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성종실록 231권, 성종 20년 8월 1일 병술 1번째기사 1489년 명 홍치(弘治) 2년

간통한 정학비는 율에 따라 단죄하고 10년이 지난 공씨는 추문하지 않게 하다

승정원(承政院)에 전교(傳敎)하기를,

"정학비(鄭鶴非)는 이미 자수(自首)하여 복죄(服罪)하였으니, 마땅히 율(律)에 따라 단죄(斷罪)하고, 공씨(公氏)의 일은 10년 전에 있었으니,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정부(政府)에 의논토록 하라."

하니, 심회(沈澮)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가 의논하기를,

"성상(聖上)의 뜻이 진실로 마땅합니다. 간통(姦通)에 관한 일은 마땅히 간통하는 곳에서 붙잡아야 합니다. 다만 전하는 소문[傳聞]에 의하여 서로 용은(容隱)776) 하는 법을 무너뜨려 고신(栲訊)777) 을 남용(濫用)함은 대체(大體)에 옳지 않습니다. 하물며 일이 10년 전에 있었으니, 묻지 않는 것이 가합니다."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공씨(公氏)의 일은 마을 사람들이 의심하여 떠들썩하게 말할 뿐이고, 서로 간통하였다고 지적(指摘)하는 자가 없습니다. 침실(寢室) 안의 은밀한 일은 비록 노비(奴婢)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인데, 하물며 이웃 마을 사람들이겠습니까? 근거 없는 말을 가지고 형벌을 쓰는 데 이르는 것은 불가한 듯합니다. 반역(叛逆)은 천하(天下)의 대죄(大罪)인데, 당 태종(唐太宗)이 말하기를, ‘노비(奴婢)가 그 주인(主人)을 반역이라고 고(告)한 자는 받아들이지 말고 즉시 참(斬)하라. 반역은 한 사람이 하는 바가 아니니, 비록 이 사람이 없더라도 어찌 고하는 자가 없음을 근심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이것은 노비와 주인의 분별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를 파괴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부인(婦人)의 실행(失行)은 국가의 작은 일이니, 어찌 이것으로써 대강(大綱)을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성상의 전지(傳旨)를 받자오니, 정상(情狀)과 법(法)이 모두 극진합니다. 추문(推問)하지 않음이 마땅합니다."

하고, 이철견(李鐵堅)손순효(孫舜孝)는 의논하기를,

"간통하는 곳에서 붙잡지 아니하고 간통하였다고 지목하는 자는 논(論)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씨(公氏)의 일은 10년 전에 있었는데, 한갓 마을 안에서 떠들썩하게 말하는 것을 가지고 서로 간통하였다고 지목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일의 단서[事端]가 이미 드러났으니,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우선 마을사람과 호상(護喪)한 족친(族親)을 심문(審問)하는 것이 옳고, 서로 용은(容隱)하는 법은 결단코 가벼이 고칠 수 없습니다."

하고, 이숭원(李崇元)은 의논하기를,

"공씨(公氏)의 일은 언단(言端)이 이미 〈여러 사람의 입에〉 번졌으니, 만약에 더러운 행실이 있었다면, 법망(法網)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진실로 마땅히 추문(推問)하여 변명(辯明)해야 합니다."

하고, 정문형(鄭文炯)은 의논하기를,

"율문(律文)에 이르기를, ‘간통한 곳에서 잡지 않은 것은 〈죄를〉 논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규중(閨中)의 과부(寡婦)가 범(犯)하는 바는 아무도 잡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멋대로 행하는 자가 간혹 있습니다. 지난날의 어을우동(於乙宇同)의 모자(母子)와 권덕영(權德榮)의 처(妻)와 같은 유(類)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학비(鶴非)의 실행(失行)도 어찌 까닭없이 그러하였겠습니까? 공씨의 일은 마을 안에서 떠들썩하게 말하니, 반드시 그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추문(推問)하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공씨의 일은 추문하지 말라."

