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필·안당·홍경주 등이 입대하여 조광조 등의 일을 아뢰다
정광필·안당·홍경주·한세환·심정·이유청·신상·손주 등이 입대(入對)하였다. 【김전·이장곤·홍숙은 먼저 들어와 있었다.】 정광필이 아뢰기를,
"이 사람들은 과연 성명(聖明)의 대우가 융숭한 것을 믿고 과격한 일을 하였으나 옛 선인(善人)·군자(君子)라도 개혁하는 일이 있게 하려면 역시 과격한 일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붕비(朋比)의 말은 경한 것이 아니므로, 행여 죄를 지나치게 입게 되면 매우 옳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들에게 과격한 잘못이 있게 된 것은 임금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신 소치인데, 중벌을 가한다면 언로에 크게 관계될 것입니다."
하고, 안당도 그와 같이 아뢰고, 정광필이 아뢰기를,
"저 사람들은 임금께서 다 뽑아서 현요(顯要)의 반열(班列)에 두고 말을 다 들어 주셨는데 하루아침에 죄주면 함정에 빠뜨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하는 것이 임금의 마음인데, 저 사람들은 시종으로 오래 있었으니 내가 어찌 죄주고 싶겠는가? 과연 조정의 일로 보아, 이렇게 죄주지 않으면 더욱 그르쳐질 것이므로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이유청(李惟淸)이 아뢰기를,
"저 사람들은 참으로 붕비라 하여 중죄를 준다면 옳지 않습니다. 조정이 폐조(廢朝)를 겪은 이래로 말하기를 꺼려서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않았는데, 성명(聖明)을 만나게 되매 저 사람들이 너그러이 용납해 주시는 것을 믿고서 알면 말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므로 더러는 과중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고, 한세환(韓世桓)이 아뢰기를,
"예전부터 붕비의 말은 국가의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성상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시는 것을 믿고서 극진히 말할 수 있었는데, 심하게 죄준다면 뒷폐단이 또한 많을 것입니다. 이 일은 나라에 크게 관계되므로, 국가로서 장원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고, 안당이 아뢰기를,
"성종(成宗)조(朝)에서는 대간이 과중한 말을 하면 면대해서 힐책하셨는데, 근래에는 대간이 과격한 말을 하더라도 임금께서 힐책하지 않고 너그러이 용납하셨으므로 저 사람들도 성상을 믿고 극진히 말하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저 사람들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고, 심정이 아뢰기를,
"조광조 등의 일은 중론을 널리 채용하고 멀리 후폐를 염려하여 중도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고, 신상(申鏛)이 아뢰기를,
"극진히 말하여 숨기지 않는 것은 성조(聖朝)의 일입니다. 저 사람들이 스스로 요·순 같은 임금을 만났다고 생각하여 우충(愚忠)을 다하고자 알면 모든 것을 말하였는데, 임금께서 죄주시는 것은 사직(社稷)을 위해서이겠으나, 이제 굽은 것을 지나치게 바로잡으면 조정의 일이 도리어 그르쳐질 것입니다. 근일 성학(聖學)이 고명하여 치우쳐 막히는 사사로움과 혈기로 인한 노여움을 다 능히 버리셨는데, 이제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시니, 전하께서 물 흐르듯이 간언(諫言)을 받아들이신 일이 다 허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종사(宗社)에 크게 관계되는 일입니다."
하고, 홍경주(洪景舟)가 아뢰기를,
"조광조 등은 과연 임금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시는 것을 믿고 과격한 일을 많이 하였으나 대신도 언로가 통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제재하지 않았는데, 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나쁜 일에 버릇이 되어, 말하지 않아야 할 선왕(先王)의 구법(舊法)에 관한 일도 의논하여 변격하고자 하여 천위(天威)를 진동하게 하였습니다. 신 등은 지나치게 죄주게 될까 염려되므로 아뢰는 것이니, 군의(群議)를 모아서 다시 더 짐작해야 합니다."
하고, 손주가 아뢰기를,
"조광조 등에게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짐작하여 상벌(賞罰)이 알맞게 해야 합니다."
하고, 승지(承旨) 김근사(金謹思)가 아뢰기를,
"죄가 물정(物情)보다 지나치면 성덕(聖德)에도 누가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이것은 사사로운 노여움으로 죄주는 것이 아니니, 과연 당초에 이렇게까지 되지 않도록 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이제는 사세가 이렇게 되었으므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매, 정광필이 아뢰기를,
"과격한 버릇을 구제하지 못한 것은 신의 죄입니다. 이제 듣건대, 조광조 등이 처음에는 이 일이 위에서 나온 줄 모르고 중간에서 변경이 있는가 하여 곧 나오지 않고 제 집에서 주저하였다 하니, 지극히 놀랍습니다."
하고, 안당이 아뢰기를,
"성종(成宗)조(朝)의 임사홍(任士洪)이 한 짓과 같다면 참으로 매우 간사하니, 죄주는 것이 과연 마땅하나, 조광조 등은 바른 도(道)로 임금을 섬기려다가 이렇게 된 것인데, 붕비(朋比)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하고, 신상이 아뢰기를,
"저 사람들이 제 몸을 위하여 이렇게까지 하였다면 과연 매우 죄주어야 하겠으나, 이는 옛글을 배웠으므로 다만 나라의 일을 위하려다가 저도 모르게 이토록 지나치게 된 것입니다. 일을 논하여 시비하는 것은 대간의 직분인데, 붕비라고 지목하여 사책(史策)에 쓰면 후세에 보기에도 아름답지 않고, 또 사기(士氣)가 저상(沮喪)될까 염려됩니다. 아랫사람의 말은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고, 한세환이 아뢰기를,
"폐습을 구제하려다가 도리어 지나치게 되면 그 폐해가 큽니다. 이 사람들을 죄주는 일은 종사(宗社)에 크게 관계됩니다."
