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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42권, 연산 8년 1월 24일 정유 2번째기사 1502년 명 홍치(弘治) 15년

영의정 한치형 등이 흙비로 인하여 사피와 용도를 절약하기 등을 청하다

영의정 한치형(韓致亨), 좌의정 성준(成俊), 우의정 이극균(李克均)이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이 집에 있으면서 흙비가 번갈아 내림을 보고, 관상감(觀象監)에게 물었더니, 신 등의 본 바와 같았습니다. 신 등이 편안히 자지 못하고 재앙을 초래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니, 신 등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때아닌 비바람으로 해서 어둠침침한 날이 많고 활짝 갠 날은 적었습니다. 홍범(洪範)117) 에 이르기를, ‘좋은 징조와 나쁜 징조가 각기 그 유(類)에 따라 응한다.’고 하였으니, 비록 천도(天道)는 아득하여 알기가 어렵지만, 어찌 성인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음과 양이 조화되면 1년 동안에 바람이 72번 불고 비가 36번 내리게 되는데, 지금은 바람과 비가 제 시기에 맞지 않게 불어 올 뿐만 아니라 또 성상(星象)의 변괴도 있으니, 허물이 신 등에게 있으므로 청컨대 사피하여 현인이 등용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줄까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성군(聖君)의 시대에도 오히려 홍수(洪水)가 천하에 범람함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경 등은 사피하지 마오."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처음에는 오늘부터 정무를 보려고 하였으나 사고가 있어서 이를 정지했는데, 오는 2월 1일 이후에는 마땅히 정무를 보살피겠다."

하였다. 치형(致亨) 등이 다시 아뢰기를,

"신 등이 사피하는 까닭은 또한 전하께서 더욱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에 성실하는 마음을 힘쓰기를 원해서일 뿐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천승(千乘)118) 의 나라를 다스리되 용도를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된다.’고 하였는데, 근래에는 용도(用度)가 대단히 많아져서 풍저창(豐儲倉)119) 이 텅 비어 일체의 국용(國用) 조달과 각 관사(官司)의 무역하는 대가가 모두 군자창(軍資倉)120) 에서 나오게 됩니다. 세종(世宗)의 재위한 30년 동안에 군자창 저축이 30만 석이 넘었는데, 근래에는 개국한 지가 거의 백년이나 되었는데도 백만 석도 차지 못하니 생각하건대, 용도를 절약하는 방법이 아직 미진해서 그런 것이옵니다.

세자를 책봉하는 일이 올 가을에 있게 된다면 내년 봄에는 명(明)나라 사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인데, 만약 태감(太監)이 나온다면 청구하는 물품이며 지공(支供)하는 물자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또 일본의 사신도 해마다 나오게 될 것인데, 국가에서 장차 무엇으로써 이들에게 응대할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은 모두가 보잘것없는 인품으로 오랫동안 중임을 맡아 음양(陰陽)을 조화시키는 직무121) 를 다히지 못했으니, 천도(天道)가 순조롭지 못한 것은 신 등이 초래한 것 아님이 없습니다. 근일에 또 전하께서 경연에 납시지 않은 지도 지금 벌써 여러 달이 되었으니, 만약 옥체(玉體)가 편안히지 못하시다면 억지로 납실 것은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마땅히 경연에 납시어 어진 사대부(士大夫)를 접견하소서. 그런 뒤에야 성상의 학문이 계속하여 빛나서 고명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니, 굳이 전교하기를 아무 날엔 마땅히 행할 것이라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신 등이 어제 듣건대, 오늘은 마땅히 경연에 납시겠다고 하였는데, 저녁에는 도로 정지하시니, 신 등은 성상의 옥체가 불편하시어 밤에 편안히 주무시지도 못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외간(外間)의 조사(朝士)들이야 갑자기 경연을 정지한다는 말을 들으면 누가 놀라고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경 등은 사피하지 마오. 삼한(三韓)122) 땅에서 어찌 다시 경들보다 나은 사람이 있겠소? 만약 경들을 체직(遞職)하고 다른 사람으로써 대신한다면, 혹은 경들의 현명에 미치지도 못하면서 외람되이 자리에 있는 자도 있을 것이오. 내가 아무 날에 마땅히 경연(經筵)에 나간다고 한 것은 폐지한 지가 오래됨으로써 외간(外間)에서 그 이유를 알지 못할까 염려한 때문이오. 또 하늘의 마음은 사람에 미치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은 하늘에 미치지 못하므로, 하늘과 사람의 관계가 서로 미치지 못하게 되오. 나도 또한 용도의 번거로움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소."