하니, 승정원(承政院)에서 아뢰기를,

"공씨의 일은 풍속(風俗)에 크게 관계됩니다. 간음(姦淫)한 자가 지아비의 조카이니, 추행(醜行)이 더욱 심합니다. 대저 사족(士族)의 가문(家門)에서 이 같은 일이 있으면, 남들이 감히 가볍게 말하지 못하므로, 그 일이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추행이〉 드러났는데도 묻지 않는다면, 어떻게 악(惡)을 징계하겠습니까?"

하였다. 전교하기를,

"공씨의 일은 진실로 강상(綱常)에 관계되나, 일이 10년 전에 있었으므로, 자취를 밝힐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버려두고자 한 것이다. 지금 경들의 말을 들으니 또한 옳다. 우의정(右議政)이 당 태종(唐太宗)의 말을 끌어대었는데, 이는 진실로 바꿀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대사(大事)를 당했으면, 비록 노복(奴僕)이라 하여도 어찌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행대(行臺)778) 로 하여금 그 일을 끝까지 구명(究明)하게 하면, 반드시 실정(實情)을 얻어내려고 힘쓰다가 형장(刑杖)을 남용(濫用)하여 상(傷)하는 사람이 반드시 많을 것이니, 지금 농사철의 틈이 있는 때에, 사증(詞證)779) 으로 마땅히 물어야 할 만한 자를 가려서,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잡아다 국문(鞫問)하게 함이 가하다."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하기를, "처음에 공씨(公氏)가 그 지아비를 잃고 무당을 맞이하여 신(神)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정윤례(鄭允禮)가 실제로 그 일을 주간(主幹)하고, 밤을 기다려 그 무당을 간음(姦淫)하였다. 공씨가 밖에서 이를 엿보고 자못 마음이 동하여, 마침내 〈윤례와〉 더불어 정을 통하였다. 그 사위 정은부(鄭殷富)는 변방(邊方)에서 수자리를 살고 그 처 정씨(鄭氏)는 홀로 살고 있었는데, 공씨가 그 족질(族姪)인 하치성(河致成)을 데리고 침방(寢房)에 들어가서 말하기를, ‘소녀(少女)가 혼자 자니, 어찌 가위눌리지 않겠는가?’ 하였다. 정은부가 〈변방에서〉 돌아와 그 부모(父母)를 찾아뵙고, 곧 그 처를 생각하고 말하기를, ‘어떻게 침식(寢食)을 하느냐?’고 하였다. 그 아우가 곁에서 슬며시 웃으면서 말하기를, ‘형(兄)만이 홀로 생각할 뿐입니다. 찾아보면 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정은부가 그 말을 이상하게 여기고, 다그쳐 물으니, 다만 ‘빨리 돌아가 보라.’고 할 뿐이었다. 정은부가 즉시 그 밤으로 달리어 돌아가서,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 그 처가 하치성과 더불어 함께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정은부가 칼을 뽑아 두 사람의 머리털을 잘랐다. 공씨가 이를 듣고 말하기를, ‘소남(少男)·소녀(少女)가 오로지 장난을 하였을 뿐인데, 어찌 갑작스럽게 머리털을 잘랐는가?’ 하였다. 일이 발각되자, 법에 따라 처치하여, 그 처를 떼어 놓아 강계부(江界府)에 유배(流配)하였다. 뒤에 정은부가 종군(從軍)하여 이 부(府)에서 수자리를 살았는데, 정씨주삼(紬衫)780) 을 보내어 만나보기를 청하였으나, 정은부가 이를 물리쳤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23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50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윤리-강상(綱常) / 가족-친족(親族) / 역사-사학(史學)

  • [註 776]
    용은(容隱) : 가까운 친척의 죄인을 숨겨 주는 경우에는 발각되어도 친족간의 우의를 존중하여 숨겨 준 이에게 죄를 주지 않던 법. 《대명률(大明律)》 친속상위용은조(親屬相爲容隱條)에 이르기를, "무릇 동거(同居)하는 대공(大功 : 9개월 상복) 이상의 친속(親屬) 및 외조부모·외손·처부모·사위와 손부(孫婦), 남편의 형제 및 형제의 아내가 죄가 있을 때 서로 숨겨 주는 것을 용서하고, 노비와 고공인(雇工人)이 가장(家長)을 위하여 숨겨 주는 것은 모두 논의하지 않는다." 하였음.
  • [註 777]
    고신(栲訊) : 고문.
  • [註 778]
    행대(行臺) : 조선조 때 민간의 이해(利害), 수령(守令)의 치적(治績)·근만(勤慢), 향리(鄕吏)의 횡포를 살피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하던 사헌부(司憲府)의 감찰(監察). 행대 감찰(行臺監察).
  • [註 779]
    사증(詞證) : 사증(辭證).
  • [註 780]
    주삼(紬衫) : 명주로 지은 옷.

