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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92권, 중종 34년 10월 20일 갑신 2번째기사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전주 부윤 이언적이 올린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상소문

전주 부윤(全州府尹) 이언적(李彦迪)이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금은 하늘의 명을 받아 중정(中正)한 도덕적 표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팔짱을 낀 채 하는 일이 없어도 덕(德)이 구원해지고 업(業)이 광대해지는 것은 오직 지극한 정성이 쉼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쉼이 없다는 것은 천도(天道)입니다. 대개 임금은 천명(天命)을 받고 천위(天位)에 서는 것이니 진실로 지극히 정성스러운 덕이 위아래에 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도를 따라 천직(天職)을 다하여, 천지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본성대로 육성되는 공적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대저 지극히 정성스러운 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이고 둘일 수 없으며 순수해서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것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질 때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이라도 끊어질 때가 있으면 이는 쉬는 것입니다.《중용(中庸)》에 ‘쉬지 않으면 오래 가고 오래 가면 징험하게 되고 징험하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박후(博厚)해 지고 박후해지면 고명(高明)해진다.’ 하였고, ‘박후해진다는 것은 땅과 짝하는 것이고 고명해진다는 것은 하늘과 짝하는 것이며 멀어진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옛 제왕들의 덕이 하늘과 부합되어 시종 간단없이 유구 무강(悠久無彊)한 공적(功績)과 교화(敎化)를 이룬 것은, 모두 그 한마음을 쉬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순(舜)·문왕(文王)·위무공(衛武公)의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은 50년간 재위(在位)하는 동안에 정치가 안정되고 공적이 이루어졌으며 예악(禮樂)이 잘 갖추어져 공적과 교화가 극치를 이루었어도 오히려 천명을 계칙하는 노래를 지어 임금과 신하가 서로 경계하였는데, 그 내용은 ‘하늘의 명을 계책하여 언제나 경계하고 모든 일의 기미에 유념하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을 공경하는 도(道)는 일정한 때가 없이 줄곧 경계해야 하고 아무리 작은 기미라도 전부 살피는데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문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오래되었는데도 하늘을 밝게 섬기어 아침부터 해 기울도록 밥 먹을 겨를도 없이 힘써 만민을 모두 화평하게 살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시인(詩人)이 ‘하늘의 명이 아름답게도 끊임이 없으시니 아,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왕의 덕의 순수함이여.’라고 기렸습니다. 이는 문왕의 덕의 순수함이 끊임이 없어서 천도(天道)에 화합했던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무공은 95세 때에도 오히려 나라에 경계하여 규풍(規諷)367) 을 구하였고 억편(抑篇)과 같은 경계의 시(詩)를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였는데, 그 시에 ‘네가 방에 있어도 조금도 옥루(屋漏)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는 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신(神)의 오심은 예측할 수 없는 것, 어찌 태만하게 공경치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는 임금은 조회(朝會)에서 여러 신하를 대할 때만 삼갈 것이 아니라, 궁정(宮庭) 깊숙한 곳에 있을 때에도 마음대로 행동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녀 신명(神明)을 대하는 듯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옛 성제 명군(聖帝明君)들은, 하늘을 본받아 정성스러움을 간직하고 공경을 주로 하여 혼자 있을 때도 삼가서 시종 오직 한결같이 하고 잠시도 끊어질 때가 없이 하며, 나의 치적이 이미 융성하다고 하여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나의 나이가 이미 늙었다고 하여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남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두려워해서 소리도 없고 냄새로 없는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천지가 감응해서 아름다운 상서가 모두 찾아들고 신인(神人)이 화합하여 재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기의 마음에 구하면 하늘도 감히 어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께서 어질고 밝고 공순하고 검박한 것은 타고난 천성(天性)인 것으로 착한 것을 즐기고 배우기를 좋아하면 잘 다스려지기를 힘써 도모하시었습니다. 그리하여 즉위한 지 34년 동안 엄숙하고 공순하고 삼가고 두려워하여 감히 몸가짐을 나태하게 아니하였으며, 새벽에 일어나 덕 밝히기를 생각하고 상제(上帝)를 대하듯 두려워하며 안으로는 음악과 여색을 즐김이 없고 밖으로는 놀이와 사냥을 즐김이 없으며 간언을 따라 어기지 않고 허물을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으셨으니, 옛 제왕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스리는 공적은 나타나지 않은 채 조정의 변이 자주 있었으며 인심이 화합하지 못하여 천변(天變)이 그치지 않으니 이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신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하늘을 본받아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공력이 혹 중단되는 때가 있고 이치를 궁구하고 중도(中道)를 실행하는 학문도 극진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의 공력이 중단되는 때가 있기 때문에 천리가 순수하지 못하여 인욕이 끼어들며, 상의 학문이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道)를 보는 것이 밝지 못하여 용사(用捨)가 이따금 어긋나기도 하며

정령을 세워도 안정되지 않고 치도를 행하여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근태(謹怠)가 일정하지 않고 군자와 소인을 접견하는 것이 한결같지 않으니, 또한 어떻게 지치(至治)를 융성케 하고 화평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인(聖人)의 허물은 해와 달이 일식이나 월식을 하는 것과 같아서 허물이 있을 때에는 누구나 다 보아 알고, 허물을 고치면 또 누구나 다 보고 우러르는 것입니다.

삼가 간사한 무리를 제거하신 뒤로 전하의 마음이 해가 다시 중천에 있는 것 같아서 그늘진 곳이 모두 없어졌으니, 깊고 어두운 곳까지 비치게 하고 정치의 교화를 새롭게 하는 방법을 생각함에 있어 강구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정이 숙정(肅定)되고 사방의 백성들이 우러렀으니, ·의 정치를 다시 볼 것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때야말로 전하께서 본원(本源)을 바루어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고 퇴폐된 풍습을 혁신시켜 위로는 천심(天心)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인망(人望)에 부응할 수 있는 일대(一大) 기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나라의 형편이, 비유하자면 장위(腸胃)가 곪아 거의 목숨이 위태로왔다가 겨우 다시 살아난 사람과 같으므로 사독(邪毒)은 비록 제거했다 하더라도 원기가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이니, 마땅히 안정하여 보호해야 할 것이요 움직여서 변이 발생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영단 묘제(靈丹妙劑)로써 창자와 위를 씻어내고 병근(病根)을 제거한 다음이라야 그 뱃속을 맑게 할 수 있고 혈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조금 나은 것에 안심하여 독한 약 먹기를 싫어하여 병을 다스리는 방법을 어기게 되면 병이 심복에 자리하고 있게 되는데, 어떻게 다음에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근래 조정의 거조와 시행하는 일이 진정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은 적절한 것이라고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진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구차하게 우선 당장만 모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강을 정돈하고 상벌을 엄격하게 하여 국세(國勢)를 무겁게 해서, 사설(邪說)이 어지럽힐 수 없고 소인들을 동요시킬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진정인 것입니다.

만일 선악을 분간하지 않고 시비를 가리지 않은 채 자기에게 동조하는 자는 좋아하고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는 싫어하면서 평상적인 습관만 답습하여 등라(藤羅)로 새는 지붕을 막듯이 임시 방편으로 구차하게 시일만 보내면서 진정됐다고 한다면, 기강을 진작시키고 정치와 교화를 새롭게 할 수 없어서, 투박하고 사치한 풍습과 퇴폐 타락한 풍조가 날로 더욱 깊어져 끝내 구원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대저 국가의 형세는 성하지 않으면 쇠하는 것이며 쇠하면 망하는 것이므로 지혜로운 임금은 성할 때에는 쇠함을 걱정하고 쇠한 때에는 진작시킴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쇠한 것을 진작시키지 못하면 끊어질 듯이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병자같아서 갈수록 망하는 데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흥하고 쇠하고 진작되고 무너지는 근본은 임금의 마음이 순수하고 일정하여 쉼이 없는 데 달려있을 뿐입니다.

안으로 정한 뜻이 없고 밖으로 정한 규범이 없어서 아침에는 부지런했다가 저녁에는 게을러지고 금방 시작했다가 금방 그만두며, 방금 싹튼 바른 생각을 사욕이 빼앗아가고 방금 진출한 어진 신하를 참소하고 아부하는 무리가 이간질한다면, 점점 분란만 일고 시들어 버려 끝내 공효를 이룰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맥(脈)이 병들고 기(氣)가 쇠진해지게 되어 풍사(風邪)가 겹쳐서 목숨이 위급해질 것입니다.

지금 왕도(王道)가 탕평하여 조정이 약간 화합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하의 뜻이 아직 믿기지 않고 음사한 길이 아직 막히지 않았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굳게 덕을 행하고 밝게 사물을 살피시어 어진 사람을 등용하는 데 주저하지 마시고 간사한 사람을 제거하는 데 의심하지 마시어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고 국맥을 배양하시면 종사(宗社)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서경(書經)》에 ‘그 덕이 한결같으면 그 자리를 보전할 것이요 그 덕이 한결같지 못하면 구주(九州)368) 를 잃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저 덕을 한결같이 하는 방법은 역시 강직함과 명석함뿐입니다. 명석하지 못하면 강직할 수가 없고 강직하지 못하면 그 명석함을 오래 지켜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성인은 그 도를 오래 행하기 때문에 천하가 그 덕화에 감화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진실로 하늘을 본받아 바른 데 자리하고 이(貳)로 쓸 것을 이(二)로 쓰지 말며 삼(參)으로 쓸 것을 삼(三)으로 쓰지 말고 한결같이 하여 천운(天運)을 광대(廣大)하게 하고 신화(神化)를 유원(悠遠)하게 하면 천덕(天德)에 화합할 수가 있고 따라서 제왕의 다스림을 이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하늘처럼 되기를 바라고 현인은 성인처럼 되기를 바라는데, 순임금문왕은 하늘처럼 되기를 희구하여 천도(天道)에 합한 이들이고 위 무공(衛武公)은 성인처럼 되기를 희구하여 거의 성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정자(程子)가 ‘천도가 있어야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다. 그 방법을 다만 혼자 있을 때에 삼가는 데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순임금의 도를 본받으려 한다면 반드시 무공(武公)이 혼자 있을 때에 삼가던 것을 본받아 밝은 곳에서나 어두운 곳에서나 조금도 다름없이 시종 한결같은 덕으로 한 뒤에야 이를 수 있는 것이니, 상께서는 유념하소서.

이윤(伊尹)태갑(太甲)에게 경계하기를 ‘덕이 한결같으면 하는 것마다 길(吉)하지 아니한 것이 없고 덕이 한결같지 않으면 하는 것마다 흉(凶)하지 않은 것이 없다. 길흉이 오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요, 하늘이 재앙과 상서를 내리는 것은 덕에 달린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임어(臨御)하신 지 오래되었는데도 화기가 응하지 않고 재해가 잇따랐으며 또 요즘에는 괴상한 운기가 하늘을 덮고 무지개같은 것이 해를 꿰고 있는데 모두 흰 빛깔이었습니다. 대체로 흰 것은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구적(寇賊)들이 몰래 쳐들어올 조짐입니다. 혜성(彗星)이 삼태성(三台星)을 침범하고 태백이 주현하고 서리와 우박이 내리고 있으니 이것은 또 아랫사람이 위를 간범하고 음(陰)이 양(陽)을 침해할 형상입니다. 이와 같이 비상한 변이(變異)가 한꺼번에 중첩되어 나타난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근일 또 일식의 변고와 천둥·지진의 재이가 있었습니다. 해는 모든 양의 종주로 임금의 표상인데, 일식이 있었으니 이는 천변(天變) 중에서도 매우 큰 것입니다. 번쩍번쩍 천둥 번개가 요란한 것은 시인(詩人)도 미워하던 것으로, 하늘이 위엄을 가하여 무겁게 꾸짖는 것으로 경고하는 것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일에는 난(亂)의 계제(階梯)가 있고 정치에는 간사함을 불러들이는 일이 있어서 위망(危亡)의 화(禍)가 곧 닥쳐온다는 것을 하늘이 전하에게 순순히 가르쳐 주시되 기미에 앞서 예시(豫示)하여 성상의 마음을 깨우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임금이 하늘의 경계에 대해 성의를 다하여 삼간다면 그 상(象)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응보는 없는 것이지만 하늘의 경계가 위에 뚜렷한데도 대응할 사람이 밑에서 멍하게 있다면 화환(禍患)이 반드시 닥칠 것입니다.

