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들을 새 정자에 가서 구경하며 잔치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오늘은 기후가 온화하니 재상들에게 명하여 새 정자를 가보게 하라. 대저 놀며 구경하는 것은, 다만 산천의 좋은 경치를 위한 것이며, 또 정신을 화창하게 하는 것이니 폐할 수 없는 일이다. 전조(前朝)070) 에도 장원정(長源亭)이 있었고, 아조(我朝)에도 연희궁(衍禧宮)·낙천정(樂天亭)·풍양궁(豐壤宮)·제천정(濟川亭) 등이 있었으니 역시 이 때문인 것이다. 비록 누관(樓觀)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 사치한 것이 진(秦)나라의 아방궁(阿房宮)071) 같지 않다면 무엇이 해롭겠느냐. 또한 군신의 사이는 비록 엄하고 공경함을 주로 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화목하여야 할 처지에 화목하지 못한다면, 정과 뜻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이제 승평 무사하니 군신의 사이는 화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혹 조촐한 잔치에 가만히 대내에 부르기도 하고, 혹 가신이나 명절에 구경도 하게 하는 것이, 정치에 방해되는 일이 아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희롱과 해학(諧謔)을 잘한다[善戲謔兮]’ 하였으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정신을 화창(和暢)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옛날 혜소(嵇紹)072) 는 그 임금이 난을 당하여 좌우가 모두 버리고 갔으되, 홀로 몸으로써 호위하다가 제(帝)의 옷에 피를 뿌리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으로 볼 때에, 인주(人主)가 평시에 성심으로 아랫사람을 대한다면, 어찌 은혜를 갚으려는 정성이 없겠는가. 당 현종(唐玄宗) 때에는 군자는 들[野]에 있고, 소인이 조정에 있었으므로 그런 난을 가져 왔지만, 지금은 군자가 조정에 있고 소인이 들에 있으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군신의 사이를 화창하게 하려면 술이 아니면 안 되므로, 재상들에게 새 정자를 구경하게 하는 것이다. ‘오자지가(五子之歌)’073) 에 이르기를 ‘안으로 여자에게 미혹하거나 밖으로는 사냥에 미혹하거나…[內作色荒外作禽荒]’라고 하였지만, 전고(前古)의 제왕이 액운만 만나지 않으면 범상한 군주라도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운수가 만약 다했다면 비록 요·순이라 할지라도 어찌 능히 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전대(前代)의 사신(史臣)이 임금의 일을 기록하여 뒷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예(例)이지만, 군부(君父)의 일은 악한 것은 숨기고 착한 것은 드날리는 것이 의리에 맞을 듯하다. 임금이 착한 일이 있으면 마땅히 적어서 뒷사람에게 보일 것이며, 설사 착하지 못한 일이 있더라도 신하된 자로서 진실로 마땅히 군부를 위하여 숨겨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착하지 못한 것을 숨겼다 하더라도, 어찌 이것으로써 사관을 죄줄 것인가? 의정부·육조·대간을 명소(命召)하여 의계하게 하라."
하였다. 유순(柳洵)·박숭질(朴崇質)·김감(金勘)·김수동(金壽童)·신준(申浚)·이계남(李季男)·한사문(韓斯文)·신수영(愼守英)·신수겸(愼守謙)·반우형(潘佑亨)·이승녕(李承寧)·김사원(金士元)·이우(李堣)·박호겸(朴好謙)·조영후(趙英珝)·신세련(辛世璉)이 아뢰기를,
"상교가 진실로 지당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61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4 책 38 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편사(編史) / 역사-전사(前史)
- [註 070]전조(前朝) : 고려.
- [註 071]
아방궁(阿房宮) : 진 시황(秦始皇)이 지은 화려한 궁궐 이름.- [註 072]
혜소(嵇紹) : 서진(西晉)의 충신. 진 혜제(晉惠帝) 때 시중(侍中)으로 영흥(永興:연호) 초에 성도왕(成都王) 옹(顒)의 난을 당하여 혜제를 모시고 탕음(蕩陰)에서 싸웠는데, 시위(侍衛)가 다 무너지자 혜소는 몸으로 혜제를 호위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어 그 피가 어의(御衣)에 뿌려졌음. 평난이 된 뒤에 신하들이 어의 세탁하기를 청하니, 혜제는 혜 시중(嵇侍中)의 피이니 빨지 말라고 했음.- [註 073]
‘오자지가(五子之歌)’ : 서경의 편명.○傳曰: "今日氣候溫和, 令宰相等, 往觀新亭。 大抵遊觀, 只爲山川形勝, 且以敍暢精神, 在所不廢。 前朝有長源亭, 我朝有衍禧宮、樂天亭、豐壤宮、濟川亭, 亦以此也。 雖設樓觀, 其奢侈, 若不秦之阿房, 則何妨? 且君臣之間, 雖主嚴敬, 當和而不和, 則情志不孚。 當今昇平無事, 君臣之間, 非和則不可。 或於淸燕, 密召大內, 或於佳辰令節, 許令遊觀, 此非妨政害治之事也。 《詩》云: ‘善戲謔兮。’ 不如是, 不足以和暢其精神。 昔嵆紹, 當君難, 左右皆棄去, 獨以身衛之, 至血濺帝衣。 以此觀之, 人主平時, 誠款接下, 則豈無報效之誠? 唐 玄宗時, 君子在野, 小人在朝, 馴致其亂, 今則君子在朝, 小人在野, 豈非美事? 君臣之間, 若欲和(陽)〔暢〕 則非酒不可, 此所以令宰相, 觀賞於新亭者也。 《五子之歌》云: ‘內作色荒, 外作禽荒。’ 前古帝王, 非遇厄會, 則雖中主, 可以安過。 運數若盡, 則雖堯、舜, 豈能避乎? 且前代史臣, 記人君之事, 以示後人, 例也。 然於君父之事, 隱惡而(楊)〔揚〕 善, 斯合於義。 人君有善, 則當書以示後, 假使有不善, 爲臣者, 固當爲君父諱之。 雖諱其不善, 後人豈以是罪史官? 其命召議政府、六曹、臺諫議啓。" 柳洵、朴崇質、金勘、金壽童、申浚、李季男、韓斯文、愼守英、愼守謙、潘佑亨、李承寧、金士元、李堣、朴好謙、趙英珝、辛世璉啓: "上敎允當。"
- 【태백산사고본】 17책 61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4 책 38 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편사(編史) / 역사-전사(前史)
- [註 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