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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85권, 성종 24년 12월 22일 임오 4번째기사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시독관 유호인이 기자묘의 수리를 아뢰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시독관(侍讀官) 유호인(兪好仁)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해에 기자묘(箕子廟)를 보니, 담장[垣墻]이 낮은데다가 사우(祠宇)가 기울어지고 누추하였습니다. 중국 사신[中朝使臣]이 오면 반드시 전알(展謁)하며, 또 우리 동방(東方)에서 만세(萬世)의 이륜(彝倫)의 교화(敎化)가 모두 그의 힘입니다. 해마다 때때로 제사(祭祀)를 끊지 않는다 하더라도 묘(廟)의 모양이 저와 같아서는 바라보기에도 엄정(嚴正)하지 못하니, 청컨대 평양(平壤)으로 하여금 수치(修治)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可)하다."

하였다. 유호인(兪好仁)이 또 아뢰기를,

"역대(歷代)의 제왕(帝王)은 모두 선대[先世]의 능묘(陵墓)를 수치(修治)하였습니다. 고려(高麗)의 태조(太祖)와 같은 분은 삼한(三韓)을 통합(統合)하여 그 공덕(功德)이 견줄 바가 없는데, 능침(陵寢)에 잡초가 우거져 덮이고, 사방에서 경작하여 침범하니, 더욱 체모(體貌)가 없습니다. 청컨대 경작을 금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금하는 법이 없는가? 이와 같은 것이 얼마나 있는가?"

하니, 유호인이 말하기를,

"신 또한 모두 알지는 못합니다. 현사(賢士)·대부(大夫)로서 후사(後嗣)가 없을 것 같으면, 그 구롱(丘壠)을 지키지 못하여 경작하는 자가 꺼리지 아니하니, 신은 명사(名士)의 분묘(墳墓) 또한 경작을 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전대(前代)의 능실(陵室)과 명사(名士)·대부(大夫)의 분묘(墳墓)가 있는 곳을 제도(諸道)에 물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유호인이 말하기를,

"이제현(李齊賢)은 전조(前朝)의 명현(名賢)으로서 그 자손(子孫)이 조정(朝廷)에 가득합니다. 신이 듣건대, 우봉현(牛峯縣) 도화촌(桃花村)이제현(李齊賢)의 분묘(墳墓)가 있는데, 풀이 우거지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만약 자손이 없다면 반드시 이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신은 이것이 교화(敎化)에 관계되니, 수치(修治)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말한 바가 매우 합당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이 많으면, 또한 두루 시행(施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자 유호인이 말하기를,

"국가(國家)에서 이와 같이 한다면 어진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장차 반드시 이를 좇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28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454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농업-개간(開墾) / 풍속-풍속(風俗) / 외교-명(明)

○御晝講。 講訖, 侍讀官兪好仁啓曰: "臣於年前見箕子廟, 垣墻低微, 祠宇側陋, 中朝使臣, 來必展謁, 且吾東方萬世彝倫之敎, 皆其力也。 歲時祭祀雖不絶, 而廟貌如彼, 瞻視不嚴, 請令平壤修治。" 上曰: "可。" 好仁又啓曰: "歷代帝王, 皆修先世陵墓, 有如高麗 太祖統合三韓, 功德無比, 而陵寢蕪沒, 耕犁四侵, 殊無體貌, 請禁耕。" 上曰: "豈無法禁? 如此者有幾?" 好仁曰: "臣亦不能盡知賢士大夫, 若無後則其丘壠不守, 耕田者不忌。 臣意名士之墓, 亦宜禁耕。" 上曰: "前代陵室及名士大夫之墓在處, 問于諸道以啓。" 好仁曰: "李齊賢, 前朝名賢也, 其子孫滿朝, 臣聞牛峯縣 桃花村齊賢之墳, 草沒而無人祭焉。 若無子孫, 必甚於此矣。 臣意, 此關敎化, 不可不修。" 上曰: "所言甚當。 但如此者多, 亦難遍施。" 好仁曰: "國家如此, 則有仁心者, 將必從之。" 上曰: "然。"


  • 【태백산사고본】 45책 28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454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농업-개간(開墾) / 풍속-풍속(風俗)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