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 신씨의 복위를 간한 담양 부사 박상 등의 상소문
담양 부사(潭陽府使) 박상(朴祥)·순창 군수(淳昌郡守) 김정(金淨)이 함께 봉사(封事)를 올렸는데, 그 소(疏)에 이르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제왕의 하늘을 이어 극(極)을 세우는 도리는 처음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단서를 만들고 처음을 접하는 것이 올바른 데서 나오면 큰 기강과 큰 근원이 질서정연하게 빛나고, 위에서 움직이면 만 가지 일과 만 가지 교화에 미치는 것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듯 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한결같이 올바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하면서 교화의 성취를 바라는 것은, 비유하면 그 근원을 흐려 놓고 흐름이 밝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있은 뒤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뒤에 남녀가 있고, 남녀가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뒤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뒤에 상하가 있고, 상하가 있은 뒤에 예의(禮義)를 시행할 수 있다.’ 하였으며, 《시경(詩經)》의 대서(大序)에는 이르기를 ‘주남(周南)·소남(召南)은 처음을 바루는 도리요, 왕화(王化)의 기초이다.’ 하였습니다. 대저 《역경》에 건곤(乾坤)을 으뜸으로 하고 《시경》에 관저(關雎)386) 를 처음으로 한 것은, 배필(配匹)하는 것이 인륜의 시초요 만화의 근원이며, 강기(綱紀)의 으뜸이요 왕도(王道)의 큰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노 애공(魯哀公)이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면류관을 쓰고 친영(親迎)하는 것은 너무 중하지 않습니까?’ 하니, 공자가 초연(偢然)히 정색하면서 대답하기를 ‘이성(二姓)의 결합은 선성(先聖)의 뒤를 이어 천지·종묘·사직의 주인이 되는 것인데,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너무 중하다고 이르십니까?’ 하였으며, 제 환공(齊桓公)은 규구(葵丘)의 모임387) 에서 초명(初命)에 ‘첩을 처로 삼지 말라.’ 하였습니다. 대저 공자가 초연히 정색한 것은 어찌 애공이 천지·종묘·사직의 주인됨을 근엄하게 여기지 않고 그 예를 업신여기는 것을 한심스럽게 여겨서가 아니겠습니까? 환공은 패자(霸者)이었을 뿐인데도, 오히려 능히 배필의 중함을 알아서 그 분수를 어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모두 진실로 단서를 만들고 처음을 정하는 도리이니, 왕자(王者)로서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옛날 주(周)나라가 창시(創始)될 적에 태왕(太王)·왕계(王季)388) ·문왕(文王)이 모두 융성한 덕이 있어서, 능히 제가(齊家)·치국(治國)하는 도리를 높여 예도를 문란시키지 않았으므로 대대로 어진 왕비를 얻어, 인륜의 근본을 바르게 하고 왕화의 근원을 맑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나라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고공단보(古公亶父)389) 가 아침 일찍이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좇아 기산(岐山)아래 이르러, 같이 온 강녀(姜女)390) 와 더불어 집터를 살펴봤다.’ 한 것은, 태왕이 적인(狄人)의 난을 당하여 황황한 처지임에도 돈독한 은애(恩愛)를 어기지 않고 왕실의 기틀을 세웠음을 말한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덕스런 태임(太任)391) 이 문왕(文王)의 어머니이니, 주강(周姜)392) 에게 사랑을 받아 경실(京室)의 며느리가 되었다.’ 한 것은, 왕계(王季)가 이처럼 장경(莊敬)한 덕이 있으므로, 배필이 능히 주강에게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여 주나라 왕실의 왕비됨을 잃지 않았고, 경사스러움이 자손에게 계속 되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거북등 무늬로 그 상서로움을 정하시어 위수(渭水)에서 친히 맞을 적에 배로 다리를 만드니 그 광채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고, 또 이르기를 ‘종공(宗公)393) 에 순종하여 귀신들이 원망하지 않으며 애통하지 않았음은, 과처(寡妻)394) 에게 모범을 보여 형제에게까지 이르러 나라를 다스렸다.’ 한 것은, 문왕이 혼례를 중히 여겨 얌전하고 덕있는 왕비를 얻어서 묘사(廟社)·신기(神祇)의 주인으로 삼아, 위로는 거룩한 태임(太任)의 아름다움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규문(閨門)에 본보기가 되어, 방국(邦國)에 왕화를 유행시켰음을 말한 것입니다.
대저 주나라가 처음을 바르게 하고 근본을 단정하게 한 바가 순수하고 결백하여 결함이 없으며, 덕화가 도타와서 투박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하였으므로, 그 왕화가 상자(床笫)395) 사이에서 비롯하여 양양(洋洋)하게 조정 위에 흘러넘치고 패연(沛然)히 사방에 퍼져서, 천지의 조화가 음양(陰陽)에 근본하여 성신(星辰)과 한서(寒署)를 운행하고 산천(山川)·조수(鳥獸)·초목(草木)을 생장 번식시키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지아비는 지아비답고 지어미는 지어미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우며,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와서, 그 사이에 한 치의 간사함이나 터럭만한 더럽힘도 감히 간여함이 없어 하늘과 땅이 자리하고 만물이 육성되기에 이르렀으며, 추우(騶虞)와 인지(麟趾)396) 의 아름다운 상서가 모두 이르러 면면히 8백 년을 지냈으니, 이 어느 것이나 관저(關雎)와 작소(鵲巢)397) 의 교화가 아닌 것이 있습니까?
