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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54권, 연산 10년 6월 19일 무인 1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전향과 수근비의 죄명을 써 전시케 하다

어서(御書)를 내리기를,

"평안도 강계(江界)에 안치(安置)한 전향(田香)은 머리를 문 위에 달고 사지(四肢)를 전시(傳示)하며, 죄명을 쓰되 ‘흉포(凶暴)한 마음으로 속으로 임금을 원망하여 불경(不敬)한 말을 버젓이 써서 숙용(淑容)의 집에 몰래 붙였다.’ 하고, 온성(穩城)에 안치한 수근비(水斤非)의 머리와 사지도 이와 같이 하여, 죄명을 쓰되 ‘간사한 마음으로 몹시 방해되는 일을 버젓이 행하였다.’ 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성종(成宗)께서는 성덕(聖德)이 높고 밝으시나 투저(投杼)의 의(疑)319) 가 있으셨으며, 그때의 대신(大臣)도 충성스럽지 못하여 드디어 큰 변에 이르렀거늘, 하물며 나는 미치지 못함에랴. 기미(幾微)를 막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지 않으면 침윤(浸潤)·부수(膚受)의 소(愬)320) 를 면하지 못하리라. 《대학(大學)》에 ‘집이 다스려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진다.’ 하였으니, 내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54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640 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왕실-궁관(宮官)

  • [註 319]
    투저(投杼)의 의(疑) : 참소(讒訴)를 여러 번 당하면 근신(謹愼)한 사람도 남에게 의심받는다는 비유로서 또 참소도 여러 번 들으면 그 말을 믿게 된다는 비유. 또 군신간(君臣間)의 그것을 비유함. 증삼(曾參)의 어머니가 베를 짜는데 사람이 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였으나 믿지 않았다가 같은 말을 알리는 사람이 세 번 이르자 드디어 북[杼]을 던지고 짜는 것을 멈추었다는 고사(故事).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 [註 320]
    부수(膚受)의 소(愬) : 참소(讒訴)를 점점 깊이 믿게 됨을 비유한 말. 침윤은 물의 점점 젖어들듯이, 부수는 피부에 때가 끼어 쌓이듯이, 일설(一說)에 침상(寢床)을 차차 깎아서 피부에 미치듯이, 점점 가까워지고 깊어 가는 것을 비유한 것임. 《논어(論語)》 안연(顔淵) 소(遡)는 ‘愬’와 통하는 글자로 참소의 뜻.

○戊寅/下御書曰:

平安道 江界安置田香頭, 懸門上, 四肢傳示。 書罪名曰: "以暴兇之心, 陰怨君上, 靦書不敬之言, 暗貼淑容家。" 穩城安置水斤非頭肢亦如是。 書罪名曰: "以奸邪之心, 靦行切害之事。"

仍傳曰: "成宗聖德高明, 然有投杼之疑。 其時大臣亦不忠, 遂至大變。 況予不逮, 不可不防微。 不則浸潤膚受之愬, 所不免也。 《大學》云: ‘家齊而後國治。’ 予不得不爾。"


  • 【태백산사고본】 15책 54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640 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왕실-궁관(宮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