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 유세침 등이 천변을 경계하여 정사를 공정히 할 것을 아뢰다
경연(經筵)에 납시었다. 장령 유세침(柳世琛)이 아뢰기를,
"근래에 천변(天變)이 자주 나타나서, 지난해 가을에는 천둥이 일어났고 겨울에는 비가 왔으며, 금년 정월에는 흙눈이 내리고 태백성(太白星)이 대낮에 나타났습니다. 옛날 사람의 말에 ‘인사(人事)가 아래에서 실수하면 천변(天變)이 위에서 응한다.’ 하였으니, 비록 확실하게 어떤 일의 반응이라고 가리킬 수는 없지만, 재앙을 그치게 하는 도리를 진실로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상림(桑林)에서 여섯 가지 일로 자책(自責)한 것이나,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운한시(雲漢詩)206) 팔장(八章)은, 모두가 두려워하고 수성(修省)하는 실상이니, 제왕이 마땅히 거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태종(太宗) 때에 수창궁(壽昌宮)에서 화재(火災)가 나니, 하교하시기를, ‘근래에 비가 실로 많이 오고 별이 변동을 보이며 재이가 자주 나타나니, 사알(私謁)207) 이 행해져서 그런 것이냐? 인재를 임면함이 적당함을 잃어서 그런 것이냐? 중외에 명하여 민간의 고통스러운 일과 정사의 잘못된 점을 실지대로 진술하고 숨기지 말게 하라. 말이 만약 채택할 만하면 포장할 것이요, 만약 적합하지 않더라도 또한 처벌하지 않을 것이다.’ 하셨으니, 그 수성(修省)하는 뜻이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세종(世宗)께서 또한 한재(旱災)로 인하여 여러 도(道)의 물선(物膳) 진상을 명하여 정지시키시니, 어떤 사람이 정지시키지 말기를 청하자, 세종(世宗)께서 말씀하시기를 ‘재변이 이와 같은데 어찌 백성들을 괴롭혀서 물선을 진상하도록 하겠는가?’ 하셨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멀리는 은(殷)나라 탕왕(湯王)과 주(周)나라 선왕(宣王)을 본받고, 가까이는 조종(祖宗)을 본받아 천변(天變)을 삼가서 군자를 진용시키고 소인을 물리치며, 공역(工役)을 그만두고 낭비를 덜게 하소서. 이것은 모두 하늘에 응하는 실상입니다. 전일에 선정전(宣政殿)을 수리하도록 명하셨다가 조금 후에 이를 정지하게 하자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으니, 그 외에 급하지 않는 역사도 또한 정지하기를 청합니다. 만약 마지못할 사정이 있으면 보리와 밀이 익기를 기다려 이를 시작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또 중외의 죄수가 판결이 지체된 것이 많아서 사형에 이르지 않는 사람도 옥에 같이 갇혀 옥고로 원한을 머금고 있으니, 어찌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에 누(累)가 되지 않겠습니까.
또 구언(求言)하는 길을 넓히지 않을 수 없는데, 조정에 있는 신하들도 오히려 그 지위에 있지 않다 하여 감히 할 말을 다 못하는 실정이니, 더구나 초야(草野)의 선비야 비록 할 말이 있더라도 상달할 길이 있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언로(言路)를 크게 열어서 초야에 있는 미천한 선비들로 하여금 모두 품고 있는 것을 다 진술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만약 그 말이 옳으면 채용하여 포상(褒賞)하고 만약 채용할 수가 없다 하더라도 또한 처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늘의 경계를 삼가는 도리에 있어서 또한 마땅한 것입니다.
또 각 고을의 진상(進上)에 대해서도 토산(土産)을 논하지 않아, 혹은 그 지방에서 생산하면서도 공납(貢納)하지 않으며, 혹은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공납합니다. 다만 공안(貢案)에 빙고(憑考)하여 공납하게 하므로 수령들이 부득이 백성들에게 징수하게 되니 그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청컨대 상정청(詳定廳)으로 하여금, 그 토산인지를 상고하여 나누어 정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이극균(李克均)은 아뢰기를,
"장령(掌令)208) 이 아뢴 바가 모두 옳습니다. 다만 토산이 아닌 공물(貢物)은 세종(世宗)께서도 또한 상정(詳定)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습니다. 공물은 각기 그 전결(田結)로 인하여 나누어 정해져 있으니, 비록 생산되는 곳이라도 또한 어찌 많이 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 공물의 수량을 헤아려서 경비가 지나치지 않아야만 또한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용도를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한다.’ 하였으니, 백성을 사랑하는 도리는 수입을 헤아려 쓰는 데 있을 뿐입니다. 또 대간(臺諫)이 아뢴 바 ‘하늘의 경계를 삼가서 하늘에 응하기를 실상으로써 해야 한다.’는 말은 아주 사리에 꼭 맞습니다. 만약 어떤 실수로써 ‘어떤 징조가 응하게 된다.’고 말한다면, 교체(膠滯)되어 융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이미 여러 가지의 징조를 인사(人事)와 배합(配合)해 놓았으니,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유세침(柳世琛)은 아뢰기를,
"공물(貢物)을 토산대로 바치게 하더라도 또한 어찌 국용(國用)에 모자라겠습니까?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백성이 넉넉하면 군주가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며, 백성이 부족하면 군주가 누구와 더불어 넉넉하겠는가?’ 하였으니, 청컨대 각 고을에서 생산되지 않는 공물을 덜어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휴식하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지금 공물을 상정(詳定)하여 백성의 폐해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한 사람의 말을 듣고서 어수선하게 고치는 것은 진실로 옳지 못하다."
