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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99권, 중종 37년 9월 5일 임자 2번째기사 1542년 명 가정(嘉靖) 21년

헌부가 패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 근신을 요청하다

헌부가 전의 일을 아뢰고, 이어 차자(箚子)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금의 덕은 지성(至誠)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지성은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도 감동시키는데 더구나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옛 성왕(聖王)은 팔짱을 끼고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조정에 앉아 성색(聲色)을 발하지 않았어도 신하들이 마음을 합하여 공경하고 만방(萬邦)이 믿었던 것은, 성(誠) 때문이었습니다.

성은 하늘의 도요 성스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입니다. 사람이 하늘과 합치되려면 참된 마음을 기울여 오랫동안 힘쓰지 않으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쓸 데를 찾아보면 속이지 않고 망령되지 않고 오래도록 쉬지 않는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남이 보지 않는 데서도 삼가고 남이 듣지 않아도 두려워하는 것이고, 망령되지 않다는 것은 허위가 섞여 있지 않은 진실된 데로 나아가는 것이고, 쉬지 않는다는 것은 시종 한결같이 하여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미진함이 있으면 성(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선 개괄적인 것을 거론하여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대정(大庭)에서는 점잖게 꾸미고 있다가 깊숙한 궁궐 한가한 곳에서는 자기 멋대로 하고, 군자를 친근히 했을 적에는 거짓 바른 체하다가 소인을 가까이 했을 적에는 본성이 드러나는 등의 것은 속이는 것이지 성(誠)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사치스러우면서도 검소한 듯이 꾸미고, 실제로는 포악하면서도 어진 듯이 가장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아첨이면서도 겉으로는 간언(諫言)을 잘 받아들인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사랑하는 것은 간사한 자들이면서 거짓 어진이를 공경하는 모습을 짓는 등의 것은 망령된 것이지 성이 아닙니다. 경외(敬畏)하는 마음이 얼마 안 가서 나태하여지고 검약(儉約)하는 자세가 얼마 안 가서 사치해져서 근면과 나태가 일정하지 않고 폭한(曝寒)304) 이 한결같지 않은 것은 모두 성이 아닌 것입니다.

《역경(易經)》에, 학(鶴)이 그늘 속에서 울어도 그 새끼가 화답한다고 한 것은 그 감응이 빠른 것을 말한 것이요, 《시경(詩經)》에, 궁궐 안에서 종을 쳐도 소리는 밖에까지 들린다고 한 것은, 실상이 쉽게 드러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진실로 생각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점이 있으면 남이 보고 느끼는 것이 즉시 달라지는 법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살펴보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늘 삼가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시종 한결같이 검소한 자세로 백성을 사랑했으니, 성스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위로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재변이 겹쳐 이르고 아래로는 감동된 사람이 없어 간사한 짓이 날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치효(治效)가 침체되어 드러나지 않고 풍교(風敎)가 퇴폐되어 바로잡을 수 없게 되었으며, 백성들의 생활은 날로 곤궁하여지고 선비들의 기절은 날로 저상되고 있습니다. 풍속이 날로 무너져감에 따라 권리를 거역하고 인륜을 모멸하는 변이 계속하여 일어나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가 멸절되었음은 물론 위란(危亂)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명(聖明)한 다스림이 있는 이때 통곡할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렇게 된 데에는 어찌 그 이유가 없겠습니까.

신들은 삼가 생각건대, 사물을 접응(接應)하는 마음에 보존된 천리(天理)가 순수하지 못하고 인욕(人欲)을 다 없애지 못하여, 선(善) 좋아하는 것을 여색(女色)을 좋아하는 것처럼 할 수 없고 악(惡) 미워하는 것을 악취(惡臭)를 미워하는 것처럼 할 수가 없음에 따라 마음속에서 어긋난 취사 선택의 결과가 만인의 눈앞에 환히 드러났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을 좋아하는 것이 성(誠)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간사한 자들이 제거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곧 도로 총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수십 년간 사화(士禍)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국맥(國脈)이 끊기고 원기(元氣)가 저상된 것은 모두 이 때문인 것입니다.

