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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38권, 성종 21년 3월 4일 병진 1번째기사 1490년 명 홍치(弘治) 3년

정조사 윤효손이 선정전에서 자신의 임무를 보고하다

정조사(正朝使)250) 윤효손(尹孝孫)이 와서 복명(復命)하니,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인견(引見)하였다. 윤효손이 아뢰기를,

"동팔참(東八站)251) 의 노상(路上)에서 신의 의롱(衣籠)이 물에 떨어졌는데, 농(籠)에 작은 틈이 있어서 의복(衣服)이 모두 젖었습니다. 이로써 증험해보면, 표문(表文)·전문(箋文)을 싸고 납보[蠟袱]로 묶을 경우 만약 큰물을 지나가게 되면 혹시라도 스며들어 젖을 듯합니다. 이제부터는 청컨대 납후지(蠟厚紙)로 전대를 만들어서 넣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

하였다. 윤효손이 또 아뢰기를,

"평안도(平安道)의 진(鎭)은 군인(軍人)이 부방(赴防)하는 괴로움이 중하고 또 중국 서울로 가는 각 행차의 짐바리를 호송(護送)하는 등의 일에 사람과 가축이 모두 피곤하기 때문에 몰래 요동(遼東)으로 옮겨 가는 자가 그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지경입니다. 신의 의견으로는, 본도(本道)의 군사와 백성에게 특별히 무휼(撫恤)을 더하여 그 역역(力役)을 헐겁게 하고 그 부렴(賦斂)을 느슨하게 한다면 도망하여 흩어지는 폐단이 거의 없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과연 이 말과 같다면 무휼(撫恤)할 조건(條件)을 해사(該司)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윤효손이 또 아뢰기를,

"신이 중국 황제(皇帝)의 도성에 있을 때 도성 안의 여염(閭閻)에 모두 화포(火砲)를 설치하였는데, 소리는 비록 크나 심하게 진동(震動)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자(牙子)252) 왕능(王凌)이 신(臣)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난번에 우연히 그대 나라의 후지(厚紙)를 얻어 포(砲)를 만들어서 화포를 쏘았는데 소리가 매우 굉장하였다. 황제가 놀라서 묻고, 도성 안에 명령을 내려 화포를 쏜 자를 크게 찾았으므로, 내가 도망하여 숨어서 면할 수 있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로 보면, 후지(厚紙)를 경솔하게 중국 사람들에게 줄 수 없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비록 청하는 자가 있어도 후지가 아닌 것으로써 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

하였다. 윤효손이 또 아뢰기를,

"신이 국자감(國子監)에 가서 보니 십철(十哲)253) 은 2위(位)에 한 개의 찬탁(饌卓)을 공유(公有)하고 있었으며, 동무(東廡)·서무(西廡)에도 2위가 한 개의 찬탁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비록 종사(從祀)는 하나 조탁(俎卓)이 없는데, 더구나 동무·서무이겠습니까? 청컨대 중국 조정의 제도에 의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238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577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외교-명(明) / 군사-부방(赴防) / 군사-휼병(恤兵) / 호구-이동(移動) /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

  • [註 250]
    정조사(正朝使) : 정월 초하룻날 중국 조정의 하례(賀禮)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보내던 사신(使臣).
  • [註 251]
    동팔참(東八站) : 압록강(鴨綠江)에서 중국의 산해관(山海關) 사이에 있던 여덟 군데의 역참(驛站). 우리 나라의 사신이 중국에 왕래하는 데 중요한 요로(要路)였음.
  • [註 252]
    아자(牙子) : 물건을 사고 팔 때 중간에서 거간(居間)하는 사람. 아쾌(牙儈).
  • [註 253]
    십철(十哲) : 공자(孔子) 문하(門下)의 열 사람의 뛰어난 제자. 곧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재아(宰我)·자공(子貢)·염유(冉有)·자로(子路)·자유(子游)·자하(子夏).

○丙辰/正朝使尹孝孫來復命, 上御宣政殿, 賜引見。 孝孫啓: "東八站路上, 臣之衣籠墜水, 籠有小隙, 衣服皆漏濕。 以是驗之, 表箋結裹, 襲以蠟袱, 若過水潦, 恐或漏濕。 今後請以蠟厚紙, 作帒入盛。" 上曰: "可。" 孝孫又啓曰: "平安道鎭軍人, 赴防苦重, 且於赴京, 各行駄載護送等事, 人畜俱困, 故潛徙遼東者, 不知其幾。 臣意以爲, 本道軍民, 特加撫恤, 寬其力役, 弛其賦斂, 則庶無逃散之弊矣。" 上曰: "果如是言, 撫恤條件, 其令該司議啓。" 孝孫又啓曰: "臣在帝都, 都中閭閻, 皆設火砲, 聲雖大而不甚震動。 牙子王淩語臣曰: ‘予曩者偶得汝國厚紙, 作砲放火, 聲甚壯。 皇帝驚問, 令都中大索放火者, 予逃竄得免。’ 以此言觀之, 厚紙不可輕與上國之人。 今後雖有請者, 以不厚紙與之何如?" 上曰: "然。" 孝孫又啓曰: "臣到國子監見之, 十哲二位, 共一饌卓, 東、西廡亦二位, 共一饌卓。 我國雖從祀無俎卓, 況東、西廡乎? 請依中朝制。"


  • 【태백산사고본】 37책 238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577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외교-명(明) / 군사-부방(赴防) / 군사-휼병(恤兵) / 호구-이동(移動) /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