대개 임금의 덕(德)은 공경하면 순일해지고 게으르면 순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므로 길흉(吉凶)과 재상(災祥)이 오는 것은 임금의 덕이 공경스러우냐 게으르냐에 달려 있는 것이니, 천심(天心)에 순응하고 천견(天譴)에 보답하는 것 또한 어찌 공경하여 한결같은 덕을 가지는 데서 벗어나겠습니까.

옛날의 명철한 임금들은 혹 재변을 만나면 덕을 닦고 일을 바르게 하며 정성과 공경을 한결같게 하여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을 감격시킴으로써 화가 싹트기 전에 소멸시켜 드디어 비업(丕業)을 빛내고 영년(永年)을 누린 이가 많았습니다.

상 중종(商中宗)·주 선왕(周宣王)·한 문제(漢文帝)경제(景帝) 같은 이는 재변을 만나자 반성하여 몸을 닦고 사욕을 눌러 이겨 스스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드디어 여기(戾氣)를 변화시켜 태화(泰和)로 만들고 이미 쇠잔한 국운을 변화시켜 중흥시켰으니, 어찌 하늘을 두려워하고 덕을 삼가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쉬지 않은 공효가 아니겠습니까.

신이 지난 여름 구언(求言)하신 성지를 보니, 스스로를 책망하고 허물을 반성하심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늘의 노여움을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달이 넘고 계절이 바뀌었는데 대간과 시종 이외에는 한 사람도 일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직언을 올려 잘못된 점을 극진히 말해서 상께서 반성하시는 아름다운 뜻에 부응하려는 이가 없었으므로 하늘은 더욱 엄하게 변고를 나타내 보이기를 마지않습니다. 전하께서 아래에 직언을 바라도 사람들이 응하지 않고 위에서 근신을 해도 하늘의 노여움은 더욱 심하니 어찌 까닭없이 그러하겠습니까. 신같이 식견이 좁고도 어리석은 사람이 시의(時宜)도 모르면서 어찌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전하께서 근심하고 두려워하시는 정성에는 보잘것 없는 충의(忠義)의 마음이 조금만 있어도 감동되어 스스로 그만 둘 수 없는 터인데, 더구나 용렬하고 고루한 신은 시종의 반열에 있으면서도 지극히 작은 도움도 드리지 못했는데다가 지금 가슴을 터놓고 대책을 물으시는 때를 만나 어찌 소외(疎外)된 사람임을 자처하고 어리석은 충심을 다하여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있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재변을 초래한 원인은 진실로 전하의 일념(一念)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전하의 일념이 천도에 화합되면 하늘이 어찌 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한 가지 정치의 잘못을 개혁하고 한 가지 일의 폐단을 바로잡는 것만을 법으로 여기면서 근본의 소재를 모르면 이 또한 말단입니다. 신이 오늘날 치도(治道)에 가장 관계가 깊고 시무(時務)에 가장 절실한 것을 전하를 위하여 개진하려 하니 상께서는 자애롭게 살펴주소서.

신이 삼가 전사(前史)를 상고해보니, 예부터 걱정하고 애쓰면서 잘 다스려지기를 바란 제왕들은 많았으나 시종 덕을 오로지하여 치적을 거둔 이는 적었습니다. 그 까닭은, 다스려지기를 바랐으나 다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 데 있었던 것입니다.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그 방법을 터득하면 걱정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치도(治道)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다스려 보겠다는 뜻은 두었으나 그 방법을 모르면 마음을 수고롭히고 몸이 수척해지도록 새벽에 일어나고 밤이 되어서야 저녁을 먹으면서 부지런히 애쓰더라도 끝내 별다른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황제(黃帝)요(堯)·순(舜) 같은 이가 의상(衣裳)만 드리우고 있었어도 천하가 다스려진 것은 오직 그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후세의 임금들도 더러는 정서(程書)도 하고 전찬(傳餐)369) 도 했으니 부지런히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침내 선치(善治)를 일으키지 못하고 국조(國祚)를 연장시키지 못한 것은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채 헛되이 잗단 정무에 정력을 낭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스리는 요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이 말씀드리겠으니 상께서는 정신을 집중시키소서.

대체로 제왕들이 다스리는 도는 지극히 간결하고 지극히 쉬워 번거롭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천하가 비록 크나 다스리는 것은 마음에 달렸으니 지극히 간결하지 않습니까? 사해가 비록 넓으나 다스리는 것이 도(道)에 있으니 지극히 쉽지 않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몸을 주관하는 것으로 만화(萬化)가 이로 말미암아 나오며, 도(道)라는 것은 마음에 근본하는 것으로 천하 고금이 모두 이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진실 이 마음을 밝혀 만화의 근원을 맑게 하고 이 도를 본받아 만민의 표준을 세우면, 삼재(三才)에 참여하여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돕는 공(功)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천지가 저절로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저절로 육성되어 기(氣)가 화(和)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될 것이므로 상서로움과 경사가 찾아들 것입니다.《역경(曆經)》에 ‘간결하고 쉬운 것에서 천하의 도를 터득하는 것이니, 천하의 도를 터득하면 사람의 자리가 천지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이를 말한 것입니다.

대체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하나의 강령(綱領)이 있고 열 개의 조목(條目)이 있는 것입니다. 강령은 체(體)인데 다스림을 내는 근본이요, 조목은 용(用)인데 법도를 제정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강령을 들면 열 개의 조목이 저절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신이 먼저 하나의 강령에 대하여 말씀드린 다음 열 개의 조목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나의 강령이라고 일컫는 것인가 하면, 임금의 심술(心術)이 바로 그것입니다.

번잡한 서정(庶政)의 치람과 많은 백성들의 휴척(休戚)에 대한 기미가 모두 임금의 한 마음에 근본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온갖 일이 어그러지고 인심(人心)이 어긋나서 여기(戾氣)가 찾아드는 것인데, 이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생각건대, 옛 성인(聖人)들이 제왕의 자리에 있을 때는 하늘을 본받아 정치를 하였으므로 마음이 정대하고 광명하고 천리의 공변됨이 순수하여 인욕의 더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미한 것에서부터 드러난 것에 이르기까지 안과 밖이 환하게 밝아서 사사롭고 사특한 폐단이 없었으므로 위에서 기강을 세우면 교화가 아래에 밝게 이루어졌고 법을 제정하면 무시하여 어지럽힐 걱정이 없었으며 영을 내려도 아부하는 자에게 호의를 보이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진이를 등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축출하는 것도 물정에 꼭 맞았으며, 착한 이를 상주고 악한이를 벌주는 것도 한결같이 공론에 따라 하고 감히 털끝만큼의 사정도 그 사이에 끼어 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마음이 지대 지공(至大至公)하고 움직일 수 없도록 매우 발라서 일 없는 정치를 편안히 행하였으되 절로 백관 중직(百官衆職)의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른바 간결하고 쉬운 도라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만일 이와 반대로 인욕(人慾)과 사의(私意)의 침입으로 공명 정대한 체(體)를 잃는다면 편당(偏黨)을 지어 반측(反側)하는 무리들이 은밀히 시기심을 품게 되어 마음이 날로 뒤숭숭해지게 되고 따라서 간특(奸慝)한 무리의 횡행으로 번쇄한 일이 마구 생겨서 장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입니다. 여기에서 임금의 심술은 바르지 않으면 안 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방법은 또 반드시 학문으로 인하여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개 본심이 착한 것은 그 체(體)가 매우 미약해서 숱한 물욕(物慾)의 공격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임금위미(危微)의 경계370) 가 있었고, 공자도 극기(克己)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임금이 높고 높은 자리에 처하여 도리를 궁구하는 노력과 공덕을 보존하는 정성스러움이 잠시라도 끊기는 때가 있다면 또 어떻게 심술을 바루고 만사의 강령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선유가 ‘오직 학문으로써 이 마음을 기를 수 있고 오직 공경으로써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있고 오직 군자를 가까이함으로써 이 마음을 지탱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의리와 물욕은 반비례로 소장(消長)하는 것이므로 학문에 뜻을 둔 것이 돈독하면 날로 성현과 한 동아리가 되어 스스로 얻는 즐거움이 있고, 몸가짐을 공경히 하면 신명(神明)이 위에 있는 듯 경건해져서 올바르지 못한 것이 침노할 수 없게 되며, 현인 군자와 가까이할 때만 경계하는 말을 날마다 듣게 되어 아첨하는 말과 간사한 말이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이 세 가지에 힘을 다하면 상의 마음이 맑고 고요해져서 해처럼 밝고 거울처럼 맑게 되어 의리가 주인이 되기 때문에 물욕이 침탈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대체로 경연(經筵)은 임금이 학문을 강론하는 곳이고 어진 사대부를 만나는 곳이며, 경(敬)은 동정(動靜)을 통관(通貫)하고 내외(內外)를 합일시켜 천덕(天德)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께서 즉위 초년에는 정신을 가다듬어 경연에 부지런히 나아가시어 치도를 강구 연마하여 잠시도 게으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년에 오면서부터는 전혀 처음만 못하시니, 강관(講官)은 입시하여 몇 장(章)을 펴 읽을 뿐 도의를 규풍(規諷)하는 이로움이 없으며, 전하께서도 묵묵히 계시기만 할 뿐 의리의 정미로움을 토론하거나 고금의 득실을 상의(商議)하신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상들이 진달(陳達)하여 경계하는 것도 정령(政令)에 관계된 소소한 일들일 뿐이고, 이윤부열(傅說), 주공(周公)소공(召公)처럼 선한 말을 진달하여 애쓰는 사람이 없으니, 전하께서 이치를 궁구하고 덕으로 나아가는 공부에 미진한 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신은 늘 전하께서 ·의 도에 뜻을 두시면서, 경연에서는 삼대(三代)371) 이상의 성경 현전(聖經賢傳)으로 진강(進講)의 근본을 삼지 않으시고, 항상 후세에서 편집(編輯)한, 질(帙)이 호번하여 끝까지 연구하기 쉽지 않은 책을 취하여 【이때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진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진독(進讀)하시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왔습니다. 이런 책들은 번다한 사물(事物)과 제도(制度)에 대해서는 상세하지만 성인(聖人)이 심술을 밝히고 정성스럽게 하는 뜻과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는 방법 등은 대체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임금이 다만 옆에 두고 한가할 적에 때때로 펴보면서 고금의 제작(制作) 규모의 장단점을 연구하면 될 것이요, 경연에서 오로지 그것에 정신을 집중시켜 강론하고 궁구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성상의 품성이 높지 않은 것이 아니고 성상의 뜻이 독실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그럭저럭 한 권의 책에다 헛되이 세월을 허비하면서 뜻은 부지런히 힘쓰건만 도(道)는 멀기만 하다는 탄식이 있게 된 것은 당초에 보도(輔導)한 사람의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唐)·우(虞)와 삼대(三代) 때에 어찌 이러한 책이 있었겠습니까. 심학(心學)뿐이었습니다. 한 이치가 만사(萬事)를 꿸 수 있고, 한 마음이 만화(萬化)를 총괄할 수 있는 것이므로 제왕의 학문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뿐입니다. 이치를 궁구하여 마음이 바르게 되면 저절로 몸이 닦이고 가정이 정제해져서 나라와 천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말단의 섭렵을 중지하시고 근본을 힘쓰는데 뜻을 오로지 하시며, 제왕의 학문에 마음을 기울여 정일(精一)의 공부에 마음을 다하소서. 그리하여 날마다 진신(縉紳)들을 대하여 정미한 것들을 강론하시되, 반드시 공경을 주로 삼아 나태하여 끊어지는 병폐를 없게 하시면 전체(全體)가 서게 되어 대용(大用)이 이를 말미암아 행해질 것입니다.

