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세를 당현에서 참하고 처자를 종으로 만들고 가산을 적몰하다
안명세를 당현(唐峴)에서 참(斬)하고, 그의 처자(妻子)는 종으로 만들고, 재산은 관(官)에서 몰수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명세는 단정한 사람이다. 사재(史才)가 있어 한림(翰林)이 되었다. 을사년 정난(定難)의 옥(獄)을 당하여 사실에 의거해서 바르게 기록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가하여 《춘추(春秋)》의 뜻을 붙였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찬집청(撰集廳) 군간(群奸)들에게 지적을 받아 대죄(大罪)에 걸리고 말았는데, 국문을 받을 때에는 언사(言辭)가 자약하였고 죽음에 임해서도 신색(神色)이 조금도 변함 없었다. 동호(蕫狐) 같은 직필(直筆)053) 이 몸을 죽이는 매개가 되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사신은 논한다. 안명세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이기 등이 그를 역당(逆黨)이라 하여 대역(大逆)으로 논해서 극죄(極罪)로 다스렸으니, 사화(史禍)가 여기에 이르러 극도에 달한 것이다. 이때 권요직(權要職)에 있는 자들은 모두 간흉(奸凶)의 무리로서, 찬집(撰集)한다는 설(說)은 맨 처음 윤인서(尹仁恕)의 입에서 나왔고, 그것을 참고(參考)한다는 의논은 마침내 이기 등의 계책에서 이루어져, 사신(史臣)으로 하여금 이같은 극화(極禍)를 받게 하였으니, 국가가 망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사신은 논한다. 안명세의 사화가 일어났을 때에 그의 장인 이은우(李殷雨)가 일찍부터 이기·정순붕(鄭順朋)과 약간 서로 알고 지냈던 터라, 이기의 집으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면서 안명세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이기가 말하기를 ‘이 죄로 어찌 죽기까지야 하겠는가. 내 생각은 이러하나 다만 정(鄭)054) 을 만나보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은우가 그 말을 듣고 즉시 정순붕의 집으로 가서 애원하니, 순붕이 말하기를 ‘국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 하므로 은우는 말 한 마디 없이 물러나왔고, 안명세는 끝내 화를 면하지 못하였다. 아, 슬프다! 대저 간흉들이 모여서 사류(士類)를 살육할 때에 평소에 사이가 조금만 서로 좋지 않았던 자들도 역류(逆類)라고 무함하여 모두 유배하거나 죽이거나 하였다. 그런데 더구나 안명세의 직필(直筆)은 간흉을 주벌하는 법에 엄격하여 곧바로 그 흉특의 칼날을 범하였으니, 그가 온전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가 끝내 죽게 된데는 정순붕의 힘이 가장 컸다. 아, 참혹하다! 안명세는 또 《이십사공신전(二十四功臣傳)》을 일찍이 저술하여 을사년의 일을 직척(直斥)했다고 한다. 그의 사람됨은 단중(端重)하고 과묵하였는데, 처형(處刑)에 임해서도 안색(顔色)이 조금도 변치 않고 평소와 같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장하게 여겼다. 한지원(韓智源)은 안명세와 동시의 사관(史官)이었는데, 명세가 직필을 했을 경우에는 그때마다 지원이 반드시 겉으로 칭탄(稱嘆)하는 표정을 내보이곤 하였으므로, 명세는 그를 믿을 만하다고 여겨 조금도 거리낌 없이 직서(直書)하였다. 이때에 지원은 이 사실을 모두 이기에게 통하였는데도 명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화가 일어날 때를 당하여 명세가 지원의 집에 가서 자신을 영구(營救)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러자 지원이 남에게 이르기를 ‘명세는 참으로 모자란 사람이라 하겠다. 그의 사록(史錄)에 관한 일을 내가 바로 퍼뜨렸는데, 도리어 나더러 시재(時宰)의 집에 가서 자신을 영구해달라고 하는 것은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닌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567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호구(戶口) /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斬安名世于唐峴, 妻子爲孥, 財産入官。
【史臣曰: "名世, 端人也。 有史才, 爲翰林。 當乙巳定難之獄, 據事直書, 參以己見, 以寓《春秋》之意。 至是爲撰集廳群奸所指摘, 網致大罪, 就鞫之日, 言辭自若, 臨死神色不變。 以董狐之筆, 爲滅身之媒, 誠可痛也!"】
【史臣曰: "名世有何罪焉? 李芑等以爲逆黨, 而論以大逆, 施以極罪, 史禍至此極矣。 是時布列權要者, 皆奸兇之徒, 撰集之說, 始發於尹仁恕之口, 參考之議, 遂成於李芑等之計, 以致史臣受此極禍, 國家之不亡, 幸也。"】
【史臣曰: "安名世, 史禍之起也, 其妻父李殷雨, 曾與李芑、鄭順朋, 粗有相知之分, 馳往芑家, 涕泣救哀。 芑曰: ‘此罪豈至於死乎? 吾意則如此, 但當往見鄭也。’ 卽往順朋家祈懇, 則順朋曰: ‘爲國家出於不得已也。’ 殷雨悶默而退, 名世竟不免。 嗚呼悲夫! 夫以奸兇參會, 芟刈士類, 雖平日之少所不悅者, 誣以逆類, 無不或竄或死。 而況名世之直筆, 乃澟澟於誅奸之法, 直犯其兇慝之鋒, 固無自全之理。 而其竟致死地者, 順朋之力尤多。 嗚呼慘哉! 名世又嘗著二十四功臣傳, 直斥乙巳之事云。 爲人端重寡默, 臨刑, 顔色不變, 有如平日, 人皆壯之。 韓智源, 與安名世, 同時爲史官, 名世如有直筆, 則智源必外示稱嘆, 名世以爲可信, 遂直書, 無所避諱。 智源盡通於李芑, 而名世則不之覺也。 迨禍之將起, 名世猶往智源家, 望其營救。 智源謂人曰: ‘名世可謂無所肖似者矣。 其史事, 我乃言之, 反欲我往救于時宰家, 不亦謬乎?’"】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567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호구(戶口) /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