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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5월 4일 계사 1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성준의 논죄를 재촉하고 한치형·이극균 등의 죄를 논하다

밝을녘에 삼정승·의금부 당상이 남빈청(南賓廳)에 나가니, 전교하기를,

"성준(成俊)을 급속히 조율하여 아뢰라."

하고, 또 최숙생(崔淑生)에게 묻기를,

"사복시(司僕寺) 밭을 내원포(內園圃)에 속하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네가 먼저 발언했느냐? 만일 먼저 발언한 자가 있으면 빨리 잡아다 국문하라."

하였다. 유순(柳洵) 등이 아뢰기를,

"전일 한치형(韓致亨)·이극균(李克均)이 죄를 ‘승여를 지척하되 정리에 극히 해롭게 한 율[指斥乘輿 情理切害之律]’로 논하도록 하셨는데, 지금 의 공초에, ‘전일 논술한 일들은 모두가 치형·극균에서 나온 것이요, 저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서명(署名)을 한 것뿐이다.’고 하니,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감히 품합니다. 또 숙생(淑生)을 국문한즉, 먼저 말을 한 것은 정인인(鄭麟仁)이라 하니, 잡아다 빙국(憑鞫)함이 어떠하리까?"

하니, 전교하기를,

"유빈(柳濱)·이철균(李鐵均) 같은 자는 먼저 주창한 사람이나 자수하였기 때문에 모두 사형을 감하여 종이 되게 한 것이다. 성준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모의에 참여했을 것이니, 교수형에 처하는 것이 어떤가. 또 그 손자는 직첩을 거두고 서울에서 살지 못하게 하며, 그 아들 역시 외방으로 내보내야 한다."

하였는데, 유순 등이 아뢰기를,

"교수형에 처함이 지당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숙생은, 위에 바치[供上]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아뢰었다 하나, 대저 내포(內圃)에 속하면 어디에 쓰겠는가. 말이 매우 간사하니 형신하여 아뢰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성준을 교수형에 처하되, 에게 이르기를 ‘네가 경연(經筵)에서 김인후(金麟厚)와 자기 일을 가지고 서로 힐난하여 말지 않았으며 심지어 포악하다고까지 말하였으니, 그 죄가 하나요, 중금(中禁)174) 노형손(盧亨孫)의 사형을 의논할 때, ‘바로 위에 속한 일이 아니다.’고 말하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또 궁중의 일을 짐작으로 억측하여 말하는데, 가령 다른 사람이 말하더라도 네가 금하고 막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하였으니, 그 죄가 셋이다.’고 하라."

하였다. 이어 정승들에게 전교하기를,

"지금 위를 능멸하는 풍습과 누설하는 풍습이 있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대신을 공경하고, 여러 신하들을 체받다.[敬大臣 體群臣]’고 하였다. 내가 언제나 승지들이 후설(喉舌)의 자리에 있으면서 매우 근고(勤苦)한다고 하여 일찍이 더 대우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재상과 대간(臺諫)에 대하여도 역시 존대하였는데 그들은 그렇지 아니하여 대간은 궁중의 비밀한 일이라도 감히 말하여, 또 김일손(金馹孫) 같은 무리는 들은 것이면 쓰지 않는 것이 없어 무도한 말을 많이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가한가. 예전에175) 이르기를 ‘나를 돌보아 주면 임금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다.[撫我則后 虐我則讎]’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재상과 대간으로 대우하는데, 재상과 대간은 그 도로써 섬기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죄를 주는 것이다. 지금 풍속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마음먹고 통렬히 고치는데 아직도 다 없어지지 않았다. 이 뒤에는 재상·대간이라 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으면 죄를 주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이 뜻으로 다시 전지(傳旨)를 내려 깊이 알도록 하라.

이세좌(李世佐)의 죄는 난신(亂臣)이나 다름이 없다. 그 아들 이수형(李守亨) 등 4인과 급제한 이세걸(李世傑)을 베이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모두 참형(斬刑)에 처하게 하려는데 정승들의 의견은 어떤가? 성준(成俊)의 아들 성경온(成景溫)·성중온(成中溫)은 외방에 부처(付處)하고, 그 손자와 한형윤(韓亨允) 역시 극균(克均)의 아들의 예에 의하여 형장을 때려 내보내는 것이 가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반드시 중죄로 논한 뒤에야 통쾌하기 때문이다."