하였다. 이극균은 아뢰기를,
"근일에 민반(閔泮)이 입거 종사관(入居從事官)으로 전라도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역로(驛路)가 피폐하여 진상(進上)하는 짐바리가 우관(郵館)에 많이 지체되어 능히 운반하지 못하니, 역로를 소생시킬 방법을 의논하기를 청합니다.’고 합니다. 또 신이 함경도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을 듣건대 ‘단천(端川)의 쌍청구자(雙淸口子)209) 는 요해지가 아닌데도 지키는 군사가 많다.’고 하니, 국가에서 구자를 설치한 것은 외구(外寇)의 침입을 방어하려는 것인데, 지금 이 구자는 비록 북청(北靑)의 금창기(金倉岐)안에 있지만, 금창기가 갑자기 도둑의 변고를 당하게 되면 쌍청(雙淸)의 병졸이 능히 제때에 구원을 하겠습니까. 고형산(高荊山)이 지금 그 도(道)에 갔으니, 남도(南道)의 절도사(節度使)와 함께 편리한가를 살펴서 빨리 아뢰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 육진(六鎭)의 수졸(戍卒)은 매양 1개월 만에 교대하게 되므로 갔다가 오는 사이에 매양 열흘이 지나니, 비록 번(番)을 쉰다고 하지만 쉬는 날이 얼마 되지 않으니, 또한 고형산으로 하여금 절도사(節度使)와 함께 의논하여 그 기한을 늦추어 그들에게 휴식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였다. 유세침(柳世琛)은 아뢰기를,
"기전(畿甸)210) 의 백성들은 나뭇갓[柴場]으로써 생활하고 있는데, 여러 군(君)들의 분묘(墳墓)와 각 관사의 나뭇갓 이외에 남은 땅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선왕이 법을 제정할 적에 사유(私有)의 나뭇갓을 금지하여 백성들과 함께 이용하도록 하였는데, 지금 대군(大君)에게 나뭇갓을 하사하시니, 부근의 주민들이 땔나무를 할 수가 없어 본부(本府)211) 에 호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고, 이극균도 또한 이렇게 말하니, 왕이 이르기를,
"여러 군(君)들에게 나뭇갓을 하사한 것은 유독 지금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요, 성종(成宗) 때에도 또한 일찍이 나누어 주었던 것이오."
하였다. 이극균(李克均)은 아뢰기를,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여름의 염천(炎天)에 비가 와도 소민(小民)은 원망하고 겨울의 심한 추위에도 소민은 또한 원망한다.’고 하였으니, 심한 추위와 염천의 비는 하늘이 하는 일인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원망합니다. 소인이란 조금이라도 자기 몸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문득 원망하니, 만약 옳지 않은 것이라면 비록 선왕께서 한 일이라도 또한 그를 본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고, 정언(正言) 이숭로(李崇老)는 아뢰기를,
"장령(掌令)212) 의 아뢴 바, 하늘의 경계를 삼가야 한다는 말은 마음에 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였으나, 왕은 답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42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72 면
- 【분류】농업-임업(林業)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왕실-사급(賜給)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재정-역(役) / 재정-진상(進上) / 재정-공물(貢物) / 재정-국용(國用) / 군사-관방(關防) / 군사-부방(赴防)
- [註 206]운한시(雲漢詩) : 《시경(詩經)》의 편명.