하였으나 임금은 말이 없었다. 기사관(記事官) 채세영(蔡世英)이 아뢰기를,
"오늘의 일은 꼬투리를 모르므로 일을 기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매우 중한 일인데, 만세 뒤에 무엇에 의하여 사실을 상고하겠습니까? 이 일이 일어난 근본을 들려 주소서. 또 조광조 등에게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다만 나라의 일을 위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기사관 이공인(李公仁)이 아뢰기를,
"근본을 모르고 어떻게 일을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또 조광조 등에게 과격한 일이 있었더라도 어찌 자신을 위하여 꾀하였었겠습니까! 다만 나라의 일을 위하다가 이렇게 되는 줄 몰랐을 뿐입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답하지 않았다.
사신은 논한다. 정광필 등이 다 경연청(經筵廳)으로 물러가 앉았을 때에 정광필이 안당(安瑭)을 보고 ‘임금께서 생살(生殺)에 관한 말을 하신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80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鄭光弼、安瑭、洪景舟、韓世桓、沈貞、李惟淸、申鏛、孫澍等入對。 【金詮、李長坤、洪淑, 先入仍在。】 光弼曰: "此人等, 果聖明待遇之隆, 爲過激之事矣。 雖古善人君子, 欲有更革之事, 則亦不無過激之事矣。 朋比之說非輕。 幸被罪過當, 則甚不可。 況此輩有過激之失, 是上優容之所致也。 若加以重罪, 則大關言路。" 安瑭亦以是啓之。 光弼曰: "彼人等, 上皆擢置顯列, 言無不聽, 而一朝罪之, 似擠於機陷也。" 上曰: "好生惡殺, 人主之心也。 彼人等, 久在侍從, 予豈欲罪之乎? 果以朝廷事見之, 不如此罪之, 則益至於誤, 故不得不爾。" 惟淸曰: "彼人等, 若眞以爲朋比而重罪之, 則不可。 朝廷自經廢朝而來, 以言爲諱, 莫敢開口, 至逢聖明, 彼人等恃其優容, 知無不言, 故間有過重之事矣。" 世桓曰: "自古朋比之論, 誤人國家事。 彼人等恃聖上優容, 乃得盡言。 若深罪之, 則後弊亦多。 此事大關於國, 須爲國家長遠計慮可也。" 安瑭曰: "成宗朝, 臺諫有過中之論, 則面對詰責。 近來則臺諫雖有過激之論, 上不詰責而優容, 故彼人亦恃聖上, 盡言而乃至於此也。 非但彼人之失也。" 沈貞曰: "光祖等事, 須博採衆論, 遠慮後弊, 使不失中可也。" 申鏛曰: "盡言不諱, 聖朝事也。 彼人自以爲身逢堯、舜之君, 欲盡愚忠, 知無不言。 上之罪之, 乃爲社稷也, 然今若矯枉過中, 則朝廷事, 反至於誤矣。 近日聖學高明, 偏滯之私, 血氣之怒, 皆克去矣, 而今一朝至此, 殿下納諫如流之事, 皆歸虛矣。 此宗社大關事也。" 景舟曰: "光祖等, 果恃上優容, 多有過激之事。 大臣亦以爲言路不通, 而不爲裁抑, 彼人不知習成於弊, 先王舊章, 不可言之事, 亦議而欲變之, 令天威震動。 臣等恐過中罪之, 故啓之。 須收群議, 更加斟酌。" 孫澍曰: "光祖等豈有他意? 須斟酌, 使賞罰得中。" 承旨金謹思曰: "罪之過於物情, 聖德亦大累矣。" 上曰: "此非以私怒罪之也。 果初不使至於此則好矣, 今則事勢至此, 故不得不如是也。" 光弼曰: "不能救過激之習, 臣之罪也。 今聞光祖等, 初不知事出於上, 恐中間有變, 不卽出來, 趑趄于其家云。 至爲驚愕。" 安瑭曰: "成宗朝, 如任士洪所爲, 則實甚奸邪, 其罪之果當矣, 光祖等, 欲以直道事君, 而乃至於此。 其曰朋比云者, 似不可。" 申鏛曰: "彼人等, 爲一身而至此, 果可深罪之也。 此則學古書, 只欲爲國事, 而不知過越之至此也。 論事是非, 臺諫之職也。 以朋比目之, 則書於史策, 亦不美於後觀, 又恐士氣沮喪也。 下人之言, 須虛懷聽納。" 世桓曰: "欲救弊習, 而反至過中, 其弊大矣。 罪此人等事, 大關宗社。" 上默然。 記事官蔡世英啓曰: "今日之事, 未知端倪, 記事甚難。 此甚重事, 萬世之後, 憑何考實? 請聞出事之根。 且光祖等豈有他意? 只爲國事而已。" 記事官李公仁啓曰: "不知根本, 安能記事? 且光祖等雖有過激之事, 豈爲身謀? 只爲國事, 而不知流於此也。" 上不答。
【史臣曰: "光弼等, 皆退坐經筵廳, 光弼顧瑭曰: ‘上敎生殺之言, 未穩。’"】
- 【태백산사고본】 19책 3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8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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