하였다. 치형(致亨) 등이 다시 아뢰기를,

"원자(元子)를 책봉할 날짜가 가까우니 여염(閭閻)에 거처하게 할 수가 없으므로 궁내로 옮기기를 청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군주도 또한 옮겨 거처하는 때가 있는데, 원자는 비록 여염에 있더라도 범인의 집과는 같지 않으니, 이미 책봉한 후에도 그대로 그곳에 있게 하는 것이 또한 무방할 것이오."

하였다. 이때 원자가 월산 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의 집에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4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66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인사-임면(任免) / 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재정-국용(國用) / 재정-창고(倉庫)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117]
    홍범(洪範) : 《서경(書經)》의 편명.
  • [註 118]
    천승(千乘) : 제후의 나라.
  • [註 119]
    풍저창(豐儲倉) : 대궐 안에 쓰는 쌀·콩·자리·종이 등을 맡은 관아.
  • [註 120]
    군자창(軍資倉) : 군수품 저장 창고.
  • [註 121]
    직무 : 정승의 직무.
  • [註 122]
    삼한(三韓) : 우리 나라.

○領議政韓致亨、左議政成俊、右議政李克均來啓曰: "臣等在家, 見土雨交下, 問觀象監, 則與臣等所見同。 臣等寢不安席, 思所以致災之由, 臣等以無似, 居重地故也。 自去秋, 風雨不時, 晦冥之日多, 而開霽之日少。 《洪範》云: ‘休咎之徵, 各以類應。’ 雖天道悠遠難知, 豈可以聖人之言爲誣乎? 陰陽調則一年之間, 風七十二、雨三十六。 今則非徒風雨不時, 又有星變, 咎在臣等, 請辭避, 以開賢路。" 傳曰: "聖君之時, 猶未免洪水汎濫於天下, 卿等毋辭。" 又傳曰: "初欲自今日視事, 有故停之。 來二月初一日後, 當視事。" 致亨等更啓曰: "臣等所以辭避者, 亦願殿下益勵敬天、勤民之心耳。 孔子曰: ‘道千乘之國, 節用而愛民。’ 近來用度浩繁, 豐儲倉告罄, 一應調度及各司貿易之價, 皆出於軍資倉。 世宗三十年之間, 軍資積畜, 餘三十萬碩。 邇來開國幾百年, 而未滿百萬碩, 意者節用之道, 未盡而然也。 封世子在來秋, 則明春天使必來。 若太監來, 則求索之需、支供之物, 何可量乎? 且日本使臣年年出來, 未審國家將何以應之? 臣等俱以無似, 久居重任, 未盡調燮之職。 天道之不順, 無非臣等之所召也。 近又不御經筵, 今已累月。 若上體未寧, 則不須强御, 不然則當日御經筵, 以接賢士大夫。 然後聖學緝熙, 至於高明, 不必傳之曰: ‘某日當行矣。’ 臣等昨聞: ‘今日當御經筵。’ 而日夕還停。 臣等以爲, 上體違和, 夜不安寢, 外間朝士聞遽停經筵, 孰不驚疑?" 傳曰: "卿等勿辭。 三韓之地, 豈復有賢於卿等者乎? 若遞卿等, 代以他人, 則或有不逮卿等之賢, 而冒處之者。 予所以 ‘某日當御經筵。’ 云者, 以其廢御日久, 恐外間未知其故耳。 且天心不及於人, 人心不及於天, 天人之際, 不相及矣。 予亦非不知用度之煩, 不得不爾。" 致亨等更啓曰: "元子冊封日近, 不可處於閭閻, 請移宮內。" 傳曰: "人君亦有移御之時, 元子雖在閭閻, 非如凡人家。 旣封後, 因在其處亦無妨。" 時, 元子在月山大君 家。


  • 【태백산사고본】 11책 4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3 책 466 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인사-임면(任免) / 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재정-국용(國用) / 재정-창고(倉庫)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