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는 의복과 예질을 왕자와 다르게 해야 한다는 뜻을 정부와 예조에 물으라고 정원에 전교하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세자(世子)는 명분이 이미 정해졌으니 의복(衣服)과 예질(禮秩)을 왕자(王子)와 다르게 해서 상하의 구분이 있도록 해야 한다. 세자가 원자(元子) 때부터 궁중에 있어서의 앉고 서고 하는 예절이 본디 왕자와 다른 것은 후일 조정 반열에서 특이함을 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종조에서 원자는 세자에 봉해진 날부터 비록 관례(冠禮)는 하지 않았더라도 망건(網巾)·익선관(翼善冠)·아청 용곤포(鴉靑龍袞袍)를 입고 사부(師傅)와 빈객(賓客)을 대하였으니, 일찍이 관례를 아니했다고 해서 편복(便服)을 입는 데 구애받지 않았다. 대저 사부와 빈객은 대신이므로 비록 임금에 있어서도 관(冠)을 쓰지 않고는 접견하지 않으니 그것은 예를 높이기 때문인데 하물며 세자에 있어서랴? 세자가 편복을 입는 것은 다만 대신을 대하는 데 미편해서일 뿐 아니라, 궁중에 있으면 다른 왕자와 함께 입자(笠子)를 쓰므로 의장(儀章)에 구별이 없는 듯 하니 매우 불가한 일이다. 경 등이 ‘관례는 정례(正禮)이므로 행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세자의 관례를 일찍이 행해야 할 것이요, 만일 ‘관례는 곧 성인(成人)을 책임지우는 것인데 세자의 나이가 어리므로 일찍 행하기가 어렵다.’고 여긴다면 내가 사은사(謝恩使) 강징(姜澂)의 말을 들으니, 황제(皇帝)가 관례를 행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비록 머리는 올리지 않았더라도 관포(冠袍)는 한결같이 예문(禮文)을 따랐다 한다. 천자의 존엄으로도 군신(群臣)을 대할 때는 오히려 관대(冠帶)를 폐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세자에 있어서 관례를 행하지 않았다 해서 관대를 갖추지 않는 것이 가하랴? 지금 세자는 비록 어리나 성품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니 마땅히 예절로 길러야 한다. 세자가 만일 ‘대신은 비록 관을 쓰지 않고서도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후일 태홀(怠忽)하게 되는 마음은 여기에서 싹트는 것이리라. 세자가 지금부터 예문에 의하여 관포를 착용한다면 의장(儀章)과 예절(禮秩)이 자연 왕자와 구별이 있게 되고 등분(等分)도 또한 엄명(嚴明)하게 되어 거의 사체에 합당할 것이니, 이런 뜻을 정부와 예조에 물으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45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145면
- 【분류】왕실(王室)
○辛酉/傳于政院曰: "世子名分已定, 衣服禮秩, 須異於王子, 而上下有辨也。 世子自元子時在宮中, 坐作禮節, 素異於王子者, 他日朝班, 當表異故也。 祖宗朝, 元子自封世子之日, 雖未冠禮, 便着網巾、翼善冠、鴉靑龍袞袍, 接待師傅、賓客, 未曾拘於未冠, 而着便服也。 夫師傅、賓客, 大臣也。 雖在人君, 不冠不見, 乃所以尊禮也, 況世子乎? 世子着便服, 非特於接待大臣未穩也, 在宮內則與王子皆着笠, 儀章似無別, 甚不可。 卿等以謂: ‘冠禮, 正禮, 不可不行。’則世子當早行冠禮。 若以爲: ‘冠禮乃責成人, 世子年幼, 難於早行。’ 則予聞謝恩使姜澂之言: ‘皇帝未冠, 故雖不上髮, 冠、袍則一依禮文。’ 云。 以天子之尊, 對群臣, 猶不敢廢冠帶, 況世子諉以未冠, 而不具冠帶, 可乎? 今者, 世子雖蒙弱, 習與性成, 所當禮養也。 世子若謂: ‘大臣, 雖不具冠, 猶可接對。’ 則後日怠忽之心, 由是萌矣。 世子, 自今依禮冠袍, 則儀章、禮秩, 自與王子有別, 等分亦須嚴明, 庶幾合於事體也。 其以此意, 問于政府、禮曹。"
- 【태백산사고본】 23책 45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145면
- 【분류】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