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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96권, 성종 25년 11월 4일 기축 1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일본국에서 토의를 바치고 전포와 기치의 비용으로 동철·면주 등을 하사해 주길 청하다

일본국(日本國) 대내(大內) 대중 대부(大中大夫) 좌경조윤(左京兆尹) 방장풍축 4주 태수(防長豐筑四州太守) 다다량 정홍(多多良政弘)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글에 이르기를,

"조선국(朝鮮國) 예조 참판 족하(禮曹參判足下)께 복계(覆啓)를 드립니다. 삼가 살피건대 〈건강이〉 청승(淸勝)하시다니 기쁘고 위안이 됩니다. 저희 〈집안은〉 계통(系統)이 귀국(貴國)에서 나왔고, 대대로 구호(舊好)를 돈독히 한 지가 오래 되어 더욱 도타왔습니다. 이 때문에 빙사(聘使)가 끊임없이 왕래(往來)하여 덕으로 다스리는 정화(政化)1200) 가 하국(下國)에까지 미쳐 남달리 융성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를 계속해서 제장(諸將)이 도적[賊]을 토벌한 이래 옹희(雍熙)1201) 의 교화(敎化)에 회복됨을 얻지 못하였고, 편맹(編氓)1202) 또한 농상(農桑)을 업(業)으로 삼음이 없으니, 절박하게 근심할 만한 바입니다. 전년[前歲]에는 공손히 양사(兩使)를 보내어 진제(賑濟)를 구(求)하였는데, 먼 곳의 사람을 회유하는 은택(恩澤)이 얕지 않은 것이겠습니까? 사자[伻]가 돌아오매, 배사(拜賜)하였습니다. 다만 부족되는 것은 동철(銅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보광원(寶光院) 요신(堯信)전개(專价)1203) 로 삼고 대조원(大照院) 종모(宗模)를 부사(副使)로 삼아, 삼가 원지(爰旨)의 흉도(凶徒)의 여얼(餘孽)을 아룁니다. 명(命)이 급히 내리니, 내년 맹동(孟冬)1204) 에는 장차 토벌할 것인데, 전포(戰袍)·기치(旗幟)의 비용(費用)인 동철(銅鐵)·면주(綿紬)·목면(木綿)을 인서(仁恕)하여 거만(鉅萬)을 상사(賞賜)하시면 진실로 다행하겠습니다.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전개(專价) 요신(堯信) 등에게 명하여 발돋움하고 우러러보는 사사로움을 빨리 아뢰게 하면서, 변변치 못한 토의(土宜)를 별폭(別幅)에 갖추었습니다. 애오라지 양박(涼薄)의 정성을 나타내어 조빙(朝聘)하오니, 빌건대 갈마들여 통하게 해 주소서. 오직 황제 만세(皇帝萬歲)와 재신 천추(宰臣千秋)를 바랍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296권 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598면
  •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

  • [註 1200]
    정화(政化) : 정치(政治)와 교화(敎化).
  • [註 1201]
    옹희(雍熙) : 천하가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
  • [註 1202]
    편맹(編氓) : 민간의 호적에 편입된 백성. 곧 평민.
  • [註 1203]
    전개(專价) : 전사(專使).
  • [註 1204]
    맹동(孟冬) : 첫겨울.

○己丑/日本國大內大中大夫左京兆尹防長豐、筑四州大守多多良政弘, 遣人來獻土宜。 其書曰:

奉覆朝鮮國禮曹參判足下。 密審淸勝, 欣慰。 我系出貴國, 世敦舊好, 久而彌篤。 是以聘使, 往來不絶, 無爲政化, 延覃下國, 以爲隆異, 然連年諸將, 討賊以來, 未獲復于雍熙之化。 編氓亦無業農桑, 切以所可憂也。 前歲恭遣兩使, 求于賑濟, 懷遠之澤, 不淺乎? 回伻拜賜, 只欠銅鐵耳。故復以寶光院堯信, 爲專价, 以大照院宗模, 爲副使, 謹啓爰旨。 凶徒之餘孽也, 命頻下, 來歲孟冬, 將討之。 戰袍旗幟之費用, 銅鐵、綿紬、木綿, 仁恕賞賜鉅萬, 寔爲幸焉耳。 心曲命專价堯信等, 馳企仰之私。 不腆土宜, 具于別幅。 聊施涼薄之誠, 頫乞遞徹。 惟望皇帝萬歲, 宰臣千秋。


  • 【태백산사고본】 47책 296권 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598면
  •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