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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97권, 중종 37년 1월 18일 기해 1번째기사 1542년 명 가정(嘉靖) 21년

사간원 대사간 심광언 등이 상소하다

사간원 대사간 심광언(沈光彦) 등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신들이 삼가 살펴 보건대, 요사이 한겨울의 우레가 마치 한여름과 같으니 이는 하늘이 견책(譴責)을 보이는 것이고, 지도(地道)는 마땅히 안정되어야 하는 것인데 중외(中外)에 두 차례나 지진이 일어났으니 이는 땅이 이변을 보인 것입니다. 성신(星辰)도 정상을 잃어 태백이 주현하고, 서쪽 변방에는 해의 변괴가 생겨 백기(白氣)가 하늘을 가로질렀으니 전쟁의 형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연사(年事)는 흉년이 들어 팔도(八道)가 모두 그러하고, 여역(癘疫)이 남쪽 지방에 심하게 퍼져 촌락들이 텅비게 되었으니 백성들이 제 살 곳을 잃은 것입니다.

비록 한 가지 재변(災變)만 생기더라도 견책을 보여 고(告)하는 뜻을 충분히 알게 될 것인데, 하물며 이번에는 하늘과 땅, 해와 별, 연사(年事)와 민사(民事) 모두에서 재변을 보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겹쳐 생기어 자못 없는 달[月]이 없는 데이겠습니까. 비록 아무 일의 반응이라고 적실하게 지적할 수는 없지만 어찌 감통(感通)하여 불러들이게 된 그 까닭이 없겠습니까. 전하(殿下)께서 무엇을 가지고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하여 반전(反轉)해 가시렵니까?

전하께서 재변을 만난 처음에는 비록 통렬하게 경계하고 자책하여 잘못을 찾는 것 같으셨지만, 한갓 형식만 일삼아 준례대로 하교(下敎)만 하여, 구구하게 말단의 것만 수식(修飾)하고 자잘하게 세쇄한 정무(政務)만 부지런히 한 것에 벗어나지 못하여, 위기(爲己)078) 하는 공부를 더하지 않고 자신의 지성(至誠)을 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시고도 하늘의 위엄을 두렵게 여긴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시고도 재변을 해소하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옛 사람의 말에 ‘하늘에 응답하기를 실속이 있게 해야 하고 형식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혹시 한 가지 생각만 태만하여도 지성이 아닌 것입니다. 말로는 간하는 말을 따르겠다고 해놓고도 허심 탄회하게 용납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속마음까지 지성스럽지는 못해서이고, 사습(士習)을 바로잡으려고 하는데도 교화(敎化)가 밝지 못한 데가 있는 것은 지성이 아랫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해서이고, 사람 임용(任用)이 합당하게 되지 못하고 변경이 다스려지지 못한 데가 있는 것도 역시 지성이 극진하지 못한 데가 있기 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적에 성탕(成湯)이 여섯 가지 일로 자책079) 하자 극심한 가뭄에 비가 내렸고, 송 경공(宋景公)은 한 마디 말을 하자 형혹성(熒惑星)이 자리를 옮겼습니다.080) 성탕의 지성이 유독 여섯 가지 일로 자책할 때에만 있은 것이 아니고, 송 경공의 지성도 한 마디 말로 자신을 허물하던 날에만 처음으로 발동한 것이 아니라, 쌓고 쌓는 공력이 있어 왔고 자신을 반성하는 마음이 지성에서 나왔었기에 능히 하늘의 마음을 감동시켜 재변이 해(害)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범 재변을 내리게 하는 것도 하늘이요 덕이 있는지를 내려다 보아 재변을 해소시키는 것도 역시 하늘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지성을 간단(間斷) 없이 하신다면, 오늘의 재변이 앞날에 해가 되지 않고 도리어 전하께서 몸을 뒤척이며 덕을 닦아갈 기초가 되어질지 어찌 알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성덕(聖德)에 긴절하고 시무(時務)에 긴급한 것들을 조목조목 열거하여 전하를 위해 바칩니다.