호오(好惡)가 마음속에서 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인물을 진퇴(進退)시킴에 떳떳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간사한 무리들이 틈을 노려 현혹시킴에 따라 시비가 전도되고 사정(邪正)이 엇갈리게 되는데, 이는 모두 전하의 마음이 성스럽지 못함을 엿보고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변고(變故)가 있은 이래 사기(士氣)가 꺾이고 인심이 퇴폐되어 진기시켜도 진기되지 않고 명령을 내려도 믿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조정의 신하들은 참혹한 화를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오직 녹봉이나 받으면서 몸을 보존할 궁리만 힘쓸 뿐 소회(所懷)를 펴고 기절(氣節)을 다하려는 마음을 품은 사람이 없습니다. 아, 이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근래 군흉(群凶)이 제거되고 조정이 일신됨에 따라 위에서 뉘우치고 분발하여 전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의 기강을 개혁하려는 생각이 극진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아랫사람에게 맡기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의 마음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서 풍화를 선도하라는 전교가 있어도 아래에서 이를 받들어 따르지 않기 때문에 시행되지 않는 빈말이 되고 말고, 위에서 재이(災異)를 근심하던 끝에 ‘과거에는 재이에 대한 조응이 있었다.’고 하자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의논이 떠들썩했습니다. 이것은 군하(群下)가 성명(聖明)을 믿지 않은 죄이기는 합니다만, 또한 전하의 지성(至誠)이 드러나지 않은 탓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른바 지성의 덕이라는 것은, 행동을 하지 않아도 공경하고 말하지 않아도 믿는 것으로 안이 성실해서 밖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선정(善政)과 선교(善敎)를 베푸는데도 아랫사람들이 따라서 교화되지 않는 것은 모두가 성(誠)이 미진한 때문입니다. 명(明)에 미진한 점이 있기 때문에 성에도 미진한 점이 있는 것인데, 명에 미진한 점이 없으면 성에도 미진한 점이 없는 것입니다. 밝히는[明之] 것의 요점은 역시 이치를 궁구하여 본연의 덕성을 다 천명(闡明)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더욱 정일(精一)305) 에 공력을 더하고 명성(明誠)에 힘을 기울이소서. 무릇 시비와 사정(邪正)에 대하여는 반드시 정밀하게 살피고 반드시 상세하게 분변하여 참된 호오(好惡)의 마음을 지님으로써, 어진이를 좋아할 경우에는 성심으로 좋아하여 의심없이 맡기고 간사한 자를 미워할 경우에는 진심으로 미워하여 의심없이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무도 보지 않는 데에서도 속이지 않고 생각의 발단에도 망령됨이 없으며 안팎이 하나이고 시종이 한결같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늘의 마음도 감동시키게 된다면, 이 또한 종묘 사직(宗廟社稷)을 위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답하였다.

"지금 올린 차자를 보니 인심과 풍속의 그릇됨이 모두 내가 성실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지당하다. 지성이 있으면 하늘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호오에 대해서는 마땅히 지성으로 해야 된다.

그리고 대신들의 의논에, 읍호(邑號)를 강등시켜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현재 현감(縣監)이 있는 고을이라 다시 더 강등시킬 수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읍호를 강등시킬 필요가 없겠다. 전의 일을 보니 주군(州郡)을 강등시킨 경우 얼마 안 있다가 다시 회복시켰으니 명령만 번거로울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리석은 백성들도 모두 인륜을 알아서 놀라고 두려워하며 느끼는 바가 있다고 아뢰었으니, 원주(原州)를 강등시키라."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19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간쟁(諫諍)

  • [註 304]
    폭한(曝寒) : 일폭 십한(一曝十寒)의 준말로, 하루 부지런하고 열흘 게으르다는 뜻도 되고 좋은 말을 듣는 시간은 적고 나쁜 말을 듣는 시간은 많다는 뜻도 된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천하에 아무리 자라나기 쉬운 생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루 햇볕 쬐이고 열흘 춥게 하면 잘 자랄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임금을 만나는 시간은 드문데다 내가 물러가고 나면 소인들에게 둘러 싸여 있으니, 어떻게 임금의 아름다운 본성을 싹트게 할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 [註 305]
    정일(精一) : 마음과 뜻을 한결같이 하여 중정(中正)한 도를 준행하는 것.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미약하기 때문에 정일한 마음으로 중도(中道)를 준행해야 된다." 하였는데, 여기서 온 말이다.

