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5월 4일 계사 2/7 기사 /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성중온·한형윤 등을 곤장 때리다
국역
전교하기를,
"성중온(成仲溫)·성경온(成景溫)은 이세좌의 아들의 예에 의하여 장 80을 때리고, 한형윤(韓亨允)은 장 60을 때리되, 만일 외방에 부처하면 뒤에 혹시 놓이게 될 것이니, 모두 조잔한 고을에 안치하게 하고, 이극균의 아들은 이수형(李守亨)의 예에 의하여 죄를 정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무릇 안치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 도의 감사나 수령이 보호 구휼할 염려가 있으니, 그렇게 하지 말도록 유시하라."
하였다.
원문
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5월 4일 계사 2/7 기사 /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성중온·한형윤 등을 곤장 때리다
국역
전교하기를,
"성중온(成仲溫)·성경온(成景溫)은 이세좌의 아들의 예에 의하여 장 80을 때리고, 한형윤(韓亨允)은 장 60을 때리되, 만일 외방에 부처하면 뒤에 혹시 놓이게 될 것이니, 모두 조잔한 고을에 안치하게 하고, 이극균의 아들은 이수형(李守亨)의 예에 의하여 죄를 정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무릇 안치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 도의 감사나 수령이 보호 구휼할 염려가 있으니, 그렇게 하지 말도록 유시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