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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5월 15일 갑진 2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김감·정미수·이계남이 이극균·이세좌·윤필상 등의 족친을 써서 아뢰다

의금부 당상 김감(金勘)·정미수(鄭眉壽)·이계남(李季男)이, 이극균(李克均)·이세좌(李世佐)·윤필상(尹弼商)·성준(成俊)·한치형(韓致亨)·어세겸(魚世謙)의 동성과 이성(異姓) 팔촌 족친을 써서 아뢰니, 전교하기를,

"무릇 내가 쓰는 물건은 모두 불가하다고 하여 중지시키며, 심지어는 의대(衣襨) 같은 것까지도 범람하다고 말을 하였으니, 이는 아랫사람이 위에 계산하여 주려 한 것이다. 이는 모두 정사를 어지럽힌 신하이기 때문에 이렇게 죄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그 뿌리를 다 뽑아버린다면, 뒤에 신하로서 자손이 번성한 것을 믿고 발호(跋扈)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자가 반드시 경계삼아 방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무사들이 극균(克均)에게 아부하기를 여라(女蘿)190) 가 나무에 붙듯 하였으니, 어찌 신하의 도리이겠는가. 필상(弼商)은 간흉(奸兇)하기가 더욱 심하고, 세좌(世佐)는 전후에 중죄를 범하였으므로, 이 세 사람의 족친은 동성 팔촌과 이성 사촌까지, 그 자녀들을 분정하여 귀양보내며, 연좌(緣坐)시키는 법이 없더라도 역시 서울에 살지 못하게 하라.

세겸(世謙)은 ‘대비의 쓰는 것은 사찰(寺刹)에 쓰는 데 지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또한 억측으로 말한 것으로서 그 죄가 원래 중하다. 그러나 치형(致亨) 등에 비하면 좀 경하기 때문에, 증손까지만 죄를 주게 한다. 치형성준의 죄는 세겸보다 중하므로, 동성이나 이성이나 사촌까지 죄를 주어 모두 각 포구의 방어(防禦)하는 곳으로 나누어 보내며, 그 중 법에 의당 연좌될 사람은 모두 형장 때리라."

하고, 또 승정원과 김감(金勘)에게 전교하기를,

"국가의 소용에 대하여 가불가(可不可)를 논하기로 한다면, 신하의 집 용도(用度)를 인군 역시 그 출납에 관여하여 제 스스로 쓸 수 없게 할 것인가. 극균 등은 나의 용도 수량에 대하여 언제나 각 관사로 하여금 상고해서 보고하게 하여 번거롭게 논계(論啓)하였다. 무릇 대신이 인군을 섬기되 그 대강을 총관(總管)할 것이지 자질구레한 사소한 일들을 어찌 다 논할 것인가. 이는 그 마음이 간특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삼대(三代)191) 이전에는 법 제도가 소활하고, 인심이 순후하여 반드시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대저 신하는 마음가짐이 순후하고 간특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신하된 자는 언제나 나라를 근심하는 말을 하여 ‘사직이 중하다.’고 하면서 하는 일은 곧 이러하니, 이는 실로 안에 간흉한 마음을 가지고 겉으로만 사직을 위한 생각과 나라를 근심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대범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비유한다면, 집이 기울게 되더라도 기둥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로 말미암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인군이 혼암하더라도 아래에 어진 신하가 있어 부지(扶持)하고 광구(匡救)한다면, 나라 역시 힘입을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극균 등과 같이 인군이 소소한 일을 하고 안하는 것을 떠들어대야만 할 것인가? 이 뒤부터 정부 대신들은 세쇄하게 하지 말고, 오직 큰 의리가 있는 것을 논집(論執)하여 순후한 풍속을 회복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대저 신하로서 인군을 섬기는 데는 지위의 고하를 물을 것 없이 오직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요, 은총의 후박이나 대우의 경중으로 그 마음을 달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인군이 벼슬을 높이고 은총을 특이하게 한다면, 어찌 그 심력을 다하여 섬기지 않을 것이랴. 지금 재상들이, 누가 혹 술과 고기를 선사하여도 기뻐하는 마음을 갖고 외방 수령이 좀 뇌물을 주더라도 또한 반드시 감사할 줄 안다. 하물며 인군이 존귀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여 지위가 재상이 되게 하였다면 어찌 마음에 감격하지 않을 것이랴. 근자에 극균 등이 정부에 들어와서 하는 일이 이러했으니, 매우 그르다. 정부와 육조·대간(臺諫)에게 효유하도록 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성준(成俊)은 주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만 교수형에 처하도록 하였는데, 다시 생각하니, 대저 불의의 일에 어찌 주창과 추종이 다르겠는가. 또 준(俊)은 전에 경연(經筵)에서 그의 손녀 사위 맞이하는 일로 대간 김인후(金麟厚)와 서로 힐난하되, 음성과 안색이 모두 거칠고, 심지어는 인후를 강포한 사람이라고 욕설까지 하였으니, 만약 위를 공경하는 마음이 있다면 인군 앞에서 어찌 이럴 수가 있겠는가.

