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홍언필 등과 윤임·윤원형의 일에 대하여 의논을 내리다
좌의정 홍언필, 우의정 윤인경, 우찬성 성세창, 좌참찬 권벌, 우참찬 허자, 병조 판서 정옥형, 공조 판서 유인숙, 형조 판서 상진, 예조 판서 임권, 이조 판서 신광한, 호조 판서 임백령, 대사헌 정순붕, 대사간 임억령이 부름을 받고 빈청(賓廳)에 나아가니, 상이 의논을 내리기를,
"오늘 경연에서 대사헌의 말을 들었는데, 이것은 심상한 일도 아니요, 또한 잘 알려진 일이다. 위에서도 밝게 가리지 못하면 인심이 어수선하고 사림(士林)도 스스로 안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은 이러하다. 이 일은 두 윤(尹)이 저희끼리 무리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한편은 세자(世子)를 위하고 한편은 대군(大君)을 위하니 이는 매우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국가를 어지럽히는 것이 어찌 중대하지 않겠는가. 여느 때에도 세자와 대군을 만나면 그 예(禮)에는 차등을 두나 치우치는 뜻이 없고, 세자와 대군은 바야흐로 우애의 정이 있으므로, 궐내(闕內)의 위아래에 그럴 듯한 꼬투리가 터럭만큼도 없는데, 뜻밖에 아래에서 이런 간사한 의논이 생겨 위 아래가 안정하지 못하고 형제 사이도 화평하지 못하게 하니,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크다. 간사한 말을 낸 자는 근거가 없으면 추문하기가 워낙 어렵겠으나, 이 일은 그 근원에 자취가 있는데, 허경(許坰)의 추안(推案) 【*】 을 경(卿)들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내가 ‘이 일은 끝내 안정되지 못할 듯하나 간흉(奸兇) 【김안로(金安老)·채무택(蔡無擇)·허항(許沆).】 을 이미 다스렸으니 인심이 절로 진정될 것이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나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정유년405) 에 국모를 해치려는 자가 동궁에 후사가 없고 중궁에 대군이 있다고 그럴 듯한 말을 내어 간흉을 공동(恐動)하여 그때에 유생(儒生)까지도 죄를 다스리려 하였으나, 내가 듣지 않았다. 그 뒤에도 이 말이 없어지지 않아서 지금의 사림은 그 꼬투리를 모르고 이처럼 떠들썩하게 말하는데, 이것은 사림이 스스로 꾸민 것이 아니며 누구에게서 이 말이 나왔다고 의심할 수도 없는 것으로 이 말은 모두 정유년의 일에서 나온 것이다.
윤임·윤원형은 다 지친인데 나도 어찌 돌볼 일이 없으랴마는, 큰일은 일찍부터 막지 않을 수 없다. 외척의 일을 위에서 결단하면 간사한 의논이 진정될 뿐더러 죄받는 사람도 마침내 편안하게 될 것이며 사림도 인정될 것이다. 구수담이 그 기미를 발설하여 그 간사한 말을 진정하려 하였으나 내가 그 호오(好惡)를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 말이 이제까지도 그치지 않는다. 윤임은 간흉에게 간사한 의논을 맨 먼저 내어서 이제까지도 그치지 않게 하였으므로 지극히 그르니 외방으로 귀양보내야 하겠고, 윤원형은 이렇게 진정되지 못하게 하였으니 파면해야 하겠다. 이렇게 하면 마땅할 듯하다."
하였다. 【의논이 내려지자, 재상들이 모두 서로 돌아보며 실색(失色)하였다.】
【*허경의 추안 중 그 공초(供招)에 "허항(許沆)이 허경에게 말하기를 ‘윤원로(尹元老) 등이 사림을 모함하여 해치려고 헛말을 만들었다.’ 하였고, 윤원로는 윤임의 집에 가서 말하기를 ‘그때 사림이 우리 형제를 의심한 것은 동궁에 후사(後嗣)가 없고 중궁(中宮)에 대군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송 인종(宋仁宗)이 폐후(廢后)한 일이 있거니와, 지금의 사림이 꾀하는 것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우리 형제는 왕궁의 지친으로서 도모(圖謀)를 늦출 수 없다.’ 하였고, 또 권예(權輗)의 서간(書簡)에 ‘윤원로 등이 황헌(黃憲)·윤안인(尹安仁)의 집을 소굴로 삼아 밤낮으로 모여서 의논한다.’ 하였고, 또 ‘윤원로가 윤임에게 중전(中殿)이 동궁을 박대한다는 말이 사림에서 나왔으니 우리들이 밝히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104권 64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141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사상-유학(儒學)
- [註 405]정유년 : 1537 중종 32년.
○左議政洪彦弼、右議政尹仁鏡、右贊成成世昌、左參贊權橃、右參贊許磁、兵曹判書丁玉亨、工曹判書柳仁淑、刑曹判書尙震、禮曹判書任權、吏曹判書申光漢、戶曹判書林百齡、大司憲鄭順朋、大司諫林億齡, 承召詣賓廳, 上下議曰: "今經筵聞大司憲之言, 此非尋常之事, 亦非但知悉而已。 在上亦不能明辨, 則人心洶洶, 士林亦不自安。 是以予意如此。 此事非曰兩尹自相朋類, 一邊爲世子, 一邊爲大君, 甚爲不美之事。 禍亂國家, 豈不重乎? 予常時接世子與大君, 其禮有差, 頓無偏意, 世子、大君方有友愛之情, 闕內上下, 無一毫疑似之端, 而不意在下有此邪議, 使上下不能安, 兄弟之間, 亦不能和, 至爲關矣。 發邪言者無據, 固難推問矣, 此事其源有迹, 許坰推案, 卿等觀之, 則可知也。 【許坰推案, 其供招有云: "許沆謂坰曰: ‘尹元老等欲陷害士林, 搆成虛言。 元老歸尹任家謂曰: 「當時士林疑我兄弟者, 以東宮無繼嗣, 中宮有大君故也。 古有宋 仁宗廢后之事, 今之士林所謀難測, 吾兄弟以王宮至親, 不可緩圖。」’ 云, 又權輗簡內: ‘元老等, 以黃憲、尹安仁爲窟穴, 日夜聚議。’ 云, 又曰: ‘元老見尹任謂曰: 「中殿薄待東宮之言, 發於士林, 吾等不可不明辨。」’ 云。"】 其時, 予以爲, 此事恐終未安靜, 然奸兇已治, 【金安老、蔡無擇、許沆。】 人心自然鎭定, 故予不爲他言也。 丁酉年欲害國母者, 以東宮無繼嗣, 中宮有大君, 而發疑似之言, 恐動奸兇, 其時至於儒生, 亦欲治罪, 予不聽焉。 其後此言不殄, 今之爲士林者, 不知其端, 喧說如此, 此非士林之自搆也, 亦不可疑於誰發此言也, 此言一出於丁酉之事。 尹任、尹元衡, 皆是至親, 予亦豈無所恤之事, 然大事不可不早防。 外戚之事, 自上決斷, 則非但邪議鎭定, 被罪之人, 終至安矣, 士林亦安。 具壽聃發其幾微, 而欲鎭定其邪說, 予不示其好惡, 故此論至今不止。 尹任首發邪議於奸兇, 至今不止, 至爲非矣, 當竄外。 尹元衡, 使不能鎭定如是, 當罷之。 如此則似當。" 【議下, 諸宰莫不相顧失色。】
- 【태백산사고본】 53책 104권 64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141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