그 첫째는,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임금은 작은 하나의 몸으로 만백성의 위에 있는데, 대궐 문은 겹겹으로 9중(重)이고 당하(堂下)는 천리처럼 멀기만 합니다. 상하(上下)의 사이가 동떨어졌으니 아랫사람들의 실정이 어찌 위에 잘 통할 것이며, 실정과 허위가 오만가지이니 사변(事變)을 어찌 두루 잘 아실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널리 받아들여 다 들어주시되 여유를 가지고 즐겁게 들으시며, 뜻이 공손하다고 하여 들어주지도 마시고 뜻에 거슬리는 것 때문에 거절하지도 않으신 다음에야, 상하의 뜻이 서로 맞게 되고 상하의 사이를 막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임금의 위엄은 천둥과 같고 기세는 만 균(鈞)081) 과 같은 것입니다. 진실로 안색을 화평하게 하여 받아주지 않거나 한 말을 채택(採擇)하여 써주지 않는다면, 누가 천둥같은 위엄을 범하고 만 균처럼 무거운 기세에 눌리면서 감히 말하려 하겠습니까. 이러므로 옛적의 현명한 임금은 자신의 과오를 말하는 것을 즐겁게 듣고 자신의 의견을 버리고서 사람들의 의견을 좇아 과오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들이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간하는 말을 받아 들이는 성의가 점점 처음과 같지 않아 비록 귀에 거슬리는 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조금만 거슬리는 뜻이 있으면 힘써 강변(强辯)하여 해명하기를 매우 자상하게 하여, 이미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이는 실속은 볼 수가 없고 억지로 따르시는 일이 많습니다. 신들은, 이이(訑訑)082) 한 기색이 장차 천리 밖에서 사람들을 막아버리게 될까 싶습니다.

대저 사람이 누가 과오가 없겠습니까. 과오를 저질렀다가도 능히 고치기 때문에 과오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도 간하는 말을 들어주고 거스르지 않으며, 남에게서 취택하여 선을 하고, 허심 탄회하게 들어주기를 한결같이 지성으로 하신다면, 성상의 덕이 날로 광명(光明)한 데로 나아가게 되고 재변도 또한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둘째는, 사습(士習)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인재(人材)는 국가의 유리한 기구인 것이고 학교는 교화(敎化)의 본원(本源)인 것으로서, 세상이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는 것과 풍속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이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옛적의 현명한 임금은 반드시 그들의 심지(心志)를 배양(培養)하고 그들의 기개(氣槪)를 붙잡아 세워 주며, 흥기(興起)시키고 진작(振作)시켰던 것입니다.

요사이는 인심이 전과 같지 않아 사습이 퇴폐하여 과장하는 것을 서로들 숭상하고 탐하고 비루한 짓 하는 것이 풍습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스스로 학문을 하고 있어 사도(師道)가 없어지고 끊어진 지 오래인데, 제 스스로 학문에 뜻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또한 한갓 말단(末端)인 훈고(訓詁)만 일삼아 하고, 함장(凾丈)083) 과 강론할 적에 있어서도 사장(師長)인 사람이 더러 의리 있는 교훈을 탐구하여 말을 하면, 한갓 그 교훈을 본받아 따르지만 못하는 것만 아니라 되돌아서서는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염치(廉恥)를 숭상할 줄은 알지 못하고 오직 무턱대고 이록(利祿)만 생각하여, 한번 전조(銓曹)에서 공천(公薦)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물밀듯이 반재(泮齋)084) 로 몰려가되 오히려 혹시라도 남보다 뒤지게 될까 염려하고, 공천(公薦)을 논하는 즈음에 자신이 끼이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여, 시도(時到)085) 라는 말을 하여, 혹 다른 사람이 앞서게 되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생원(生員) 김항(金沆)을 가리킨다.】 일찍이 교화(敎化)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공천의 대열에 응했다는 사람이 오히려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이것만이 아닙니다. 나이 겨우 약관(弱冠)에 사마(司馬)에 참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땅히 젊을 적에 독실한 뜻으로 학문 좋아하기에 여념(餘念)이 없어야 할 것인데, 집정(執政)들의 문전(門前)에 가서 분경(奔競)하여 관직에 의망(擬望)을 받으니, 이것이, 용렬하고 잡된 문음(門蔭)을 놓아두고, 머리가 희도록 경서(經書)를 연구한 선비들을 등용하는 본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사습(士習)이 이토록 바르지 못하니 누군들 한심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교양(敎養)하는 방법이 극진하지 못한 데가 있어 그렇게 되는 것인가 싶습니다.

