伸冤矣。 如守令不法之事, 非自己切迫之患, 而告訴搆罪, 百姓與守令, 有君民之分, 須相敬畏。 百姓畏守令, 守令畏監司, 監司敬朝廷, 然後等級分明, 國勢尊嚴矣。 守令有不法之事, 民雖不告, 旣有監司, 又有公論, 自然治其罪, 何必待民之告訴, 然後治其罪哉?" 尹思翼鄭士龍鄭世虎尹元衡安玹李薇宋世珩金益壽李光軾姜顯申瑛柳辰仝南宮淑議: "部民告訴之法, 《大典》則輕, 而《後續錄》受敎則重。 其罪告訐之風, 至爲非矣, 然全家之法, 似乎過重。 遵先王之法而過者, 未之有也。 遵祖宗《大典》之法爲便。" 答曰: "災傷事, 知道。 見領右相議後發落焉。 部民告訴事, 今守令等侵督百姓, 無所不至, 而或拘於是法, 不得解悶, 由是流亡相繼, 邦本日瘁, 安有如此慘惔之事乎? 受敎之法, 特一時救弊之擧, 而反爲後弊矣。 依《大典》法爲之何如?" 連源等回啓曰: "今民生艱苦之事, 果爲多矣。 然救民之弊, 不可以此法救之也。 朝廷耳目, 雖不及於遠方, 然監司旣任黜陟之責, 又有朝廷耳目之官, 不時御史之行, 守令之犯法侵漁者, 自有公論, 何待此法, 以救民冤乎? 一開其端, 則非徒訴已切迫之冤, 少有不愜之嫌, 紛紜告訴, 守令將不得措手足矣。 受敎之法, 雖曰一時救弊之擧, 然非此則難以防弊, 故已綠於《後續錄》, 已爲成憲。 臣等之意, 恐不可輕易開端也。" 答曰: "知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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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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