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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74권, 중종 28년 5월 17일 기미 5번째기사 1533년 명 가정(嘉靖) 12년

익명서 사건을 의논하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 좌의정 장순손(張順孫), 우의정 한효원(韓效元), 의금부지사 김안로(金安老)손주(孫澍), 동지사 심언경(沈彦慶) 등이 빈청으로 왔으므로 목패를 내렸다. 이어 광필 등에게 전교하기를,

"오늘 시강원 관원이 전부 다 와서 ‘조강을 마친 뒤 주강 때 보니 동궁의 빈청 남쪽 모퉁이 바자(把子) 위에 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하나 있었다. 종이로 싸 바른 다음 머리카락을 그려 붙이고 귀·눈·코·입을 새겨 목패에 매달았다. 목패의 양면(兩面)에 모두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한쪽면에 쓰인 글은 흉역스럽고 부도하여 위에 저촉되는 말이었다. 따라서 이는 익명서의 경우처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감히 아뢴다.’고 하였다. 나도 그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정이 안다면 반드시 추문하려 할 것이기에 명초(命招)하였다. 이 목패를 보니 ‘병조의 서리 한충보가 한 일.’이라 쓰여 있었다. 전일 승지들이 서문(西門)으로 들어올 적에 그 문에도 화살이 꽂혀 있었고 역시 ‘병조 서리 한충보.’라고 쓰여 있었다. 전후의 것에 모두 이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으니,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이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 이 사람에게 죄를 받게 하기 위해 한 짓일 것이다. 이제 이 사람을 잡아다가 ‘너를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이냐?’고 상세히 묻는다면, 틀림없이 단서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너무도 경악스럽다. 내 생각으로는 추문해야 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버려둬야겠는가, 아니면 추문해야겠는가? 그리고 쓰인 글씨도 잘 쓴 글씨가 아니었다. 이 역시 필체를 바꾸어 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글자의 모양을 이룬 것으로 보면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자는 아닌 것 같다."

하니, 광필 등이 아뢰기를,

"신들이 전일 아뢴 익명서에 관한 일은 처리 방법의 율문(律文)에 기재되어 있는 것이므로 추문하지 말자고 계청했던 것입니다. 이번의 일은 익명서의 경우가 아니니, 다방면으로 추문해야 합니다. 전에는 어휘(御諱)를 쓴 사람 【심사순(沈思順)임.】 도 계청하여 추문했는데 하물며 이 일이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고 혈기(血氣)가 있는 사람이면 누군들 통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동궁 근처에 입직한 군사들에게 수상쩍은 사람을 보았는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광필이 목재에 쓰인 글을 보고 탄식하기를 "혹시 정사(政事)할 적에 원망을 품은 사람이 이런 극단적인 짓을 한 것이 아닐까?"했고, 김근사(金謹思)는 "이 목패는 통판(桶板)인 것 같다."하였다.】 전교하기를,

"동궁의 빈청 근처에 입직했던 사람을 전부 다 서계(書啓)할 수는 없을 것이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입직한 군사들만 서계하고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 동서문(東西門)에 왕래하는 범인(凡人)들을 금하지 말 것도 아울러 병조에 이르라. 그리고 한충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병조의 신구(新舊) 서리(胥吏) 가운데 있는가를 속히 하문하여 아뢰라."

하니, 김안로 등이 아뢰기를,

"한충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현재 병조의 군색 서리(軍色書吏)로 있다고 합니다. 미욱한 상인(常人)이 실정을 모르고 도망할까 우려되어 이미 금부 낭관(禁府郞官)으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려가 잡아오게 했습니다. 【한충보(韓忠輔)의 보(輔)자가 서문(西門)에 쏜 화살에는 부(府)자로 쓰여 있었고, 동궁(東宮)의 목패에는 부(副)자로 쓰여 있었다.】 계품(啓稟)하자면 늦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지금 이어서 아뢰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근사(金謹思) 【의금부 판사(義禁府判事). 특별히 침을 맞느라고 휴가중이었음.】 도 소명(召命)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도총부(都摠府)에 와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큰일이니 참여하게 하소서."

