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초 등이 충주의 읍호를 강등한 일에 대해 부당함을 아뢰니 이를 윤허하다
충주(忠州)에 사는 유학(幼學) 허초(許礎) 등이 상언(上言)을 올리기를,
"지난날 원주(原州)에 사는 유석(劉石)이 아비를 해친 일로 본주(本州)194) 의 읍호를 강등하여 예성(芮城)이라 했습니다. 유석은 전일 비록 본주에 살기는 하였으나 그의 아비와 마찬가지로 맹인으로서 구걸하러 다니고 일정한 거주지가 없었기 때문에 본주에 호적 대장이 없었고, 유석이 아비를 따라 구걸하러 다닌 기간은 어림잡아 4∼5년이었습니다. 후에 원주 서면(西面) 강천리(江川里)에 사는 양인(良人) 이금산(李今山)의 딸에게 장가들어 살다가 극악 무도한 죄를 저질러 원주 관아에 수금되어 처결되었으니 이는 곧 원주 사람입니다. 그런데 추안(推案)에 본주 태생이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읍호를 강등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본주는 여느 주군(州郡)과는 달리 한 도의 계수관(界首官)으로서 도명(道名)을 충청이라고 한 지는 그 유래가 벌써 오래인데 이제 본주와 상관도 없는 일로 읍호를 강등하고 도명마저 고쳐 감사·병사·수사의 인신(印信)과 병부(兵符)까지도 개조하였습니다. 이는 고을 사람들의 울분과 원통함이 될 뿐 아니라 국가의 사체에 크게 관계됩니다. 더구나 본주는 바로 선왕(先王)의 실록을 봉안한 곳이며 또 왕후 네 분의 외향(外鄕)이 되는 땅인데다가 남쪽의 왜인(倭人)이 왕래하는 곳이니, 읍호를 강등한 이유가 외국에 퍼지는 것 또한 온당치 못합니다.
그리고 교동(喬桐) 사람은 악역죄(惡逆罪)가 성립되었기에 능지 처사(凌遲處死)에 처했지만, 유석은 그의 아비가 아직 생존하여 주심법(誅心法)을 적용하여 처참(處斬)만을 하였으니 죄의 경중에 차이가 있고 적용한 율도 다릅니다. 그런데 교동의 관호(官號)는 예전 그대로 두면서 도리어 본주의 읍호는 강등하였으니 너무 무겁고 분별없는 조치가 아닙니까? 신들은 내심 의아스럽습니다. 부디 도로 성명을 거두어 옛 칭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하소서."
하니, 대신과 의논하라고 전교하였다. 삼공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일찍이 충주가 대악(大惡) 유석이 태어난 고을이라 하여 의논하여 읍호를 강등한 지가 이미 오래이므로 새로 고치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이제 상의 하문을 받고서 그 고을 사람의 상소를 참고하여 다시 헤아려 생각해 보니, 본 고을은 바로 조종조의 실록이 봉안되어 있고 여러 국모가 태어나신 곳이므로 여느 주군(州郡)과 비교가 안 되는데 이제 악을 미워해서 읍호를 강등한 것은 미안할 듯합니다. 그리고 교동의 호세장(扈世長)이 그의 아비를 때려 죽인 일은 마땅히 먼저 읍호를 강등했어야 했지만 본 고을은 현(縣)이어서 더 강등시킬 수 없으므로 읍호를 그대로 두었던 것입니다. 유석의 경우는 그 흉계는 행해졌으나 미수에 그쳐서 세장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적용한 율도 차등을 두었습니다. 대체로 읍호를 강등시키는 것은 악을 징계하는 뜻을 엄히 보이는 것으로 법전에 실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방해로운 점이 있으면 억지로 시행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니, 의논한 대로 읍호를 강등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93권 66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410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註 194]본주(本州) : 충주.
○甲午/忠州居幼學許礎等上言云:
屬者以原州居人劉石弑父之事, 降號本州曰 ‘芮城。’ 劉石前雖居于本州, 而其父一同, 以盲人行乞, 而無定居, 故本州無帳戶籍, 而劉石從父行乞, 退計四五年間, 原州 西面 江川里, 良人李今山女子交嫁居生, 因作惡逆之罪, 囚禁原州官而處決, 是遽原州之人也。 只以推案內胎生本州之言, 而遽爲降號。 本州, 非他州郡之比, 爲一道界首之官, 道名忠淸, 其來已久。 今因本州不干之事而降號, 至改道名, 而監司、兵使、水使印信、兵符, 亦且改造, 非徒邑人之憤冤, 大關國家之事體。 況本州, 乃先王實錄奉安之所, 而亦王后四殿外鄕之地。 況南方倭人, 往來所經, 降號之由, 騰播異國, 亦爲未穩。 且喬桐之人, 惡逆已成, 故陵遲處死, 而劉石則其父尙存。 以誅心之法, 而只爲處斬, 輕重有間, 律亦不同。 喬桐官號依舊, 而反降號本州, 不亦過重而無別乎? 臣等竊惑焉。 伏望還收成命, 俾仍舊貫。
傳曰: "其議于大臣。" 三公議啓曰: "曾以忠州, 爲大惡劉石胎生之邑, 議降邑號已久, 似難追改。 今承下問, 參稽邑人陳訴, 更加商量。 本邑, 乃祖宗實錄奉安, 累朝國母基發之地, 非他州郡之比。 今以疾惡之故, 而降邑號, 恐爲未安。 且喬桐 扈世長撲殺其父, 當先降號, 以本邑是縣, 更無加降, 故邑號如舊。 劉石則其兇謀已行而未成, 與世長有間, 故律亦有差。 大抵降號, 所以示懲惡之甚, 非法典所載。 如有所妨, 則不須强爲。" 傳曰: "依議, 勿令降號。"
- 【태백산사고본】 47책 93권 66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410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