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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78권, 중종 29년 12월 16일 무신 1번째기사 1534년 명 가정(嘉靖) 13년

김근사 등이 재위 30년은 종사의 큰 경사이니 오는 봄에 진연할 것을 청하다

좌의정 김근사, 우의정 김안로, 좌찬성 윤은보, 우찬성 홍언필, 좌참찬 손주, 우참찬 유보가 빈청에 모여 서계(書啓)하기를,

"옛날에 주공(周公)성왕(成王)에게 고할 적에 선왕(先王)들이 장구한 국운을 누린 것은 바로 무일(無逸)330) 의 공효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성상께서 힘써 잘 다스려지기를 도모하신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이 뒤로 끝없는 국운을 누리게 되면 모두가 무일의 실효인 것이니, 지금이야말로 성상께서는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지 마시고 처음처럼 끝까지 삼가시어 더욱 힘쓸 때입니다. 신민(臣民)에 있어서는 경사스런 기쁜 마음을 부칠 데가 없어 만세를 부르고 화축(華祝)331) 을 올리며 수복(壽福)을 비는 것은 예부터 하여 오던 것입니다.

송(宋)나라의 일을 상고하여 보더라도 경절(慶節)을 만나면 신하들이 으레 헌수(獻壽)를 청하였고, 우리 나라의 법전에 상고하여 보더라도 진연(進宴)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선왕의 법제에 경사를 하례하고 잔치를 베푸는 예는, 결코 과장하여 즐기면서 부화(浮華)를 일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상하의 통정(通情)과 이륜(彝倫)의 절문(節文)에 맞춰 예를 만든 것입니다. 나라에 30년간 사고가 많았으므로 오래도록 국가의 의식을 폐하였는데 성상께서 상복(喪服)을 마쳤을 때와 환후(患候)가 나으신 뒤에는 속히 국가의 의식을 신명하여 신민들의 기뻐하는 지극한 정성을 펴게 하여야 했는데도 그대로 거행하지 않았으므로 서운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더구나 동궁(東宮)께서는 순수한 효성이 있는 데이겠습니까. 새해의 연길(涓吉)은 국전(國典)에 의하여 하고 정부와 육조가 진연하고 동궁께서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헌수하며 경사를 하례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전일 의논하라 한 것은 세종 29년에 생원을 더 뽑은 것이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인데 그 일을 알 수가 없어서였다. 즉위한 지 30년이라는 것 때문에 더 뽑은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사람 뽑는 일을 논하지 않을 수가 없겠기에 하문한 것이요, 경들도 옛일을 상고하라고 청하였다. 내가 하문한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어찌 즉위한지 오래되었다는 것으로 하례를 받고 진연하게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근일 천변이 비상하여 상하가 더욱 수성(修省)할 때에 있어서이겠는가. 나는 부덕한 몸으로 즉위한 지 30년에 이르렀으나 치효(治效)는 나타나지 않은 채 민생은 날로 피폐하여 가고 인심은 점점 나빠져서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니, 마땅히 만족에 앞서 더욱 힘써야 하겠다."

하였다. 김근사 등이 아뢰기를,

"상의 분부가 지당합니다. 그러나 이는 종사(宗社)의 큰 경사입니다. 상께서는 진실로 이같이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만 신자들의 지극한 정에는 의당 헌수해야 합니다. 특별히 진연하는 것 말고 혹 단오(端午)나 추석, 강무(講武)할 때 진연하는 것은 모두 상하의 정을 통하여 그 도리를 다하자는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례(常例)대로 진연한다면 해도 된다. 오는 가을에 날을 가려서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김근사 등이 아뢰기를,

"상의 분부가 지당합니다. 신이 아뢴 것은 사람들이 다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의정부와 육조가 각각 진연하자는 것이 아니고 세자가 신하들을 거느리고 헌수한다는 것이니, 이는 국전 이외의 폐가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는 봄에 날을 가려 거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78권 56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560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註 330]
    무일(無逸) : 《서경(書經)》의 편명인데, 성왕(成王)이 정사를 맡게 된 처음 방일한 데로 흐를까 우려하여 농사의 어려움을 깨우치기 위해 주공(周公)이 지은 것이라 함.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일(無逸).
  • [註 331]
    화축(華祝) : 수(壽)·부(富)·다남자(多男子)를 축원하는 말. 옛날 요(堯)임금이 화(華) 땅에 가자 봉인(封人)이 이런 내용으로 송축하였다고 함. 《장자(莊子)》 천지(天地).

○戊申/左議政金謹思、右議政金安老、左贊成尹殷輔、右贊成洪彦弼、左參贊孫澍、右參贊柳溥, 會賓廳書啓曰: "昔, 周公之告成王, 歷擧先王之享國長久, 乃以爲無逸之效。 今聖上憂勤圖治, 垂玆三十年。 自此以往, 享國無窮, 莫非無逸之實。 在聖上, 此正不自滿暇, 〔愼〕 終如始, 益加矜惕之時。 其在臣民, 欣戴、慶抃之情, 無所於寓, 嵩呼華祝, 獻嘏受禧, 自前古所不能已也。 考諸宋朝, 凡遇慶節, 群臣例請上壽。 考之國典, 亦有進宴之儀。 蓋先王之制, 宴享慶賀之禮, 非所以誇張、佚豫, 以事浮華, 正爲通上下之情, 節彝倫之文, 以爲禮也。 國家三十年間, 多因事故, 久廢國儀。 聖上衰制之闋與疾瘳之後, 固宜亟伸國儀, 庶展臣民歡抃之至情, 而因仍不擧, 衆心無不缺然。 況於東宮純孝之誠乎? 歲後涓吉, 依國典, 許政府、六曹進宴, 東宮率群臣, 上壽稱慶, 允協輿情。" 答曰: "前日議之者, 世宗二十九年, 加取生員, 必有所以, 未知其事。 疑若卽位三十年加取之, 則取人之美, 不可不議, 故問之, 卿等亦請考古事。 予問之者, 非爲己之事也。 何以卽位之久, 受賀進宴乎? 況近有天變非常, 上下更加修省之時乎? 予以否德, 卽祚將至三十年, 治效未見, 民生日瘁, 人心漸惡, 風俗不美。 當不自滿暇, 益加勉勵。" 金謹思等啓曰: "上敎至當。 此宗社之大慶。 自上固宜如此, 而臣子之至情, 所當上壽。 大抵非別爲進宴, 或端午、或秋夕、或於講武, 進宴者, 皆通上下之情, 而交盡其道也。" 答曰: "常例進宴, 則可爲也。 來秋擇日爲之何如?" 金謹思等啓曰: "上敎至當。 臣之所啓者, 輿情所同。 非謂議政府、六曹各進宴也, 世子當率群臣上壽。 且非國典外有弊之事, 來春擇日何如?"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39책 78권 56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560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