그 쇠미하여짐에 미쳐서는 내교(內敎)가 무너지고 해이해져, 까닭없이 정후(正后)를 폐하여 물리쳐 마침내 융적(戎狄)의 재앙을 부른 자도 있고, 첩을 적(嫡)으로 삼아 예의 분수를 어지럽혀 마침내 쟁탈(爭奪)하는 혼란을 부른 자도 있습니다. 기타 당 고종(唐高宗) 같은 이는 왕 황후(王皇后)를 폐함에398) 마침내 종묘 사직이 복멸(覆滅)되어 자손이 끊어졌으며, 송 철종(宋哲宗)은 맹황후(孟皇后)를 폐함에 본원(本源)이 전착(顚錯)되고 음사(陰邪)가 빚어져 정강(靖康)의 변399) 이 일어나게 하였거늘, 하물며 첩을 부인으로 삼아 떳떳한 예를 경멸하게 한다면 그 재앙이 어찌 작겠습니까? 위 문제(魏文帝)가 곽귀빈(郭貴嬪)을 세워 황후로 삼으려 하자 중랑(中郞) 잔잠(棧潛)이 간쟁하였고, 당 명황(唐明皇)이 무혜비(武惠妃)를 세워 황후로 삼으려 하자 어사(御史) 반호례(潘好禮)가 간쟁하였습니다. 대저 예로부터 내려오면서 치란 흥망의 자취를 환히 징험할 수 있음이 이와 같으니, 진실로 제왕의 배필을 중히 하고 풍화(風化)의 근본을 바로하고자 한다면, 구차스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 등이 삼가 보건대, 옛 왕비 신씨(愼氏)가 물리침을 입어 밖에 있은 지 이제 거의 일기(一紀)400) 가 됩니다. 신은 그 당초의 연유를 상세히는 모르겠으나, 무슨 큰 까닭과 무슨 큰 명분으로 이런 비상(非常)한 놀랄 만한 일을 하였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대저 임금이 대통을 계승하고 왕위에 오르면 먼저 부부의 도리를 바루어 천지와 같게 해서, 안으로는 음교(陰敎)를 다스리고 밖으로는 양덕(陽德)을 다스려, 묘사(廟社)·신기(神祇)를 나란히 주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대저 배필(配匹)은 그 중대함이 이와 같아서, 진실로 어버이에게 승순하지 못했거나 종묘 사직에 죄를 얻음이 아니면, 비록 작은 허물이나 미세한 잘못이 있더라도 결코 끊어 버리는 의리가 없거늘, 하물며 명분도 없고 까닭도 없이 폐척(廢斥)하였음에리까? 그 어찌 천심(天心)을 누리고 종조(宗祧)401) 를 받들 수 있겠습니까? 한 광무(漢光武)는 원대(怨懟) 때문에 곽후(郭后)를 폐위시켰고, 송 인종(宋仁宗)은 투기(妬忌) 때문에 역시 곽후(郭后)를 폐위하였으되, 당세와 후세에서 오히려 기자(譏刺)하여 마지않아 밝은 임금의 큰 누(累)로 여겼습니다. 지금 신씨는 폐위할 만한 까닭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음에도 전하께서 폐위하신 것은 과연 무슨 명분입니까? 정국(靖國)402) 당초에 박원종(朴元宗)·유순정(柳順汀)·성희안(成希顔) 등이 이미 신수근(愼守勤)을 제거하고는, 왕비가 곧 그 소출이므로 그 아비를 죽이고, 그 조정에 서면 뒷날 후환이 있을까 염려하여, 바르지 못하게 자신을 보전하려는 사사로움을 위하여 폐위시켜 내보내자는 모의를 꾸몄으니, 이는 진실로 까닭도 없고 또 명분도 없는 것입니다. 신씨는 전하께서 용잠(龍潛)403) 하시던 처음부터 정복(貞卜)이 아름답게 화협하여 좋은 배필을 이루었고, 의식을 갖추어서 자전(慈殿)에게 알현하여 고부(姑婦)의 의리가 이미 정하여졌었습니다. 전하께서 들어가 대통을 이으심에 미쳐서는 중곤(中壼)404) 의 자리에 나아가 신민(臣民)의 하례를 받으시고 묘사의 신주(神主)를 받드셨으니, 전하에게는 배필이 이미 세워졌고 조종(祖宗)·신기(神祇)에게는 빈조(蘋藻)405) 를 받듦에 맡길 곳이 있게 되었고, 국인에게는 모후(母后)의 명분이 밝혀졌고, 자전께서는 뜻을 거슬렸다는 꾸지람이 없으셨고, 자주(笫稠)406) 에는 버릴 만한 허물이 없었고, 신인(神人)이 슬퍼하고 원망하는 허물이 없었는데, 전하께서 강한 신하의 제어를 받아 능히 그 항려(伉儷)407) 의 중함을 보전하지 못하셨으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빈천할 때에 사귄 벗은 잊어서는 안되고,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버리지 않는다.’ 하였는데, 신씨가 대저(代邸)408) 에서 술과 장을 담그고 쇄소(灑掃)를 받든지 무릇 몇 해였습니까? 사생 결활(死生契闊)409) 에 의로 서로 믿었고 혼조(昏朝)의 비바람을 함께 맛보았는데, 하루아침에 귀는 구오(九五)410) 에 오르고 부는 천승(千乘)을 소유하게 되자, 헌신 버리듯 하여 높고 낮음의 처지를 달리하니, 마치 하나는 운천(雲天)의 오른 듯하고 하나는 구연(九淵)411) 아래에 빠져들어간 듯합니다. 지존(至尊)의 배필과 금술 좋은 우애로 옥전(玉殿)을 떠나 여염집에 섞여 살면서 경상(景象)이 쓸쓸하므로 듣는 이가 눈물을 흘리니, 태왕이 적인(狄人)의 난을 당하여 황황한 처지에서도 은애를 돈독히 하여 어기지 않던 것과 다릅니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아들이 그 아내와 사이가 매우 좋더라도 부모가 기뻐하지 않으면 쫓고, 아들이 그 아내를 못마땅하게 여기더라도 부모가 이르기를 「나를 잘 섬긴다」 하면, 아들은 부부의 예를 행하여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다.’ 하였으니, 이로써 보건대, 폐출(廢出)하는 의(義)는 한결같이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이 분명하거늘, 지금은 자전(慈殿)께서 명하지 않았는데도 왕실(王室)의 지어미를 경솔히 바꾸었으니, 이는 왕계의 일과 다릅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부부의 도리는 오래지 않아서는 안된다.’ 하였고, 전(傳)에 이르기를 ‘부부는 종신토록 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그 오래도록 변하지 못하는 소이는, 근윤(巹酳)412) 의 예를 지키고 만세의 시초를 중히 여겨 감히 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처음 예문으로 정한 배필을 생각하지 않고, 보불(黼黻)413) 과 빈번(蘋蘩)414) 의 주인을 돌보지 않은 채 흙덩이처럼 버려 내형(內刑)415) 을 떨어뜨리니, 이는 문왕의 일과 다릅니다.
