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 등을 벤 것을 종묘 사직에 알리고 중외에 사령을 반포하다
김일손 등을 벤 것을 종묘 사직에 고유하고, 백관의 하례를 받고 중외에 사령(赦令)을 반포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세조 혜장 대왕(世祖惠莊大王)께서 신무(神武)의 자질로 국가가 위의(危疑)하고 뭇 간신이 도사린 즈음을 당하여, 침착한 기지와 슬기로운 결단으로 화란(禍亂)을 평정시키시니 천명(天命)과 인심이 저절로 귀속되어, 성덕(聖德)과 신공(神功)이 우뚝 백왕(百王)의 으뜸이었다. 그 조종(祖宗)에게 빛을 더한 간대(艱大)한 업적과 자손에게 끼친 연익(燕翼)의 모훈(謨訓)을, 자자손손 이어받아 오늘에까지 이르러 아름다웠었는데, 뜻밖에 간신 김종직이 화심(禍心)을 내포하고, 음으로 당류(黨類)를 결탁하여 흉악한 꾀를 행하려고 한 지가 날이 오래되었노라.
그래서 그는 항적(項籍)이 의제(義帝)를 시해한 일에 가탁하여, 문자에 나타내서 선왕(先王)을 헐뜯었으니, 그 하늘에 넘실대는 악은 불사(不赦)의 죄에 해당하므로 대역(大逆)으로써 논단하여 부관 참시(剖棺斬屍)를 하였고, 그 도당 김일손·권오복·권경유가 간악(姦惡)한 붕당을 지어 동성 상제(同聲相濟)하여 그 글을 칭찬하되, 충분(忠憤)이 경동한 바라 하여 사초에 써서 불후(不朽)의 문자로 남기려고 하였으니, 그 죄가 종직과 더불어 과(科)가 같으므로 아울러 능지 처사(凌遲處死)하게 하였노라.
그리고 일손이 이목·허반·강겸 등과 더불어 없었던 선왕의 일을 거짓으로 꾸며대서 서로 고하고 말하여 사(史)에까지 썼으므로, 이목·허반도 아울러 참형(斬刑)에 처하고, 강겸은 곤장 1백 대를 때리고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여 극변(極邊)으로 내쳐 종으로 삼았노라.
그리고 표연말(表沿沫)·홍한(洪瀚)·정여창(鄭汝昌)·무풍정(茂豊正) 총(摠) 등은 죄가 난언(亂言)에 범했고, 강경서(姜景敍)·이수공(李守恭)·정희량(鄭希良)·정승조(鄭承祖) 등은 난언(難言)임을 알면서도 고하지 않았으므로 아울러 곤장 1백 대를 때려 3천 리를 밖으로 내치고, 이종준(李宗準)·최부(崔溥)·이원(李黿)·이주(李胄)·김굉필(金宏弼), 박한주(朴漢柱)·임희재(任熙載)·강백진(康伯珍)·이계맹(李繼孟)·강혼(姜渾) 등은 모두 종직의 문도(門徒)로서 붕당을 맺어 서로 칭찬하였으며, 혹은 국정(國政)을 기의(譏議)하고 시사(時事)를 비방하였으므로, 희재는 곤장 1백 대를 때려 3천 리 밖으로 내치고, 이주는 곤장 백 대를 때려 극변(極邊)으로 부처(付處)하고 이종준·최보·이원·김굉필·박한주·강백진·이계맹·강흔 등은 곤장 80대를 때려 먼 지방으로 부처함과 동시에 내친 사람들은 모두 봉수군(烽燧軍)이나 정로한(庭爐干)의 역(役)에 배정하였고, 수사관(修史官) 등이 사초를 보고도 즉시 아뢰지 않았으므로 어세겸(魚世謙)·이극돈(李克墩)·유순(柳洵)·윤효손(尹孝孫) 등은 파직하고, 홍귀달(洪貴達)·조익정(趙益貞)·허침(許琛)·안침(安琛) 등은 좌천(左遷)시켰다. 그 죄의 경중에 따라 모두 이미 처결되었으므로 삼가 사유를 들어 종묘 사직에 고하였노라.