대체로 경(敬)은 성학의 시종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역경(曆經)》에 ‘하늘의 운행은 굳센 것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하였는데, 쉼이 없는데 이르게 되면 하늘의 덕과 합하는 것입니다. 임금의 덕과 마음이 하늘과 똑같아지면 천심이 즐겁지 않고 재변이 사라지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자(程子)는 경(敬)의 공효를 논하며 ‘총명과 예지가 모두 이로부터 나오므로 이로써 천제(天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상께서는 유념하소서.

열가지 조목들은 심술의 나머지로, 모두가 다스려가는 공무(功務)입니다.

첫째, 가정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역경(曆經)》 가인괘(家人卦)에, ‘왕이 가정에 충실하면 구휼하지 않아도 길하리라.’고 하였고, 또 ‘믿음이 있게 하고 위엄있게 하면 마침내 길하리라.’고 하였으며, 전(傳)을 쓴 사람은 ‘왕자의 도(道)는 몸을 닦아서 가정을 정제하게 하는 것이니, 가정이 바르게 되면 천하가 다스려진다. 예부터 성왕들은 모두 자기 몸을 삼가고 집안을 바로 잡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다. 그러므로 가정에 대한 도가 지극해진 다음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천하가 다스려졌던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가정을 바르게 하는 도는 내외의 한계를 엄하게 하고 존비(尊卑)의 분수를 명백히 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남자는 밖의 일을 올바르게 관장하고 여자는 안의 일을 올바르게 관장해야 하며, 처(妻)는 이에서 체통을 정제하고 첩(妾)은 아래서 받들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부(夫婦)의 분별이 엄하고 적서(嫡庶)의 분수가 명확하면 가정이 정제된 것입니다. 덕이 있는 여자를 채택하고 목소리 곱고 예쁜 여자를 경계하며 동관(彤管)의 사(史)372) 가 있게 하고 늦게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 있게 하며 밖의 말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고 안 말이 밖으로 나오지 말게 하며 뇌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청탁이 행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정을 정제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규문(閨門) 안은 사람이 지나치면 엄하지 못하고 은총이 성하면 의리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환란은 언제나 예법이 확립되지 않아서 버릇없는 마음이 생기는 데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속으로는 믿으면서 겉으로는 위엄이 있게 하지 못하고 정애(情愛)의 사사로움에 빠져 스스로를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궁곤(宮壼)을 바르게 하고 청탁을 막으며 인척(姻戚)들을 검속하여 화란의 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고 위엄은 사람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가도(家道)가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엄은 역시 먼저 자기 자신을 엄숙히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동일정(一動一靜)을 감히 구차스럽게 하지 않고 일빈 일소(一嚬一笑)를 감히 경솔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삼가고 두려워하여 가도가 저절로 엄숙해질 것이므로 즐거움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어 상하의 질서가 정연해지고 내외의 분수가 분명해질 것이니, 어찌 한 사람이라도 사사로운 은총을 믿고 지켜야 할 도리를 어지럽히고 뇌물을 받아들여 조정의 정사를 문란시키겠습니까. 그러므로 ‘위엄있게 하면 길하리라.’ 한 것은 바로 자신을 반성하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면서 가정을 바르게 한 사람은 아직 없었습니다.

삼가 전하께서 가도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은 진실로 논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에 액정(掖庭)에서 총애를 믿고 틈을 엿본 변이 있었고 【박씨(朴氏)가 교만 방자하여 제멋대로 한 것을 말함.】 뒤이어 음흉하고 간사한 자가 권세를 잡고 정치를 어지럽히는 화(禍)가 있었습니다. 【김안로(金安老)를 가리킴.】 지금도 대궐 안이 엄하지 못하여 여자들이 정사를 어지럽히는 일이 많이 행해지고, 관직의 제수를 결정할 때에도 이따금씩 지공 무사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상의 덕에 누가 되고 있다는 말이 멀리까지 전해 들리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일에 대해 거론하는 정신(廷臣)이 한둘이 아니니 어찌 본 것이 없이 그러하겠습니까.

대개 궁정(宮庭)의 은밀한 곳과 자리에 들어 쉬실 때 정(情)에 흘러 도리를 해치는 것이 지극히 은미한 것 같아도 영락없이 밖으로 드러나 멀리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은 마치 푸른 하늘의 해와 같아 조금만 흐려도 모든 사람이 보고 있어서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기(禮記)》에 ‘남편의 가르침을 닦지 않으면 꾸지람이 하늘에 나타나 해가 일식을 하고 부인이 순종함을 닦지 않으면 꾸지람이 하늘에 나타나 달이 월식을 한다.’ 하였습니다. 임금의 가법(家法)이 닦이지 않으면 또한 건상(乾象)의 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러한 은미한 것은 나의 덕에 누가 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 마시고, 척연(惕然)히 경계해 살피시고 분연(奮然)히 뉘우쳐 고치시매 해와 달같이 환히 비치시고 천둥 번개처럼 결단하시어, 아첨하는 무리들이 총명을 막지 못하게 하고 애행(愛幸)을 모두 도의(道義)로 결단하시어 궁곤을 엄하게 하시고 사특한 길을 막으시면, 종사(宗社)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둘째는 국본(國本)373) 을 교도하는 일입니다.

국본을 보좌하여 교도하는 것이 오늘의 급선무인데, 보좌하여 교도하는 방법은 역사를 강론하고 고금의 득실을 이야기하는 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학문이 점점 몸에 배도록 함양(涵養)하고 훈도(薰陶)하여 그 도를 터득하게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명철한 임금들은 태자(太子)를 교양(敎養)할 때 반드시 행실이 돈독하고 방정과 내신(內臣)들까지도 모두 중후하고 조심성 있는 사람들을 골라 삼가 보호하게 해서 전후 좌우에 모두 바른 사람이 있게 하고 출입(出入)과 기거(起居)를 모두 정도(正道)에 맞게 하고 천박하고 속된 말이 들리지 않게 하고 화려하고 사치스런 물건이 눈에 뜨이지 않게 하였으니 덕성을 기르고 신체를 보호하는 것에는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대체로 학문의 도에는 스스로 본말(本末)이 있는 것이니 본이 되는 것을 먼저 하고 말이 되는 것을 나중에 하는 것이 덕으로 나아가는 규칙입니다. 제왕들이 심법(心法)과 성현들의 모훈(謨訓)이 경전(經傳)에 실려 있어서 해와 별처럼 밝게 빛나고 있으니,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익히 읽어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진리를 이해해야 하고, 진리를 이해만 할 것이 아니라 터득한 실지를 실천하며 도덕의 원리를 살피고 사물의 진리를 밝혀서 그칠 데에 이르고 마음을 다하고 본성을 알아서 하늘에 이르는 것이 학(學)의 근본입니다. 널리 사서(四書)를 섭렵하여 고금의 세변(世變)에 통달하는 것은 이치를 궁구하는 한 단서일 뿐, 학문의 본무(本務)는 아닙니다.

대체로 마음이 도에 통한 연후에 역사를 보면 옛사람들의 시비 득실이 한눈에 환하게 들어오지만, 마음이 도에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역사책을 많이 보려 서둔다면 방만하기만 하여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비와 사정의 귀결이 엇갈리어 취사(取捨)를 알지 못하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삼가 보건대 춘궁(春宮)374) 께서는 천품이 고금에 없이 뛰어나게 순수하여 덕의 진취가 빠르므로 가르치기에 번거롭지 않으며 일덕(一德)에는 티가 없고 삼선(三善)375) 이 모두 융성합니다. 저번에 양위(讓位)하시겠다는 명을 받았을 적에, 지성으로 사양하며 울면서 음식도 들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성상의 뜻을 돌리게 하였다는 이야기를 조야(朝野)가 듣고 감읍(感泣)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순수한 효도와 성대한 덕이 지극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하였겠습니까.

다만 염려되는 것은 도와 보호하는 방법이 삼대(三代)의 방법에는 못 미치는데, 빈료(賓僚)에 뽑힌 이들이 어찌 모두 도에 밝고 덕이 있는 선비이겠습니까. 진강하는 책들도 사기(史記)가 많고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해야 할 성경(聖經)은 없는데, 여러 사책만 부지런히 섭렵하는 것은 이치를 밝혀 도로 나아가는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임금의 학문은 마땅히 이제(二帝)376)삼왕(三王)377) 을 본받아야 합니다. 삼대 이상에 무슨 역사책이 있어서 읽었겠습니까. 심학(心學)뿐이었습니다. 후세에는 역사책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본말과 선후의 차례는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 사림(士林)에서 우익지설(羽翼之說)을 빙자해 음흉하고 간사한 무리의 괴수를 끌어들여 【김안로(金安老)·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을 처음 등용할 때의 일이다. 이때 돕는다는 설[羽翼之說]이 있었다.】 사부(師傅)의 자리에 앉혀 놓았으니, 보좌하고 교도한 것이 사리에 어그러진 것이 반드시 많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천조(天祚)를 힘입어 종사(宗社)에 구름이 걷히고 해가 다시 밝았으니, 마땅히 궁료(宮僚)의 직을 중하게 여겨 이름 있고 덕망 있는 선비를 널리 뽑아 권강(勸講)에 대비하되 반드시 오래 그 임무를 맡겨 공효를 이루도록 책임지우소서. 진강하는 책들도 반드시 마음을 밝고 슬기롭게 다스리는 학문으로 근본을 삼아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에 정신을 오로지하게 해서 덕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힘을 다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따금 지난 역사를 물어 고금의 변고와 치란의 요점을 연구하게 한다면 본말이 다 갖추어져 성스러운 공덕이 완성될 것입니다.

요즈음 강관(講官)의 숫자도 적은데다 다른 관직을 겸하고 있으므로 맡은 일을 처리하기에 바빠 그들의 사려(思慮)가 혼란하므로 시독(侍讀)하는 데에 마음을 오로지하고 정성을 쌓을 수 없으니, 보좌하여 교도하는 데에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동궁의 학문(學問)이 날마다 달마다 진보되니 간단(間斷)이 있을까 하는 걱정은 진실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보존하기가 어렵고 기질과 습관은 변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한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인(聖人)이 되기도 하고 광인(狂人)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보좌하여 인도하는 방법을 극진히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종사의 원대한 계획으로 이보다 더 급한 일은 없으니, 상께서는 깊이 통찰하소서.

세째는 조정(朝廷)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해야 조정이 바르게 되고 조정이 바르게 되어야 백관(百官)이 바르게 되고 백관이 바르게 되어야 만민이 바르게 되고 만민이 바르게 되어야 사방이 바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대저 조정은 사방의 본원이고 왕의 덕화가 말미암아 시작되는 곳입니다. 본원이 맑으면 하류의 물은 흐리게 하려고 해도 흐려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조종을 바르게 하는 일에 힘쓰지 아니하면서 부서(簿書)의 잘못이나 탄핵하는 말단의 일에 구구히 매달려 이것으로 퇴폐한 풍속을 진작시키고 민폐를 근절시키려 한다면, 비유컨대 본원을 흐리게 하면 하류가 맑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니 될 일이겠습니까?