○朔丙戌/傳于承政院曰: "鶴非已首服, 當依律斷罪。 公氏事在十年前, 棄之何如? 其議于領敦寧以上及政府。" 沈澮尹弼商李克培尹壕議: "上旨允當。 奸事當於奸所捕獲, 只以傳聞毁相容隱之法, 濫用拷訊, 於大體未便。 況事在十年前, 勿問可也。" 盧思愼議: "公氏事, 里人疑之, 喧說而已, 無有指爲相奸者。 房帷之中, 暗昧之事, 雖奴婢亦所未知, 況隣里人乎? 以無根之言至於用刑, 恐爲不可。 叛逆, 天下之大罪也, 太宗曰: ‘奴婢告其主叛逆者, 勿受卽斬。 叛逆非一人所爲, 雖無此人, 何患無告者?’ 此以奴主之分重, 故不欲壞之也。 一婦人之失行, 國家小事也, 安可以此壞其大綱乎? 今承上旨, 情法俱盡, 勿推爲當。" 李鐵堅孫舜孝議: "非奸所捕獲指奸者, 勿論。 公氏事在十年前, 徒以里中喧說, 指爲相奸, 似未穩。 然事端已露, 不可置之, 姑問里人及護喪族親爲便。 相爲容隱之法, 斷不可輕改。" 李崇元議: "公氏事言端已(霑)〔露〕 , 若有穢行, 不宜漏網, 固宜推辨。" 鄭文炯議: "律文云: ‘非奸所捕獲, 勿論。’ 然閨中寡婦所犯, 無人捕獲, 故多年恣行者, 間或有之。 曩者於乙宇同母子、權德榮妻之類是已。 今鶴非失行, 亦豈無自而然歟? 公氏事里中喧說, 必有其由, 不可不推。" 傳曰: "公氏事, 勿推。" 承政院啓曰: "公氏事大關風俗, 所淫者夫之姪, 醜行尤甚。 凡士族家門有如此事, 則人不敢輕言之, 故其事未易發。 發而不問, 則何以懲惡?" 傳曰: "公氏事固關綱常, 然事在十年前, 無迹可明, 故欲棄之, 今聞卿等之言, 亦可矣。 右議政援 太宗之語, 此固不可易之言。 然當大事, 雖奴僕豈可不問? 令行臺究竟其事, 則必務得其情, 濫用刑杖, 傷人必多。 今農隙之時, 擇詞證當問者, 令義禁府拿鞫可矣。"

【史臣曰: "初, 公氏喪其夫, 迎巫而祀神, 允禮實幹其事, 侯夜淫其巫。 公氏自外窺之, 頗歆, 遂與私。 其壻鄭殷富戍邊, 其妻鄭氏獨居, 公氏乃驅其族姪河致成入寢房, 曰: ‘少女獨宿, 豈不夢魘?’ 及殷富還省其父母, 因念其妻, 曰: ‘何以眠食?’ 其弟在傍微笑曰: ‘兄獨念之耳。 〔嫂〕 則好在。’ 殷富異其言, 固問之, 但曰: ‘疾歸見之。’ 殷富卽夜馳歸, 直入其室, 見其妻與致成共臥, 殷富拔劍斷兩人髮。 公氏聞之, 曰: ‘少男少女聊作戲耳, 何遽斷髮?’ 及事覺, 按之, 斷其妻配江界府。 後殷富從軍戍是府, 送紬衫求見, 殷富却之。"】


  • 【태백산사고본】 36책 23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50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윤리-강상(綱常) / 가족-친족(親族)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