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을 정승과 의금부 당상으로 하여금 국문케 하다
의금부 낭청(郞廳)이 성준(成俊)을 직산(稷山) 배소(配所)에서 잡아오니, 급히 삼정승과 의금부 당상 및 승지 박열·권균·이계맹을 불러 빈청(賓廳)에서 국문하였다. 당초 준을 잡아올 때에, 의금부에서 법에 의거하여 목에만 칼을 씌웠는데, 왕이 중인(中人)을 시켜 가만히 살펴보고,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전번에 사형수로 잡아오도록 하였는데, 목에만 칼을 씌운 것은 어쩐 일이냐? 의금부에 물어보라."
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율(律)의 공신의친조(功臣議親條)에 ‘당상관이나 사족(士族)의 부녀자로서 사형받을 자는 목에 칼을 씌운다.’ 하였으므로, 지금 사형수로 가두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율(律)의 주에 ‘종사(宗社)에 관계된 것은 이 한계에 부재하다.’ 하였으니, 법대로 하여 가두게 하라. 또 들은즉 준의 기운이 매우 지쳤다니 만일 형신(刑訊)하다가 조지서(趙之瑞)처럼 곧 죽게 되면 안되니, 모름지기 조리 보호하게 하고 뒤에 형벌을 행하게 되면 속히 시행하라."
하였다. 얼마 있자 준(俊)이 병들어서 걷지 못하므로, 떠메 엎고 대궐 문 밖에 왔는데, 전교하기를,
"대궐 안까지 떠메 오는 것은 불가하니, 끌고 들어와서 국문하라."
하였다. 이때 준이, 형틀을 차고 목과 발에 칼과 차꼬를 찼는데, 늙고 병들어 걷지 못하므로 옥졸 5인이 끼고서 빈청 서문 밖으로 들어왔으나, 지쳐서 앉지도 못하므로, 옥졸 3인이 함께 부축하여 앉혔다. 도사(都事) 김양언(金良彦)으로 앞에 나가 그가 이극균(李克均)·한치형(韓致亨) 등과 함께 아뢴 시폐(時弊) 10조를 읽었다. 그리고 하교하기를,
"네가 여러 조정을 섬겨 왔으므로 정승을 삼았는데, 무사가 활쏘고[觀射] 말타는[騎馬] 것 같은 일을 어찌 궁중의 일로 지레 짐작하고서 말했느냐? 아래 있는 사람이 혹 말하더라도 정승된 자로서 당연히 중지시켜야 할 것인데, 도리어 말을 하니 어쩐 일이냐? 그때 주창한 자가 누구냐? 정승된 자는 인군을 섬기는 데 있어 악한 일을 숨기고 선한 일을 널리 알려야 하는 것이다. 네가 비록 바르게 보필하는 것이라 하지만, 정말 바르게 보필하려면 공순하여야 하는 것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일 이극균(李克均)이 병들었을 때에, 혹은 별감(別監)을 보내고 혹은 중사(中使)를 보내어 줄을 이어 문병하고, 여러 번 음식을 하사하였었다. 또한 인군의 녹을 먹으니 은혜 역시 지극한데, 도리어 흉악하고 사특한 마음을 가지고 무사들을 집에 불러들였으니, 변방의 준비를 위한 것이라면 가한 일이지만, 집에 있으면서 무인들을 모아들였으니, 이는 다름 아니라 인심을 수합하여 반역을 하려 한 것이다. 너도 극균의 술책 속에 빠져 그런 짓을 하였느냐? 신하로서 인군 섬기기를 진실하게 하여야 하는데, 밖으로는 인군을 섬기는 체 하면서, 안으로는 그렇지 않다면 될 일이냐. 너를 정승이 되게 한 것이 누구냐?"
하고, 드디어 승전 내관(承傳內官) 김새(金璽)를 명하여, 준을 국문하는 상황을 가보게 하였다. 정승 및 금부 당상들이 아뢰기를,
"준이 눈이 어두고 정신이 혼미하여 전교하신 말씀을 보지 못하므로, 신들이 낭청(郞廳)을 시켜 앞에 가서 읽어 들려주게 하였습니다."
하고, 드디어 공초(供招)한 말을 아뢰었는데, 공초에 이르기를,
"신이 젊었을 때부터 붕우(朋友)나 친척간에 서로 왕래하여 만나보지 않았고, 집에 있을 때에도 손님을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들어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한치형·이극균이 때로 궁중 일을 말하였는데, 신이 곧 그 허실을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궁중 일을 자세히 묻기가 미안하므로 듣고서도 일찍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전건(前件)의 일은 생각건대, 치형과 극균이 역시 신에게 아뢰자고 한 것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혼자서 중지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계달(啓達)하였으니, 신이 실로 죄가 있습니다.