대개 조정을 바르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반드시 먼저 기강을 확립시켜 정하는 것과 풍절(風節)로 진작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상하가 잘 다스려져 인도(人道)가 정제되기 때문에 퇴폐되거나 쇠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풍절이란 공도(公道)가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이고 직도(直道)가 말미암아 뻗어나는 것입니다. 공도가 행해지지 않고 직도가 신장되지 않으면 기강이 어떻게 확립되겠으며, 기강이 확립되지 않으면 조정이 어떻게 바루어지겠습니까. 그러나 기강과 풍절이 확립되는 것은 또 임금의 심술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삼공이 도를 논하고 육경이 직분을 나누며 시종(侍從)과 대간(臺諫)이 그 사이에서 논하고 규찰하면, 임금은 대공 지정한 마음으로 위에서 총섭(摠攝)해서 시비를 분변하여 알맞게 결단하여 어질고 간사한 것을 살펴 진퇴(進艮)시킵니다. 그렇게 하면 선입견에 좌우되어 한쪽 말만 듣고 한쪽만 믿는 잘못이 없게 되고 폐행(嬖幸)만을 가까이하여 넓게 임하고 넓게 사랑해야 하는 공변됨을 잃는 일이 없게 됩니다. 도가 있는 곳이면 의심치 말고 결단하여 간사한 것이 현혹시킬 수 없게 하고 아첨꾼이 변경시킬 수 없게 하며, 출척(黜陟)과 형상(刑賞)을 한결같이 공론에 따라 하고 어느 특정인에게만 호의를 보이는 폐단이 없게 한 뒤에야 공도가 행해지고 직도가 신장되어 기강이 확립되고 조정이 바르게 됨은 물론 내외와 원근이 한결같이 바르지 않은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이 혹 공명 정대하지 못해서 털끝만큼이라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사사로움이 있다면,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와 인척(姻戚)·폐행(嬖倖)이 온갖 연줄을 대어 엿보면서 은총을 바라지 않는 자가 없어서 못하는 짓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상의 총명을 현혹시키고 아래로는 권력을 사사로이 휘두르게 되므로 충직한 의논이 있다고 하더라도 들어갈 틈이 없어져 선비의 풍절이 저상(沮喪)되게 되는 것입니다. 선비의 풍절이 저상되면 공도(公道)가 막히고 직도(直道)가 폐기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기강이 허물어지고 조정이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지난번 간흉(奸凶)이 자격도 없이 자리에 앉아 은총을 믿고 제 마음대로 하여 아랫사람의 말을 막고 위의 총명을 가렸습니다. 그리하여 여탈(與奪)이 은혜냐 원수냐로 결정되어 형벌과 복이 그들의 말 한마디에서 결정되었으므로, 사림(士林)이 기운을 잃고 기강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종사(宗社)가 거의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전하께서는 위에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라를 위하여 따라 죽을 각오로 직언과 정론을 펴 간사한 무리를 물리치려 하지 않았으니 너무도 풍절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림은 풍절이 없었고 조정에는 기강이 없었으니, 국가의 패망이 간발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전의 일을 징계하시고 뒤의 일을 걱정하시어 대공 지정한 마음으로 편사(偏私)의 누를 말끔히 씻어내시고 호오(好惡)의 공변됨을 명백하게 보이소서. 그리하여 풍절을 도탑게 하시고 기강을 진작시키시면 본원이 맑아져 왕화(王化)가 행해질 것입니다.

네째는 용사(用捨)를 신중히 하는 것입니다.

이윤(伊尹)이 ‘관리를 임용할 때는 오직 어질고 재주있는 사람으로 하시어 좌우가 모두 그런 사람이게 하소서. 신하는 위로는 임금을 위해 덕을 펴고 아래로는 백성을 훈도하는 자이니, 어렵게 여겨 신중히 하시며 오직 화하게 하시고 한결같게 하소서.’ 하였고, 맹자는 ‘좌우가 다 어질다고 하여도 안 되며 모든 대부가 다 어질다고 하여도 안 되고 온 나라 사람이 다 어질다고 한 뒤에야 살펴보아서 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등용하며, 좌우에서 다 옳지 않다고 하여도 듣지 않고 모든 대부가 다 옳지 않다고 하여도 듣지 말며 온 나라 사람아 다 옳지 않다고 한 후에야 살펴보아서 옳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에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용사(用捨)의 득실에 따라 국가의 안위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옛날 밝은 임금들은 신중히 여겨 감히 가볍게 하지 아니했고 어렵게 여겨 감히 쉽게 하지 않았으며 반드시 중의(衆意)를 참작하고 혼자 성찰하여 그 사람의 현부의 실체를 환히 확인한 뒤에 그에 따라 진퇴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깊이 알고 돈독하게 믿어서 의심이 없었고, 어질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밝게 통촉하고 결연히 제거하여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삼대 성왕들이 어진 사람을 임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제거하던 방법인데, 후세의 임금들은 이 뜻에 밝지 못하여 거조(擧措)를 가볍게 함으로써 어진이를 임용하고도 끝까지 믿지 못하고 간사한 이를 제거하는 데도 결연히 결단하지 못하여, 어떤 때는 한 사람이 기리는 소리만 듣고 임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사람이 헐뜯는 소리만 듣고 제거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에는 전에는 어질다 여겨 임용했던 사람을 뒤에는 간사하다 하여 죽이기도 하고 전에는 간사하다 여겨 물리쳤던 사람을 뒤에는 충성스럽다 하여 총애하기도 하였는데, 용사가 한번 잘못되는 데 따라 치란이 갈립니다. 이는 처음에 그 사람을 판별하지 못한 데 연유한 것이므로, 처음에 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의 마음은 어진이를 좋아하고 간사한 이를 미워하시며 처음부터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으셨습니다. 사람이 어질다는 소문을 들으면 비록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빠짐없이 선발하였고 사람이 간사함을 아시면 비록 귀총(貴寵)이라도 조금도 용서없이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셨으니, 성상의 마음이 지극히 겸허하고 밝지 않았으면 어찌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한스러운 것은 보도하던 신하들이 광명(光明)한 길을 말미암지 않고 암매(暗昧)한 길을 따른 경우가 많아서 맑고 밝은 덕에 티를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진퇴시킨 사람들과 죽거나 발탁된 관원들이 공론에 합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저 인재의 진퇴와 소장(消長)은 국가에 관계되는 바가 크므로 마땅히 공명 정대한 공론에 따라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 은밀한 데 의탁해서 흑백(黑白)을 변란시켜 자기와 의견을 달리 한다고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 중에 몰래 아뢰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간사한 사람이 아니면 아첨꾼이라고 선현(先賢)이 이미 논하였으니, 현명한 임금이라면 마땅히 깊이 미워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 한 문제(漢文帝)장안(長安)에 이르렀을 때 주발(周勃)이 잠깐 뵙기를 청하자 송창(宋昌)이 물리치면서 ‘할 말이 공적인 말이면 공적으로 말하고, 사적인 말이라면 임금은 사사로움이 없는 법이다.’ 하였는데, 경계하는 바가 엄한 말입니다. 문제의 다스림이 공명 정대하고 음사(陰邪)한 폐단이 없었던 것은 실로 송창의 이 한마디 말378) 에 힘입었던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맑은 마음과 한결같은 덕으로 간사한 무리를 억제하시고 올바른 자를 허여하시며 이상(履霜)의 조짐379) 을 막으시고 뱃속으로 들어오는 해독을 경계하소서. 사람을 등용하거나 축출할 때는 언제나 더한층 어렵게 여기고 신중히 하는 뜻을 가지시어 반드시 좌우에 질정하시고 조정과 의논하소서. 또한 반드시 겸허한 마음으로 살피시고 털끝만큼도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는 사사로움을 두지 마시어, 혹 지름길을 통해 현혹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두말 못하게 거절하시고 단호히 물리치기를 태양이 사사로이 비침이 없는 것처럼 하시면, 음흉하고 간사한 것들이 틈을 엿볼지라도 음사(陰邪)를 부릴 틈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아는 것이 명철인데, 이는, 요임금도 오히려 어렵게 여겼다.’ 하였지만, 지금 보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분변하기에 그리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옛날 이덕유(李德裕)당 무종(唐武宗)에게 ‘군자는 소나무나 측백나무 같아서 홀로 우뚝 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지만, 간사한 사람은 등나무나 겨우살이 같아서 다른 물체에 붙지 않고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하였고, 송 인종(宋仁宗)왕소(王素)에게 재상에 임명할 만한 사람을 묻자 왕소는 ‘환관(宦官)과 궁첩(宮妾)들이 성명(姓名)을 모르는 사람이어야 좋을 것이다.’ 하여, 이에 부필(富弼)을 재상에 임명하니 사대부들이 서로 경하하였다 합니다. 전하께서는 진실로 공평 무사한 마음을 가지시어 이것으로 신하들의 사정(邪正)을 살피시어 진퇴를 결정하시면 반드시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공론의 배척을 받고 원한을 품고 틈을 노리는 사람들 중에는 반드시 다시 옛날 지름길을 통해 술책을 부리던 짓을 답습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세밀히 살펴 예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변고(變故)를 겪으신 이후 상의 지혜가 더욱 밝고 마음이 더욱 안정되었으므로 진실로 의심할 것은 없으나, 신의 사사로운 걱정과 지나친 계산으로는 감히 이것으로써 뒷날을 위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상께서는 유념하여 살피소서.

다섯째는 천도(天道)를 따르는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하늘의 마음은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며 성인의 마음도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요임금이 하늘을 공경하여 역상(曆象)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절기를 알려 주어 여러 가지 공적이 모두 빛나게 한 것은, 하늘의 살리기 좋아하는 덕을 본받은 정치였습니다. 순임금도 간략하게 아래에 임하고 너그럽게 백성을 다스려 죄는 의심되면 가볍게 결정하고 공은 의심되면 무겁게 결정했으며 형벌은 형벌이 없는 경지에 이르기를 기약하여 가엾게 여기고 조심하였으니, 역시 하늘의 살리기 좋아하는 덕을 본받은 정치였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삼왕(三王)은 살게 하고 상하게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면 누구나 잘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삼왕은 후덕하게 하고 곤궁하게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면 누구나 안정되고 싶어하지 않는 이가 없으므로 삼왕은 부축해 주고 위태롭게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면 누구나 편하고 싶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삼왕은 그 힘을 절약해서 다 쓰지 않았으니, 이 역시 모두 하늘을 따라 어진 정치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삼대 이후에 이 도를 다한 이는한 문제(漢文帝)송 인종(宋仁宗)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별의 형상이 자주 변하고 해와 달이 흉조를 나타내었으며 재이(災異)가 무척 많았었지만, 두 임금은 도를 다해 자신을 반성해서 천심(天心)을 잘 받들었으므로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고 화(禍)가 변하여 복(福)이 되었으니, 정치를 닦고 하늘을 받드는 도도 역시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움이 없게 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그 걱정도 자기 일신상의 걱정을 걱정으로 하지 않고 천하의 걱정을 걱정으로 하였으며, 그 즐거움도 자기 일신상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하지 않고 천하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하여, 시물(時物)이 번성한 것을 보고는 가난하고 초췌한 백성들을 진구하였고 제영(緹榮)이 올린 글380) 에 감동하여 육형(肉刑)의 참혹함을 면제해 주었으며 사형수의 죄를 의심하여 다시 심사해 수천 명의 목숨을 살려주고 하루 저녁의 배고픔을 참으면서 끝없이 죽이는 것을 슬퍼하였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윤택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화기가 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건대 전하는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근면한 뜻이 지극하여 가엾게 여겨 관대하심을 보이는 전지도 여러번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관리들이 봉행하기를 게을리해서 백성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탈당하는 것이 전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곤궁하게 된 것이 전보다 심한 형편이니 신은 전하의 하늘을 본받아 살리기 좋아하시는 마음에 혹 정성스럽지 못한 점이 있어서가 아닌가 염려됩니다.