대저 학교의 설치와 교양하는 방법이 비록 옛적부터 법도가 있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교양을 해가는 데에 있어서는 또한 모두 임금이 몸소 실행하여 심득(心得)한 것에 의거하여 했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교육하는 방법을 극진하게 하여 우유 함양(優游涵養)086) 하도록 고무(鼓舞)하고 진작(振作)시키되, 힘써 퇴폐한 풍습을 제거하고 조급하게 진출(進出)하는 길을 막아버린다면, 사습이 한결같이 올바른 데로 나아가게 되어 많은 선비들이 배출(輩出)되어서, 마침내는 잘 다스려진 세상을 다시 실현하게 되고 재변도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셋째는, 사로(仕路)를 맑게 하는 것입니다.

임금이 사람을 쓰는 것은 마치 대목(大木)이 나무를 쓰는 것과 같아, 그의 장점만 취하고 단점은 놓아두기 때문에 쓰인 사람들이 각기 그 직(職)에 알맞아 모든 업적이 다 밝아졌던 것입니다. 지금은 제수(除授)와 의망(擬望)이 공정하지 못하고 요행을 노리는 길이 날로 열리어, 그의 재질의 현명 여부는 묻지 않고 오직 청탁이 많은지 적은지만 보아서 하여, 벼슬에 오르는 첫머리에 이미 정밀하게 가려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직을 담당할 적에 각근(恪謹)한 사람이 적게 되어, 용렬하고 잡된 자가 많고 탐오하고 비루한 자가 대부분입니다.

수령(守令)은 백 리의 땅을 위임받아 자목(字牧)087) 의 임무를 해나가는 자이므로 민생들의 휴척이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마땅히 신중하게 가려야 하는데, 공정한 도리는 내세우지 않고 사정(私情)에 따라 하기를 힘써 하나라도 비는 자리가 있게 되면 서로들 분경(奔競)하느라 청탁하는 쪽지가 모여들게 되고, 수령으로 나갈 사람은 심지어 그 고을의 땅이 비옥한지 척박한지를 가리고 사무가 한가한지 번다한지를 탐지하기까지 하여, 먼저 자신을 살지울 계획만 생각하고 있고 봉공(奉公)할 일은 염두에 두지도 않습니다. 이러고서는, 사리 사욕을 추구하느라 백성에게 병폐를 입히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신들은 전하께서 사람을 임용하는 방법이 지극하지 못한 데가 있어 그렇다 싶습니다.

대저 인재는 다른 시대에서 빌려오지 않아도 한 시대에 쓰기가 족한 법이니, 이제라고 또한 어찌 포부를 가진 선비로서 등용되지 못하고 묻혀 있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진실로 지성으로 찾고 공정하게 임용하신다면, 인재가 모자라는 것이나 사로(仕路)가 맑지 못한 것을 염려할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반드시 정밀하게 가리고 선택해서 임용하여, 현명한 사람과 우매한 사람이 섞이지 않고 관작(官爵)이 외람하게 주어지지 않도록 하신다면, 사로가 맑아지고, 임용한 사람은 모두 현명하여, 민원(民怨)이 없어지고 재변도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넷째는, 변방의 방비를 닦는 것입니다.