○憲府啓前事, 仍上箚曰:

人君之德, 莫大於至誠。 誠之道, 可以動天地、感鬼神, 而況於人乎? 古之聖王, 垂拱臨朝, 不動聲色, 而群臣協恭, 萬邦作孚者, 誠而已矣。 夫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以人而合天, 非眞積力久, 不可得, 然求其用力之地, 不過曰不欺也, 無妄也, 悠久不息也。 何謂不欺? 戒愼不覩, 恐懼不聞, 是也。 何謂無妄? 就於眞實, 而不雜以虛僞, 是也。 何謂不息? 終始惟一, 時乃日新, 是也。 此三者, 有一之未盡焉, 則不可謂之誠矣。 姑擧其槪言之, 修飾於大庭廣衆之中, 而放肆於深宮燕間之地, 矯操於親近君子之際, 而發露於昵比小人之時, 此欺也, 非誠也。 實奢而文之以儉, 實暴而掩之以仁, 所樂者諛侫, 而外爲納諫之名, 所愛者奸邪, 而謬爲敬賢之貌, 此妄也, 非誠也。 敬畏未幾, 而怠忽繼之, 儉約未幾, 而侈泰隨之, 勤怠之靡常, 而曝寒之不一, 凡此者, 皆非誠也。 《易》曰: "鳴鶴在陰, 其子和之。" 言其應之速也。 《詩》曰: "皷鍾于宮, 聲聞于外。" 言其實之易彰也。 苟意念少差, 則觀感立異。 豈不甚可畏哉? 臣等伏見殿下, 臨御以來, 寅畏小心, 恭儉愛民, 終始無貳, 可謂誠矣。 然而上無以格天, 而災沴荐臻, 下無以感人, 而奸僞日滋。 治效蹇淺而不著, 風敎頹剝而莫救。 生民日以困窮, 士節日以消沮, 風俗日以壞敗, 至有逆天滅倫之變, 相繼而起, 民彝泯絶, 危亂將至。 聖治之下, 有可痛哭者非一, 其所以致此者, 豈無其由耶? 臣等竊思之, 無乃虛明應物之地, 天理有未純, 人欲有未盡, 好善而不能如好色, 惡惡而不能如惡惡臭, 取舍差謬於一念之微, 符驗暴著於萬目之視, 乃至於是耶? 夫好善而不誠, 故邪非不去, 而旋被寵眷, 數十年來, 搢紳之禍, 輾轉相因, 至斲傷國脈, 消喪元氣者, 皆由於此也。 夫好惡不誠於中, 故進退無常於外, 奸邪之徒, 投間眩惑, 顚倒是非, 貿亂邪正者, 是皆窺聖心之不誠而然也。 變故以來, 士氣摧喪, 人心頹墮, 振之不起, 令之不信, 大小臣僚, 慣見慘禍, 唯持祿容身之是務, 無展懷盡節之爲念。 嗚呼! 是豈細故耶? 近者群兇屛除, 朝政一新, 上之奮厲悔悟, 思革前弊, 改紀其政者, 非不至矣。 然而赤心未推於下, 群情不孚於上, 上有善風化之敎, 下不將順, 而空言無施, 上有憂災異之念, 言昔年之有應, 物情疑懼, 而群議囂囂。 此雖罪在群下之不信聖明, 亦由聖心之至誠未著而然也。 夫所謂至誠之德者, 不動而敬, 不言而信, 實於中而形變於外者也。 上有善政善敎, 而下不從化者, 皆以誠之未至也。 夫明有未照, 故誠有不盡。 明無不盡, 則誠無不至矣。 明之之要, 亦在於窮理盡心而已。 伏願殿下, 加精一之功, 致明誠之力, 凡是非邪正之際, 察之必精, 辨之必審, 以實其好惡之心, 好賢則誠以好之, 而任之不貳, 惡邪則誠以惡之, 而去之勿疑, 不欺於隱暗之地, 無妄於意念之微, 表裏惟一, 終始無間, 以感群情, 以格天心, 宗社幸甚。

答曰: "今觀上箚, 人心風俗之誤, 皆由予不誠, 此言當矣。 至誠猶有格于天。 況於人乎? 好惡之間, 當以至誠可也。 且大臣之議, 或曰降號, 或曰縣監更無可降, 則不須降號矣。 前者見之, 州郡降號者, 未久而復立, 則徒爲令煩而已。 然今此所啓, 有曰: ‘頑愚之民, 皆知人倫, 驚動震慄, 而有所感格’ 云, 則降號原州可矣。"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19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