세금이 번다하고 무거워 한푼의 너그러움도 없어서 살길을 찾아 정처없이 떠도는 백성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데도 위안하고 구제해 주는 정책은 없습니다. 형벌이 중도에 맞지 않는 것은 직접 인명에 관계되니, 형장 아래 어찌 횡액을 당하는 참혹함이 없겠습니까. 감옥에는 반드시 억울한 혼(魂)이 많을 것입니다.

지난번 권간(權奸)이 제 마음대로 할 때 오로지 각박하게 하는 데만 힘을 써서 여러번 큰 옥사(獄事)를 일으켜 참혹함이 극에 달했었습니다. 그리하여 형벌할 사람이 아닌데도 형벌을 가하는가 하면 죄를 밝히기 어려운데도 죽였으니, 전하의 인애(仁愛)하는 마음에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깊어지게 되어 어찌 뒤늦게 뉘우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찰을 철거하고 중을 도태시킨 것은 부정한 것을 물리치는 아름다운 뜻입니다. 그러나 역시 제도(諸道)에 미리 고유(告諭)해서 철거하고 도태시킨다는 뜻을 명확하게 보이신 다음 그 기한을 늦춰 점차 사라지게 했어야 마땅한 것이요, 졸지에 분탕하여 머무를 곳마저 잃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철거를 독려하기 위해 관리를 파견하신 것이 따뜻한 때가 아니고 마침 한겨울 혹독한 추위가 극심할 때여서 중들이 먹을 것도 챙기지 못하고 맨몸으로 놀라 흩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 늙거나 어리거나 병든 사람들은 구렁에 죽어 나뒹굴고 젊고 힘있는 사람들은 떼 지어 도둑이 되니, 서민들의 피해가 적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조빈(曹彬)은 자제들이 지붕을 수리하려 하자 못하게 말리면서 ‘때가 바야흐로 추운 겨울인데 담벽이나 기와 사이 등에는 온갖 벌레들이 칩거하고 있을 것이니 그것들의 삶을 해쳐서는 안 된다.’ 하였다 합니다. 어진 사람은 미물(微物)까지도 차마 해치지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임금이 백성들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어질고 성스럽고 살리기 좋아하는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만물을 살리는 마음을 본받으시고 동포(同胞)라는 의리를 생각하시어 어진 마음으로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공경하는 마음으로 형벌을 삼가소서. 그리하여 모두 순수한 정성에 근본하시고 잘못을 꾸며대지 않으시며 천도를 따르시면, 변이(變異)가 사라지고 복과 상서로움이 찾아들 것입니다.

여섯째는 인심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인심이란 천하가 안정되고 위태로와지는 근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면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여 위에서는 공론이 행해지고 아래에서는 풍속이 아름다와지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여 위에서는 공론이 행해지지 않고 밑에서는 풍속이 퇴폐하여 집니다. 따라서 국가의 치란과 흥망의 원인이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대 때에는 인심이 발랐었는데, 말세에 이르자 양주(楊朱)묵적(墨翟)의 이기설과 겸애설이 어지럽히고 소진(蘇秦)장의(張儀)의 종횡론(縱橫論)이 훼손시켰습니다. 그래서 인심이 비로소 그 바름을 잃어 공리(功利)를 숭상하고 인의(仁義)를 버리게 되었으므로 드디어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졌던 것입니다. 서한(西漢) 초기에는 인심이 약간 바르게 되었으나 바루고 보익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으므로 선비들이 모두 공명만 좋아하고 절의(節義)를 숭상하지 않아서 마침내 아첨이나 하는 풍습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왕망(王莽)을 기리는 글을 올린 사람이 4만여 명이나 되어 한나라가 중도에 쇠미해졌던 것입니다.

동경(東京)381) 이 중흥되자 절의를 숭상하고 염치를 가다듬어 인심이 비로소 다시 바르게 되었었습니다. 쇠망할 즈음에 이르러서는 조정은 혼탁하였으나 초야(草野)에서는 청의(淸議)가 왕성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웅(奸雄)들이 둘러서서 구정(九鼎)382) 을 넘보았으나 끝내 감히 취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누구의 힘이었겠습니까. 그 이후로 내려오면서 역대의 흥망이 모두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니 전사(前史)를 상고하시면 밝게 징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인심의 사정(邪正)은 교화의 득실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교화가 밝으면 사람들은 모두 선한 데로 향하고 의로움을 사모하게 되며, 교화가 밝지 못하면 사람들은 모두 이(利)로움만 따르고 의로움은 버리게 되어 인심이 바르지 못하게 됩니다.

생각건대 우리 나라는 삼강(三綱)이 확립되고 사유(四維)383) 가 펴져서 교양(敎養)에 도가 있어 절의(節義)가 볼만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대통을 이어받아 혼란을 제거하고 바른 데로 돌이키심에 선비들의 풍습이 한결같이 새로워지고 인심이 한결같이 바르게 되어 정직한 자세와 올바른 논의를 영광으로 여기고 유(流)를 같이하고 더러움에 결합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옛날을 배우고 행실을 정제하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시세를 쫓아 녹이나 구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으니, 이때는 조정이 청명하였고 풍속도 크게 혁신되었으며 천리가 밝아 인욕도 방자한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정의 정치가 변경(變更)되면서부터 인심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하여 옳은 것이 옳은 것인 줄을 모르고 그른 것이 그른 것인 줄을 모르게 되어 사습(士習)이 날마다 천박하고 더러운 데를 향해 달림에 따라 풍속이 마침내 퇴폐해졌습니다. 이리하여 위에는 정기(正氣)가 소멸되고 아래에서는 사특함이 자라나기에 이르렀으며, 간신이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길러 오로지 제 마음대로 처단하였으므로 온 조정이 위력을 따라 그리로 쏠려 심지어는 남에게 뒤질세라 붙좇으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몰랐으니 인심이 매우 바르지 못했고 사풍(士風)이 극심하게 허물어졌던 것입니다. 만일 몇 년만 더 끌었다면 글을 올려 덕을 기리기에 이르지 않았겠습니까. 인심이 바름을 잃게 되면 사풍이 확립되지 않고 사풍이 확립되지 않으면 풍속도 따라서 허물어져 구제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시골에는 효도하고 화목하는 풍속이 없어지며 사람들은 음란에 관한 죄를 많이 지어 은혜를 해치고 인륜을 파괴하고 천리를 거역하는 일 등 말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이 성상의 주위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대부의 집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화기를 해치고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 또한 이로 말미암지 않는다고 기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 인심과 풍속은 국가의 원기(元氣)인데 원기가 다 사라지면 명맥(命脈)인들 어찌 오래 지탱되겠습니까. 말하려니 통곡이 나오려 합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정무를 보고 해가 진 뒤에 수라를 드시면서 걱정하고 애쓰시었는데,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오늘날 조정이 다시 화합하고 성상의 정치가 혁신되게 되었으니, 마땅히 인심을 바르게 하고 풍속을 도탑게 하여 원기를 보호하고 국맥을 오래가게 할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교화를 세워서 천서(天敍)의 법384) 을 돈독하게 하고 기강을 진작시켜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밝히면, 인심이 바르게 되어 풍속이 다시 일변하게 될 것입니다. 종사(宗社)와 생령(生靈)들을 장구하게 하는 길이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인데, 세상에는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상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먼 장래를 걱정하셔서 항상 유념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47책 9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4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윤리(倫理)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재정-공물(貢物) / 재정-전세(田稅) / 사법(司法) / 사상-불교(佛敎)

  • [註 367]
    규풍(規諷) : 사리를 따져 간하는 것.
  • [註 368]
    구주(九州) : 천하.
  • [註 369]
    전찬(傳餐) : 정서는 문서(文書)의 양을 헤아리는 것으로, 즉 임금이 정무에 부지런함을 말함. 《사기(史記)》 진 시황기(秦始皇紀)에 "저울로 문설를 달아서 낮과 밤의 일정량을 정해 놓고 처리하되, 그 정량을 다 처리하지 못하면 쉬지 않았다." 하였고, 《한서(漢書)》 형법지(刑法志)에 "낮에는 옥사(獄事)를 처결하고 밤에는 문서를 처리하되, 스스로 일을 처결한 문서의 양을 헤야려 날마다 1석(一石)을 하는 것으로 일정량을 삼았다." 하였고, 그 주에 "현(縣)은 저울[稱]이요, 석(石)은 1백 20근인데 시황이 하루에 처결하는 문서를 1백 20근으로 정량을 삼았다."고 하였다. 전찬은, 수 문제(隋文帝)가 위사(衛士)를 시켜 밥을 날라다 먹으면서 정무를 처리한 것을 말함. 임금이 일을 처결하느라 조용한 식사 시간을 갖지 못하므로 위사가 적당한 시간에 가져다 드린다는 것. 《구당서(舊唐書)》 태종본기(太宗本紀) 권2.
  • [註 370]
    위미(危微)의 경계 : 순(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천하를 선위(禪位)할 때 전해 준 도통(道統)의 말로, 심학(心學)의 본지(本旨)이기도 함. 즉 위미란,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에 "인심(人心)은 위태로운 것이고 도심(道心)은 희미한 것이니,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굳게 잡을 수 있다."고 한 것을 줄인 말이다. 채침(蔡沈)의 주를 보면 "마음이란 사람의 지각이 속에서 주관하고 밖으로 응하는 것으로 형기(刑氣)에서 발생된 것을 지적하여 말하면 인심이라 하고 의리에서 발생한 것을 지적하여 말하면 도심이라 하는데, 인심은 사뙤기는 쉽고 공변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위태한 것이며 도심은 밝아지기는 어렵고 어두워지기는 쉽기 때문에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밀히 살피어 형기의 사정에 섞이지 않게 하고 한결같이 지켜 의리의 올바름에 순전하게 해서 도심이 항상 주장을 하고 인심이 그 명을 따르게 하면 위태로운 것이 편안해지고 희미했던 것이 환히 나타나게 되어 동정(動靜)과 운위(云謂)에 저절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차이가 없게 되어 참으로 그 중을 잡을 수 있게 된다."고 풀이하고 있다.
  • [註 371]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 [註 372]
    동관(彤管)의 사(史) : 붓대가 붉은 붓을 가진 사관(史官). 동관은 옛날 여사(女史)가 궁중(宮中)에서 궁중의 정령(政令)과 후비(后妃)의 일을 기록할 때 쓰던 붓이다. 《후한서(後漢書)》 광무곽황후기(光武郭皇后紀)에 "여사가 동관으로 공을 기록하고 허물을 쓴다."고 하였고, 그 주(注)에 "동관은 붓대가 붉은 붓이다."라 하였다.
  • [註 373]
    국본(國本) : 세자(世子).
  • [註 374]
    춘궁(春宮) : 세자(世子).
  • [註 375]
    삼선(三善) : 세 가지 잘 섬기는 일. 즉 신하는 임금을 섬기고, 아들은 아버지를, 어린이는 어른을 섬기는 것. 《예기(禮記)》 문왕 세자(文王世子)에 "한 사람이 행하여 삼선(三善)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일 뿐이니……부자·군신·장유의 도가 잘 이루어져야 나라가 다스려진다." 하였다.
  • [註 376]
    이제(二帝) : 요(堯)와 순(舜).
  • [註 377]
    삼왕(三王) : 하 우왕(夏禹王), 은 탕왕(殷湯王), 주 문왕(周文王)·무왕(武王).
  • [註 378]
    송창의 이 한마디 말 : 한 문제는 고조(高祖:유방(劉邦)임)의 중자(中子)로 이름은 항(恒). 고조가 대(代)를 평하고 그를 세워 대왕(代王)을 삼았었는데, 그후 여후(呂后)가 죽자 주발(周勃)이 제려(諸呂)의 난(亂)을 진압하고 그를 맞아 제위(帝位)에 세웠다. 주발이 대왕을 맞아 와서 제로 삼을 무렵 대왕에게 할 말이 있으니 좌우를 물리라고 하자 대왕의 참모였던 중위(中尉) 송창(宋昌)이 가로막아 나서며 주발에게 "공적인 말이면 공적으로 말하고, 사적인 말이라면 임금은 사사로움이 없는 법이다." 하자 주발이 물러갔다는 고사. 《한서(漢書)》 권4 문제기(文帝紀).
  • [註 379]
    이상(履霜)의 조짐 : 매사 화란은 발생되기 전에 미리 막아야 한다는 뜻. 서리를 밟게 되면 이미 얼음이 얼 시기가 가까와졌다는 조짐을 알아서 그에 대처해야 한다는 뜻. 《주역(周易)》 곤괘(坤卦) 초6(初六)에 "서리를 밟으면 얼음이 얼 때가 온다." 하였고, 그 상(象)의 소(疏)에 "서리를 밟음으로 하여 미리 얼음 얼 것을 경계하는 것은 조짐을 막고 은미함을 우려하여 끝을 처음처럼 삼가라는 뜻이다." 하였다.
  • [註 380]
    제영(緹榮)이 올린 글 : 제영은 한(漢)나라 태창령(太倉令) 순우의(淳于意)의 작은 딸. 의(意)는 아들은 없고 딸 다섯을 두었다. 문제(文帝) 때에 의가 죄를 짓고 형벌을 당하게 되어 조옥(詔獄)에 갇혀 있게 되었는데, 그때에도 육형(肉刑:참수형(斬首刑)임)의 제도가 있어 그 율에 해당되었다. 의가 딸에게 딸만 낳고 아들을 두지 못하니 급할 때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자, 제영이 슬피 울면서 아버지를 따라 장안에 가서 "몸을 바쳐 관비(官婢)가 되어서 아버지의 죄를 속(贖)하겠다."는 글을 올리니, 황제가 불쌍히 여겨 육형을 면제하라고 조서를 내렸다. 유향(劉向) 《열녀전(烈女傳)》.
  • [註 381]
    동경(東京) : 동한(東漢)을 말함.
  • [註 382]
    구정(九鼎) : 우(禹)임금 때 구주(九州)에서 쇠를 조공받아 만든 솥으로 삼대(三代) 때 나라를 전승(傳承)하는 보배로 삼았었다. 여기서는 국왕의 권병(權柄)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 [註 383]
    사유(四維) : 예(禮)·의(義)·염(廉)·치(恥).
  • [註 384]
    천서(天敍)의 법 : 오륜(五倫)을 말한다. 즉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