- [註 207]
사알(私謁) : 윗사람을 비밀히 알현(謁見)하는 일.- [註 208]
장령(掌令) : 유세침(柳世琛).- [註 209]
쌍청구자(雙淸口子) : 구자는 관문(關門)임.- [註 210]
○御經筵。 掌令柳世琛曰: "近來天變屢(是)〔見〕 , 前年秋雷, 冬又雨水; 今年正月雨土雪, 太白晝見。 古云: ‘人事失於下, 則天變應於上。’ 雖不可的指爲某事之應, 然弭災之道, 固不可忽也。 成湯之桑林六責, 周宣之《雲漢》八章, 皆恐懼修省之實, 帝王之所當鑑。 太宗朝壽昌宮災, 下敎曰: ‘近來雨水實多, 星文示變, 災異疊現, 私謁行, 而然邪? 用舍失宜而然耶? 其令中外, 民間疾(古)〔苦〕 、政事闕失, 實陳無隱。 言若可採, 則固當褒奬, 如其不中, 亦不加罪。’ 其修省之意如此。 世宗亦因旱災, 命停諸道進膳。 或請勿停, 世宗曰: ‘災變若此, 豈可煩民進膳?’ 願殿下遠法成湯、周宣, 近法祖宗, 以謹天變。 如進君子、退小人, 罷工役、省浮費, 此皆應天之實也。 前日命修宣政殿, 旣已停之, 民心胥悅。 其他不急之役, 亦請停罷。 如不得已, 則待兩麥成熟, 而擧之可也。 且中外獄囚多滯, 不至於死者, 同滯牢獄, 困囚含冤, 豈不有累於好生之德乎? 且求言不可不廣, 在朝之臣尙且以不在其位, 不敢盡言, 況草茅之士雖欲有言, 無緣得達。 願殿下大開言路, 使草茅下士, 皆得盡陳所懷, 如其可, 則採用而褒賞之; 如不可用, 亦不加罪, 則其於謹天戒之道亦得矣。 且各官進上, 不論土産, 或有産而不貢, 或不産而貢。 但憑貢案而責納之, 守令不得已收斂于民, 其弊不貲。 請令詳定廳, 考其産不産, 分定何如?" 李克均曰: "掌令所啓皆是。 但不産貢物, 世宗亦欲詳定而未果。 貢物各因其田結而分定, 雖所産處, 亦豈可多取? 但量其貢數, 而經費不濫, 則亦可無弊。 古云: ‘節用而愛民。’ 愛民之道, 在量入爲用耳。 且臺諫所啓謹天戒, 應天以實之語, 至爲切當。 若曰某事失, 某徵應, 則膠固不通矣, 然聖人旣以庶徵配於人事, 不可忽也。" 世琛曰: "貢物隨其土産, 亦豈不足於用? 古云: ‘百姓足, 君誰與不足; 百姓不足, 君誰與足?’ 請蠲各官不産之貢, 使民休息。" 王曰: "今方詳定, 欲除民弊。 然聽一人之言而紛更, 固不可也。" 克均曰: "近日閔泮以入居從事官, 自全羅道還言: ‘驛路殘弊, 進上駄載, 多滯郵館, 不能輸轉, 請議蘇復之方。’ 且臣聞, 咸鏡道人來言: ‘端川 雙淸口子非要害之地, 而多戍卒。’ 國家設口子, 欲其禦寇。 今此口子, 雖在北靑 金倉歧之內, 金倉歧猝遇賊變, 雙淸之卒, 何能及救? 高荊山今往其道, 令與南道節度使, 同審便否馳啓何如? 且六鎭戍卒, 每一朔遞代, 往來之間, 動經旬日。 雖曰番休, 休日無幾, 亦令高荊山, 同節度使計議, 緩其期限, 使得息肩何如?" 世琛曰: "畿甸之民, 以柴場資生。 諸君墳墓及各司柴場之外, 餘地無幾。 先王立法, 禁私占柴場, 欲其與民共之。 今賜大君柴場, 傍近居民不得樵採, 陳訴本府者多矣。" 克均亦以爲言, 王曰: "賜諸君柴場, 非獨今時然也, 在成宗朝亦嘗折給。" 克均曰: "古云: ‘夏暑雨, 小民怨咨; 冬祈寒, 小民亦怨咨。’ 祈寒、暑雨天之所爲, 而民猶怨咨。 小民少有不便於己, 則輒興怨咨, 如其不可, 雖先王所爲, 亦不可效尤。" 正言李崇老曰: "掌令所啓, 謹天戒一語, 不可不留神。" 王不答。
- 【태백산사고본】 11책 42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72 면
- 【분류】농업-임업(林業)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왕실-사급(賜給)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재정-역(役) / 재정-진상(進上) / 재정-공물(貢物) / 재정-국용(國用) / 군사-관방(關防) / 군사-부방(赴防)
- [註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