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승지 등을 제수하는데 적임자를 고르는 방법을 묻다
전교하기를,
"정원(政院)은 후설(喉舌)183) 에 거하여 출납(出納)을 맡았으므로,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중요하니, 의정부(議政府)가 중요하기는 하나 친밀(親密)하기는 정원만 못하다. 승지(承旨)를 통정(通政)으로 제수(除授)하고, 갈아 옳길 때에는 으레 가선(嘉善)으로 올리나, 이것이 어찌 상법(常法)이랴! 또 승지는 육조(六曹)의 참의(參議)와 직임(職任)이 같지 않되 다 통정으로 제수하여 아주 차등(差等)이 없으므로, 이 때문에 승지가 궐원이있으면 희망자가 자못 많다. 작상(爵賞)은 마땅히 위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러하여서는 안 된다. 승지를 앞서 자주 갈았으므로, 재임자(在任者)가 다 ‘나는 빨리 갈릴 것이다.’ 하여, 모두 일에 마음쓰지 않는 수가 있었으니, 앞으로는 모두 가선으로 제수하고 자주 옮기지 않는 것이 어떠한가? 그러나 사람을 알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여느 사람은 말은 잘하는데 그 속은 명민하지 못하며, 침착한 사람은 말이 많지 않을지라도 그중에는 밝고 슬기로운 자가 있으니, 모름지기 조사(朝士) 중에서 정성으로 임금을 아끼고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되, 평소에 국가를 돕기를 주공(周公)184) ·소공(召公)185) ·후직(后稷)186) ·설(契)187) ·고요(皐陶)188) 와 같고, 변란은 당해서는 혜소(嵇紹)189) 와 같으며, 말이 적고 물망(物望)이 있어 승지를 감당할 만한 자를 가려서 치부(置簿)하였다가, 일을 맡겨 보아서 차수(差授)190) 하는 것이 어떠한가? 내가 자나 깨나 이 일을 생각하였으나 오늘에야 말한다. 의정부 및 이·병조(吏兵曹)에 묻는다."
하매, 영의정(領議政) 유순(柳洵), 우의정(右議政) 박숭질(朴崇質), 이조 판서(吏曹判書) 김수동(金壽童), 병조 판서(兵曹判書) 임사홍(任士洪) 등이 아뢰기를,
"정원은 왕명(王命)을 출납(出納)하니 맡은 바가 경(輕)하지 않은데, 통정은 작질(爵秩)이 낮으므로, 2품(品)으로 차수하여 마땅하오나, 가선 이상은 그 수가 많지 않아서 비원(備員)하지 못할 것 같사오니, 통정 중에서 직임(職任)을 감당할 만한 자를 가려서 일을 맡기고서, 잘 해내는지 못하는지를 살펴서 과연 잘하는 자이거든 차례로 보궐(補闕)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는 본디 어렵고 험한 것을 피하지 않고 부지런히 삼가서 일에 임할 따름이다. 이제 살피건대, 풍속이 순정(淳正)으로 돌아가는 듯하니, 이는 곧 어진 재상을 얻은 효력이다. 전에는 조회(朝會)를 받을 때에 기침하거나 침을 뱉아 예절을 어지럽히는 자가 있었으나, 이제는 없으니 풍속이 크게 변한 것을 알 만하다. 그러나 속담에 ‘달리는 말에도 채찍을 더하라.’ 하였으니, 위로는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는 온갖 집사(執事)에 이르기까지 더욱 부지런히 삼가서 공사(公事)를 받들어야 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5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4 책 1 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83]후설(喉舌) : 승지의 직임.