대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도리는 가정에 근본되는 것이므로 한번 집을 바로 하면 천하가 안정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난망(亂亡)이 일어나는 것은 가법(家法)이 바르지 못함에서 근원하지 않음이 없으니, 아조(我朝)의 가법은 모두 바른 데서 나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태조는 창업하여 모범을 보이신 성군이시면서도 폐총(嬖寵)에 빠져 적서(嫡庶)의 분수를 어지럽히고자 하셨고, 선릉(宣陵)416) 에 미쳐서는 암담(黯黮)417) 하였기 때문에 송 인종(宋仁宗)의 그릇된 전철418) 을 밟았습니다. 근본 세움이 한번 어그러지자, 그 유파(流波)가 연산군(燕山君)에 이르러 드디어 넓고 커져서 강상(綱常)이 끊어지매, 종묘와 사직이 거의 폐허가 될 뻔하였으며 그 화가 참혹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뜻밖에 크게 닥쳐온 좋은 운수를 얻고 여조(輿眺)419) 의 붙좇음에 순응하여, 얼올(臲卼)420) 을 헤치고 평탄한 데로 돌리시고 황매(荒昧)한 것을 도려내어 맑은 데에 오르게 하셨으니, 이는 정히 삼령(三靈)421) 이 눈을 씻고 우러러 바라던 바입니다. 새로 왕위에 오르시는 날에 마땅히 한집안의 근본을 단정히 하고, 천지 생민을 위하여 극(極)422) 을 세우고 만세의 넓은 기틀을 크게 세워서, 빛나고 밝기가 해와 달이 중천에 걸린 것과 같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기회였는데, 머뭇머뭇하여 능히 스스로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륜은 왕화의 근원인데 위에서 스스로 먼저 어지럽혔으니 이러고도 치화(治化)가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으니 그 의혹됨을 많이 보겠습니다.
아, 이것이 어찌 홀로 전하만의 허물이시겠습니까? 저 당초에 권세를 끼고 용사(用事)하던 신하의 죄는 죽여도 그 죄가 남습니다. 저 원종(元宗) 등도 명분의 크기가 하늘과 땅처럼 분명하여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어찌 몰랐겠습니까? 오직 그 자신만을 보전하려는 간교한 계교가 뛰어났기 때문에, 방사하고 거리낌이 없이 초매(草昧)423) 하고 위의(危疑)한 때를 타서, 전하께서 자기들의 소위를 감히 이기지 못할 것이라 하여, 군부 겁제하기를 마치 다리 사이와 손바닥 위에 놓고 희롱하듯 하고, 국모(國母)를 내쳐 쫓기를 병아리새끼 팽개치듯 하였으니, 이런 일을 차마 하였거늘 무슨 일인들 차마 못하겠습니까? 그 마음을 미루어보면 비록 동탁(董卓)·조조(曹操)424) 의 소행까지도 뭐 꺼리겠습니까? 인신(人臣)은 난역(亂逆)하지 아니하여야 하며 난역하면 반드시 베는 것은 《춘추(春秋)》425) 의 의리이니, 이는 정히 이런 무리를 위하여 설정한 것이니다. 만약, 신씨(愼氏)가 죄인의 소출이어서 지존(至尊)을 짝하고 종조(宗祧)를 주장하게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으로써 핑계한다면, 수근(守勤)의 죄가 본디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니, 어찌 족히 이로써 왕비를 연루시킬 수 있습니까? 가사, 종묘·사직에 죄를 얻어 벌을 받았다 하더라도 왕비는 참여하여 들은 일이 없으니, 또한 이것을 허물로 삼아 미칠 바가 아닙니다. 옛날 한 선제(漢宣帝) 때에 곽씨(藿氏)가 모역하다가 일족이 주륙(誅戮)426) 되었으되 곽후(霍后)는 참여하여 듣지 않았기 때문에 폐위되지 않았고, 아조의 심온(沈溫)427) 은 헌릉(獻陵)428) 에게 죄를 입었으되 소헌 왕후(昭憲王后)429) 의 옥도(玉度)430) 에 흠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전철을 환하게 징험할 수 있거늘, 하물며 신수근은 당초 나라 일에 관계된 죄가 아니었으니 주가(周家)의 의친(議親)431) 하는 법전에 준하여 비록 용서하여 보전케 하여도 가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미 죄를 더하고 또 기필코 왕비를 연루시켜 폐출(廢黜)하였으니, 이는 자신만을 아끼고 임금은 무시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왕실의 주손으로서 들어가 대통(大統)을 이으시었으니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여 삼대(三代)의 대 이음보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원종 등이 국가 계획을 잘하지 못하여 전하를 쇠세(衰世)의 지역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왜냐하면, 연산군의 무도함이 극심하여 삼강(三綱)이 민멸되어 다시 사람의 도리가 없어져, 신기(神祇)가 싫어하고 조종(祖宗)이 거절하고 친척이 배반하고 인심이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미 폐위된 독부(獨夫)432) 가 되었으므로 이성(異姓)의 손에 대통이 넘어가게 되었더니, 하늘의 도움과 사방의 구가(謳歌)433) 를 힘입어 삼보(三寶)434) 가 전하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전하께서 이에 이른 것입니다. 대저, 왕통을 계승하는 것은 천하 고금의 큰일이므로, 진실로 명백 정대해야 하며 조그만 터럭만큼이라도 숨김이 있어서는 안되며, 태양이 허공에 걸려 만물이 쾌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아야 하니, 그 어찌 구차스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반정(反正) 당초에 마땅히 대비(大妃)의 명을 받들어 연산군이 천지와 조종과 신민에게 거절된 죄를 낱낱이 세어 종묘와 사직에 폭로한 뒤에, 위로 천자에게 고하고 명을 청하여 대위(大位)에 오르심을 밝혀야 하였습니다. 대저, 이와 같이 대통을 이어야 왕위를 계승하는 도리가 명백 정대하여 숨김이 없게 되고, 사방 만세가 우러러 보기를 태양이 허공에 걸린 것과 같이 하리니, 어찌 위대하지 않았겠습니까? 어찌하여 박원종 등은 대의(大義)에 어두워서, 전하께서 광명 정대하게 대통 이으신 것을 짐짓 선위를 교대하는 듯이 글을 지어 천조(天朝)를 속였는지 애석합니다. 