대범 화란(禍亂)이 일어나는 것은 일어난 그 날에 일어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편안히 지내는 때에 생기게 되는 법인데 옛적부터 그러했습니다. 이러므로 옛적의 현명한 임금은 반드시 염려할 것이 없을 적에 경계하였고 무사(無事)하다 하여 소홀히 여기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태평에 버릇이 들어 편안하게 지내온 지가 백 년이나 되므로 사람들은 전쟁을 알지 못하고 세상은 난리를 알지 못하는데, 이 때문에 군정(軍政)이 거행되지 못하고 이때문에 병무(兵務)가 강구(講究)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방 장수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 있어서도 군졸들을 어루만져 돌보는 데는 뜻이 없고 오직 뜯어내기만 일삼아 하여 침해가 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며 재물을 다 털리고 살림을 탕진하고서 마침내는 이산(離散)하게 되어, 군적(軍籍)에 이름만 올라 있고 실제로는 사람이 없어 변방에 있는 고을들은 열집이면 아홉 집은 비어 있습니다.

서북(西北)의 오랑캐는 우리의 지경에까지 핍박해 와 족속들을 불러 모아 날로 퍼져 가고 있으니 경계할 일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변방의 방비가 허술함은 한결같이 이러하니 혹시라도 군사를 출동해야 할 일이라도 있게 되면 어떻게 방어하겠습니까? 신들은 전하(殿下)의 변에 대비하는 경계와 장수를 가리는 방법이 극진하지 못한 데가 있는 것인가 싶습니다. 하물며 이번에 해의 변괴에 관한 보고가 마침 서쪽 변방에서 나왔으니, 하늘이 경계를 알리게 된 뜻이 또한 어찌 여기에 있지 않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위태해지기 전에 나라를 보호하기를 날마다 더 유의하시어 매양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성의를 가지시되, 극력 하늘의 경계를 조심하고 무비(武備)를 더욱 엄중하게 하신다면, 변경이 편안해지게 되고 병란의 형상인 해의 변괴도 또한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답하였다.

"이 상소에 조목조목 말한 것을 보건대 모두가 지당하다. 내가 잘못한 일이 많기 때문에 요사이 재변이 겹겹으로 나타나고 층층으로 생기는 것이다. 다시 더 경계하고 성찰(省察)하여 성심으로 견책에 응답하겠으니, 경외(京外)의 백관(百官)들도 또한 마땅히 직무에 힘써야 한다."

사신은 논한다. 상은 간하는 말을 따르기를 한갓 표면으로 따르기만 하고 성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책(言責)이 있는 사람들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서 말을 다하지 아니하였고, 혹시 한 사람이라도 기휘(忌諱)에 저촉되는 말을 하면 상이 항시 입을 다물고 답하지 않거나 더러는 좌우(左右)를 돌아보며 딴 말을 했으니, 곤직(衮職)088) 에 모자람이 있고 언로(言路)가 넓어지지 않음이 그런 까닭이 있은 것이다.

