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왕이 병으로 졸한 일을 중국에 알리는 것에 대해 의논하다
윤은보 등에게 전교하기를,
"이것은 나라의 중대한 일인데, 지금까지 미루어와 세월이 매우 오래 되었으니, 만세(萬世)의 걱정거리가 되리라 여겨진다. 요즈음 조정의 간신들이 잇달아 일을 꾸며 분란을 일으켜 화평하지 못하였으니, 어느 여가에 그 일을 의논할 수 있었겠는가? 폐왕(廢王)이 병이 위중하였던 일은 이미 정덕(正德)505) 때에 중국 조정에 아뢰었으므로, 전후의 사실을 자세히 알고 있어서 혹 물어보는 【폐립(廢立)에 관한 일.】 사람도 있었다. 가정(嘉靖)506) 이후로는 중국 조정에도 일이 많았는데, 누가 우리 나라의 일까지 물을 수 있었겠는가. 만세(萬世) 사이에 다행이 밝은 임금과 훌륭한 재상이 나와서 자세히 살펴보고 하문한다면 마침내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보건대, 중국 조정에서도 그 기강을 바로잡고 있다. 그래서 안남(安南)의 반적(叛賊) 【권신(權臣) 막등용(莫登庸)이 임금을 시해(弑害)하고 자립(自立)하였다.】 을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討伐)하게 하였으니, 이는 천자의 도리이다. 대체로 하국(下國)이 먼저 그 도리를 닦아야만 상국(上國)에서 대하는 것이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조정의 간신이 이미 제거되었고 인심이 화평해졌으니, 이러한 때에 의논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진하사가 가는 길에 폐왕이 병으로 졸(卒)한 일을 아뢰고, 내년에 마침 천사가 올 【태자(太子)를 책봉(冊封)하였으므로 천하(天下)에 반조(頒詔)함.】 일이 있으니 겸하여 시호(諡號)와 제사를 내려 주도록 하면 또한 편하지 않겠는가? 뒷날에 만약 중국 조정에서 의논이 있은 다음에 알리게 되면 그 폐단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더구나 사람의 나이가 70이나 80이 넘는 자는 대체로 적으니, 이것으로 말하더라도 병으로 폐위된 지 오래 되었음을 알 것이다. 그런데 부고(訃告)를 하지 않은 것은 옳지 못하다. 또 전조(前朝)에서는 폐왕(廢王)이라 하더라도 모두 추봉(追封)하였고, 칭호가 강등(降等)되어 봉군(封君)이 된 자가 있지 않았다. 폐왕이 비록 종사(宗社)에는 죄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강봉(降封)되는 것은 사실 미안하게 여겨진다. 지금 만약 시호가 내려진다면 곧 추봉해서 별도로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의리에 합당할 것이다. 이는 매우 중대한 일인데, 경들이 만약 의논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면 육조(六曹)의 당상(堂上)들도 모여서 의논해야 할 것이다. 경들은 필시 중국 조정에서 묻지 않으니 우선 그대로 두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수십 년 동안은 비록 무사하였다고는 하나 끝까지 만세토록 근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는데, 윤은보 등이 회계하기를,
"이 일은 중대한 것이므로 신들이 다시 모여서 깊이 헤아린 다음에 육조(六曹)와 의논하여 아뢰겠습니다. 그리고 병으로 졸(卒)한 일에 대해서는 비록 주문(奏聞)한다고 하더라도 진하사(進賀使)가 갈 적에 겸하여 거론(擧論)하는 것은 마땅하지 못할 듯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 일은 과연 중대한 일이다. 아뢴 것이 매우 마땅하다."
하고, 이어 전교하였다.
"이번 일은 노산(魯山)507) 때의 일과는 같지가 않다. 햇수도 오래 되지 않았고 주문(奏聞)하기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30년 동안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반드시 무사할 것이라고 하여 걱정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날 중국 조정에서 만약 혹시라도 의논이 있게 되면, 후세에서 반드시, 전왕(前王)은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여 명확하게 조처하지 않고서 후회(後悔)할 일을 물려 주었는가라고 할 것이니, 자손(子孫)의 근심거리를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침묵만 지키면서 두고두고 세월만 보낼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만약 한 번 시원하게 조처해 놓으면 뒷날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경들은 물러 가서 서로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44책 8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33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외교-동남아(東南亞)
- [註 505]
○傳于尹殷輔等曰: "此國之大事, 而遷延至今, 歲月甚久, 於予心以爲, 此乃萬世之憂也。 近者朝廷, 奸臣相繼用事, 紛擾不和, 奚暇議此事乎? 廢王病重之事, 已奏於中朝正德時, 明知首末, 故或有問之, 【廢立之事。】 嘉靖年來, 中朝亦多事, 孰能問及我國之事? 萬世之間, 幸明主良相, 出而審察卞問, 則終難處之。 今觀中朝, 擧其紀綱, 故安南叛賊, 【權臣莫登庸, 弑君自立。】 命將討之。 此則天子之道也。 大抵下國, 先修其道, 然後上國之所以待之者, 終始如一。 今者朝廷, 奸臣已去, 人心和平, 當此之時, 可以議定。 今因進賀使之行, 以廢王病卒之事奏聞, 則明年適有天使 【以封太子, 故頒詔天下。】 之來, 而兼賜諡祭, 不亦便乎? 後來若因中朝有議, 然後奏聞, 則其弊必多。 況人之年齒, 過於七八十者蓋寡。 以此言之, 亦知其病廢年久, 而無訃告之事, 不可也。 且前朝廢王, 皆追封, 而不有降號封君者。 廢王雖得罪宗社, 予意以爲降封, 實未安也。 今若有賜諡, 則因以追封, 而別立廟祭之, 於義亦當。 此甚重事, 卿等若曰可議, 則六曹堂上, 亦可會議。 卿等必意中朝時不擧問, 欲姑置之, 然近來數十年間, 雖曰無事, 不可謂終無萬世之憂。" 殷輔等回啓曰: "此事重大。 臣等更會熟計, 然後與六曹會議以啓。 且病卒之事, 雖可奏聞, 不宜兼擧於進賀使之行也。" 答曰: "此事果爲重大。 所啓至當。" 仍傳曰: "此事非如魯山時事也。 年歲不遠, 奏聞不難。 于今三十年間, 乃得無事, 然不可以爲終必無事, 而不憂也。 他日中朝, 若或有議, 則後世必謂前王, 何不熟計而審處之, 以遺後悔也? 子孫之憂, 不可不慮, 不可容默, 悠悠玩愒歲月。 若一快處, 則後有何難? 卿等退而詳議以啓。"
- 【태백산사고본】 44책 8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33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외교-동남아(東南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