全州府尹李彦迪上疏曰:

王者, 配天立極, 垂拱無爲, 而德以久業以大者, 惟至誠無息而已矣。 無息者, 天之道也。 蓋人君, 受天命履天位, 苟無至誠之德, 格于上下, 何以順天道盡天職, 而致位育之功效乎? 夫所謂至誠之德者, 一而無貳, 純而不雜, 自始至終, 無時間斷者是也。 一有所間, 則息矣。 《中庸》曰: "不息則久。" 久則徵, 徵則悠遠, 悠遠則博厚, 博厚則高明。 博厚配地, 高明配天, 悠久無疆。 古之帝王, 德合於天, 終始無間, 致悠久無疆之功化者, 皆自其一念之不息者始。 試以大舜文王衛武公之事言之。 在位五十年, 治定功成, 禮備樂和, 其功化極矣, 而猶作勑天之歌, 君臣相戒。 其言曰: "勑天之命, 惟時惟幾。" 言敬天之道, 在於無時而不警, 無微而不省也。 文王享國歲久, 昭事上帝, 自朝至于日中昃, 不遑暇食, 用咸和萬民, 故詩人贊之曰: "惟天之命, 於穆不已。 於乎不顯! 文王之德之純。" 言文王之德, 純亦不已, 而合于天道也。 武公行年九十有五, 猶箴儆於國, 以求規諷, 作抑戒之詩以自警。 其詩曰: "相在爾室, 尙不知愧于屋漏? 無曰不顯, 莫予云覯。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言人君, 非獨致謹於臨朝對群臣之時, 至於宮庭幽隱之地, 亦不敢肆, 澟然自持, 如對神明。 於此, 見古昔聖帝明君, 法天存誠, 主敬謹獨, 終始惟一, 無時間斷, 不以吾治已隆而自逸, 不以吾德已盛自滿, 不以吾齒已衰而自怠, 常存戒懼於不覩不聞之地, 以致昭格于無聲無臭之際。 此所以天地咸應, 而休祥竝至, 神人協和, 而災變不作。 是乃所謂求在己之天, 而天不敢違者也。 臣伏見殿下, 仁明恭儉, 本於天性, 樂善好學, 勵精圖治, 臨御以來, 三十有四年之間, 嚴恭寅畏, 不敢荒寧, 昧爽丕顯, 對越上帝, 內無聲色之娛, 外無遊田之樂, 從諫弗咈, 改過不吝, 雖古之帝王, 無以加矣。 然治效未著, 而朝政屢變, 人心未和, 而天變不(珥)〔弭〕 。 其故何歟? 臣竊恐殿下, 法天謹獨之功, 或有時間斷, 而窮理執中之學, 亦有所未至也。 聖功有間斷, 故天理未純, 而人欲雜之。 聖學有未至, 故見道不明, 而用舍或差。 立政而無所定, 行道而不能久, 謹怠之靡常, 而曝寒之不一, 又何以隆至治, 而致泰和乎? 然聖人之過也, 如日月之食,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竊見去奸之後, 殿下之心, 如日再中, 陰翳俱盡, 思所以照幽隱而新政化者, 無所不至矣。 朝廷肅淸, 四方顒望, 庶幾復見都兪吁咈之治。 嗚呼! 此正殿下端本淸源, 振頹綱革弊習, 上應天心, 下慰人望之一大幾會也。 當今國家之勢, 譬如潰癰之人, 大命幾危而復蘇, 邪毒雖除, 而其元氣已薾然矣。 固宜安靜以保護, 不可動作而生變, 然必投以靈丹妙劑, 爲之湔腸滌胃, 以去病根, 然後可以淸其腹心, 而養其血脈矣。 若或安於小愈, 厭却瞑眩之藥, 失其所以治調, 則病之源於心腹, 安保其不復萌於異日乎? 近來朝廷, 擧措施爲, 務要鎭靜, 可謂得其宜, 然所以貴乎鎭靜者, 非苟且姑息之謂也。 整紀綱嚴賞罰, 以重國勢, 而邪說不能亂, 小人不能搖者, 乃鎭靜之實也。 若不分淑慝, 不辨是非, 喜同惡異, 循常襲故, 牽補架漏, 苟度時日, 而謂之鎭靜, 則恐無以振綱維新理化, 而偸靡之習, 頹惰之風, 將日益深, 而終不可救矣。 大抵國勢, 不盛則衰, 衰則入於亡。 明智之君, 當盛而慮衰, 當衰而思振。 衰而不能振, 則奄奄然日趨於亡, 必矣。 然其所以興衰振頹之本, 則在於人主之心, 純一無息而已。 若內無定志, 外無定規, 朝勤而夕怠, 乍作而乍輟, 正念方萌, 而私欲奪之, 善政方行, 而邪說沮之, 良臣方進, 而讒諛間之, 則將見紛紊委靡, 卒無成效, 而終至於脈病氣消, 風邪乘之, 而大命危迫矣。 今者王道平蕩, 朝廷稍和, 然上下之情, 猶未孚, 陰邪之逕, 猶未杜。 伏願殿下, 剛以執德, 明以察物, 任賢不貳, 去邪勿疑, 以振頹綱, 以養國脈, 宗社幸甚。

《書》曰: "常厥德, 保厥位, 厥德靡常, 九有以亡。" 夫常德之要, 亦在於剛與明而已。 非明則無以爲剛, 非剛則其所明, 亦不能久矣。 又曰: "聖人久於其道, 而天下化成。" 人主誠能體元居正, 不貳而二, 不參而三, 茫乎天運, 窅爾神化, 則可以合乎天德, 而帝王之治, 庶可爲矣。 聖希天, 賢希聖。 , 希天而合乎天者也; 衛武公, 希聖而幾乎聖者也。 程子曰: "有天道, 便可語王道, 其要, 只在謹獨。" 蓋欲法之道, 必由武公之謹獨, 顯微無間, 終始一德而後, 可以至也。 惟聖明, 留念焉。 伊尹之戒太甲曰: "德惟一, 動罔不吉; 德二三, 動罔不凶。" 惟吉凶不僭, 在人; 惟天降災祥, 在德。 臣伏見殿下, 臨御歲久, 和氣不應, 災沴荐臻, 又至於今, 怪氣布天, 虹霓貫日, 而皆白其色。 夫白, 主兵, 乃寇賊竊發之證。 彗星犯台, 太白晝見, 霜雹下隕, 是又以下干上, 以陰侵陽之象。 變異非常, 疊見於一時, 前古所未有也。 近日又有日食之變, 雷震之異。 夫日者, 衆陽之宗, 人君之表, 而有食之, 是尤天變之大者, 而爗爗震電, 亦詩人之所惡也, 天之所以累威重譴, 而警告之者極矣。 得非事有階亂, 政有召奸, 而危亡之禍, 近在朝夕, 天於殿下, 諄諄存顧, 先幾預示, 以啓聖心者乎? 人君克謹天戒, 則雖有其象而無其應。 若或天戒赫然於上, 而人之應之者, 蒙然於下, 則禍患之來, 必矣。 蓋人君之德, 敬則一, 怠則二三。 吉凶災祥之應, 莫非由於君德之敬怠, 則其所以應天心答天譴者, 亦豈外於敬以一德乎? 古之明王, 或遇災變, 修德正事, 一於誠敬, 感激神祗, 壓消未萌, 遂至於光丕業享永年者多矣。 如中宗宣王 , 遇災修省, 克己自新, 遂能變戾氣爲泰和, 化已衰爲中興, 豈非畏天敬德, 一念不息之效耶? 臣伏見去夏求言之旨, 責己省愆, 發於至誠惻怛, 似可以感人心回天怒矣。 而越月踰時, 臺諫侍從之外, 未有一人, 忘身展布, 極言闕失, 以副明主修省之美意者, 而天之示變, 彌嚴而不已。 是殿下有望於下, 而人不應之, 致謹於上, 而天怒愈赫, 豈無由然耶? 如臣之淺闇, 不識時宜, 詎測天意? 但感殿下憂勤惕慮之誠, 而區區螻蟻忠義之心, 自不能已者, 而況臣以庸陋, 曾忝侍從之列, 未效涓埃之補。 今値虛懷詢訪之日, 豈可以疎外自處, 不思罄竭愚衷, 裨補萬一乎? 當今致災變之由, 固非一端, 而所以應天弭災之本, 則在於殿下之一念。 一念合天, 天有不應者乎? 若規規於革一政之失, 矯一事之弊, 而不知本之所在, 則斯亦末矣。 臣請以當今最關於治道, 最切於時務者, 爲殿下陳之, 伏惟聖慈垂察焉。 臣謹稽前史, 自古帝王, 憂勤願治者多矣, 而能終始全德, 以收治效者益寡。 其故, 在求治而不識爲治之要而已。 求治而得其要, 則不憂勞而治道成, 如或有志於爲治, 而不得其要, 雖勞心悴形, 宵旰憂勤, 終無益矣。 如黃帝, 垂衣裳而天下治者, 其亦得其要而已矣。 後世人主, 或程書傳餮, 非不勤且勞矣, 而終不能興善治而延國祚者, 以不得爲治之要, 而徒費精於細務故也。 然則所謂爲治之要者, 何在? 臣請言之, 惟聖明留神焉。 蓋帝王爲治之道, 至簡而不煩, 至易而不難。 天下雖大, 治之在心, 非至簡乎? 四海雖遠, 治之在道, 非至易乎? 夫心者, 主於身而萬化之所由出也; 道者, 本於心而天下古今之所共由也。 誠能明此心, 而淸萬化之源, 體此道, 而立萬民之極, 則可以成參贊之功, 而天地自位, 萬物自育, 氣無不和, 而瑞慶至矣。

