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신용개 등이 김우증에게 난언율로 논단하니 전교하여 가하다고 하다
명하여, 추관(推官) 좌의정 신용개·판의금부사 이계맹 등을 경회문으로 모이게 하여 김우증 등을 추문하게 하였다. 우증이 신장(訊杖)을 받게 되자 곧 부르짖으며 말하기를,
"모두 자복하겠습니다. 전부 강윤희가 고발한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추관이 묻기를,
"이는 무조건 분 것이다. 너는 네가 윤희에게 말한 것을 다시 말하라."
하니, 우증이 말하기를,
"신이 윤희에게 한 말이 많지 않은데 윤희가 신을 불측한 죄에 빠뜨리려고 부연하고 보태어 고발한 것입니다. 신이 어떻게 장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조목조목 물으시면 신이 조목조목 대답하겠습니다."
하였다. 드디어 물으니 우증이 물음에 따라 대답하기를,
"모두 신이 한 말입니다. 단 동문(東門)에 화살을 쏜 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윤희가 스스로 한 말이며, 우익(羽翼)이라는 말은 지금 비로소 들었습니다. 신은 본디 무인이라서 이러한 문자를 알 수 없습니다."
하였다. 계맹이 좌우에게 말하기를,
"평문(平問)하여서는 안 되겠으니 형신(刑訊)을 가해야 한다."
하니, 우증이 울면서 부르짖기를,
"성명(聖明)의 아래서 쾌하게 한 번 죽을지언정 어떻게 장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사실대로 복초(服招)하겠습니다."
하였다. 1장을 때리고 묻기를,
"동문에 쏜 화살에 맨 글은 펴보지도 않고 불에 넣었으며, 대내에 쏜 화살에 맨 글도 처음에는 외간(外間)으로 나가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김정의 허물을 쓴 줄 알았는가?"
하니, 우증이 말하기를,
"신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억측한 것입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네가 김정을 쳐 없애려 하였는데 그 계획을 어떻게 세우려 하였는가?"
하니, 우증이 말하기를,
"무슨 계획이 있었겠습니까?"
하였다. 묻기를,
"너는 말만 했을 뿐이요 일찍이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는가?"
하니, 우증이 말하기를,
"과연 그렇습니다."
하면서, 부르짖을 때마다 늙은 귀신이 상을 속인다고 했는데 이는 윤희를 가리킨 것이다. 장을 세 번 때리니 이에 공초(供招)하기를,
"앞으로 박원종 등을 부관 참시(副棺斬屍)하고 정국 공신을 삭제하는 일이 있을 텐데, 진실로 이렇게 되면 정국 공신이 보전될 수 있겠는가라는 등의 말을, 전의 공초에는 윤희의 말이라 했으나 실은 내가 먼저 한 말이었고, 또 지난번 건춘문(建春門) 및 대내(大內)에 쏜 화살이 모두 김정 등의 일을 쓴 것이라는 말도 윤희가 한 말이 아니고 모두 내가 한 말이긴 하나, 이는 억측한 것이요 전해 들은 것은 없었습니다. 기타의 말 역시 다 내가 한 말입니다."
하였다. 용개 등이 공사(供詞)를 가지고 아뢰기를,
"말을 순서대로 다 기록할 수는 없었으나 대개(大槪)는 이미 다 자복하였습니다. 우증이 뜻을 얻지 못함을 불만으로 여겨 분통한 말을 한 것뿐이요 깊이 대사(大事)를 모의하고 계획한 것은 아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 공사(供詞)를 보니 대개는 이미 복초(服招)했다. 단 이같이 중대한 옥사는 전에는 친문(親問)하기도 하고 정승으로 하여금 조사하게도 하였었는데, 지금은 끝까지 자세히 하기를 힘쓰지 않고 갑자기 지만(遲晩)071) 하는 공초를 받았으니 이는 진실로 불가하다. 이제 우증의 공초에 ‘박원종 등을 부관 참시하리라는 일을 강윤희에게 말했다.’는 것은 말한 단서는 찾을 수 없으나 반드시 들은 데가 있을 것이니, 그 듣게 된 과정을 자세히 물어야 한다."
하매, 이에 용개 등이 그 죄상을 서로 의논하였다. 용개가 말하기를,
"사류(士類)를 쳐 없애어 자기의 분을 풀려 한 것이 그의 죄이다."