하였다. 광필 등에게 전교하기를,

"동궁의 빈청 근처에 있던 사람은 당연히 추문해야 하기 때문에 범연히 서계하게 했으니, 물어서 사색(辭色)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충보는 병조의 집리(執吏)175) 이다. 혐의를 품은 사람이 전일 서문에 화살을 쏘았어도 일이 이루어지지 않자 이제 다시 이 일을 하여 뜻을 이루려 한 것이 틀림없다. 우선 한충보에게 ‘평상시 너를 미워한 사람이 누구인가, 군색(軍色)이 된 뒤에 너를 미워한 자는 누구인가, 빈청 근처에 입직했던 군사들 가운데도 너를 미워한 자가 있는가, 동궁 별감(東宮別監)이나 각 색장(色掌) 가운데 사적으로 혐의진 사람이 있는가?’ 하는 내용으로 물어야 한다. 그리고 빈청 근처에 입직한 군사들에게도 오전(午前)에 행동이 수상쩍은 사람을 보았느냐고 물어보아야 된다. 이는 큰 옥사(獄事)이므로 삼공과 의금부 당상이 빈청에서 추문해야 한다. 김근사는 요즈음 침(針)을 맞기 때문에 부르지 말라고 했었지만, 이미 들어왔다면 또한 추국에 참여해야 한다."

하니, 광필 등이 아뢰기를,

"한충보는 이미 잡아왔습니다. 이런 큰 옥사의 추국에는 양사(兩司)의 장관(長官)이 으레 참여해야 합니다. 명초(命招)하소서. 또 문사관(問事官)176) 도 차출하소서."

하였다. 전교하기를,

"아뢴 바가 과연 지당하다. 양사의 장관을 명초하고 문사관177) 도 차출하도록 하라."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송인수(宋麟壽)와 군기시 정(軍器寺正) 이억손(李億孫)이 문사관에 차출되었다.】 하고, 또 전교하기를,

"궐정(闕庭)에서 추국(推鞫)하는 일은, 전에는 초서(草書)로 입계(入啓)했었다. 지금도 정서(正書)로 입계하려면 반드시 더딜 것이니 초서로 입계하게 하라."

하니, 광필 등이 한충보공초(供招)178) 한 것 【공초에 든 사람은 모두 한충보를 미워한 사람들임. 곧 한유손(韓有孫)·박장손(朴長孫)·이효진(李孝珍)·한세걸(韓世傑)이었음.】 으로 아뢰기를,

"말한 것이 긴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혐의를 가지고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말한 대로 서계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이것으로 보면 단서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혐의로 어떻게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엄청난 짓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의 공초에 거론된 사람을 잡아다가 글씨를 써보게 하라. 처음에 글자의 체를 바꾸어 쓰더라도 목패를 가져다가 대조하면 반드시 서로 비슷한 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밤이 깊었으니 금부(禁府)에 나누어 가두어 두라. 이효진(李孝珍)은 갑사(甲士)다. 입번(入番)했으면 지금 잡아다 물어봐도 되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내일 잡아다 물으라. 동궁의 빈청 근처에 입직했던 군사들을 지금 즉시 잡아다가 ‘너희들은 오늘 아침 서연(書筵)이 끝난 뒤인 오전에 행동이 수상쩍은 사람을 보았는가?’고 속히 추문(推問)하도록 하라. 옥사(獄事)가 이러한데도 아직까지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내일 경회루(慶會樓) 아래서의 관무재(觀武才)는 정지해야 되겠다. 지금 관무재를 정지한다면 사람들이 놀랄 것 같다. 하지만 큰 옥사가 바야흐로 일어나고 있는데 나아가 관무재 시험을 보인다는 것도 이상스러울 것 같다. 어떻게 조처해야 되겠는가?"

하니, 광필 등이 아뢰기를,

"낭관(郞官)을 보내어 이들을 잡아다가 가두고, 수상쩍은 물건이 있는지도 아울러 수탐(搜探)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일의 일은 신들도 이미 입계하려 했었습니다. 옥사가 이러하니 이 또한 큰 변입니다. 어떻게 관무재 시험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정지하소서."