《易》曰: "簡易而天下之理得。" 天下之理得, 而成位乎其中者, 正謂此也。 蓋爲治之要, 其綱有一, 其目有十。 綱者, 體也, 出治之本也; 目者, 用也, 制治之法也。 一綱擧, 則十目無不張矣。 臣請先言一綱, 而次及十目焉。 何謂一綱? 人主之心術是也。 庶政之繁, 萬民之衆, 而其理亂休戚之幾, 未有不本於人主之一心者, 故人主之心正, 則萬事理, 人心順, 而和氣至, 人主之心不正, 則萬事乖, 人心拂, 而戾氣應。 此理之必然也。 思昔聖人在位, 體天出治, 方寸之地, 正大光明, 純乎天理之公, 而無人欲之累, 故自微至著, 由內及外, 洞然無有私邪之蔽, 而紀綱立於上, 敎化明於下, 法立而無侵撓之患, 令出而無阿私之失。 進賢退邪, 允愜於輿情, 賞善罰惡, 一徇乎公議, 而不敢以一毫私意, 鑿於其間, 但見虛明之地, 廓然大公, 儼然至正, 泰然行其所無事, 而坐收百官衆職之成功。 所謂簡易之道者, 如斯而已。 如或反是, 而爲人欲私意之侵亂, 失其公平正大之體, 則其偏黨反側, 黯闇猜嫌, 固日擾擾乎方寸之間, 而奸僞讒慝, 叢脞眩瞀, 又將有不可勝言者矣。 於此, 見人君心術之不可不正, 而其所以正心之要, 又必由學而得矣。 蓋本心之善, 其體甚微, 而物欲之攻, 不勝其衆, 故大舜有危微之戒, 孔子有克己之訓。 人主處崇高之位, 窮理之力, 存省之功, 一有間斷, 則又何以正其心術, 而立萬事之綱乎? 先儒言: "惟學可以養此心, 惟敬可以存此心, 惟親近君子, 可以持此心。" 蓋義理物欲, 相爲消長。 篤志于學, 則日與聖賢爲徒, 而有自得之樂, 持身以敬, 則澟如神明在上, 而無非僻之侵, 親賢人君子之時, 則警戒日聞, 而諂邪不能入。 三者交致其力, 則聖心湛然, 如日之明, 如鑑之空, 義理爲之主, 而物欲不能奪矣。 夫經筵, 人主講學之地, 接賢士大夫之所也, 而敬者, 又所以貫動靜合內外, 而達乎天德者也。 臣伏見殿下, 始初勵精, 勤御經筵, 講劘治道, 孜孜不倦, 頃年以來, (波)〔漸〕 不如初, 講官入侍, 止於展讀數章, 無規諷道義之益, 而殿下又淵默, 未聞討論義理之精微, 商確古今之得失, 宰相陳戒, 不過政令細務, 未有陳善納誨, 如之惓惓者。 竊恐殿下窮理進德之功, 或有所未盡也。 臣常怪殿下, 有志之道, 而至於經幄進講, 則不以三代以上聖經賢傳爲本, 而每取末世所輯編帙浩繁, 未易究竟之書。 【時, 進講《大學衍義補》, 故及之。】 進讀如此等書, 詳於制度事物之繁, 而至於聖人明誠之旨, 精一之要, 蓋有未備焉。 人主但當置諸左右, 淸燕之間, 時加省閱, 以究古今制作規模之得失可也, 不必專精講究於經幄之中也。 聖質不爲不高, 聖志不爲不篤, 而悠悠泛泛, 徒費歲月於一書之中, 而有志勤道遠之歎者, 未必非當初輔導者之罪也。 三代之世, 豈有此書? 心學而已矣。 一理可以貫萬事, 一心可以統萬化, 帝王之學, 窮理而已矣。 理窮心正, 自足以修身齊家, 而及於國天下矣。 伏願殿下, 姑舍末流之涉獵, 專意本源之功力, 潛心於帝王之學, 加意於精一之功, 日接搢紳, 講討精微, 而又必以敬爲主, 無怠忽間斷之病, 則全體於是乎立, 而大用由是而行矣。 夫敬者, 聖學之所以成始成終者也。 《易》曰: "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 而至於無息, 則合乎天矣。 人主德合於天, 心一於天, 而天心之不豫, 災變之不消, 無是理也。 故程子論敬之功效而曰: "聰明睿智, 皆由是出。" 以此事天享帝, 惟聖明留意焉。

〔○〕 至於十目, 則無非心術之緖餘, 而爲治之功務也。 其一曰, 嚴家政。 《易》曰: "王格有家, 勿恤, 吉。" 又曰: "有孚, 威如, 終吉。" 傳者曰: "王者之道, 修身而齊家, 家正而天下治矣。" 自古聖王, 未有不以恭己正家爲本, 故有家之道旣至, 則不勞而天下治矣。 夫正家之道, 莫先於嚴內外之限, 定尊卑之分, 男正位乎外, 女正位乎內, 妻齊體於上, 妾承接於下, 而夫婦之別嚴, 嫡庶之分定者, 家之齊也。 采有德, 戒聲色, 彤管有史, 晏朝有箴, 外言不入, 內言不出, 苞苴不達, 請托不行者, 家之齊也。 蓋閨門之內, 慈過則不嚴, 恩勝則掩義, 故家之患, 常在於禮法不立, 而瀆慢生也。 苟非中有孚信, 外有威嚴, 而或溺於情愛之私, 不能自克, 則何以正其宮壼, 杜其請托, 檢其姻戚, 而防禍亂之萌哉? 夫信者, 所以感人心; 威儀者, 所以肅人心。 二者竝行而家道正矣。 然所謂威嚴者, 亦在先嚴其身, 一動一靜, 不敢苟, 一嚬一笑, 不敢輕, 則人心祗畏, 家道自肅, 而不失於嘻嘻, 上下秩秩, 內外斬斬, 豈有一人, 持恩私以亂典常, 納賄賂以紊朝政乎? 故曰: "威如之吉, 反身之謂。" 不能反身, 而能正其家者, 未之有也。 伏見殿下, 家法之正, 固無可議, 但前有掖庭怙寵窺覬之變, 【謂朴氏驕縱自肆。】 後有陰邪攀附亂政之禍。 【謂金安老。】 今宮禁不嚴, 女謁盛行, 至有除拜判斷之際, 或不盡出於至公, 以爲聖德之累。 疎遠傳聞, 未知信否, 而廷臣之論列此事, 非一再, 則豈無所見而然耶? 蓋宮庭隱密之地, 衽席宴安之際, 其流於情而害於理者, 雖若至微, 而符驗之著於外者甚遠。 人主之心, 當如靑天白日, 少有纖翳, 人皆見之, 不可掩也。 《禮記》曰: "男敎不修, 謫見于天, 日爲之食; 婦順不修, 謫見于天, 月爲之食。" 人君家法之不修, 亦足以致乾象之變, 甚可懼也。 伏願殿下, 勿以此爲隱微, 而不足以累吾德, 惕然警省, 奮然改悔, 洞日月之照, 發雷霆之斷, 使柔媚不干于聰明, 愛幸盡決于道義, 以嚴宮壼, 以杜邪徑, 宗社幸甚。 其二曰, 養國本。 輔養國本, 今日之急務, 而輔養之道, 非止於講史談古今而已, 而在涵養薰陶之得其道耳。 古之明王, 敎養太子, 必擇敦良方正, 有學術德行之士, 以職輔導, 至於宮人內臣, 竝選重厚小心之人, 以謹保護, 使其左右前後, 無非正人, 出入起居, 無非正道, 淺俗之言, 不入于耳, 侈靡之物, 不接於目。 所以養德性, 而保身體者, 莫先於此。 若夫學問之道, 自有本末, 先其本後其末, 乃進德之規也。 帝王心法, 聖賢謨訓, 布在經傳, 炳如日星, 所宜潛心熟講, 優游玩味, 不徒誦其文, 而必有以會其理, 不徒會其理, 而必有以踐其實, 察倫明物, 極其所止, 盡心知性, 以達于天者, 學之本也。 至於博涉史書, 通今古達世變者, 是特窮理之一端也, 非學之本務也。 蓋心通乎道, 然後觀史, 則古人是非得失, 一覽瞭然於目中矣, 心不通於道, 而遽欲遍閱史籍, 非徒汗漫無功, 恐眩於是非邪正之歸, 而不知所以取舍矣。 伏見春宮, 天稟之粹, 超絶古今, 德就之夙, 不煩敎誨, 一德無瑕, 三善俱隆。 曩承內禪之命, 至誠遜避, 號哭不食, 卒以回天。 朝野聞之, 莫不感泣。 非純孝盛德之至, 何以及此? 第慮調護之方, 未盡如三代之法, 賓僚之選, 豈盡得道德之士? 進講之書, 多有史記, 無沈潛聖經之昧, 而有涉獵諸史之勤, 恐非所以明理造道之要。 人主之學, 當以二帝、三王爲法。 三代以上, 何史可讀? 心學而已矣。 後世雖不可廢觀史, 然本末先後之序, 不可不察。 頃者士林之間, 有假借羽翼之說, 引進兇邪之魁, 【金安老、許沆、蔡無擇等其始用之也, 有羽翼之說焉。】 置諸師傅之位, 其所以輔導之者, 乖刺必多。 幸賴天祚宗社, 陰曀消盡, 天日重明。 宜重宮僚之職, 廣選名德之士, 以備勸講, 必久其任, 責其成效, 至於進講之書, 亦必以明哲治心之學爲本, 使得專精窮理之功, 以盡進德之方, 間問往史, 以究古今之變, 治亂之要, 則本末兼盡而聖功全矣。 今以講官員少, 兼以他官, 營營於職事, 紛紛其思慮, 而未得專心積誠於侍讀, 是又非輔養之宜。 竊念緝熙之學, 日就月將, 固無間斷之憂, 然人心難保, 氣習易移。 一念存亡, 聖狂所分, 輔翼之道, 不可不盡。 宗社遠計, 莫急於此。 惟聖明, 其深軫之。