또 논한다. 대사성(大司成) 송인수(宋麟壽)는 유자(儒者)의 조행이 있고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교화(敎化)가 밝지 못하고 사습(士習)이 단정하지 못한 것을 민망하게 여겨, 글을 통독(通讀)할 적이면 의리에 관한 교훈을 개발(開發)하여 제생(諸生)들을 유도(誘導)하여 이끌어 주었는데, 생원(生員) 송구(宋拘)·이순효(李純孝)의 무리가 재방(齋房)으로 물러가 말하기를 ‘의리에 대한 교훈을 어찌 이 시대에 행할 수 있겠는가. 의리에 관한 교훈을 행하다가는 어느 시절에 과거를 할 것인가.’ 하며, 서로들 사장(師長)을 비난하기를 ‘지금 주자(朱子)가 우리 동방(東方)에 다시 나왔음을 보겠다.’ 하면서 드디어 크게 비웃었다. 이에 앞서 김안국(金安國)이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일 적에 생원 민개(閔槪)가 벌(罰)로 강(講)을 하게 되었었는데, 그가 읽어내려 가는 글에 따라, 한(漢)·당(唐)이래의 참다운 유자(儒者)를 묻자 민개소동파(蘇東坡)089) 라고 답하므로, 김안국이 그의 추향(趨向)이 올바르지 못함을 통탄(痛歎)하며 강개(慷慨)하게 경계하기를 ‘유생(儒生)인 사람이 성리학(性理學)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했었는데, 민개가 물러나와 비난하기를 ‘지난날에 성리학 때문에 패했었으므로 징계해야 될 것인데, 【김안국이 기묘년에 유림(儒林)의 영수(領袖)로서 뭇 소인들에게 패했었기에 한 말이다.】 지금 어찌 다시 와서 이와 같이 하는가.’ 했었다. 아, 태학관(太學館)은 곧 수선(首善)090) 의 자리인데 사습이 올바르지 못함이 이토록 극도에 이르렀으니, 풍습이 저속한지 융성한지와 치도(治道)가 훌륭한지 쇠퇴 한지를 따라서 알 수 있는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97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548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보건(保健) / 윤리(倫理)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 [註 078]
    위기(爲己) : 자기 자신을 위함. 곧 자기 자신이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하는 것.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옛적의 학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하여 했는데, 지금의 학문하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爲人] 한다.’고 했다.
  • [註 079]
    성탕(成湯)이 여섯 가지 일로 자책 : 성탕은 중국 고대 은(殷)나라를 창건한 임금. 7년 동안 큰 가뭄이 들자, 상림(桑林) 들에 나가 제사하며 하늘에 호소하기를 ‘정사가 한결같지 못해선지, 백성들이 직업을 잃어선지, 궁실(宮室)이 높아선지, 여알(女謁:궁녀들의 청탁)이 번다해선지, 뇌물이 나돌아선지, 참소하는 자가 날뛰어선지.’ 하여 자책한 고사.
  • [註 080]
    송 경공(宋景公)은 한 마디 말을 하자 형혹성(熒惑星)이 자리를 옮겼습니다. : 송경공은 춘추 시대 송나라 임금, 화성이 송나라 분야(分野)에 나타나매, 사성(司星)이 ‘화를 정숭에게 돌리소서.’ 하자 ‘정숭은 나의 팔 다리로다.’하고 ‘백성에게 돌리 서.’하니 ‘임금은 백성이 근본인 것이다.’ 하고 ‘연사에 돌리소서.’하니, ‘흉년이 들면 백성이 곤궁해 진다. 내가 누구를 위한 임금인가?’ 하였다. 그러자 사성이 ‘하늘이 높지만 아래의 일을 듣는답니다. 지금 임금께서 임금다운 세 가지 말씀을 하였으니, 화성이 옮겨갈 것입니다.’ 했었는데, 과연 3도(度)를 옮겨갔다는 고사.《사기(史記)》 송세가(宋世家).
  • [註 081]
    만 균(鈞) : 매우 무거운 것을 뜻함. 1균은 30근. 《가산지언(賈山至言)》에 ‘뇌정(雷霆)이 치는 곳에는 꺾어지지 않을 것이 없고, 만 균이 누르는 곳엔 뭉개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했다.
  • [註 082]
    이이(訑訑) : 으쓱거리며 자기의 지혜에 만족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 이 대문의 말은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에 보인다.
  • [註 083]
    함장(凾丈) : 스승.
  • [註 084]
    반재(泮齋) : 성균관.
  • [註 085]
    시도(時到) : 언제나 나와 있었다는 뜻.
  • [註 086]
    우유 함양(優游涵養) :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학문의 깊은 뜻을 음미하는 것.
  • [註 087]
    자목(字牧) : 백성을 보호하여 키움.
  • [註 088]
    곤직(衮職) : 임금의 직책.
  • [註 089]
    소동파(蘇東坡) : 이름은 식(軾).
  • [註 090]
    수선(首善) : 선의 모범.