하였다. 전교하기를,

"잡으러 간 관원(官員)에게 아울러 수탐도 하게 하라. 관무재는 정지하라."

하고, 또 광필 등에게 전교하기를,

"한유손(韓有孫) 등의 처자(妻子)와 세 겨린(切隣)을 모두 잡아다가 ‘어제 유손(有孫) 등이 출입한 곳이 있는가? 바른대로 말하라. 만약 궐내(闕內)를 향하여 갔다면 반드시 부신(符信)을 찾았을 것이다.’라고 추문하라. 이렇게 추문하면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효진은 입번했으면 지금 잡아다가 추문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일 잡아다가 추문하도록 하라. 동궁의 빈청 근처에 입직한 군사들도 속히 추문하여 아뢰라."

하니, 광필 등이 동궁의 빈청 근처에 입직했더 군사 13인 등의 초사(招辭)를 입계하였다. 근사(謹思) 등이 이어 아뢰기를,

"한충보(韓忠輔)는 의심스러워 다시 물어볼 것이 있기에 의금부에 가두었습니다. 빈청 근처에 입직한 군사 13인도 가두었습니다."

하니, 광필 등에게 전교하기를,

"이들의 일은 알았다. 지금은 밤이 깊었으니 내일 추문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 김근사 등에게 전교하였다.

"한충보는 가두어 두라. 빈청 근처에서 입직한 군사들은 가두어 두지 않더라도 다시 추문할 일이 있으면 내일 잡아다 추문할 수가 있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74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19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註 175]
    집리(執吏) : 주임 서리를 말함.
  • [註 176]
    문사관(問事官) : 죄인의 신문서(訊問書)를 작성하는 임시 벼슬. 지금의 법원이나 검찰청의 서기(書記)와 비슷한 일을 함.
  • [註 177]
    문사관 : 죄인의 신문서(訊問書)를 작성하는 임시 벼슬 지금의 법원이나 검찰청의 서기(書記)와 비슷한 일을 함.
  • [註 178]
    공초(供招) :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한 내용. 초사(招辭).

