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유운·박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김식에 대하여 사신이 논평하다
조광조(趙光祖)를 승정원 동부승지로, 유운(柳雲)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박호(朴壕)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윤은필(尹殷弼)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김정국(金正國)을 직제학으로, 유인숙(柳仁淑)을 전한(典翰)으로, 신광한(申光漢)을 응교로, 민수원(閔壽元)을 부응교로, 어영준(魚泳濬)·김식(金湜)을 사헌부 지평으로, 임권(任權)을 교리로, 장옥(張玉)을 부교리로, 황효헌(黃孝獻)·손수(孫洙)를 수찬으로, 권운(權雲)을 부수찬으로, 이충건(李忠楗)을 박사로, 이인(李認)을 저작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김식(金湜)은 자(字)가 노천(老泉)으로 경사(經史)에 마음을 기울여 학문이 진보하였으나, 전혀 과거(科擧) 공부를 하지 않고 바야흐로 친구 한두 사람과 더불어 뜻을 가다듬어 학문에 힘쓰되 성현(聖賢)의 학에 뜻을 두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무리들이 그를 헐뜯는 일이 많이 있었으나 그는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고 정진하므로 뒤에는 차차 그를 따르게 되어 칭찬하는 공론이 점차 일어나게 되었다. 김식(金湜)은 조광조와 함께 천거되어 호조 좌랑(戶曹佐郞)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다시 장원(掌苑)으로 바꾸어 제수하였는데, 이제 자급을 뛰어서 지평으로 제수하니 사림(士林)이 경사로 여겼다.
또 사신은 논한다. 심하도다, 사람을 알기 어려움이여! 당요(唐堯)와 같은 성인도 그것을 걱정하였으니 진실로 어려운 일이로다. 김식이 바야흐로 경사(經史)에 잠심하고 있을 때에는 장차 성현의 학문을 궁구하여 일세를 요·순 같은 시대로 만들어 보고자 하였던 것이니, 그 뜻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러나 시세에 편승하여 발탁된 뒤로는 조광조 등의 무리와 함께 대각(臺閣)을 차지하고, 또 안당(安瑭)의 논계(論啓)로 승진하여 조광조와 조정에 올라가서는, 조정의 정사(政事)를 변란시키고 국론(國論)을 어지럽히며 자기에게 붙는 자는 좋아하고 자기와 지취가 다른 자는 배척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 기세를 두려워해서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여 나라가 장차 위망(危亡)할 지경에 이르렀다. 대신092) 의 의계(議啓)로 그들이 특별히 설치한 과목(科目)093) 을 추후로 파(罷)해 버리고 정치를 문란하게 한 그들의 죄를 다스렸는데, 김식은 마침내 망명하여 하정(河珽) 등의 무리와 결탁하고 화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실행하기 전에 탄로가 나서 결국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으니, 그의 현부(賢否)와 시비(是非)도 대강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남은 기세가 4∼5년 뒤까지 남아 대신들에게 끝끝내 보복하고자 하였으므로 자잘한 반란이 계속 일어났다. 조정에서 비록 그 기미를 알고 제거해 버리기는 하였으나 국맥(國脈)을 손상함이 실로 많았던 것이다. 그가 당초에 도학(道學)을 창도한 것은 모두 이름을 얻고 세상을 현혹하는 수단으로 한 것이니, 어찌 보통 사람의 자품으로서 이것을 통찰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으로 본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사람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요, 사람을 쓰는 데는 사람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2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변란-정변(政變)
○以趙光祖爲承政院同副承旨, 柳雲爲司諫院大司諫, 朴壕爲弘文館副提學, 尹殷弼爲成均館大司成, 金正國爲直提學, 柳仁淑爲典翰, 申光漢爲應敎, 閔壽元爲副應敎, 魚泳濬ㆍ金湜爲司憲府持平, 任權爲校理, 張玉爲副校理, 黃孝憲ㆍ孫洙爲修撰, 權雲爲副修撰, 李忠楗爲博士, 李認爲著作。
【史臣曰: "湜, 字老泉, 潛心經史, 學有所得, 不專於擧業。 方與一二友, 奮志力學, 留意聖賢。 囂囂之徒多毁之, 湜猶不變其志, 其後稍稍從之, 公論漸揚。 湜與趙光祖同薦用, 遷戶曹佐郞, 以疾辭, 改除掌苑。 今超持平, 士林慶之。"】
【 又曰: "甚矣, 人之難知也! 雖以唐堯之聖, 亦病之, 則信乎其難矣。 方湜潛心經史之時, 將欲硏窮聖賢之學, 措一世於唐、虞, 其志豈不甚嘉? 及乘時擢用, 乃與光祖輩, 盤據臺閣, 又有安瑭論啓陞遷, 同陞于朝, 廼變亂朝政, (顚例)〔顚倒〕 國論, 喜附己者, 而斥異己者, 人多畏其氣焰, 莫敢開口, 將有危亡之勢。 賴大臣議啓追罷, 別設科目, 定其亂政之罪, 湜竟亡命, 誘結河珽輩, 謀爲禍亂, 不旋踵敗露, 終乃自縊, 則其人之賢否、是非, 亦可槪見矣。 此輩之餘烈, 迄四五年猶未已, 謀欲報復大臣, 群小之亂, 相繼而作。 雖朝廷炳幾除之, 而其於國脈, 損傷實多。 然則當初倡爲道學之時, 儘是盜名眩世之術, 豈中人之資所能洞見? 由是觀之, 爲國之道, 用人爲大, 而用人之術, 知人尤大也。"】
- 【태백산사고본】 17책 3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2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