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102권, 중종 39년 3월 18일 병진 3번째기사
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승정원이 유구국 표류자의 쇄환에 대해 아뢰다
정원이, 홍문관(弘文館)이 《고려사》에서 고찰한 유구국(琉球國)에서 표류한 사람들을 쇄환(刷還)한 전례를 【공양왕(恭讓王) 3년에 유구국 중산왕(中山王) 찰탁(察度)이 그의 신하 옥지(玉之)를 보내 표문(表文)을 올려 신(臣)이라 일컫고 포로가 된 우리 나라 사람 김윤후(金允厚) 등 37명을 돌려보냈었다.】 가지고 아뢰기를,
"이는 바로 그 나라에서 송환(送還)한 것이고 소이전(小二殿)이나 일본(日本)에 의해 전송(轉送)한 것이 아닙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이는 전례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의득(議得)할 일이 있을 것이기에 이대로 대내(大內)에 남겨 둔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58면
- 【분류】외교-왜(倭) / 외교-유구(琉球) / 호구-이동(移動) / 역사-전사(前史)
○政院以弘文館所攷《高麗史》 琉球國漂流人刷還前例, 【恭讓王三年, 琉球 中山王 察度, 遣其臣玉之, 奉表稱臣, 歸我被擄人金允厚等三十七人。】 啓曰: "此直自其國發還, 非仍小二殿、日本而轉送也。" 傳曰: "此前例。 他日將有議得之事, 故仍留于內。"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58면
- 【분류】외교-왜(倭) / 외교-유구(琉球) / 호구-이동(移動)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