전하께서 강한 신하에게 제어를 받아 가교(家敎)가 어그러져서, 인륜의 근본과 왕화의 근원과 처음을 바루는 도리를 밝게 심고 크게 드날리지 못하셨으니, 무엇으로 중화(中和)435) 와 위육(位育)436) 의 공을 이루어 하늘 마음을 안정시키겠습니까? 만화(萬化)가 따라서 날로 박잡(駁姉)하여지고 풍교(風敎)가 자연히 퇴박(頹薄)하여지며, 어그러진 기운이 불울(拂鬱)437) 하고 음양이 차서(次序)를 바꾸고, 일월이 박식(薄蝕)하고, 샘물이 끓어오르고, 꽃과 열매가 겨울에 열리고, 많은 서리가 여름에 내리고 또 비오고 볕들고 바람 불고 우박 내리며, 살별·무지개·고충의 요괴에 이르기까지가 간간이 나타나기도 하고 계속되기도 하였습니다. 요사이 후정(後庭)438) 의 반열이 슬픔을 그친 지 얼마 안되어 장경 왕후(章敬王后)439) 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곤위(壼闈)가 슬픔에 잠겨 고요하니, 생각건대 하늘이 전하를 경계함이 깊습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화한 기운은 상서를 이르게 하고 어그러진 기운은 괴이함을 이르게 한다.’ 하였고, 옛적에 ‘여자가 원한을 품으니 연(燕)나라에 서리가 내렸다.’ 하였습니다. 저 궁항 벽촌의 미천한 한 계집은 보잘것 없어서 하늘에 관계없을 것 같은데, 그 맺힌 원한이 족히 하늘을 감동시켜 서릿발을 달리는 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지존(至尊)의 배필로서 천지·묘사·신인(神人)을 제사지내어 상제(上帝)가 가만히 돌보는 사람인데, 까닭없이 폐척(廢斥)하여 한 방에 낙막(落莫)440) 하게 지내면서 깊이 그윽한 원한을 맺게 하였으니, 천지의 화기가 상하고 거듭하여 계속되는 여러 가지 괴변이 오게 되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성념(聖念)도 또한 이에 미침이 있으십니까? 아, 이미 지나간 과실은 그만이나 어찌 다시 바로 잡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한번 생각을 달리할 계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지금 내정(內政)의 주인이 비었으니, 마땅히 이때를 계기로 쾌히 결단하셔서 신씨(愼氏)를 곤후(坤后)441) 의 자리에 앉히시면, 천지의 마음이 흠향할 것이요 조종의 신령이 윤허할 것이고, 신민의 희망에 부응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장차 이 자리를 누구에게 부탁하고자 하십니까? 이미 떨어진 대의 명분(大義名分)을 보존하고 어그러진 옛 은혜를 온전히 하시면, 이는 바로 대의와 정리에 합당한 것으로 환하여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가사 어떤 사람이 이미 폐위한 것을 이유로 삼아 망령되이 이의(異議)를 낸다면, 이는 전일 폐위하자는 의논을 주장한 신하에게 아부하여 관망하다가 다시 전하의 가법(家法)을 어지럽히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 원종(元宗) 등이 비록 왕실에 큰 공이 있었다고 하나, 그때를 당하여 천명과 인심이 모두 전하에게 돌아갔으니, 비록 이 무리들이 아니더라도 신기(神器)가 장차 누구에게 돌아갔겠습니까? 마침 대인(大人)442) 이 일어나는 기회를 타고 그 힘을 바친 것뿐이었습니다. 그 공을 믿고 방사하게 꺼림없이 군부(君父)를 겁제하여 국모를 내쫓아 천하 고금의 큰 분수를 범하였으니, 이는 만세(萬世)의 죄라 공으로 이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그 발효(跋扈)할 때를 당하여, 전하께서는 확고하게 왕후 폐위하자는 청을 들어주지 않으시고, 협제(脅制)한 정상을 상고하여 전형(典刑)443) 을 밝게 바루어야 했었습니다. 이미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자약(自若)하게 영화와 부를 누리게 하여 주었으니 족히 그 공을 보상하였습니다. 이제 이미 죽었으나, 마땅히 그 죄를 밝게 바로 잡아 관작을 추탈(追奪)하고, 안팎에 효유하여 당세와 만세로 하여금 큰 분수는 절대로 범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환히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 몇가지 일에 대하여 의리에 질정하셔서 지체하고 어려워하지 말고 처리하시면, 이왕의 잘못을 단번에 씻을 수 있으며, 인륜의 근본과 왕화의 근원과 처음을 바로하는 도리가 맑고 광대하여 천지가 캄캄하였다가 다시 개어 탁 트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또 능히 정일(精一)하게 하시고 자신을 삼가서, 성의(誠意)와 정심(正心)하는 마음을 정치하는 이치에 미루어 확충시키면, 주가(周家)의 인지(麟趾)·추우(騶虞)의 왕화가 이로부터 성취될 것이고, 왕업도 8백 년을 지나 만세에 이르도록 무궁할 것입니다.
신 등이 소원(疏遠)한 신하로서 직위를 넘는 책망을 피하지 않고 감히 면총(冕聰)444) 을 더럽히는 것은, 진실로 이 몇 가지 일이 분수와 의리에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중대하기 때문에, 마음속에만 간직하여 두고 한번 임금에게 들려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습니다. 신 등이 가슴에 분울(憤鬱)을 품은 지 오래면서도 전에 능히 말을 내지 못하였던 것은, 정히 장경 왕후(章敬王后)께서 중전에 계시므로 신씨를 복위시키면 장경 왕후의 입장이 곤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장경 왕후께서 돌아가시고 곤위(壼位)가 다시 비었으니, 정히 도로 바로잡을 기회이고 또 구언(求言)하시는 때를 당하였으니, 이러므로 신 등이 급급히 아뢰는 바입니다. 방금 천변이 사라지지 않고 정교(政敎)가 순수하지 못하여 여러 가지 일이 방도에 어긋나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힘씨 공경스럽게 하시어 능히 천심(天心)을 누리소서. 신 등의 구구한 회포와 답답한 생각이 아직도 많으나, 모두 다 말씀드리지 못하니 삼가 전하께서 굽어 살피소서."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이 의논이 매우 올바른 것인데, 좌우의 의논이 분분하여 서로 시비(是非)를 하고, 나중에는 양시 양비(兩是兩非)의 말이 나와,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고 사림(士林)이 반목(反目)445) 하여, 그 화(禍)의 계제(階梯)가 참혹하였다.