其三曰, 正朝廷。 臣聞王者, 正心以正朝廷,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正萬民以正四方。 夫朝廷者, 四方之本源, 王化之所由始也。 本源淸明, 雖欲末流之溷濁, 不可得矣, 若不務先正朝廷, 而區區於簿書彈劾之末, 而欲以振頹風除民瘼, 譬如混其源, 而望流之淸, 其可得乎? 蓋朝廷之所由正者, 其要有二。 必先有紀綱以整之, 又有風節以振之然後, 可以張理上下, 整齊人道, 而不至於頹惰委靡矣。 夫風節者, 公道之所由行, 而直道之所由伸也。 公道不行, 直道不伸, 紀綱何由而立乎? 紀綱不立, 朝廷何由而正乎? 然紀綱風節之所由立, 則又繫於人主之心術。 三公論道, 六卿分職, 而侍從臺諫, 論思糾察於其間, 人主以大公至正之心, 摠攝於上, 辨其是非而裁節焉, 察其賢邪而進退之。 毋主先入, 而有偏聽獨任之失, 毋昵嬖幸, 而失兼臨博愛之公, 惟道所在, 斷之不疑, 奸不能惑, 侫不能移。 黜陟刑賞, 一循公議之所在, 而無偏私之蔽, 然後公道行而直道伸, 紀綱以立而朝廷以正, 內外遠近, 莫不一於正者矣。 人主之心, 或不能公平正大, 有一毫偏黨之私, 奸邪諂侫, 婭姻嬖倖, 莫不窺覘攀緣, 希覬恩寵, 無所不至, 上以眩惑聰明, 下以竊弄威福, 雖有忠讜之論, 無所入, 而士節沮喪矣。 士節沮喪, 而公道塞直道廢, 此紀綱之所由毁, 而朝廷之所由亂。 頃者奸凶竊位, 恃寵專恣, 壅下蔽上, 與奪決於恩讎, 威福生於呼吸, 士林喪氣, 紀綱蕩然, 宗社幾至於岌岌。 殿下孤立於上, 無一人忘身循國, 直言正論, 以斥其奸者, 其無風節甚矣。 士林無風節, 朝廷無紀綱, 國家不至於淪喪者, 僅一髮爾。 豈不寒心? 伏願殿下, 懲前慮後, 赫然以大公至正爲心, 痛滌偏私之累, 明示好惡之公, 以厚風節, 以振綱維, 庶可以淸本源, 而王化行矣。 其四曰, 愼用捨。 伊尹曰: "任官惟賢才, 左右惟其人。 臣爲上爲德, 爲下爲民, 其難其愼, 惟和惟一。" 孟子曰: "左右皆曰賢, 未可也; 諸大夫皆曰賢, 未可也; 國人皆曰賢, 然後察之; 見賢焉, 然後用之。 左右皆曰不可, 勿聽; 諸大夫皆曰不可, 勿聽; 國人皆曰不可, 然後察之; 見不可焉, 然後去之。" 蓋用舍得失, 安危所繫。 古之明王, 愼之而不敢輕, 難之而不敢易, 必參之於衆, 察之於獨, 洞見其賢邪之實, 然後從而進退之。 於賢者, 知之深信之篤, 而無所疑貳, 於不賢者, 觸之明去之決, 而不復留滯。 此蓋三代聖王任賢去邪之要也。 後世人主, 不明此意, 輕於擧措, 故任賢而不能終, 去邪而不能決, 或以一人之譽而進之, 或以一人之毁而斥之, 甚者, 或前以爲賢而任之者, 後以爲邪而戮之, 前以爲奸而屛之者, 後以爲忠而寵之。 用舍一錯, 治亂遂分, 由不能辨之早, 而察之於始也。 臣竊見殿下之心, 好賢惡邪, 初無偏繫, 聞人之賢, 雖在疏遠, 揀拔無所遺, 知人之邪, 雖貴寵, 誅竄不少貸, 非聖鑑之至虛至明, 何以至此? 第恨輔導之臣, 不由光明之道, 多徇暗昧之徑, 以玷淸明之德, 數十年來, 進退人物, 誅擢縉紳, 有不合公論者多矣。 夫人材之進退, 消長所關者甚大, 固宜斷之以公平正大之論。 豈可倚托幽隱, 而變亂黑白啓者, 非邪則侫, 先賢已論之, 明主之所宜深惡也。 昔 文帝長安, 周勃請間, 宋昌却之曰: "所言公, 公言之。 所言私, 王者無私。" 其所以警者嚴矣。 文帝之治, 正大光明無陰邪之蔽者, 實有賴於宋昌之一言。 伏願殿下, 淸心一德, 抑邪與正, 杜履霜之漸, 戒入腹之害, 凡進退用舍之際, 每加難愼之意, 必質之左右, 議之朝廷, 而又必察之以虛明之鑑, 不置一毫偏私於其間。 如或有由蹊逕而眩惑者, 亦宜深絶而痛斥之, 如大明之無私照, 則雖有陰邪之窺伺, 無隙之可投矣。 知人則哲, 聖人猶難之, 以今觀之, 邪正甚明, 亦無難辨者。 昔李德裕言於 武宗曰: "君子如松栢, 特立不倚; 邪人如藤蘿, 非附他物, 不能自起。" 仁宗, 問王素以可命相事者, 對曰: "惟宦官宮妾, 不知姓名者, 乃可。" 於是, 相富弼, 士大夫相慶。 殿下誠能持鑑衡之空, 試以此而察群臣邪正, 以決進退, 必無失矣。 今之被斥公論, 含怨伺隙者, 必有復踵舊日之蹊徑, 以售計術者, 不可不深燭而預防之。 變故之餘, 聖智益明, 聖心益定, 固無足疑, 而臣之私憂過計, 未敢不以此, 爲異日之慮。 惟聖明, 留念省察焉。

其五曰, 順天道。 臣聞天之心, 好生而無私, 聖人之心, 亦好生而無私。 之欽若昊天, 敬授人時, 以至庶績咸熙者, 法天好生之政也。 之簡以臨下, 寬以御衆, 罪疑惟輕, 功疑惟重, 刑期無刑, 恤之欽之者, 亦法好生之政也。 人情莫不欲壽, 三王生之而不傷; 人情莫不欲富, 三王厚之以不困; 人情莫不欲安, 三王扶之以不危; 人情莫不欲逸, 三王節其力而不盡, 此亦無非順天施仁之政也。 三代以下, 能盡是道者, 文帝仁宗, 是已。 當是時, 星文數變, 日月告凶, 災異甚多, 而二君, 能修省盡道, 克承天心, 轉災爲祥, 變禍爲福。 求其所以修政格天之道, 亦在好生無私而已。 其憂也, 不以己之憂爲憂, 而以天下之憂爲憂; 其樂也, 不以己之樂爲樂, 而以天下之樂爲樂。 見時物之敷榮, 而賑窮悴之民; 感緹榮之上書, 而除肉刑之慘。 讞大辟之疑, 而活數千之命; 忍一夕之飢, 而悲無窮之殺。 其愛人澤物, 發於至誠懇惻, 宜人心得而和氣應也。 竊觀殿下, 敬天勤民之念至矣, 惻怛寬大之旨屢下矣, 吏惰奉行, 民不受惠, 割剝無改於前日, 窮蹙有甚於曩時。 臣恐殿下法天好生之心, 或有所不誠而然也。 稅斂煩重, 而無一分之寬, 流亡歲增, 而無存撫之策, 至於刑罰之不中, 人命所關, 箠楚之下, 豈無橫罹之慘, 囹圄之中, 必多冤枉之魂。 頃者權奸擅政, 專務刻深, 屢起大獄, 極其慘酷, 探情於未(刑)〔形〕 , 施戮於難明, 殿下仁愛之心, 豈不惻然(勤)〔動〕 念而追悔乎? 至於撤寺汰僧, 雖是辟邪美意, 亦當預諭諸道, 明示撤汰之意, 緩其期限, 使之漸銷, 不宜卒遽焚蕩, 以致失所也。 去歲遣官督撤, 不以暄和之時, 適値窮冬嚴冱之極, 緇徒駭散, 竝喪資糧, 赤立失依, 凍餒俱迫, 老羸廢疾者, 轉死溝壑, 壯者, 聚爲寇盜, 齊民受害多矣。 昔曺彬, 止子弟修葺堂室曰: "時方大冬, 墻壁瓦石之間, 百蟲所(縶)〔蟄〕 , 不可傷其生。" 夫仁人, 於微物, 亦不忍傷。 況人主之於人類乎? 是乖仁聖好生之意, 故及之。 伏願殿下, 體生物之心, 思同胞之理, 仁以恤民, 欽以愼刑, 皆本純誠, 不事文飾, 以順天道, 庶可以消變異而來福祥矣。 其六曰, 正人心。 臣聞人心者, 天下安危之本也。 人心正, 則是爲是, 非爲非, 而公論行於上, 風俗美於下; 人心不正, 則以是爲非, 以非爲是, 而公論不行於上, 風俗頹敗於下。 國家治亂興亡之源, 未有不始於此者也。 三代之世, 人心正矣, 而迨其衰季, 亂之以之說, 毁之以之論, 人心始失其正, 而尙功利棄仁義, 天下遂大亂矣。 西漢之初, 人心稍得其正, 而失其所以匡直輔翼之方, 士皆喜功名, 而不尙節義, 終成諛侫之習, 至於上章頌者, 四萬餘人, 而祚中微矣, 東京之興, (禜)〔崇〕 節義礪廉恥, 人心始復正矣。 及其衰也, 朝廷濁亂, 而淸議澟澟於草野之間, 奸雄環視九鼎, 而終不敢染指者, 伊誰之力歟? 自是以下, 歷代興廢, 莫不以是, 考之前史, 灼然可徵。 ? 莖洛希吃派孇 由於敎化之得失。 敎化明, 則人皆向善慕義, 而人心正矣, 敎化不明, 則人皆趨利去義, 而人心不正矣。 恭惟我朝, 立三綱張四維, 敎養有道, 節義可觀, 及殿下承統, 撥亂反正, 士習一新, 人心一正, 以直躬正論爲榮, 以同流合汚爲恥, 以學古飾行爲高, 以趨時(于)〔干〕 祿爲鄙。 是時朝廷淸明, 風俗丕變, 天理明, 而人欲不至肆矣。 不幸朝政變更, 人心始亂, 不知是之爲是, 非之爲非, 士習日趨於卑汚, 風俗遂至於頹廢, 正氣消於上, 而陰邪長於下矣。 奸臣畜無君之心, 專擅自恣, 而擧朝風靡, 甚者, 或趨附恐後, 而不知其非, 人心之不正甚矣, 士節之頹靡極矣。 若復遲之數年, 其不至於上書頌德乎? 人心失正, 而士節不立, 士節旣失, 而風俗隨毁, 有不可救者。 (鄕)〔嚮〕 無孝睦之風, 人多淫僻之刑, 至有賊恩悖倫, 逆天滅理之事, 或發於輦轂之下, 或起於士人之家, 有不忍言者。 其所以傷和召災者, 亦未必不由於是也。 嗚呼! 人心風俗, 國家之元氣。 元氣消耗, 命脈其能綿長乎? 言之可爲痛哭。 不知宵旰憂勤, 而亦嘗有及於此耶? 今者朝廷更和, 聖治維新, 宜思所以正人心厚風俗, 以護元氣, 以壽國脈, 立敎化以敦天敍之典, 振綱維以明民彝之重, 則人心正而風俗庶復變矣。 宗社生靈長久之道, 實在於是, 而世多忽焉。 惟聖明, 深思遠慮而留意焉。


  • 【태백산사고본】 47책 9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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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론-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윤리(倫理)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재정-공물(貢物) / 재정-전세(田稅) / 사법(司法)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