○己亥/司諫院大司諫沈光彦等上疏。 其略曰:

臣等伏見近者窮冬之雷, 有同成夏, 天示譴也。 地道當寧靜, 而京外再震, 地示異也。 星辰失常, 而太白晝見, 日變見於西鄙。 白氣橫天, 兵象著也。 歲遭凶荒, 而八道皆然, 癘疫熾於南方, 村落空虛, 民失所也。 雖一災一變, 足以知示譴告之意, 況今天也、地也、日星也、歲民也, 竝告其災, 不一而再, 間見疊出, 殆無虛月。 雖未可的指爲某事之應, 其所感而召之者, 豈無其由? 殿下將何以答天譴, 而轉移之耶? 殿下遇災之初, 雖若痛加警責, 講求闕失, 而不過徒事於虛文, 循例而下敎, 區區焉修飾其末節, 屑屑焉惟勤於細務, 不加爲已之功, 未盡在我之誠。 如是而謂畏天之威可乎? 如是而欲弭災異得乎? 古人云: "應天以實, 不以文。" 一念或怠, 非誠也。 名爲從諫, 而不能虛心容受, 誠之未孚於內也。 欲正士習, 而敎化之有所不明, 誠之未動於下也。 任用之失其宜, 邊境之有不治者, 亦莫非誠之有未盡也。 昔成湯六責, 大旱而雨; 宋景一言, 熒惑退舍。 成湯之誠, 非獨在於六事自責之時; 宋景之誠, 非始發於一言罪己之日。 由於積累之功有自, 而反躬之意, 出於至誠, 故能格于天心, 災不爲害。 夫所以生災者, 天也, 其監厥德而消災者, 亦天也。 殿下之誠, 苟無間斷, 則安知今日之災, 不爲後日之害, 反爲殿下側身修德之基乎? 臣等謹條列其切於聖德, 急於時務者, 爲殿下獻焉。 其一曰, 納諫諍。 人君以一身之微, 處萬民之上, 天門九重, 堂下千里, 上下有截, 下情豈能上達? 情僞百端, 事變豈能周知? 必須廣納而兼聽, 優游而樂聞, 不以遜志而從之, 不以咈意而拒之, 然後上下之情相孚, 而壅閉之患絶矣。 人君之威, 雷霆也, 勢, 萬鈞也。 苟不和顔色而受之, 納其言而用之, 誰肯犯雷霆之威, 壓萬鈞之重, 而敢言哉? 是以古之明君, 樂聞己過, 舍己從人, 自致於無過之地也。 臣等伏見殿下, 納諫之誠, 漸不如初, 雖非逆耳之言, 稍有違咈之意, 則務加强辨, 解說太詳, 旣未見嘉納之實, 多出於勉强之從。 臣等竊恐訑訑之色, 將拒人於千里之外也。 大抵人孰無過? 過而能改, 是以至於無過。 伏願殿下, 從諫弗咈, 取人爲善, 虛已聽納, 一於至誠, 則聖德日造於光明, 而災變亦可消也。 其一曰, 正士習。 人材, 國家之利器; 學校, 風化之本源。 世道之治亂, 風俗之隆汚, 於玆判焉。 是以古之明君, 必培養其心志, 扶植其氣節, 使之興起而振作也。 近者人心不古, 士習頹靡, 浮誇相尙, 偸鄙成風, 人自爲學, 師道之滅絶久矣。 其自以爲有志於學者, 亦且徒事於訓誥之末, 至於函丈之間, 講論之際, 爲師長者, 或發探義理之訓, 非徒不能式遵敎誨, 至於反面而非議之。 且不知廉恥之是尙, 惟懷利祿之是冒, 一聞銓曹公薦之報, 則波奔泮齋, 猶恐或後, 論薦之際, 恐已之不得與焉, 則至發時到之說, 以防他人之或先。 【指生員金沆。】 曾謂在風化之地, 應公薦之列者, 尙如是乎? 不特此也。 年纔弱冠, 得參司馬者, 宜及妙齡, 篤志好學之不暇, 而奔競執政之門, 得擬官職, 此可謂置門蔭之庸雜, 用皓首窮經之士之意乎? 士習之不正, 一至於此, 孰不寒心哉? 臣等竊恐敎養之道, 有所未盡而然也。 大抵學校之設, 敎之之術, 雖自古有法, 而然其所以爲敎, 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 伏願殿下, 克盡敎育之道, 使之優游涵養, 鼓舞振作, 務去頹靡之習, 以杜躁進之路, 則士習一趨於正, 而多士輩出, 善治終可復, 而災變可消矣。 其一曰, 淸仕路。 人君用人, 猶匠之用木, 取其所長, 棄其所短, 故人各稱其職, 而庶績咸熙也。 今者除擬非公, 倖門日開, 不問其才之賢否, 惟視請託之厚薄, 當其躋仕之初, 旣非遴選之精, 故及於當官之際, 鮮有恪謹之人, 庸雜者爲多, 貪鄙者居半。 至如守令, 受百里之寄, 爲字牧之任, 民生之休戚係焉。 所當愼重, 而不揭公道, 務施私情, 一有窠闕, 爭相奔競, 請簡坌集, 至於辨壤土之膏瘠, 覘機務之閑劇, 先懷自肥之計, 不念奉公之事。 如是而不爲營私病民者, 鮮矣。 臣等竊恐殿下任用之道, 有所未至而然也。 大抵才不借於異代, 而足爲一代之用。 當今亦豈無抱負之士, 見屈而未用者乎? 殿下苟求之以誠, 而用之以公, 則不患人材之乏少, 仕路之不淸也。 伏願殿下, 必精以擇之, 擇而任之, 使賢愚無雜, 官爵無濫, 則仕路惟淸, 而任用者皆賢, 民怨可無, 而災異可消也。 其一曰, 修邊備。 夫禍亂之作, 不作於作之日, 而生於宴安之時, 自古然矣。 是以古之明君, 必警戒於無虞, 不以無事而忽之也。 今我國家, 狃於昇平之安, 積百年之久, 人不知兵, 俗不知亂, 軍政由是而不擧, 兵務由是而不講, 以至於任邊閫之寄者, 無意於撫恤軍卒, 惟事割剝, 侵毒無厭, 民不堪苦, 傾財蕩産, 竟至流散, 軍簿之目, 名存實無, 沿邊之郡, 十室九空。 西北之虜, 逼我境土, 招聚族類, 日就滋蔓, 不可謂無警, 而邊備之虛踈, 一至於此, 脫有刁斗之警, 若何以捍禦乎? 臣等竊恐殿下, 桑土之戒, 擇將之道, 有未盡也。 況今者日變之報, 適出於西鄙, 則天之告戒之意, 亦安知不在於是耶? 伏願殿下, 制治于未亂, 保邦于未危, 日加留念, 每存警懼之誠, 克謹天戒, 益嚴武備, 則邊境獲安, 而兵象之變, 亦可消也。

