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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0권, 중종 9년 4월 11일 갑진 1번째기사 1514년 명 정덕(正德) 9년

성희안의 종을 폭행한 정막개를 추문하게 하다

대간이 합사하여 전의 일을 아홉 번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사헌부(司憲府)가 아뢰기를,

"정막개(鄭莫介)는 본래 성희안(成希顔)의 집 구사(丘史)로서 그 집에서 일해 왔는데, 요사이 그 노(奴) 3인을 시켜 희안의 집에 돌입하여 종을 잡아 때렸습니다. 이는 풍교(風敎)에 크게 관계되니 추문(推問)하여 정죄(定罪)하소서."

하니, ‘추문하라.’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정막개는 본래 의정부(議政府)의 노로서 성질이 몹시 교활하고 간사하며 말을 잘하고 응대(應對)에 능숙해서 고변(告變)할 때에 말하는 것이 물 흐르는 것 같았고, 박영문(朴永文)·신윤무(辛允武)를 지목하여 진술할 때에 언어 절차가 빈틈없고 자세하여 소루함이 없기 때문에 영문 등은 겁이 나서 스스로 변명하지 못하여 그 승복(承服)한 바에 거짓된 데가 많았다. 대개 막개의 말은 빈 데를 막고 부족을 보충해서 듣는 자로 하여금 빈틈을 볼 수 없게 하였고, 영문·윤무의 말은 말을 잘 꾸며서 해명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때에 이르러 희안의 집을 능욕(凌辱)하게 되니, 듣는 자가 누구나 다 분하게 여기고 미워하였으니, 그 교만하고 방자하기가 거의 다 이러하였다. 상 받은 물건이 적지 않았으나 보존하지 못하고 거의 다 잃으니, 얼마 되지 않아 전과 같이 곤궁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1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司法)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신분(身分)

○甲辰/臺諫合司, 將前事九啓, 不允。

〔○〕 憲府啓曰: "鄭莫介, 本以成希顔丘史, 役使于其家。 而近日令其奴三人, 突入希顔家, 捉奴歐打, 此大關風敎, 請推問定罪。" 傳曰: "其推之。"

【史臣曰: "鄭莫介, 本議政府奴, 性甚巧詐, 利口捷給。 當告變之時, 所語如流, 指陳永文允武, 語言節次, 周密詳盡, 不使有疎漏。 永文等, 怯慴不能自明, 其所承服, 多有誣處。 蓋莫介之語, 塞空補缺, 令聽之者不見其罅隙, 而永文允武之語, 不能措辭辨解也。 及是凌辱希顔室家, 聞者無不憤嫉, 其驕橫率多類此。 受賞之物不貲, 而不能保存, 喪失殆盡, 未幾窮困如舊。"】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1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司法)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신분(身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