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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48권, 중종 18년 7월 6일 갑술 2번째기사 1523년 명 가정(嘉靖) 2년

전라도 병마 절도사·군관 나사항이 왜선과 접전한 절차를 아뢰다

전라도 병마 절도사·군관(軍官) 나사항(羅士恒)을 인견하였는데, 삼공이 입시(入侍)하였다. 남곤나사항에게 말하기를,

"접전(接戰)한 절차를 비록 계본에 자세히 말하였으나, 처음 왜선을 보고 조치한 절차에 관하여 상세히 아뢰도록 하라."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6월 16일 병사(兵使)는 안마도(安馬島)로 향하고, 우후(虞候) 조세간(趙世幹)위도(猬島)를 향하여 가서 수토(搜討)하였는데, 조세간수마석(水磨石)302)초거(草炬)303) 를 배에 싣고 변(變)에 대비했었습니다. 그뒤 병사(兵使)는 군적(軍籍)을 마련하는 일로 육지로 나아갔었는데, 27일 유시(酉時)에 후망군(候望軍)이 보고하기를 ‘10여 척의 배가 해서(海西)로부터 바다에 떠서 온다.’ 하였습니다. 마침 해가 질 때였지만 신이 조세간과 함께 바다를 향하여 추격해가보니 부안 현감(扶安縣監) 신종(申鍾) 등이 왜선 1척을 추격하여 싸우다가 후퇴하다 하면서 오는 중이었습니다. 그 날은 접전하지 못하고 밤새도록 포위하고 있다가, 다음날 신종이 화전(火箭)을 쏘아 그 배의 돛대를 부숴버리고 창을 잡은 자를 쏘아 맞혔는데, 즉시 고꾸라져 죽었습니다. 이로부터 왜놈들은 모두 배 안으로 숨은 채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배를 조종하여 남쪽 바다를 향하여 도망가므로 신 등도 그 배를 추격하여 갔으나 그 배가 크고 높은데다가 방패를 설치하였기 때문에 화살로는 깨뜨리기 어려웠고 총통(統筒)을 쏘아서도 깨뜨릴 수 없자, 조세간 등이 영을 내리기를 ‘아군이 일시에 홰에 불을 붙여 왜선에 던지면 왜인이 불을 끄기 위하여 나올 것이니, 그때 돌을 던지고 활을 쏘자.’ 하기에, 모두들 약속에 따라 일시에 함께 불을 던져 그 배에 불을 질러 그와 같이 포획할 수 있었습니다."

하였다. 남곤이 말하기를,

"왜인의 수는 대개 몇 사람이나 되었는가?"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배 밑바닥에 타서 드러난 뼈가 매우 많았는데, 대략 30여 명쯤 되었습니다."

하였다. 남곤이 말하기를,

"왜인 1명은 무슨 방법으로 생포하였는가?"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배를 모두 불태운 뒤 혹 숨어 있는 자가 있을까 의심스러워서 또 불을 놓아 태웠더니, 왜인 하나가 나와서 무릎을 끓고 손을 비비면서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하므로, 신 등이 옷을 벗으라는 시늉을 보여주었더니, 왜인이 즉시 옷을 벗고 와서 항복하였습니다."

하였다. 남곤이 말하기를,

"참수(斬首)한 자와 생포한 자가 모두 14인이었는데도 불타고 남은 뼈가 오히려 많이 있었다 하니, 그렇다면 그 수가 반드시 많았을 것이다."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매우 많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물로 뛰어든 왜인은 생포할 수 없었는가?"

하매, 나사항이 아뢰기를,

"부득이하여 칼과 창으로 찔렀으므로 생포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반드시 왜승(倭僧)이 있었기 때문에 승기(僧器)가 있었을 것이다." 【중림(中林)의 공사(供辭)에 염주(念珠)가 있다 하였다.】

하매, 나사항이 아뢰기를,

"참수(斬首)한 자들 가운데는 왜승의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안은 붉고 밖에는 옻칠을 한 방패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였다. 권균(權鈞)이 말하기를,

"그 방패를 어떻게 탈취하였는가?"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왜노(倭奴)가 아군을 방어하려 하므로 구철(鉤鐵)을 던져 걸어서 탈취하였습니다." 하였다. 남곤이 말하기를,

"너의 배가 10척이고 신종(申鍾)의 배가 10여 척이었으니, 추격하여 포위하면 왜선으로 하여금 달아나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큰 바다에까지 추적하여 갔었는가?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왜선의 빠르기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왕등도(王登島)를 향하여 갈 적에 바다가 매우 광활하였는데, 마침 그날 순풍(順風)이 있었으므로 접전하였지 그렇지 않았다면 결단코 따라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였다. 남곤이 아뢰기를,

"왜인도 활을 잘 쏘던가?"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비록 쏘는 자가 있었으나 활이 강하지 못하여, 맞은 자가 다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각궁(角弓)을 사용하여 쏘던가?"