돌아보건대 나는 덕이 적고 일에 어두운 사람으로 이 간당(奸黨)을 베어 없앴으니, 공구한 생각이 깊은 반면에 기쁘고 경사스러운 마음도 또한 간절하다. 그러므로 7월 27일 새벽을 기하여 강도·절도와 강상(綱常)에 관계된 범인을 제외하고는 이미 판결이 되었든 판결이 안되었든 모두 사면하노니, 감히 유지(宥旨)를 내리기 이전의 일로써 서로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죄를 다스릴 것이다.
아! 인신(人臣)이란 난리를 만들 뜻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부도(不道)의 죄가 이미 굴복하였으니, 뇌우(雷雨)가 작해(作解)099) 하듯이 마땅히 유신(惟新)의 은혜에 젖도록 하겠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敎示)하는 것이니, 이 뜻을 납득할 줄 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25 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역(軍役) / 왕실-사급(賜給)
- [註 099]뇌우(雷雨)가 작해(作解) : 《주역(周易)》 해괘(解卦) 대상(大象)에 ‘뇌우(雷雨)가 작(作)하는 것이 해(解)이니, 군자가 이용하여 과(過)를 사하고 죄를 유(宥)한다.’ 하였음.
○辛酉/告誅金馹孫等于宗廟、社稷, 受百官賀, 頒赦中外曰:
恭惟, 我世祖惠莊大王以神武之資, 當國家危疑, 群姦盤據之際, 沈機睿斷, 戡定禍亂, 天命、人心自有歸屬, 聖德神功卓冠百王。 增光祖宗艱大之業, 貽厥子孫燕翼之謀, 繼繼承承, 式至今休。 不意姦臣金宗直包藏禍心, 陰結黨類, 欲售兇謀, 爲日久矣。 假托項籍弑義帝之事, 形諸文字, 詆毁先王, 滔天之惡, 罪在不赦, 論以大逆, 剖棺斬屍。 其徒金馹孫、權五福、權景𥙿朋姦黨惡, 同聲相濟, 稱美其文, 以爲忠憤所激, 書諸史草, 欲垂不朽, 其罪與宗直同科, 竝令凌遲處死。 馹孫與李穆、許磐、姜謙等誣飾先王所無之事, 傳相告語, 筆之於史, 李穆、許磐竝處斬, 姜謙決杖一百、籍沒家産, 極邊爲奴。 表沿沫、洪瀚、鄭汝昌、茂豐正 摠等, 罪犯亂言, 姜景叙、李守恭、鄭希良、鄭承祖等, 知亂言而不告, 竝決杖一百、流三千里。 李宗準、崔溥、李黿、李冑、金宏弼、朴漢柱、任熙載、康伯珍、李繼孟、姜渾等俱以宗直門徒, 結爲朋黨, 互相稱譽, 或譏議國政, 謗訕時事, 熙載決杖一百、流三千里, 李冑決杖一百、極邊付處, 宗準、崔溥、李黿、宏弼、漢柱、伯珍、繼孟、姜渾等, 決杖八十、遠方付處, 而流人等竝定烽燧庭爐干之役。 修史官等見史草, 而不卽啓, 魚世謙、李克墩、柳洵、尹孝孫等罷職, 洪貴達、趙益貞、許琛、安琛等左遷。 隨其罪之輕重, 俱已處決, 謹將事由, 告于宗廟、社稷。 顧予寡昧, 剪除姦黨, 戰懼之念旣深, 而喜幸之心亦切。 肆於七月二十七日昧爽以前, 强竊盜、關係綱常外, 已決正、未決正, 咸宥除之。 敢以宥旨前事, 相告言者, 以其罪罪之。 於戲! 人臣無將, 旣伏不道之罪。 雷雨作解, 宜霈惟新之恩, 故玆敎示, 想宜知悉。
-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25 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역(軍役)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