하고, 광조는 말하기를,
"자기의 분을 풀려 했다는 것은 부당하다. 조정을 어지럽히려 했다고 해야 한다."
하고, 승지 공서린·박호(朴壕)도 말하기를,
"조정을 어지럽히려 한 것이 사실이다."
하고, 용개·계맹은 말하기를,
"조정을 어지럽히려 했다는 것은 실정이 아니다."
하였다. 이렇게 서로 버틴 채 오래도록 결단하지 못하자, 광조·서린이 말하기를,
"이미 사류를 쳐 없애려 하였다면 비록 한 선비를 죽였더라도 조정을 어지럽힌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하고, 광조가 또 말하기를,
"죄가 사형에 처하는 데 그치는 것은 가하거니와 능지(凌遲)072) 까지 하는 것은 과한 듯하다. 조정을 어지럽혔는데도 죄가 사형에 그친다면 ‘자신의 분을 풀려 하였다.’는 것으로 논하는 것도 가하다. 또 한말로 결단하기를 ‘죄를 받고 폐기되어 늘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거짓말을 얽어내어 동류(同類)를 공동(恐動)시킴으로써 사류를 쳐 없애어 조정을 어지럽히려 하였다.’고 결단하는 것도 가하다."
하니, 용개 등이 마침내 광조가 논단(論斷)한 바에 따라 판결하였는데 ‘동류 공동’이라는 4자만 삭제하였다. 계맹이 아뢰기를,
"우증의 죄는 장 1백에 3천리 밖으로 추방하여 생환(生還)하지 못하게 하여야 하니, 이줄(李茁)의 죄에 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매우 온당합니다."
하고, 우증이 공초한 데 대한 결안(結案)에,
"이달 초 2일에 윤희의 집에 가서 말하기를, ‘김정·박상 등이 박원종 등의 관을 쪼개어 참시(斬屍)한 뒤에 정국 공신을 삭제하려 하니, 그렇게 되면 그 공신의 무리가 과연 보존될 수 있겠는가?’ 하였고, 또 ‘지난번에 건춘문 및 대내에 쏜 화살에 김정 등의 일이 갖추 실려 있었는데도, 상께서는 돌아보아 살피지 않고 삼공도 논계하지 않았다. 이제 현량과·방정과 출신이 조정에 포열하게 되면 조정에 있는 구신(舊臣)을 내쳐서 교수(敎授)나 훈도(訓導)로 삼기도 하고 점차로 방축(放逐)하기도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정국 공신도 제거당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쳐 없애야 한다.’ 하였습니다. 우증은 스스로 폐고(廢錮)된 것 때문에 늘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사류를 쳐 없앰으로써 조정을 어지럽히려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용개 등에게 전교하기를,
"윤희가 고발한 바 우익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에 대하여 우증을 현추(現推)하지 않았으며, 화살에 매어 쏜 익명서 등의 일에 대하여도 우증이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자 또한 다시 형추하지 않았다. 이제 대간이 와서 말하기를 ‘우증의 집에 가서 찾아낸 시구(詩句)에 황당한 말이 많았으며, 끝에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말라.」는 말이 있었고 또 성명(姓名)도 쓰지 않았으니, 끝까지 추문하기를 청한다.’ 하였다. 나는 모르겠다만 그 시를 우증이 스스로 지은 것인가, 아닌가? 이런 등등의 일을 끝까지 추문하지 않아도 되겠는가?"
하매, 용개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우익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에 대하여는 우증이 종시(終始) 자복하지 않으니, 만약 끝까지 추문하면 혹 늘 미워하고 원망하던 사람을 거짓 끌어댈 염려가 있습니다. 화살에 매어 쏜 익명서의 일은 추문할 증거가 없는 것이, 우증은 언문(諺文)을 모르는데다가 그의 필적은 상께서도 이미 친히 보신 바와 같이 서로 비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직접 우증을 추문하는 것은 미편한 것 같습니다. 시구(詩句)의 말은 시를 짓는 자가 위로하는 뜻으로 지은 글이며 이를 보내어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예(例)입니다. 그 끝에 ‘남에게 보이지 말라.’는 말은 자기의 졸작(拙作)을 널리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한 말로 세속(世俗)에서 늘 쓰는 말입니다. 그 편지에는 먹을 구하는 말이 있으니, 아마도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보낸 것 같습니다. 대저 문자(文字) 사이의 말 때문에 끝까지 추문하여서는 안 됩니다."