상이 소(疏)를 정원에 내리고 전교하기를,
"이는 큰일이다. 어찌 소신(小臣)의 말을 듣고서 할 수 있겠는가? 비록 해조(該曹)에 내리더라도 또한 시행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 소는 정원에 머물러두는 것이 가하다. 그리고, 옛적에 이르기를 ‘출납(出納)446) 을 미덥게 한다.’ 하였다. 정원은 후설(喉舌)447) 의 곳이어서 다만 위에서 전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래의 아뢰는 바도 분명히 살펴서 아뢰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출납을 미덥게 하였다.’고 할 만한 것이다. 평상시에 상언(上言)하는 등의 일은 정원이 으레 입계(入啓)하여야 하나, 만일 구언(求言)에 의하여 봉사(封事)448) 를 올린 것은, 첫면에 ‘임금 앞에서 개탁(開拆)하소서.’라고 적혔어도, 심히 굳게 봉하지 않았으면 뜯어 보고 아뢰어야 한다. 이 뒤로는 비록 그 위아래 끝을 풀로 단단히 봉하여 뜯어 볼 수 없게 한 글이라도 모두 뜯어 본 뒤에 아뢰면, 출납을 미덥게 한다는 데에 합당할 것이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박상(朴祥) 등의 봉사는 위아래를 풀로 봉하여 뜯어 볼 수 없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교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이와 같이 하게 하면, 정직한 말을 올려 권간(權奸)과 환척(宦戚)을 꺼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속마음을 토로하는 이들이, 반드시 억눌리고 막혀서 상달(上達)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하면 비록 흉소(兇小)가 용사(用事)하고 군자가 폐척(廢斥)되어 종묘 사직이 망하게 됨에 이르러도, 만약 간사한 자가 정원(政院)에 앉았으면 임금에게 들어가는 문이 닫혀져 아랫사람의 실정이 막혀서 통하지 아니할 것이니, 그 국가의 해됨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임금의 한 가지 호령과 한 마디 말은 곧 법이 되는 것인데, 그 끝과 처음을 생각하지 않고 이와 같이 잘못할 수 있겠는가? 상이 이렇게 실언하였으니 아, 위태하도다. 경세창(慶世昌)은 도승지(都承旨)로서 정원에 있으면서 한 마디도 그 잘못을 밝히지 않았다. 경세창은 용렬하고 망령된 속인이라 진실로 헤아릴 것도 없거니와, 신상(申鏛)은 조금 지식이 있으면서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이자화(李自華)·윤세호(尹世豪)·성운(成雲)·윤은보(尹殷輔)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박상(朴祥) 등이 논한 중국에 명을 청한 과실과 왕비를 폐한 잘못은 정히 유자(儒者)의 곧은 의논이며, 그 주의가 지극히 충실하고 곧은 말이다. 비록 간혹 맞지 않은 의논이 있긴 하나 어찌 감히 이때문에 나무라겠는가? 상은 출납을 미덥게 한다는 뜻을 몰랐고 아랫사람도 역시 그 직책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그 통탄스러움을 견딜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97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정론(政論) / 왕실-비빈(妃嬪) / 역사-고사(故事)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과학-천기(天氣)
- [註 386]관저(關雎) : 《시경》의 편명으로 문왕이 사씨(姒氏)를 얻어 상하가 화목하고 교화가 널리 퍼졌으므로 궁중(宮中) 사람이 감동하여 찬미한 시.
- [註 387]
규구(葵丘)의 모임 : 규구는 춘추 시대 제나라의 지명. 주 양왕(周襄王) 원년, 즉 노희공(魯僖公) 9년에 제 환공이 규구에서 제후들을 모아 수호(修好)하고 주나라 왕실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한 모임. 이때 맹세한 내용의 첫 조목에 이 말이 있다. 《좌전(左傳)》 희공(喜公) 9년.- [註 388]
태왕(太王)·왕계(王季) : 태왕은 주나라 문왕의 할아버지 고공단보(古公亶父)인데, 무왕이 천자가 된 뒤에 태왕으로 추존하였다. 왕계는 태왕의 막내아들로 문왕의 아버지이다. 이름은 계력(季歷)인데, 무왕이 왕계라고 추존하였다.- [註 389]
고공단보(古公亶父) : 태왕.- [註 390]
강녀(姜女) : 태왕의 비.- [註 391]
태임(太任) : 왕계(王季)의 비.- [註 392]
주강(周姜) : 태왕의 비.- [註 393]
종공(宗公) : 종묘와 선공(先公).- [註 394]
과처(寡妻) : 아내.- [註 395]
상자(床笫) : 즉 평상과 삿자리. 이것들은 부인의 침실에 있는 것이므로 부녀(婦女)를 일컫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규문(閨門)을 가리킨다.- [註 396]
