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 27권, 중종 12년 2월 15일 신유 2번째기사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우찬성 박열의 졸기

우찬성 박열이 졸(卒)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박열은 사람됨이 처신이 간솔하고 안정하였으며, 서사(書史)를 잘 기억하여 자못 전고(典故)를 알았었다. 그러나 성격이 비열 유약하여 남의 뜻을 거스를까 봐 가지가지로 비위만 맞추는 짓을 했고, 비록 벼슬이 재상에 이르렀지만 건백(建白)한 바가 없었다.

또 논한다. 박열은 사람됨이 젊어서부터 재주 있다는 명성이 있어 벼슬이 높은 품계(品階)에 이르렀고, 일찍이 폐조(廢朝)137) 를 거치되 세상 따라 부침(浮沈)하여 화를 면했으며, 두 차례나 정권을 잡아 뇌물을 많이 모았는데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서 간솔하다고 칭하였으니, 교사(巧詐)하지 않고서 이렇게 하였겠는가? 그의 벗 신용개가 취중에 조롱하기를 ‘자네는 남의 뜻을 잘 엿보아 비위를 잘 맞춘다.’고 하였으니, 바로 그의 실지를 파악한 말이다.

또 논한다. 박열은 사람됨이 성격이 간솔 민활하고 문장(文章)에 재간이 있어 두 차례나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청탁(淸濁) 간에 처신을 살펴 하여 세 차례나 전조(銓曹)를 맡고 누차 헌부(憲府)의 장이 되었지만 다른 말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현명한 재상이라고 할 수 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27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258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右贊成朴說卒。

【史臣曰: "之爲人, 處己簡靜, 强記書史, 頗識舊典。 然性卑弱, 恐忤人意, 曲爲低昻, 雖致位宰相, 無所建明云。"】

【又曰: "爲人, 自少有才名, 位至崇品, 曾經廢朝, 浮沈免禍, 而再持政柄, 多致賄賂, 人不得知, 以簡稱之, 不巧詐而能如是乎? 其友申用漑醉中譏之曰: ‘汝善伺人意, 以爲低昻’, 正得其狀矣。"】

【 又曰: "爲人, 性簡敏, 有文章才幹, 再捷科第, 行己在於淸濁之間, 三典銓曹, 累長憲府, 人無間然, 可謂賢宰相也已。"】


  • 【태백산사고본】 14책 27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258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