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의 건의에 따라 박씨의 일과 관련하여 홍서주·김헌윤을 체직하고, 박씨의 인척을 파출하다
대간이 합사(合辭)하여 박씨의 일을 일곱 번 아뢰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이어 또 아뢰기를,
"상의 분부에는 매양 조정에서 의죄(擬罪)하자 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옥사(獄事)를 당초 의계(擬啓)할 때 좌의정(左議政)이 자신의 의견(意見)을 치우치게 고집하여 아뢰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좌우에서 강력히 아뢴 다음에야 억지로 따라서 사건화시켰습니다. 궐정(闕庭)에서 추국(推鞫)할 때는 끝까지 추국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사색(辭色)에까지 노여움을 나타내셨습니다. 뒷날 의죄(擬罪)할 때도 오히려 편견(偏見)을 고집하시면서 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좌우에서 강력히 아뢴 다음에야 또 억지로 따랐으나 폐출에 의죄하는 데 그쳤습니다. 대신은 국가에 위급한 변란이 발생했을 때 종묘 사직의 대계(大計)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 대의(大義)에 입각, 영원히 화근(禍根)을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유청은 수상(首相)으로서 거론하지 말자는 의논을 창도하여 국사(國事)를 그르쳤으니, 저런 정승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백관(百官)의 웃자리에 둘 수 없으니 파직시키소서. 그리고 이 옥사(獄事)에 대해서 매양 조정과 같이 의논하려 하시는데, 죄인과 관련된 인척(姻戚) 가운데 이조 판서 홍숙(洪淑)과 예조 판서 김극개(金克愷)가 있는 바 이들은 의논에 참예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직인 육조(六曹)의 직임을 맡겨서도 안 되는데 더구나 동궁(東宮)의 빈객(賓客)136) 이야 말할 게 뭐 있겠습니까? 【홍숙을 가리킨 말이다.】 문학(文學) 홍서주(洪敍疇)와 병조 좌랑(兵曹佐郞) 김헌윤(金憲胤) 【홍서주는 바로 당성위(唐城尉) 홍여(洪礪)의 아버지고, 김헌윤은 바로 광천위(光川尉) 김인경(金仁慶)의 아버지다. 당성 옹주(唐城翁主) 혜정(惠靜)과 광천 옹주(光川翁主) 혜순(惠順)은 모두 박빈(朴嬪)의 딸이다.】 도 동궁의 요속(僚屬)과 육조의 낭관(郞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박씨는 종묘 사직에 죄를 졌으니 그 아비 박수림(朴秀林)과 오라비 박인형(朴仁亨)·박인정(朴仁貞)도 조정의 반열(班列)에 둘 수 없습니다. 모두 파출(罷黜)시키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좌의정(左議政)의 일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모든 의논에 있어 각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좌우의 말을 듣고 따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승을 체직시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니 체직시킬 수 없다. 홍숙과 김극개는 인척간이라고는 하지만 【홍숙은 당성위의 할아버지고, 김극개는 광천위의 할아버지다.】 지친(至親)이 아니니 파직시킬 수 없다. 하지만 빈객의 직은 체직시키도록 하라. 그러나 판서(判書)와 참판(參判)의 직은 체직시킬 수 없다. 홍서주는 동궁의 요속으로 있으니 체직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김헌윤도 체직시키도록 하라. 박수림·박인형·박인정 등은 즉시 파직하도록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박수림은 대대로 상주(尙州)에 살았다. 족계(族係)는 사족(士族)이지만 비길 데 없이 한미하고 군색했기 때문에 정병(正兵)에 예속되어 있었다. 연산군(燕山君)을축년137) 에 채홍(採紅)의 일 때문에 비로소 그 집에 아름다운 처녀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리하여 반정(反正)한 처음에 추천되어 궁중(宮中)에 들어왔는데 이 여인이 바로 경빈(敬嬪)이다. 경빈은 성품이 공손하지도 않고 만족할 줄도 몰라서 사랑을 얻으려는 술책만 힘썼다. 은총을 믿고 멋대로 방자하게 구는가하면 분수에 넘친 마음을 품고 뇌물을 널리 긁어들였으므로 간청(干請)하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그러고도 전혀 경계할 줄을 모르다가 이런 화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시론(時論)은 박씨만의 죄가 아니라 역시 임금이 지나치게 총애한 소치라고 했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58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569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신분-양반(兩班) / 가족-친족(親族)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壬申/臺諫合辭, 以朴氏事七啓, 不從, 仍啓曰: "上敎每以爲, 朝廷擬云。 今此獄事, 當初擬啓之時, 左議政李惟淸, 偏執己見, 不欲啓之, 左右强之然後, 勉從之。 及其闕庭推鞫之時, 非徒不欲窮竟, 至現辭色。 後日擬罪, 尙執偏見, 不欲罪之。 左右强之然後, 又勉從之, 止擬廢黜。 大臣當國家危變, 以宗社大計, 爲己責, 擧大義, 永絶禍根可也。 以首相, 倡爲此議, 以誤國事, 將焉用彼相哉? 不可置諸百僚之上, 請罷之。 且此獄事, 每欲朝廷共議, 而連姻之人, 如吏曹判書洪淑、禮曹參判金克愷, 不可與議, 且不可居權要, 任六曹也, 況東宮賓客乎? 【指洪淑也。】 文學洪叙疇、兵曹佐郞金憲胤, 【叙疇乃唐城尉 礪之父也。 憲胤乃光川尉 仁慶之父也。 唐城翁主 惠靜、光川翁主 惠順, 皆朴嬪女也。】 亦不可爲東宮僚屬、六曹郞官也。 且朴氏得罪宗社, 其父秀林、娚朴仁亨、仁貞, 不可在朝列, 請皆罷黜。" 傳曰: "左議政事, 未知何如也。 但凡議論, 各以所懷言之, 或聽左右之言, 而從之。 且遞相非輕, 不可爲也。 洪淑、金克愷, 雖曰姻婭之家, 【唐城尉祖則洪淑也, 光川尉祖則金克愷也。】 然非至親, 亦不可罷也。 賓客則可遞也, 而判書、參判之職, 不可遞也。 洪叙疇在東宮僚屬則遞之當矣, 金憲胤亦當遞矣。 朴秀林、仁亨、仁貞等, 卽令罷職可也。"
【史臣曰: "秀林世居尙州, 系雖士族, 窮寒無比, 乃隷正兵。 燕山乙丑, 因綵紅之擧, 始知有美處子。 及反正初, 薦入宮中, 是爲敬嬪。 性不恭謹, 知足務爲取媚之術, 恃恩縱恣。 猶懷非分, 廣招賂遺, 干請雲集, 略不知戒, 以至於禍, 然時論以爲非, 獨朴氏之罪, 亦由過寵之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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