○領議政鄭光弼、左議政張順孫、孫議政韓效元、義禁府知事金安老孫澍、同知事沈彦慶等, 來賓廳, 下木牌, 仍傳于光弼等曰: "今日, 侍講院官員專數來啓, 以爲: ‘朝講後, 晝講時見之, 則東宮賓廳南隅把子上, 有一物假作人頭, 以紙塗之, 晝爲毛髮, 刻爲耳目口鼻, 而懸之以木牌。 木牌兩面, 皆有所書, 而一面所書, 皆兇逆不道觸上之言。 非如匿名書, 不可棄之也, 故敢啓。’ 云。 予聞其事, 至爲驚愕。 朝廷知之, 則必欲推之, 故命招矣。 見此木牌, 則書曰: "兵曹書吏韓忠輔所爲之事。’ 云。 前日承旨等, 入自西門, 門有射矢, 亦書曰: ‘兵曹書吏韓忠輔。’ 前後皆書此名。 若有此名之人, 則必憎怨此人者, 欲此人受罪, 而爲之也。 今其捉致, 而問之曰: ‘何人憎汝乎?’ 詳細問之, 則必有端緖也。 此事驚愕。 予意則以爲當推, 然可棄之乎? 推之乎? 且其所書, 非能書者也。 其亦變體而書, 未可知也。 然僅成字樣, 似不能書者也。" 光弼等啓曰: "臣等前日所啓者, 匿名書之事, 載在律文, 故啓請勿推矣。 此則非匿名書之例, 百計當推之。 前有書御諱之人, 【沈思順】 亦旣啓推。 況此非乎? 雖此有知識之人, 苟有血氣者, 孰不痛憤乎? 東宮近處入直軍士, 問其所見荒庚人, 則庶可得之矣。" 【光弼見木牌書, 私自噓嘻曰: "意謂或於政事間, 有怨懟之人, 豈料至於此極乎?" 金謹思曰: "則此木牌, 似是桶板也。"】 傳曰: "東宮賓廳近處入在人, 不可盡數書啓也, 切近處入直軍士書啓, 而勿令出入可也。 東西門往來凡人, 則勿禁事, 幷言于兵曹。 且韓忠輔稱名人, 兵曹新舊書吏中有之乎? 速問以啓。" 金安老等啓曰: "韓忠輔稱名人, 時在兵曹軍色書吏云。 恐愚惑常人, 不知情實, 而逃去, 故已令禁府郞官, 發馬拿來矣。 【韓忠輔之輔字, 西門射矢, 則書府字, 東宮木牌, 則書西字。】 若待啓稟則緩, 故今隨啓之, 且金謹思 【義禁府判事也。 時以針灸在告。】 已聞召命, 來在都摠府待命。 此實大事, 請令隨參。" 傳于光弼等曰: "東宮賓廳近處人, 在所當推, 故汎然書啓, 問之, 則觀其辭色, 亦可知也。 韓忠輔, 兵曹執吏, 則必其嫌怨之人, 前日射門而不遂, 其欲今更爲此事矣。 先問忠輔曰: ‘常時憎汝者何人? 爲軍色後, 憎汝者何人? 賓廳近處入直軍士, 亦有憎汝者乎? 東宮別監各色掌中, 亦有私嫌人乎?’ 以此問之, 且問賓廳近處入直軍士等, 以午前見有行止荒唐人, 可也。 此乃大獄, 三公及義禁府堂上, 在賓廳推問可也。 金謹思方針, 炙故使勿招, 今已人來, 則亦可參鞫。" 光弼等啓曰: "韓忠輔則今已拿來矣, 如此大獄, 則兩司長官, 例當參鞫。 請命招, 又出問事官。" 傳曰: "所啓果當。 兩司長官, 命招可也, 問事官亦可出。" 【議政府舍人宋麟壽、軍器寺正李億孫爲問事官。】 又傳曰: "闕庭推鞫事, 則在前以草書入啓。 今亦正書, 則必至遲久, 其以草書入啓可也。" 光弼等以韓忠輔所供 【所供, 皆共憎己人也。 韓有孫、朴長孫、李孝珍、韓世傑。】 啓曰: "所言不緊。 以此懷嫌, 豈敢爲如此事乎? 然從其所言而書啓。" 傳曰: "以此見之, 則不可謂有端緖也。 以此懷嫌, 豈可爲如此大關宗社之事乎? 然從其所言而捉來, 使之寫字, 則初雖變體書之, 以彼譬對, 則必有相以處。 但今已夜深, 分囚于義禁府可也。 李孝珍則甲士也。 入番則今可捉問, 不然則明日捉問可也。 東宮賓廳近處入直軍士, 今卽捉致問之曰: ‘汝於今朝書筵後, 午前, 見行止荒唐人乎?’ 速爲推問可也。 獄事如此, 明日慶會樓下觀武才, 可以停之, 而時無端緖。 今若停之, 則似爲驚惑, 然大獄方起, 而出觀武才, 亦似異矣。 何以爲之?" 光弼等啓曰: "此人等, 當遣郞官捉囚, 幸有荒唐之物, 竝令搜探何如? 明日之事, 則臣等已欲入啓矣。 獄事如此, 此亦大變, 豈合於觀武才乎? 請停之。" 傳曰: "其令往拿官員, 竝搜探, 觀武才可停。" 又傳于光弼等曰: "韓有孫等妻子及三切隣, 皆捉來問之曰: ‘昨日有孫等有出入處否? 其直言之。’ 若向闕內而來, 則必求信符矣, 以此問之, 則庶可得其端緖也。 李孝珍入番, 則今可拿問, 不然則明日拿問可也。 東宮賓廳近處入直軍士, 速推以啓。" 光弼等, 以東宮賓廳近處入直軍士十三人等招辭入啓。 謹思等仍啓曰: "韓忠輔, 疑有更問之事, 故下囚于義禁府, 賓廳近處入直軍士十三入, 亦下囚。" 傳于光弼等曰: "此人等事, 知道。 今已夜深, 明日推之可也。" 仍傳于謹思等曰: "韓忠輔則囚之。 賓廳近處入直軍士, 則雖不囚, 若有更問之事, 則明日亦可以拿問也。"


  • 【태백산사고본】 37책 74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19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