하매, 나사항이 아뢰기를,

"왜인들이 방패 안에서 활을 쏘았으므로 무슨 활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남곤이 말하기를,

"방패 안에 있었다면 너희들이 어떻게 쏘아 맞혔는가?"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그 방패 위에 두 귀[耳]가 있었는데, 왜인들이 반드시 이를 통하여 엿보았으므로 쏘아 맞힐 수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저 왜인은 상세히 추문(推問)하여야 한다."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저 왜인은 반드시 언약(言約)이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즉시 복초(服招)하지 않을 것이므로 부득이 형추(刑推)하여야 실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저 왜인이 자복하면 다시 중림(中林)을 추문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왜인을 추문하면, 같은 배에 있었던 사람일 경우에는 반드시 중림의 이름을 말할 것인데, 중림의 말이 이 왜인의 말과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추문하여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영상(領相)은 즉시 금부(禁府)로 나아가 추문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48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244면
  • 【분류】
    외교-왜(倭)

  • [註 302]
    수마석(水磨石) : 물에 닳고 닳아서 서슬이 없어지고 반들반들하게 된 돌.
  • [註 303]
    초거(草炬) : 풀로 묶어 만든 홰를 말한다.

○引見全羅道兵馬節度使軍官羅士恒, 三公入侍, 南袞士恒曰: "接戰節次雖悉於啓本, 初見船, 措置節次詳悉啓之可也。" 士恒曰: "六月十六日, 兵使則向安亇島, 虞候趙世幹則向猬島搜討, 世幹多取水磨石及草炬, 載船待變。 厥後, 兵使則以軍籍磨鍊事, 出陸。 至二十七日酉時, 候望軍報云: ‘有十餘船, 自海西泛洋而來。’ 日沒時, 臣與世幹開洋追逐, 扶安縣監申鍾等逐船一隻, 且戰且却而來, 其日不能接戰, 終夜圍匝。 申鍾放火箭, 破其檣, 射中持槍者, 卽倒死。 自此, 倭奴皆藏匿船中, 不敢出, 而自內操船, 向南大洋而去。 臣等亦追逐其船, 非徒高大圍設防牌, 難以箭破, 雖放銃筒, 亦不能破。 世幹等令曰: ‘我軍一時擧火, 投船, 倭人欲滅火而出, 則以石擲之、以弓射之。’ 衆皆依約, 一時竝擧, 而焚蕩之, 故得獲如彼。" 袞曰: "數大槪幾人?" 士恒曰: "觀其船底, 所燒之骨甚多, 大槪三十餘人。" 曰: "一人, 以何術而生擒乎?" 士恒曰: "全船焚蕩後, 疑或有人藏匿者, 又放火焚之, 有一倭人出跪祝手曰: ‘活我、活我。’ 臣等以脫衣之狀, 示之然後, 倭人卽脫其服, 來降。" 曰: "斬首及生擒, 竝十四人, 而焚餘之體尙多, 然則其數必多。" 士恒曰: "甚多焉。" 上曰: "倭人投水者, 不能生擒乎?" 士恒曰: "不得已以劍槍刺取, 故不得生擒耳。" 上曰: "必有僧, 故有僧器也。" 【中林供辭, 有念珠云。】 士恒曰: "其於斬首數內, 不見其形。 但有一防牌, 內朱外漆。" 權鈞曰: "其防牌, 何能奪取乎?" 士恒曰: "倭奴欲自防, 我軍以鉤鐵拘取矣。" 曰: "汝船十隻, 申鍾船十餘隻, 追圍則當使船, 不得放行。 何爲追至於大洋乎?" 士恒曰: "船之疾如飛, 將向王登島, 而海水甚闊。 適因其日有順風, 故接戰矣, 不然則決不能追逐也。" 曰: "倭人亦能射乎?" 士恒曰: "雖有射者, 弓不勁, 故中者不傷。" 上曰: "射用角弓乎?" 士恒曰: "倭人射者, 在防牌內, 故不知用何弓也。" 曰: "在防牌內, 則爾等何從而射中乎?" 士恒曰: "其防牌上有兩耳。 倭人必窺於是, 故得以射中耳。" 上曰: "彼當詳悉推問。" 曰: "彼必有言約, 不卽服招, 不得已刑推, 而得情也。 若彼人服, 則更問中林乎?" 上曰: "問此以同船之人, 則必發言中林之名矣。 中林之言若異於此, 則何以爲之?" 曰: "推之則可知矣。" 傳曰: "領相, 卽詣禁府推之。"


  • 【태백산사고본】 24책 48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244면
  • 【분류】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