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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윤4월 20일 경진 2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전 사헌부 지평 이유녕의 졸기

의금부 낭청이, 사천(泗川)에서 이유녕(李幼寧)을 잡아왔다. 전교하기를,

"곧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베어 저자에 효수(梟首)하되, 백관이 차례로 서서 〈보기를〉 전과 같이 하라."

하고, 승지 박열(朴說)·이계맹(李繼孟)과 내관(內官)을 명하여 형을 감독하게 하였다. 그리고 효유하게 하기를,

"네가 경솔하게 친구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의 비밀을 발설하되 공론(公論)이라 칭탁하여, 중죄에 빠지게 무고하였으니 죄를 용서할 수 없다. 그리하여 형벌에 처하게 하니, 그리 알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유녕태종의 5대 손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뽑혀 승문원(承文院)에 보임되었다. 후에 이조 좌랑(吏曹佐郞)이 되었으며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으로 옮았다가, 구세건(具世健)의 일로 하여 베임을 당하였다. 처음 유녕의 아비 주계군(朱溪君) 이심원(李深源)성종(成宗)을 면대하여, 임사홍(任士洪)의 간사함을 극론하였는데, 사홍이 이로 하여 오래도록 폐출 금고(禁錮)되어 원한이 골수에 사무쳤다. 그러나 말하지 못하다가 뜻을 얻은 후에는 죄를 얽어 만들어서, 유녕과 그 아비 심원, 아우 이유반(李幼盤)을 죽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14 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義禁府郞廳自泗川, 拿李幼寧而來, 傳曰: "其卽斬于軍器寺前, 梟首于市, 百官序立如前。" 命承旨朴說李繼孟及內官監刑, 令諭之曰: "汝輕聽友人之言, 發人陰事, 托爲公論, 誣陷重罪, 罪不可赦。 玆命典刑, 其知之。"

    【史臣曰: "幼寧 太宗五世孫。 好學登第, 選補承文院, 後爲吏曹佐郞, 遷司憲持平, 以具世健事被誅。 初, 幼寧朱溪君 深源面對成宗, 極論任士洪之奸。 士洪以此, 久廢錮, 怨入骨髓, 未有以發。 及得志, 搆殺幼寧竝及其父深源, 弟幼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14 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