하니, ‘그렇다.’ 전교하였다. 용개 등이 실정을 조사하고 법을 헤아려 조율(照律)하여 아뢰기를,
"우증이 한 말은 모두 난언(亂言)으로 대개 경망(經妄)한 사람이 언사(言辭)에 올린 것이니, 《대전(大典)》의 난언율(亂言律)로 논하여 제주도 등 절도(絶島)로 방축하여 생환(生還)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 죄가 가벼운 것을 혐의하여 널리 다른 율(律)을 찾아보았으나 얻지 못하였으며, 단지 율문(律文)의 간당조(姦黨條)에 ‘조정에 있는 관원(官員)이 붕당(朋黨)을 맺어 조정을 문란시키는 자는 참(斬)하며, 처자는 노예로 만들고 가재(家財)는 몰수한다.’ 하였습니다. 이 율에 견주어 적용시킬 수는 있으나 가재까지 몰수하는 것은 역시 과중한 것 같으며, 더구나 이는 정률(正律)073) 이 아님에리까! 이에 감히 난언율로 논단한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조율한 것이 정히 내 마음에 맞는다. 붕당을 맺었다는 것은 정률이 아니다."
하였다. 용개 등은 모두 즐거운 모습으로 물러갔고, 광조와 공서린(孔瑞麟)·박호(朴壕)는 즐거운 기색이 없이 서로 말하를,
"우증의 죄는 사형이어야 마땅하나, 사형을 감하자는 의논은 너무 관대한 것이라 사림(士林)이 반드시 우리들에게 죄를 돌릴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14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
- [註 071]지만(遲晩) : 승복.
- [註 072]
능지(凌遲) : 대역죄(大逆罪)를 범한 자에게 과하는 최대의 극형으로, 범인을 일단 죽인 뒤에 그 시체를 머리·왼팔·오른팔·왼다리·오른다리·몸통의 순서로 찢어서 각 지방에 보내어 사람들에게 보이는 형벌을 말한다.- [註 073]
정률(正律) :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정식 조문(條文). 여기서 정률이 아니라는 뜻은 죄인이 지은 죄에 해당되는 율이 아니라는 말이다.○命推官左議政申用漑、判義禁府事李繼孟等, 會于慶會門, 推友曾等。 友曾將受訊杖, 卽呼曰: "請悉服, 一如允禧所告。" 推官問曰: "是則泛服也。 汝當更言汝所言於允禧者。" 友曾曰: "臣語於允禧之言不多, 而允禧欲陷臣於不測之罪, 敷衍增益以告之耳。 臣何能忍杖? 請逐條問之, 臣當逐條以對。" 遂問之, 友曾隨問對曰: "皆是臣所言也。 但射矢東門, 我所不言, 乃允禧所自言也。 羽翼之言, 今始聞之。 臣本以武人, 不能曉解如此文字耳。" 繼孟謂左右曰: "不可平問, 宜加刑訊。" 友曾泣而呼曰: "聖明之下, 當快一死, 何能忍杖? 請實服招。" 下一杖問曰: "射東門之矢, 初不開視而付諸火焰, 射大內之矢, 亦初不出於外間, 爾何知書金淨之痕咎耶?" 友曾曰: "臣何由知之? 乃臆料耳。" 又問曰: "汝旣欲剪除金淨, 其計又欲何爲?" 友曾曰: "有何計乎?" 問曰: "汝但出言而已。 未嘗有計乎?" 友曾曰: "果然。" 每呼云老鬼欺上, 蓋指允禧也。 杖三下, 乃供曰: "將有朴元宗等剖棺斬死, 削去靖國功臣之事, 誠如是言, 則靖國功臣, 其能保存乎等語, 前供以爲允禧之說, 實我先發。 