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윤4월 23일 계미 6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경연을 정지하다

전교하기를,

"근자에 몸이 불편한 데다가 또 큰일을 만나서 마음을 썼더니 기운이 안정되지 않는 것 같다. 경연(經筵)을 정지하려 하는데, 어떤가?"

하니, 유순(柳洵) 등이 아뢰기를,

"근자에 큰일이 있고 또 국상[國恤]을 만나니, 신 등이 항상 성체(聖體)가 어떠하신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근일 경연은 정지함이 가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주색에 빠져, 학문을 강할 생각이 없는데, 등이 견책당할 것을 두려워, 역시 권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경연이 영영 폐지되어 왕의 위엄과 포학이 날로 심하여 한 마디의 말이 왕의 뜻을 거슬러도 문득 죄주고 베므로 조정의 사람마다 위태롭게 여겼다. 순(洵)허침(許琛)·박숭질(朴崇質)이 정승이 되어서도 그저 자리나 채울 뿐 감히 바로 잡는 일이 없었고, 오직 명을 받들어 순종할 뿐이었다.

이때 김수동(金壽童)·정미수(鄭眉壽)·김감(金勘)·이계남(李季男)이 의금부(義禁府) 관원이 되고, 강귀손(姜龜孫)·김수동(金壽童)·송질(宋軼)·허집(許輯)이 춘추관(春秋館) 관원이 되고, 박열(朴說)·이계맹(李繼孟) 등이 승지가 되었는데, 모두 해치려는 마음이 없어, 무릇 역사를 상고하여 죄를 의논하는데 힘써 구원하였으며, 순(洵) 등이 또 많이 미봉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혹 그 힘으로 살아나기도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616 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傳曰: "近因不平, 又値大事, 不無用慮, 氣似不定, 欲停經筵何如?" 等啓曰: "近有大故, 又値國恤, 臣等常慮聖體何如。 近日經筵可停。" 王荒於酒色, 無意講學。 等畏譴, 亦不能勸經筵, 自是永廢。 王威虐日甚, 片言忤旨, 輒加罪戮, 朝廷人人自危。 許琛朴崇質爲相, 但備位, 不敢有所匡正, 唯承順而已。 時, 金壽童鄭眉壽金勘李季男爲義禁府, 姜龜孫金壽童宋軼許輯爲春秋館, 朴說李繼孟等爲承旨, 皆無險害之心, 凡考史議罪, 務爲營救。 等又多彌縫, 故人或賴以全活。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616 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