추우(騶虞)와 인지(麟趾) : 모두 《시경》의 편명. 추우는 문왕의 왕화가 백성에게 널리 퍼진 나머지, 초목과 금수에게까지 이른 것을 읊은 시. 인지는 공자(公子)의 신후(信厚)함과 공족(公族)의 창성함을 노래한 시로서, 공자들이 신후하고 예도에 서로 응함이 기린의 덕과 닮은 것을 읊은 시.- [註 397]
관저(關雎)와 작소(鵲巢) : 모두 《시경》의 편명. 관저는 문왕과 태사의 혼인에 대하여 찬미한 시이고, 작소는 제후국 부인이 문왕의 덕화를 입어 모두 순일(純一)한 덕이 있었음을 찬미한 시이다.- [註 398]
당 고종(唐高宗) 같은 이는 왕 황후(王皇后)를 폐함에 : 태종(太宗)의 아홉째아들로서, 황후 왕씨(王氏)를 폐하고 재인(才人) 무씨(武氏:측천무후)를 왕후로 삼았는데, 이 때문에 왕실에 큰 화를 초래하였다. 《당서(唐書)》 권2 고종기(高宗紀).- [註 399]
정강(靖康)의 변 : 정강은 송 흠종(宋欽宗)의 연호. 정강 2년(1127) 금군(金軍)이 남하하여 송나라 수도 변경(汴京)을 함락하고, 휘종(徽宗)·흠종을 납치하여 간 사변.- [註 400]
일기(一紀) : 12년.- [註 401]
종조(宗祧) : 종묘.- [註 402]
정국(靖國) : 중종 반정.- [註 403]
용잠(龍潛) : 즉위하기 전.- [註 404]
중곤(中壼) : 왕후의 자리.- [註 405]
빈조(蘋藻) : 제물(祭物).- [註 406]
자주(笫稠) : 임금을 모시는 내실인 데 내교(內敎)의 뜻.- [註 407]
항려(伉儷) : 배필.- [註 408]
대저(代邸) : 왕위에 오르기 전을 말한다.- [註 409]
사생 결활(死生契闊) : 생사 별리(生死別離)를 말한다.- [註 410]
구오(九五) : 제왕의 지위를 상징하는 양효의 5번째.- [註 411]
구연(九淵) : 깊은 못.- [註 412]
근윤(巹酳) : 혼례식에서 마시는 술.- [註 413]
보불(黼黻) : 옛날 임금의 대례복 치마에 놓는 수.- [註 414]
빈번(蘋蘩) : 제물(祭物).- [註 415]
내형(內刑) : 규문의 법도.- [註 416]
선릉(宣陵) : 성조(成宗)의 능호.- [註 417]
암담(黯黮) : 사리에 어둡다는 뜻.- [註 418]
송 인종(宋仁宗)의 그릇된 전철 : 북송 제 4대 임금. 황후 곽씨(郭氏)를 소박하고, 아름다운 궁인(宮人)들을 괴었는데, 한번은 곽 황후가 인종이 궁인에게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궁인과 다투자, 이를 말리는 인종의 얼굴을 할퀴었다. 이로 인하여 인종이 곽 황후를 폐하였는데, 성종(成宗)이 연산군(燕山君)의 어머니 윤씨(尹氏)를 폐위시킨 경우와 같으므로 인용하였다.- [註 419]
여조(輿眺) : 여망.- [註 420]
얼올(臲卼) : 흔들리고 불안함.- [註 421]
삼령(三靈) : 천신(天神)·지기(地祇)·인귀(人鬼)를 말한다.- [註 422]
극(極) : 한가운데, 즉 왕의 지위.- [註 423]
초매(草昧) : 아직 질서가 정돈되지 않은 것.- [註 424]
동탁(董卓)·조조(曹操) : 간신으로 모두 후한(後漢) 때 사람. 이들은 당시 천자의 위세를 배경으로 하여 제후를 호령하였는데, 그 세력이 천자를 능가하여 천하가 어지러웠다.- [註 425]
《춘추(春秋)》 : 공자가 비판 수정한 노(魯)의 역사서.- [註 426]
한 선제(漢宣帝) 때에 곽씨(藿氏)가 모역하다가 일족이 주륙(誅戮) : 한 선제 때의 대장군 곽광(藿光)의 일을 일컫는다. 곽광은 무제(武帝) 이후 대사마(大司馬)·대장군 등 요직을 역임하면서 오랫동안 집권하였고, 소제(昭帝)·선제를 옹립하여 금위(禁闈)에 출입하기 20여 년이어서 그 족당이 조정에 가득하였다. 곽광이 죽은 뒤 선제가 친정(親政)하면서 곽씨의 병권을 몰수하고, 그 일족을 모반죄로 주살하였다. 《한서(漢書)》 권68.- [註 427]
심온(沈溫) : 조선조 태종 때 정승. 자는 중옥(仲玉). 세종(世宗)의 국구(國舅). 세종 즉위 후 태종에게 죄를 얻어 사사(賜死)되었다.- [註 428]
헌릉(獻陵) : 태종(太宗)의 능호.- [註 429]
소헌 왕후(昭憲王后) : 세종(世宗) 왕비 심씨, 심온의 딸.- [註 430]
옥도(玉度) : 왕후의 기거(起居)·체도(體度).- [註 431]
의친(議親) : 팔의(八議)의 하나인데 곧 임금의 단문(袒免) 이상의 친족, 왕대비·대왕 대비의 시마(緦麻) 이상의 친족, 왕비의 소공(小功) 이상의 친족, 세자빈의 대공(大功) 이상의 친족의 범죄자를 처벌할 때 형의 감면을 의정(議定)하던 일.- [註 432]
독부(獨夫) : 악정을 하여 인민에게 배반당한 임금.- [註 433]
구가(謳歌) : 임금의 어진 덕을 칭송함.- [註 434]
삼보(三寶) : 토지·인민·정치.- [註 435]
중화(中和) :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조화하는 것.- [註 436]
위육(位育) : 천지가 자리하고 만물이 육성됨.- [註 437]
불울(拂鬱) : 성을 내는 것.- [註 438]
후정(後庭) : 후비나 궁녀 또는 그들이 거처하는 곳.- [註 439]
장경 왕후(章敬王后) : 인종(仁宗)의 어머니 윤씨(尹氏).- [註 440]
낙막(落莫) : 마음이 쓸쓸한 모양.- [註 441]
곤후(坤后) : 왕후.- [註 442]
대인(大人) : 덕이 높은 사람.- [註 443]
전형(典刑) : 법규.- [註 444]
면총(冕聰) : 임금이 듣는 것.- [註 445]
반목(反目) : 서로 다툼.- [註 446]