또 극균이 항시 무사를 불러 접한 일은 신 역시 마음에 매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극균과 뜻이 맞지 않아 일찍이 그 집에 왕래한 일이 없는데, 이는 여러 사람들이 다 아는 일입니다.
위의 시폐(時弊)를 조목조목 아뢴 일은, 역시 극균이 먼저 주창한 것이요, 한 마디말도 신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천지 신명이 다 아는 일입니다. 신이 본래 재주와 덕이 없으면서 외람되게 성상의 은혜를 입어 지위가 정승에 이르고 은총과 대우가 제일 중하여 감격됨이 망극하였으니, 금중의 일을 주창하여 말할 리가 만무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조율(照律)하여 아뢰라. 한치형은 부관 능지(剖棺凌遲)하고 가산을 몰수하며, 분묘와 비석 등 물건을 다 부수어 버리라. 장차 사람을 보내어 가 보게 하리라. 자식이 있으면 역시 죄를 다스리도록 하고, 극균도 역시 가산을 몰수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20 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왕실(王室) / 가족-가산(家産) / 정론-정론(政論)
○義禁府郞廳拿成俊于稷山配所而來, 命急召三政丞、義禁府堂上、承旨朴說ㆍ權鈞ㆍ李繼孟, 鞫于賓廳。 初, 俊之拿來, 禁府據律只項鎖。 王命中人伺察之, 傳于承政院曰: "曩命以死囚人拿來, 而只項鎖何也? 其問于義禁府。" 禁府啓: "律, 功臣、議親、堂上官、士族婦女死罪者項鎖。 今以死囚囚之, 故如此耳。" 傳曰: "律注云: ‘關係宗社, 不在此限。’ 其依法囚之。 且聞, 俊氣甚憊, 若刑訊而如趙之瑞卽斃則不可。 須令調護後若典刑, 當使快施。" 已而, 俊病不能步, 舁至闕門外, 傳曰: "闕內不可舁入。 其扶曳入來鞫之。" 時, 俊具械杻項足鎖, 老病不能步。 獄卒五人挾入賓廳西門外, 憊不能坐。 獄卒三人共支撑令坐, 使都事金良彦就前, 讀其與李克均、韓致亨等所啓時弊十條, 且敎曰: "汝歷事累朝, 作爲三公, 而如武士觀射、騎馬等事, 何乃揣度宮禁之事, 而言之乎? 在下之人, 縱或言之, 爲三公者, 固當止之, 而反言之何也? 其時首唱者誰耶? 爲三公者, 事君當隱惡而揚善。 汝雖曰: ‘爲輔正。’ 若眞欲輔正, 則當恭順, 不宜如此。 前日李克均病時, 或遣別監, 或遣中使, 絡繹問病, 累賜食物。 且食君之祿, 恩亦至矣。 反懷凶邪之心, 招接武士於家, 若防禦邊備猶可也, 在家而聚武夫, 是無他, 欲收人心, 爲不軌也。 爾亦入克均術中, 而爲此乎? 人臣當事君以實, 外爲事君之容, 而內則不然可乎? 使汝爲三公, 誰所致也?" 遂命承傳內官金璽見鞫俊狀。 政丞及禁府堂上等啓: "俊目昏精迷, 不能見傳敎之言。 臣等令郞廳就前讀, 使聽之。" 遂以供辭啓, 其供云: "臣自少, 於友朋、親戚間, 不相往來相見。 在家時, 亦不接客, 故凡事無所聞知。 韓致亨、李克均有時言禁內事, 臣卽欲問其虛實, 而禁內之事詳問未安, 故雖聞而未嘗答之。 前件事, 意致亨、克均亦要臣請啓屢矣, 臣不能獨止, 因而啓達, 臣實有罪。 且克均常時招接武士, 臣亦心甚惡之, 遂與克均, 志意不合, 未嘗往來其家, 此衆所共知。 上項時弊條陳事, 亦專是克均首唱, 一言不出臣口, 天地神明所共知。 臣本無才德, 濫蒙上恩, 致位三公, 恩遇最重, 感激罔極, 萬無唱說禁〔內〕 事之理。" 傳曰: "照律以啓。 韓致亨剖棺凌遲, 籍沒家産, 墓道碑石等物盡碎破, 將遣人視之。 有子則亦可治罪, 克均亦籍沒。"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20 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왕실(王室) / 가족-가산(家産)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