答曰: "觀此疏條, 皆爲切當。 予多有闕失之事, 故近來災變, 疊見層出。 更加警省, 以誠答譴, 京外百官, 亦當務職。"

【史臣曰: "上之從諫, 徒爲面從, 而非出於誠, 故有言責者, 知其無益, 而不自盡言, 或有一人, 進觸諱之言, 則上常默不答, 或顧左右而言他。 袞職之有闕, 言路之不廣, 有由然矣。"】

【又曰: "大司成宋麟壽, 有儒行好古之人也。 愍其敎化之不明, 士習之不端, 其於通讀之際, 開發義理之訓, 誘掖諸生, 則有生員宋拘李純孝之輩, 退議于齋曰: ‘義理之訓, 豈可行於今時? 行義理之訓, 而何時爲科擧乎?’ 相與議其師長曰: ‘今見朱子再生於吾東方也’, 遂大笑。 先是, 金安國爲同知時, 生員閔槪, 以罰講進, 因其所讀, 問以下眞儒, 則槪以蘇東坡答之。 安國痛其趨向之不正, 慨然戒之曰: ‘爲儒生者, 不知性理之學可乎?’ 退而非之曰: ‘昔以性理之學見敗, 可以懲戒, 【安國, 己卯年, 以儒林領袖, 見敗於群小故云。】 而今何再來, 如此爲耶?’ 嗚呼! 大學館, 乃首善之地, 而士習之不正, 至於此極! 風俗之汚隆, 治道之盛衰, 從可知矣。"】


  • 【태백산사고본】 49책 97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548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보건(保健) / 윤리(倫理)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