출납(出納) : 임금의 명령을 신하에게 전달하고, 신하의 말을 왕에게 올리는 일.- [註 447]
후설(喉舌) : 임금의 명을 출납(出納)하는 요직.- [註 448]
봉사(封事) : 밀봉하여 왕에게 올리는 의견서.伏以, 帝王繼天立極之道, 莫不以正始爲本是故, 造端凝始者, 出乎正, 則大綱大源, 井井然光明, 動盪于上, 而達之于萬事、萬化者, 如影之隨形; 如響之應聲, 無往而不一于正矣。 反乎是而求化之成, 比猶溷其源, 而望流之淸, 不亦難矣哉? 《易》曰: "有天地然後, 有萬物; 有萬物然後, 有男女; 有男女然後, 有夫婦; 有夫婦然後, 有父子; 有父子然後, 有君臣; 有君臣然後, 有上下; 有上下然後, 禮義有所措。’《詩》大序曰: "《周南》、《召南》, 正始之道、王化之基。" 夫《易》首乾坤、《詩》始《關雎》, 配匹之際, 人倫之始, 萬化之原, 而綱紀之首、王道之大端也。 魯哀公問孔子曰: "冕而親迎, 不已重乎?" 孔子愀然作色而對曰: "合二姓之好, 繼先聖之後, 以爲天地、宗廟、社稷之主, 君何謂已重乎?" 齊 桓公 葵丘之會, 初命曰: "無以妾爲妻。" 夫聖人之愀然作色, 豈不以哀公慢天地、宗廟、社稷之主, 蔑裂其禮, 而爲之寒心乎? 桓公, 伯者耳。 猶能知配匹之重, 不欲舛逆其分焉。 是皆誠以造端、凝始之道, 王者所不可不愼也。 昔周家之創始也, 太王、王季、文王, 咸有盛德, 能隆齊家之道, 式禮不紊, 世得賢妃, 以正人倫之本; 以淑王化之源。, 故周人之詩曰: "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歧下, 爰及姜女, 聿來胥宇。"言太王當狄難遑遑, 而篤恩不違, 肇基乎王迹也。 又曰: "思齊太任, 文王之母, 思媚周姜, 京室之婦。" 言王季有此莊敬之德, 配能盡婦道于周姜, 不失爲周室之婦, 而毓慶源於子孫也。 又曰: "文定厥祥, 親迎于渭, 造舟爲梁, 不顯其光?" 又曰: "惠于宗公, 神罔時怨, 神罔時恫, 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言文王隆重婚禮, 得窈窕之妃, 爲廟社、神祇之主, 上以嗣聖任之徽, 下以儀法乎閨門, 而流化於邦國也。 夫周家之所以正始、端本者, 粹白而罔有瑕謬; 醲厚而罔有漓薄。 如是, 故其王化始于床笫之間, 洋洋流動于朝廷之上, 沛然覃被于四方, 如天地之化, 本于陰陽, 橐龠乎星辰、寒暑; 磅礴乎山川、鳥獸、草木。 當是時也, 夫夫婦婦、父父子子、君君臣臣, 無有寸邪毫累, 敢干其間, 以至天地位、萬物育, 《騶虞》、《麟趾》休祥畢應, 緜歷于八百, 何莫非《關雎》、《鵲巢》之化也? 及其衰也, 內敎崩弛, 有無故廢斥后者, 而卒召戎狄之禍; 有陞妾爲嫡, 紊禮分者, 而竟速爭奪之亂。 其他如唐 高宗廢王皇后, 而終見宗社覆滅、子孫勦絶, 宋 哲宗廢孟皇后, 而本源顚錯, 陰邪釀蘗, 馴致靖康之變, 況以妾爲夫人, 瀆滅其常禮者, 其禍豈少哉? 魏 文帝將立郭貴嬪爲后, 中郞棧潛爭之; 唐 明皇將立武惠妃爲后, 御史潘好禮爭之。 夫古來治亂、興亡之迹, 燎然可驗如此, 誠欲重帝王之匹、正風化之本, 其可苟乎? 臣等伏見, 故妃愼氏, 被斥在外, 殆一紀于玆。 臣未詳厥初之由, 不知有何大故、擧何大名, 而爲此非常駭愕之事乎。 夫王者承統、纉緖, 先正夫婦之道, 以侔乎天地, 內以治陰敎, 外以理陽德, 齊主乎廟社、神祇。 夫配匹之際, 其重大如此, 苟非不順於親、獲罪於宗廟、社稷, 則雖有微諐雖細忒, 決無割絶之義, 矧無名無故而廢斥, 其何以享天心、承宗祧乎? 漢 光武以怨懟而廢郭后, 宋 仁宗以妬忌而亦廢郭后, 當世與後世, 猶譏刺不置, 以爲明君之大累。 今愼氏未聞有可廢之故, 而殿下之廢之, 果何名耶? 當靖國之初, 朴元宗、柳順汀、成希顔等, 旣除愼守勤, 則以爲妃乃其出也, 殺其父而立其朝, 慮有他日之患, 曲爲自全之私, 舞出廢黜之謀, 玆固無故而又無名也。
愼氏自殿下龍潛之初, 載嘉協貞卜, 以成好逑, 備儀以見於慈殿, 姑婦之義已定。 及殿下入承大統, 正位中壼, 受臣民之賀、膺廟社之主, 於殿下褕翟之尊已立, 於祖宗神祗蘋藻之奉有望, 於國人母后之分已明, 慈殿無違忤之譴, 第稠無可去之愆, 神人無恫怨之訧。 殿下受制於强臣, 不能保其伉儷之重, 豈不痛心哉! 古語云: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愼氏備酒漿、奉灑掃於代邸, 凡幾年矣。 死生契闊, 義相孚也, 昏朝風雨, 備同嘗也。 一朝貴躋九五、富有千乘, 則棄之如遺, 崇、庳殊境, 若升雲天, 而入九淵之下。 以至尊之配, 琴瑟之友, 違絶玉殿, 下混閭閻, 景象蕭索, 聞者殞淚, 其與太王當狄難遑遑, 而篤恩不違者, 異矣。 《禮》曰: "子甚宜其妻, 父母不悅, 出; 子不宜其妻, 父母曰: ‘是善事我’, 子行夫婦之禮焉, 沒身不衰。" 以是觀之, 廢出之義, 一聽於父母, 明矣。 今也, 非出於慈殿之命, 而輕替京室之婦, 其與王季, 異矣。 《易》曰: "夫婦之道, 不可以不久也。" 《傳》曰: "夫婦, 終身不變者也。"其所以久而不變者, 守卺酳之禮, 重萬世之始, 不取敢遷易也。 今也不念始者, 文定之配, 不顧黼黻、蘋蘩之主, 播棄若塊, 以墜內刑, 其與文王異矣。 夫治國平天下之道, 本諸家, 一正家而天下定矣。 自古亂亡之作, 靡不原於家法之不正, 我朝家法, 未可謂一出於正也。 太祖以創業垂範之聖, 惑於嬖寵, 欲紊嫡庶之分, 逮乎宣陵, 以黯黮之故, 踵仁宗之弊軌。 立本一差, 其流波, 至燕山而遂蕩, 綱常淪斷, 宗廟社稷, 幾乎墟矣, 其禍慘矣。 殿下得大橫之吉, 順輿眺之屬, 披臲陒而旋于坦夷; 剔荒昧而登于淸郁, 此正三靈拭望顒然。 庶幾其更始之日, 宜端一家之本, 爲天地生民立極, 丕建萬世之宏基, 光昭暐曄, 如揭日月, 而中乎天, 斯其會也, 奄奄然不能自振。 人倫, 王化之源, 上自先汨, 以是而欲望治化之成, 猶緣木求魚, 多見其惑也。 嗚呼! 豈獨殿下之過也? 彼當初挾權用事之臣, 其罪可勝誅耶? 彼元宗等, 亦豈不知名分之大, 如天地之截然不可犯也? 