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윤4월 17일 정축 2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가뭄 뒤 비가 오니 간사함을 씻어 주는 것이라 풀이하다
전교하기를,
"하늘이 높아도 낮은 데까지 듣는다. 전일에, 음흉 간사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비가 오려다가 도로 그쳤다. 지금 정성근(鄭誠謹) 등이 베임을 당하였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은택이 있다. 이것이 어찌 간사함을 씻어버리는 비가 아니겠는가? 전에 비가 오지 않은 것은 음사(陰邪)한 사람이 양(陽)에 간여하여 위를 능멸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니, 승지 강징(姜澂)이 혼자 정언(政院)에 있다가 아뢰기를,
"예전에 ‘병기(兵器)를 씻는 비’139) 라 하고, 또 ‘홍양(弘羊)140) 을 삶으니, 하늘이 비를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요사이 가뭄이 심하다가 비가 지금 오니 신의 생각도 역시 그러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13 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과학-천기(天氣) / 정론(政論)
- [註 139]‘병기(兵器)를 씻는 비’ : 무왕(武王)이 주를 토벌한 뒤에 바람이 불고 큰비가 왔다. 그러자 산의생(散宜生)은 ‘이것은 요망한 것입니다.’ 했다. 그러나 무왕은 ‘아니다. 하늘이 병기를 씻는 것이다.’ 했다 함.
- [註 140]
홍양(弘羊) : 옛날 중국 한(漢)나라 사람 상홍양(桑弘羊)을 말함이다. 상홍양은 낙양(洛陽) 장사꾼의 아들로 머리가 좋고 수학에 능하며, 무제(武帝)의 신임을 얻어 대농승(大農丞)·어사 대부(御史大夫) 등 요직을 지냈으며, 곽광(霍光)과 함께 유조(遺詔)를 받아 소제(昭帝)를 보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에 공을 믿고 곽광을 원망하며, 상관걸(上官桀)과 함께 반역을 계획하다가 처형되었다. 《한서(漢書)》. - [註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