대저 대간 역시 신하이니 뜰 아래로 끌어내려 형장을 때리더라도 불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인군으로서 오히려 항상 높여 대우하는 것은 그가 대간(臺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감히 이 같았으니, 불경이 심한 일이다. 지금 을 이미 교수하였으니 다시 다른 형벌을 가한들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그러나 악을 징계하여 후세에 보이고 싶으므로, 다시 중죄로 처벌하지 않을 수 없으니, 능지(凌遲)하라.

극균·치형·이 정부에 있을 때 반드시 세우고 경장(更張)한 법이 많았을 것이요, 또 변방에 출입이 많았으므로 무사에게 편하게 하려 하여 그들이 아뢰어 세운 법이 더욱 많았으리라 생각되니, 지금 사관의 기록을 상고하여 다 삭제해 버리는 것이 어떠한가? 만일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 걸주(桀紂)라고 썼더라도 진실로 삭제할 것이 없다. 그러나 만일 하지도 않은 일을 무함하여 쓰기를 무오년 일과 같이 하였다면, 역시 삭제하는 것이 가하다. 더구나 극균 등이 어기고 그르친 일이겠는가."

하니, 김감(金勘)과 승지들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십니다."

하였다. 좀 있다 전교하기를,

"성준을 능지하여 효수하고, 시체를 돌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626 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가족-친족(親族) / 재정(財政)

  • [註 190]
    여라(女蘿) : 나무에 붙어 사는 이끼.
  • [註 191]
    삼대(三代) : 하(夏)·은(殷) 주(周) 시대.

○義禁府堂上金勘鄭眉壽李季男李克均李世佐尹弼商成俊韓致亨魚世謙同、異姓八寸族親以啓, 傳曰: "凡予所用之物, 皆言其不可而止之。 至於衣襨之物, 亦言其濫, 是在下而計給於上也。 是皆亂政之臣, 故罪之如是耳。 如此人等其根株盡鋤而去之, 則後之人臣, 恃子孫蕃衍, 有跋扈之心者, 必以爲戒, 而不得放恣矣。 且武士之阿附於克均, 如女蘿之附木, 是豈人臣之道乎? 弼商奸兇尤甚, 世佐前後俱犯重罪, 故此三人族親, 限同姓八寸, 異姓四寸, 分配其子女, 雖無緣坐之律, 亦令不得居京。 世謙謂: ‘大妃所用, 爲不過用於寺刹。’ 此亦臆度而言之, 罪固重矣。 然比致亨等差輕, 故只限曾孫定罪。 致亨罪重於世謙, 故限同、異姓四寸定罪, 皆分送各浦防禦處, 其中法當緣坐人竝決杖。" 又傳于承政院及金勘曰: "國家所用, 若論其可不可, 則臣下之家用度, 人君亦當關與出入, 而使不得自用乎? 克均等於予用度之數, 每令各司考申, 屑屑論啓。 凡大臣事君, 當摠其大(猥)〔體〕 , 瑣細事豈可盡論乎? 是其心奸慝, 故如此耳。 三代以前, 法制踈闊, 人心淳厚, 必不如此。 大抵人臣用心淳厚, 而無奸慝可也。 今之爲臣者, 每爲憂國之言曰: ‘社稷爲重。’ 而所爲之事乃如此, 是實內包奸兇之心, 而外爲社稷之念、憂國之言耳。 夫以一事譬之, 屋將傾, 棟(栍)〔柱〕 不撓, 則賴不墜毁。 君雖昏暗, 下有賢臣, 扶持匡救, 則國亦可以賴之, 豈可如克均等, 徒囂囂言人君小事之爲不爲也? 今後政府大臣等, 勿爲細瑣, 唯執大義, 務復淳風。 大抵人臣事君, 無問位之高卑, 而唯當盡忠耳, 不可以恩寵之厚薄、眷待之輕重, 而異其心也。 況人君隆爵而寵異之, 則寧不竭其心力, 而事之乎? 今之宰相, 人或饋遺酒肉, 則猶生喜心; 外方守宰, 少有贈賄, 則亦必知感。 況人君尊貴之、顯榮之, 致位宰相, 則豈不感激於心哉? 近者克均等入政府, 所爲如此, 甚非矣。 其諭于政府、六曹、臺諫。" 又傳曰: "成俊以不首唱, 故只命處絞。 更思之則夫不義之事, 何有首從之異? 且曩於經筵, 以其迎孫女壻事, 與臺諫金麟厚相詰, 聲色俱厲, 至詬麟厚爲强暴之人。 苟有敬上之心, 人君之前, 豈可如此乎? 夫臺諫亦臣子也。 雖牽曳下庭決杖, 未爲不可也。 然人主猶常尊待者, 以其臺諫故也。 敢如此, 不敬甚矣。 今已處絞, 雖更加他刑, 何益哉? 然欲懲惡示後, 不可不更置重律, 其凌遲。 且克均致亨在政府, 必多有建立、更張之法, 又多出入邊鎭, 欲便於武士, 其所啓立之法, 想尤多矣。 今考史錄, 盡削去之何如? 若予所失, 雖以書之, 固不可削去。 然若以所不爲之事, 誣書如戊午年事, 則亦可削矣, 況克均等悖謬之事乎?" 金勘及承旨等啓: "上敎允當。" 俄傳曰: "成俊凌遲, 梟首傳屍。"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626 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가족-친족(親族)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