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추부사 성현의 졸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현(成俔)이 졸(卒)하였다.
자는 경숙(磬叔)이요, 창녕(昌寧) 사람이니, 천순(天順)013) 임오년014) 과거에 합격, 뽑혀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었으며, 성화(成化)015) 병술년016) 에 발영시(拔英試)017) 에 합격하여 박사(博士)에 승진되고, 여러 번 전임하여 사헌부 지평(持平)이 되었다. 병신년018) 에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뛰어 사옹원 정(司饔院正)·지제교(知製敎)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에 제배되어 부제학에 승진되었고,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옮겼다가 여러 번 전임하여 우승지가 되고 특별히 형조 참판에 승진되었다. 강원·평안 두 도의 관찰사와 한성부(漢城府)의 우윤(右尹)·판윤, 사헌부 대사헌, 예조·공조의 판서를 역임하여 겸홍문관 대제학,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지냈는데, 졸할 때 나이 66세였다.
폐조(廢朝)019) 에서 간하는 말을 한 자를 추후로 죄주어 모두 중한 죄를 당했는데, 현 역시 관을 깨는 형벌을 받았다가 정국(靖國)020) 한 뒤에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을 추증(追贈)받았다. 성격이 허심 탄회하여 수식(修飾)하지 않으며, 생업을 일삼지 않고 오직 서적을 가지고 놀았다. 문장이 건실 익숙하여 오랫동안 문형(文衡)021) 을 맡았는데, 《허백당집(虛白堂集)》 등의 저서가 있다. 또 음률(音律)에 정통하여 늘 장악원 제조(掌樂院提調)를 겸임하였는데, 다만 관리의 재간이 없고 사정에 소활하여 어디서나 큰 공적이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590 면
- 【분류】인물(人物)
- [註 013]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 [註 014]
임오년 : 1462 세조 8년.- [註 015]
성화(成化) : 명나라 헌종(憲宗)의 연호.- [註 016]
병술년 : 1466 세조 12년.- [註 017]
발영시(拔英試) : 정2품 이하 문관에게 보이던 시험.- [註 018]
병신년 : 1476 성종 7년.- [註 019]
○知中樞府事成俔卒。 字磬叔, 昌寧人。 中天順壬午科, 選補承文院。 成化丙戌, 中拔英試, 陞博士, 累轉至司憲府持平。 丙申, 中重試, 超授司饔院正, 知製敎, 尋拜弘文館直提學, 陞副提學, 遷承政院同副承旨, 屢遷至右承旨, 特陞刑曹參判, 歷江原、平安兩道觀察使, 漢城府右尹、判尹, 司憲府大司憲, 禮曹、工曹判書, 兼弘文館大提學, 知成均館事。 卒年六十六。 廢朝追罪言者, 皆致重典, 俔亦被剖棺之刑。 靖國之後, 追贈議政府左贊成。 性虛曠, 不修飾, 不事産業, 唯以書籍自娛, 爲文章健熟, 久典文衡, 所著有《虛白堂》等集。 又精於音律, 常兼掌樂提調。 但無吏幹, 闊於事情, 所至無聲(續)〔績〕 。
- 【태백산사고본】 14책 5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590 면
- 【분류】인물(人物)
- [註 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