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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9권, 중종 15년 5월 17일 갑진 1번째기사 1520년 명 정덕(正德) 15년

사정전에 나아가 문신을 정시하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문신(文臣)을 정시(庭試)379) 하였다. 칠언 배율(七言排律)380) 3편(篇) 각각 10운(韻)【1편의 글제는 민우(閔雨)381) , 1편은 등영주(登瀛州)382) , 1편은 빈풍(豳風)383) 이었다.】 으로 시험하였는데, 으뜸을 차지한 사록(司錄) 조인규(趙仁奎)에게는 가자(加資)를 명하고 그 다음은 차등을 두어 상사(賞賜)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조인규는 뭇 서적을 널리 보아 문사(文辭)는 넉넉하나, 품성이 조급하여 뒤에 관찰사가 되어서는 사납고 도리에 어그러지며 형정(刑政)을 알맞게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읽은 것이 무엇이냐.’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9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660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註 379]
    정시(庭試) : 임금이 친림(親臨)하여 전정(殿庭)에서 보이는 시험. 율시(律詩)로 시험하며, 당하관(堂下官)인 문신(文臣)이 응시한다. 수석을 차지한 자는 자급(資級)을 올려 주고, 그 밖의 합격자에게도 상사(賞賜)가 있다. 《속대전(續大典)》 예전(禮典) 제과(諸科)에 보이는 문신 정시(文臣庭試)는 관무재(觀武才)의 대거(對擧)로 설행(設行)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때는 관무재의 제도가 확립되기 전이며 그 성격으로 보아 관사(觀射)에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註 380]
    칠언 배율(七言排律) : 7자(字)를 1구(句)로 하여 6구 이상의 우수구(偶數句)로 배열한 한시체(漢詩體)인데, 12구인 경우 제 1·2·4·6·8·10·12구에 압운(押韻)하며, 그 이상은 이것을 반복한다.
  • [註 381]
    민우(閔雨) : 비가 내리기를 애타게 바람. 《춘추(春秋)》 희공(僖公) 삼년(三年)에 "여름 4월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였는데, 곡량전(穀梁傳)에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을 말한 뜻은 비를 애타게 바란 것이다. 비를 애타게 바란 뜻은 백성에게 뜻을 둔 것이다." 하였다.
  • [註 382]
    등영주(登瀛州) : 영주(瀛州:삼신산(三神山)의 하나)에 오름. 당 태종(唐太宗)이 천책 상장군(天策上將軍)으로 있을 때에 문학관(文學館)을 짓고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 등 18인을 학사(學士)로 삼고서 사람을 시켜 이들의 초상을 그리고 찬(贊)을 짓고 명자(名字)를 쓰게 하여 십팔 학사라 부르고 서부(書符)에 두어 어진이를 예우(禮遇)하는 것을 밝혔는데, 천하 사람들이 이들을 부러워하여 "영주에 올랐다." 하였다. 《당서(唐書)》 저량전(褚亮傳).
  • [註 383]
    빈풍(豳風) : 《시경(詩經)》 국풍(國風)의 편명. 빈은 주(周)나라 태왕(太王) 이전의 구국(舊國).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도와 정사를 돌볼 때에 칠월시(七月詩)를 지어서 조석으로 풍송(諷誦)하여 가르쳤다. 후세 사람이 주공이 지은 시와 주공을 위하여 지은 시를 한데 붙여서 모두 7편(篇)으로 하고 빈풍이라 칭하였다.

○甲辰/御思政殿, 庭試文臣。 試以七言排律三篇各十韻。 【一閔雨, 一登瀛洲, 一《豳風》。】 司錄趙仁奎居首, 命加資, 其次賞賜有差。

【史臣曰: "仁奎, 博覽群書, 文辭富贍, 然稟性躁急, 後爲觀察使, 暴戾失刑, 人以謂所讀何物?"】


  • 【태백산사고본】 20책 39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660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