하매, 순(洵) 등이 아뢰기를,

"세좌의 자제를 한결같이 난신의 준례로 논단하는 일을 율조문을 상고하온즉 ‘부자(父子)의 나이 만 16세 이상은 교수형에 처하고, 동생은 공신의 집에 종으로 나누어 준다.’고 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그 아들은 교수형에 처하고 동생은 종이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율조문에 의하여 논단하라."

하였다. 의금부 당상 정미수(鄭眉壽) 등이 아뢰기를,

"세좌의 아들로서 평안도안치(安置)176) 된 자가 3사람이요, 함경도에 안치한 자가 2사람인데, 본부(本府)의 낭청(郞廳) 수가 적으니, 낭청 한 사람씩을 한 도에 보내어 모두 교수형을 집행하도록 하고, 세걸은 이미 흥양현(興陽縣)에 부처하였는데, 그대로 그 고을에서 종이 되게 함이 어떠하리까?"

하니, 전교하기를,

"5인의 처소에 각각 낭청을 보내어 잡아다가 교수형에 처하게 하고, 세걸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20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신분-천인(賤人)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왕실(王室) / 농업-전제(田制) / 가족-친족(親族) / 인사-관리(管理)

  • [註 174]
    중금(中禁) : 액정서의 하인.
  • [註 175]
    예전에 : 《서경》 태서(泰誓) 하편.
  • [註 176]
    안치(安置) : 귀양보내어 가두어 둠.

○癸巳/遲明, 三政丞及義禁府堂上詣南賓廳, 傳曰: "急速照律以啓。" 且問崔淑生曰: "司僕寺田屬內園圃未便事, 汝先發言耶? 如有先發言者, 則其速拿來鞫之。" 柳洵等啓: "前此韓致亨李克均之罪, 命論以指斥乘輿, 情理切害之律, 而今供辭曰: ‘前日論列等事, 皆出於致亨克均, 而己不出一言, 但署名而已。’ 何以照律? 敢稟。 且鞫淑生則云: ‘先發言者, 鄭麟仁也。’ 請拿來憑鞫何如?" 傳曰: "若柳濱李鐵鈞則其首唱人自首, 故皆減死爲奴。 則雖云: ‘不出一言。’ 必參謀矣, 處絞何如? 且其孫收職牒, 使不得居京, 其子亦當出送于外。" 等啓: "處絞允當。" 傳曰: "淑生雖云: ‘未知供上之事而啓之。’ 然夫屬於內圃, 用之何處? 言甚奸詐, 刑訊以啓。" 又傳曰: "成俊處絞, 令語曰: ‘汝於經筵, 與金麟厚將自己事, 相詰不已, 至稱暴惡, 其罪一也。 中禁盧亨孫議死時, 以不直屬上言之, 其罪二也。 且今宮禁之事揣度而言, 假如他人言之, 汝當禁遏, 而敢言之, 其罪三也。’" 仍傳于政丞曰: "方今有陵上之風、漏洩之風。 《中庸》曰: ‘敬大臣, 體群臣。’ 予常時以爲, 承旨居喉舌之地, 甚爲勤苦, 未嘗不加待。 至於宰相及臺諫亦尊待, 而彼則不然, 臺諫雖宮禁秘事, 亦敢言之。 且如金馹孫輩, 聞無不書, 多爲不道之言, 是豈可乎? 古云: ‘撫我則后, 虐我則讎。’ 然予則待之以宰相、臺諫, 而宰相、臺諫不以其道事之, 故如是科罪耳。 以今風俗不美, 銳意痛革, 而尙未殄絶。 今後雖宰相、臺諫, 有此等事, 則科罪不貰。 其以此意, 更下傳旨, 使之深知。 且李世佐之罪, 與亂臣無異, 其子守亨等四人及弟世傑不誅何爲? 皆欲處斬, 於政丞意何如? 成俊景溫仲溫外方付處, 其孫韓亨允亦依克均子例, 決杖出送可也。 如此之(從)〔徒〕 , 必重論而後, 爲大快也。" 等啓: "世佐子弟, 一依亂臣例論斷事, 考之律文, 則父子年滿十六歲以上處絞, 同生則給付功臣之家。 以此觀之, 其子則處絞, 而同生則當爲奴矣。" 傳曰: "依律文論之。" 義禁府堂上鄭眉壽等啓: "世佐之子安置于平安道者三人, 咸鏡道者二人, 而本府郞廳數少, 請遣郞廳一人于一道, 令竝處絞。 世傑已付處于興陽縣, 仍其縣爲奴何如?" 傳曰: "五人處各遣郞廳, 拿來處絞。 世傑事依所啓。"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20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신분-천인(賤人)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왕실(王室) / 농업-전제(田制) / 가족-친족(親族)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