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공이 날씨의 이변으로 공구 수성하도록 아뢰다
삼공(三公)이 아뢰기를,
"신 등이 명(命)을 듣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서 왔습니다. 근일 재이(災異)가 겹쳐 나타나는데, 상께서 근심하고 삼가시는 것으로 본다면 재이를 부를 만한 일이 없으셨으니, 이는 반드시 신 등이 부덕(不德)한 자격으로 외람되이 높은 지위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을 가려 이 자리에 있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듣건대 상께서 피전 감선(避殿減膳)하신다 합니다. 이것이 비록 겉치레이기는 하지만 문구(文具)가 있은 뒤에라야 실상이 있는 것으로, 마땅히 내외를 두루 수성(修省)하여야 하는 것이니, 밖으로는 조정(朝廷)과 안으로는 궁위(宮闈)에 이르기까지 늘 성찰(省察)하시어 재이를 멈추게 하는 정성을 다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근일의 이변(異變)이 이 뿐만이 아니다. 함경도에서는 왼쪽 늑골 부분으로 자식을 출산하는 이변이 있었고, 오늘 서울에서는 두 번이나 지진이 있었으니 이는 비상한 이변이다. 내가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였으므로 과연 피전 감선하였는데, 이것이 비록 겉치레이기는 하지만 문구가 있은 뒤에라야 실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 상하가 서로 미진한 점을 수거(修擧)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경 등이 직임을 잘 수행하지 못한 때문이겠는가?"
하였다. 조금 있다가 전교하기를,
"삼공(三公)이 이미 나왔으니, 내가 마땅히 영방(迎訪)하여야겠다."
하니, 이에 삼공 및 승지(承旨)·사관(史官)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김전(金詮)이 아뢰기를,
"근래 재변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데, 상께서 근심하고 삼가심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아니건마는 변이(變異)가 이와 같이 잇달아 발생하니, 이는 틀림없이 신 등이 직임을 잘 수행하지 못한 탓일 것입니다. 피전 감선하는 것이 비록 겉치레 같기는 하지만 문구(文具)가 있은 뒤에라야 실상이 있게 되는 것이니, 공구 수성(恐懼修省)하신다면 이는 실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 내외를 두루 수성하여야 합니다."
하고, 남곤(南袞)은 아뢰기를,
"지금의 재변은 모두 태양(太陽)을 범하고 있는데, 정월(正月)의 재변이 있을 적에는 서울 사람들이 모두 놀랐으며, 또 북방에 있었던 재변(災變)123) 은 지극히 비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지방에 변이 있게 되면 사방(四方)이 다 보는 것인데도 서울에서는 몰랐으니, 이는 일관(日官)이 측후(測候)를 잘못한 것입니다. 신이 계본(啓本)을 보건대 백기(白氣)가 해를 범하였다 하는데 이는 반드시 가리킨 것이 있을 것이니, 지금을 위하여 계교한다면 실상으로 하늘의 변에 응할 것이요 겉치레만 힘써서는 안 됩니다. 근래 조광조(趙光祖) 등을 정죄(定罪)한 뒤에 이와 같은 변이 있으므로 인심이 두려워하고 있으니, 지금 시비(是非)를 정하여 상의 뜻을 굳게 가지시고 재변이 일어나는 까닭을 모두 다 추구(推究)하시어 전일보다 더 정신을 가다듬으시면, 군신 상하가 함께 그 존영(尊榮)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사람을 쓰는 일이 중요한 것인데, 근래 사람이 없어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주의(注擬)하기를 어렵게 여기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사람을 쓰는 방법에 있어 한 가지만 고집하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 사람의 잘못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면 써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보통의 예(例)라면 역시 충차(充差)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관(顯官)을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재기(才氣)의 현부(賢否)를 살펴 벼슬을 시켜야 하는 것이요, 사람마다 논박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하고, 이유청(李惟淸)은 아뢰기를,
"근일 사람이 없으니 어느 곳에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심한데 이르지 않았으면 모두 써야 됩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사람의 현부는 모름지기 일을 맡겨 부려 본 다음에라야 알 수 있는 것인데, 근래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명망(名望)이 없으면 모두 ‘합당하지 않다.’ 하니, 이것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망(人望)의 경중과 직임의 대소를 마땅히 상세히 살펴 잘 헤아린 뒤에 조처하여야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한 뒤에라야 그 사람의 현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몇 호(戶) 안 되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충신(忠信)한 사람이 있는 법이라 하였는데, 우리 나라가 비록 작다고는 하지만 어찌 쓸만한 사람이 없겠는가? 재상(宰相)의 자리에 앉아서 한 사람의 어진이도 진출시키지 못한 채 늘 인물(人物)이 없다는 것으로 구실을 삼고 있으니 참으로 사람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모르는 것인가?
- 【태백산사고본】 19책 38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27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식생활(食生活) /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註 123]재변(災變) : 함경도에 있었던 일변(日變)을 말한다.
○三公啓曰: "臣等聞命, 不勝憂懼而來。 近日災異疊見。 以上之憂勤惕慮觀之, 無有召災之事, 此必臣等以非德冒居高位也。 更擇賢德之人, 使居其位何如? 又聞上避殿、減膳。 此雖虛文, 有文然後有實, 當內外交修, 外而朝廷之上, 內而宮闈之間, 常常省察, 以致弭災之誠。" 上曰: "近日變異之事, 非獨此也。 咸鏡道有左脅生子之異, 今日京中地震至再。 此皆非常之變, 予甚驚懼, 故果避殿、減膳。 此雖文具, 有文然後有實矣。 然但當上下交修不逮也。 此豈卿等不能職任之故也?" 旣而傳曰: "三公旣已來詣, 予當迎訪。" 於是三公及承旨、史官等入侍。 金詮曰: "近日災變疊出。 上之憂勤惕慮, 未爲不至也, 而變異至於如此, 此必臣等不能職任之故也。 避殿、減膳, 雖似文具, 有文而後有實。 若恐懼修省, 則是可謂有實矣。 但當內外交修。" 南袞曰: "今之災變, 皆犯太陽。 正月之變, 都中之人皆驚懼, 而又北方之變, 至爲非常。 然一方有變, 四方必皆見之, 而京中不知, 此日官測候之誤也。 臣觀啓本, 白氣犯日, 此必有所指矣。 爲今計者, 但當應天以實, 不可徒務虛文。 近者光祖等定罪之後, 有如此變異, 故人心憂懼, 今宜定是非堅上志, 其於災異之所出, 悉推究之, 勵精過於前日, 則君臣上下, 俱享其尊榮矣。" 上曰: "治國, 用人爲重, 而近日無人, 吏曹判書難於注擬, 何以則可乎?" 南袞曰: "用人之道, 不可執一, 若其人所失關係, 則不可用矣。 若如他例, 則亦可充差, 然顯官不可爲也。 觀其人之才氣賢否而官之, 不可人人論駁也。" 李惟淸曰: "近日無人, 得之何處? 雖有過, 不至於甚, 則皆可用也。" 南袞曰: "人之賢否, 須待任使, 然後可知, 而近日則不然, 若無名望, 皆云不合, 似乎過矣。 然人望之輕重, 與任之大小, 宜詳審量宜而處之。 如此然後可知其賢否矣。"
【史臣曰: "十室之邑, 必有忠信。 朝鮮雖小, 豈無可用之人乎? 居具瞻之地, 不能進一賢, 而每以無人物資口舌, 其眞無人耶? 其眞不識人耶?"】
- 【태백산사고본】 19책 38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27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식생활(食生活) /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