- [註 184]
주공(周公) : 주 문왕(周文王)의 아들, 무왕(武王)의 아우. 성은 희(姬), 이름은 단(但). 무왕을 도와 은 주왕(殷紂王)을 토벌하고, 무왕이 죽은 뒤에는 성왕(成王)이 어리므로 섭정(攝政)하여 무경(武庚)·관숙(管叔)·채숙(蔡叔)을 주살(誅殺) 방축(放逐)하여 난(亂)을 평정하고, 제도(制度)·예악(禮樂)을 정립(定立)하였음.- [註 185]
소공(召公) : 이름은 석(奭). 무왕이 주(紂)를 토멸(討滅)한 뒤에 북연(北燕)에 봉(封)해지고, 성왕(成王) 때에 주공(周公)과 함께 삼공(三公)의 자리에 앉아, 섬(陝) 이서(以西)를 맡아 다스려, 후백(侯伯)으로부터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알맞은 자리를 얻고 직업을 잃는 자가 없게 하였음. 그리하여 소공이 죽은 뒤 백성들이 감당(甘棠) 시를 지어 읊었음.- [註 186]
후직(后稷) : 이름은 기(棄). 주(周)의 시조(始祖)로 무왕(武王)이 그의 15세 손임. 요(堯) 때에 농사(農師)가 되고 순(舜) 때에 후직(后稷)이 되어, 농사를 맡은 장관으로서 국정(國政)을 도왔음.- [註 187]
설(契) : 제곡 고신씨(帝嚳高辛氏)의 아들. 순(舜) 때에 사도(司徒)가 되고, 우(禹)를 도와 치수(治水)의 공을 세워 상(商)에 봉(封)해져 상의 시조(始祖)가 됨.- [註 188]
고요(皐陶) : 순(舜)의 신하로써 법리(法理)에 가장 밝아서 법을 세우고 형(刑)을 제정하고 옥(獄)을 만들었음.- [註 189]
혜소(嵇紹) : 서진(西晉)의 무제(武帝) 때에 비서랑(秘書郞)이 되고, 혜제(惠帝) 때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하간왕 옹(河間王顒) 등의 반란에 혜소는 혜제를 모시고 탕음(蕩陰)에서 싸웠음. 그런데 형세가 불리하여 시위(侍衛)가 모두 무너지니, 혜소는 적을 몸으로 막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죽어 그 피가 혜제의 옷에 물들었음. 적을 평정한 뒤에 좌우의 신하가 혜제에게 그 피를 씻기를 청하였으나, 혜제는 혜 시중(嵇侍中)의 피이니 씻지 말라고 한 일이 있음.- [註 190]
차수(差授) : 임명.○傳曰: "政院, 居喉舌任出納, 所係至重, 議政府雖重, 親密不如政院。 承旨, 以通政除授, 遞遷時, 例陞嘉善, 然此豈常法? 且承旨, 與六曹參議, 職任不同, 而皆以通政除授, 殊無差等, 緣此承旨有闕, 則希望者頗多。 爵賞當出於上, 不可如此也。 承旨前此數遞, 故在任者, 皆以爲我必速遞, 凡事或不用意, 今後竝以嘉善除授, 勿數遷何如? 然知人實難。 凡人有辯於言語, 而其中不敏, 沈重之人, 雖不多言, 而其中有明睿者。 須於朝士中, 選擇愛君以誠, 事君以忠, 平居輔國, 如周、召、稷、契、皋陶, 當亂如嵆紹, 寡言語有物望, 堪爲承旨者置簿, 試以任事而差授何如? 予寤寐思此事, 而今日始言之矣。 其問於議政府及吏兵曹。" 領議政柳洵、右議政朴崇質。 吏曹判書金壽童、兵曹判書任士洪等啓曰: "政院, 出納王命, 所任非輕, 通政秩卑, 當以二品差授。 但嘉善以上, 厥數不多, 恐未備員, 當於通政中, 擇堪任者任事, 以觀其能否, 若果能者, 則以次補闕似當。"傳曰: "臣之事君, 固當不避艱險, 勤謹趨事而已。 今觀風俗, 似乎還得, 是乃得賢相之效也。 向者受朝時, 有咳唾紊禮者, 今則無之, 風俗之丕變可知矣。 然諺云: ‘走馬加鞭。’ 上自公卿, 下至百執事, 當更加勤謹奉公。"
- 【태백산사고본】 16책 5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4 책 1 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