惟其謀身之狡計勝, 故肆然無顧忌, 乘草昧危疑之際, 謂殿下惟其所爲, 而莫敢違拂, 刦制君父, 如弄諸股掌之間, 放逐國母, 有同抛雛,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推其心, 則雖至董、曺, 亦何所憚哉? 人臣無將, 將而必誅, 《春秋》之義, 正爲此輩設也。 若以愼氏, 罪人之出, 不可以配至尊, 而主宗祧, 以是而諉焉, 則守勤之罪, 固非關於宗社, 何足以累乎妃? 就使得罪于宗社而受誅, 妃無與聞之故, 則又非所以爲尤而及之也。 昔在漢 宣帝時, 霍氏謀逆族誅, 而霍后以不與聞, 得不廢。 我朝沈溫被罪于獻陵, 而昭憲王后玉度不玷, 往軌皭然可徵。 況守勤初非關國之罪, 則以周家議親之典, 雖宥而全之, 可也。 今旣加罪, 而又必以累妃而廢黜之, 此不過愛身而無君也。 不特此耳, 殿下以王室之冑, 入纉大統, 名旣正而言旣順, 無愧於三代之繼世。 而元宗等謀國不藏, 立殿下於衰世之域。 何則? 燕山之無道, 極矣, 三綱泯滅, 無復人理, 神祇厭之, 祖宗絶之, 親戚畔之, 人心去之。 獨夫于已移之位, 將爲異姓之刺手, 賴冥冥之陰佑, 四方之謳歌, 三寶允屬于殿下, 故殿下得以至是。 夫纉統繼緖, 天下古今之大事, 固當明白正大, 無有纖毫之幽隱, 如太陽麗空, 萬物快覩, 其可苟哉。 反正之初, 宜擧大妃之命, 悉數燕山見絶于天地、祖宗、臣民之罪, 暴于廟社然後, 上告諸天子而請命焉, 以昭陞大位。
夫如是纉統繼緖之道, 明白正大無有幽隱, 四方萬世, 仰之如太陽之麗空, 豈不偉歟? 奈何元宗等, 闇於大義, 以殿下承統光明正大, 而姑借禪代之文, 以欺詐天朝, 惜哉! 殿下受制於强臣, 家敎乖舛, 人倫之本、王化之源、正始之道, 未能光植, 而弘颺之, 以何者而推致中和、位育之功, 克宅天心乎? 萬化隨而日駁, 風敎自然頹薄, 乖氣拂鬱, 陰陽易序, 日月薄蝕, 水泉沸騰, 花實冬敷, 繁霜夏實, 以至雨暘風雹, 星孛虹霓, 昆蟲之妖, 間見荐因。 頃者後庭之班, 綴悼未幾, 章敬王后遽爾上賓, 壼闈慘閴, 意者, 天其所以警殿下者深矣。 《傳》曰: "和氣致(傷)〔祥〕 , 乖氣致異。" 昔"庶女抱冤, 飛霜擊燕。" 彼窮閭一女之賤, 眇焉微末, 若無預乎天, 而其冤結之氣, 猶足以感召飛霜之變。 若夫以至尊之配, 尸天地、廟社、神人, 上帝所冥顧者, 而無故廢斥, 落莫一室, 永結幽悶, 如是而傷天地之和氣, 來荐仍之諸沴者, 不足怪也。 聖念其亦有及於此耶? 嗚呼! 旣往之失, 則已矣, 豈遂不可以復正乎? 在殿下一轉移之機耳。 今內政缺主, 宜因此時, 廓然快斷, 正愼氏坤后之位, 天地之心所享也, 祖宗之靈所允也, 臣民之望所副也。 殿下將此位, 欲屬之於誰乎? 存大分於旣墜; 全舊恩於已睽, 此正合於大義正理, 洞然無疑矣。 假有或者, 諉以已廢, 妄生異議, 不過附於前日主議之臣, 有所觀望, 復亂殿下之家法也。 彼元宗等, 雖曰有大功於王室, 當其時, 天命、人心, 咸屬於殿下, 雖非此輩, 神器將誰歸乎? 適乘大人之會, 効其力耳。 負恃其功, 肆然不忌, 劫制君父, 放逐國母, 犯天下古今之大分, 此萬世之罪也。 功不可以掩之。 當其跋扈之時, 殿下確然不聽廢后之請, 考按脅制之狀, 明正典刑, 可也。 旣不能然, 使之榮富自若, 足以償其功矣。 今雖已死, 宜明正其罪, 追奪官爵, 曉諭中外, 使當世與萬世, 灼然知大分之截然不可犯也。 伏願殿下, 於此數事, 質諸義理, 處之制之無所滯難, 則可以一灑已往之謬, 人倫之本、王化之源、正始之道, 澄澈光大, 如天地(悔)〔晦〕 塞, 而復開霽呈豁。 殿下又能精一、謹獨, 自誠意、正心, 上推去充諸政理, 則周家《麟趾》、《騶虞》之化, 從此而成, 王業過八百, 至萬歲而無窮矣。 臣等以疏遠之臣, 不避越位之責, 敢冒瀆冕聰, 誠以玆數事, 分義所關, 至重且大, 不可緘于心, 而不一聞于君后也。 臣等胸抱憤鬱久矣, 而前此不能申吐者, 正以章敬王后當壼, 若復愼氏, 難爲章敬地耳。 今則章敬上賓, 壼位復缺, 正反正之機會, 又當求言之秋, 此臣等所以汲汲覶縷陳之也。 方今天變不弭、政敎不純, 庶事乖方, 伏願殿下, 懋惟祗敬, 克享天心。 臣等區區鄙懷鬱念尙多, 有難悉獻, 伏惟殿下垂察焉。
【史臣曰: "此論甚正, 而傍議紛紛, 互有是非。 厥後有兩是兩非之語, 朝廷不靖, 士林反目, 其禍階慘矣。"】
上下疏于政院, 而傳曰: "此是大事, 豈可聽小臣之言而爲之乎? 雖下該曺, 亦難施行, 留此疏於政院, 可也。 且古云: ‘出納惟允。’政院居喉舌之地, 非徒自上所傳之事, 下之所啓, 亦當辨察而啓之然後, 可謂之出納唯允也。 常時上言等事, 則政院例當入啓矣, 如以求言而或上封事者, 則始面書上前開拆, 而不甚堅封, 則固當開見而啓之。 今後雖其上下端, 牢固糊封, 未可開見之書, 亦皆開見後, 啓之則可合於出納唯允。"
【史臣曰: "朴祥等封事, 上下糊封, 使不得開見, 故有是敎。 然一令如此, 則其正直抗言, 不忌權奸宦戚, 吐露忠肝者, 必被抑遏, 不得上達矣。 然則雖至兇小用事, 君子廢斥, 宗社垂亡, 而一有憸人坐政院, 則君門閉隔, 下情壅鬱, 其爲國家之害, 可勝言哉? 人君一號一言, 卽爲成法, 其可不究終始如此其謬乎? 上, 於是乎失言, 嗚呼, 殆哉! 慶世昌以都承旨, 在政院, 不一言以釋其非。 世昌庸妄俗人, 固不足筭, 申鏛稍有知識而亦然, 其與李自華、尹世豪、成雲、尹殷輔, 相距何遠哉? 且朴祥等論請命之失、廢妃之誤, 正爲儒者直論, 其主意至爲忠讜。 雖間有不中之論, 豈敢以此訾之哉? 上不知出納惟允之意, 而下亦不任其職, 可勝痛歟?"】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97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정론(政論) / 왕실-비빈(妃嬪) / 역사-고사(故事)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과학-천기(天氣)
- [註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