且頃者建春門及大內所射之矢, 皆書金淨等事之語, 非允禧所說, 皆發於我, 而乃臆度之, 無所傳聞。 其他言語, 亦皆我之所說。" 用漑等以供(詞)〔辭〕 啓曰: "言語節次, 雖未能盡記, 而大槪則已悉服矣。 友曾怏怏不得志, 徒發憤言而已, 非爲深計謀大事也。" 傳曰: "覽此供(詞)〔辭〕 , 大槪則已服招矣。 但如此重獄, 前此或親問, 或令政丞按之, 而不務詳盡, 遽取遲晩之供, 是固不可。 今友曾供云: ‘朴元宗等剖棺斬屍事說, 與康允禧者發之無端, 必有所聞矣。 可詳問其節次, 且射矢所書金淨等事, 亦豈臆料所得知也? 竝宜詰問。’ 且事旣歸于友曾, 則允禧可放也。" 於是用漑等, 相與議其罪狀, 用漑曰: "剪除士類, 以快己忿, 此其罪也。" 光祖曰: "不當云以快己忿, 當曰以亂朝廷。" 承旨孔瑞麟、朴壕亦曰: "亂朝廷, 乃其實也。" 用漑、繼孟曰: "亂朝廷, 非其情也。" 如是相持者, 久而未決。 光祖、瑞麟曰: "旣欲剪除士類, 則雖殺一士, 非亂朝廷而何?" 光祖又曰: "罪止於處死則可, 若至於凌遲, 則似過論之。 以亂朝廷, 而罪止於死, 則雖論以以快己忿, 亦可也。 且可蔽之曰: ‘被罪見廢, 常懷忿怨, 搆成虛語, 恐動同類, 將欲剪除士類, 以亂朝廷。’" 用漑等終依光祖所斷而判之, 只刪恐動同類四字。 繼孟曰: "友曾之罪, 止於杖一百, 放三千里之外, 使不生還則可也。 依李茁之罪而定之甚當。" 友曾供結案曰: "本月初二日, 往允禧家, 語曰: ‘金淨、朴祥等將欲剖朴元宗等棺, 斬屍後, 削靖國功臣。 若然則其功臣之類, 果能保存乎? 且頃者, 射矢于建春門及大內, 具載金淨等事, 而上不顧省, 三公亦不論啓。 今賢良、方正科, 若布列朝廷, 則在朝舊臣, 或斥爲敎授、訓導, 或漸放逐。 然則靖國功臣, 亦當除去。 吾等當先幾剪除。’" 友曾自以廢錮, 常懷忿怨, 將剪除士類以亂朝廷云。 傳于用漑等曰: "允禧所告羽翼已成之言, 不現推於友曾, 而射矢、匿名等事, 友曾亦言非巳所自爲, 亦不復現推。 今者臺官來言, 搜得友曾之家, 有詩句, 多有荒唐之詞, 末端又有不掛他眼之語, 又不書姓名, 請窮推。 予未知其詩, 友曾自製耶? 非耶? 此等事, 無奈窮推可乎?" 用漑等回啓曰: "羽翼已成之言, 友曾終始不服。 若窮推, 則慮或誣引常所疾怨之人。 射矢匿名書事, 推之無據。 友曾旣不知諺文,而其筆迹則上已親覽。 若不相似, 則直推友曾, 似未便。 若其詩句之語, 則作詩者, 爲慰謝之詞, 以慰所遺之人, 例也。 其末端所云毋掛他眼之語, 欲不以其拙作, 廣示他人, 乃世俗之常語也。 其簡又有乞墨之語, 恐非其自述, 而乃人之所遺。 大抵不可以文字間語而窮推也。" 傳曰: "可。" 用漑等原情揆法照律以啓曰: "友曾所言, 皆亂言也。 蓋輕妄之人, 發於言辭而已。 可論以《大典》亂言之律, 放濟州等絶島, 使不得生還也。 嫌其罪輕, 旁求他律而不得, 只於律文有姦黨條曰: ‘在朝官員, 交結朋黨, 紊亂朝政者, 斬; 奴妻子, 沒家財云。’ 雖可比律用之, 至於沒家財, 則亦似過重。 況非正律乎? 玆敢論以亂言之律耳。" 傳曰: "所照之律, 正合予意。 交結朋黨, 非正律也。" 用漑等皆有喜色而退。 光祖與瑞麟、壕, 無喜色而相謂曰: "友曾之罪, 止於死則當矣。 減死之論, 過於寬, 士林必歸罪於我輩耳。"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14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
- [註 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