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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26권, 성종 20년 3월 25일 계미 3번째기사 1489년 명 홍치(弘治) 2년

우승지 김극검이 성절사 조익정의 보단과 응대 사목을 보고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우승지(右承旨) 김극검(金克儉)이 성절사(聖節使) 조익정(趙益貞)이 가지고 갈 보단(報單)311) 과 말로 응대(應對)할 사목(事目)을 아뢰었는데, 그 보단에는 이르기를,

"그윽이 생각하건대 소국은 먼 변경에 있으면서 대대로 성교(聲敎)를 입어 예물을 가진 사신이 연달아 내왕하여 여러 조정의 후한 은혜를 깊이 입었습니다. 이 앞서 본국의 배신(陪臣) 한치형(韓致亨)이 〈중국〉 조정에 들어갔다가 돌아올 때에 서반(序班) 한 사람을 나누어 보내어 본국 의주(義州) 땅까지 전송하여, 오는 길에서 관대(館待)하는 모든 일을 모두 체찰(體察)하게 하였으니, 황은(皇恩)의 중함이 이에 지극합니다. 지금 성조(聖朝)에서 본국 사신이 갔다가 돌아올 때에 더욱 사랑하는 어지심을 더하여 모든 참로(站路)를 경유해 가는 곳에 대우하는 은혜의 중함은 더함이 있고 덜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 행리(行李)312) 와 공돈(供頓)의 일에 넉넉하지 아니함이 없게 하니, 지나가는 데에 매우 편리합니다. 다만 요동(遼東)에서 바로 의주(義州)까지 7, 8백리 6, 7일의 노정(路程)에는 이미 중국의 관역(館驛)에서 지대(支待)하는 모든 일이 없고, 또 요동의 호송 군마(護送軍馬)는 본래부터 본처(本處)의 백호(白戶)와 천호(千戶)가 있어서 순조롭게 데리고 왕래하므로, 서반으로서 별로 소관할 것과 보살필 일이 없는데, 험하고 먼 길을 지나는 데에 수고가 적지 아니하니, 마음에 진실로 황공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명공(明公)은 시의(時宜)를 참작하여 이번 우리들이 돌아갈 때에는 팔참(八站)의 호송(護送)을 정지하여 발섭(跋涉)313) 하는 수고가 없게 하면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선황제(先皇帝)가 처음에 우리 나라를 후히 대접하려고 하여 서반을 보냈는데, 이제 갑자기 사양하기를 청할 수 없다. 또 선황제 때의 일을 지금 황제가 반드시 감히 가볍게 고치지 못할 것이며, 예부(禮部)에서도 마음대로 보내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인데, 혹시 선황제의 법을 갑자기 고치기가 어렵다고 청하면 말하는 사이에 어긋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우리 나라에서 싫어하는 뜻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만 의주의 폐단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한치형(韓致亨)은 일찍이 이 일의 시말을 알고 있으니, 한치형과 승문원 제조(承文院提調)를 불러서 적당한지의 여부와 그 응답할 절목을 다시 의논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김극검이 아뢰기를,

"진실로 성유(聖諭)314) 와 같습니다. 그 응답할 즈음에 진실로 착오가 있어 싫어하는 뜻이 드러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차라리 황제에게 직접 주달하여 사정을 아뢰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영돈녕(領敦寧) 이상을 불러서 의논하게 하라."

하였다.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본국 사신을 서반이 호송하는 것은 우리 나라를 후하게 대우하는 것인데, 작은 폐단으로써 아뢰어 없애기를 청하면 싫어하는 형적이 드러나서 중국에서 우리를 후대하는 뜻이 쇠할까 두렵습니다. 신은 생각하건대 세월이 오래되면 서반이 호송하여 왕래하는 폐단이 반드시 중국에 있을 것이므로 저절로 정지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고,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중국 조정에서 특별히 서반을 보내어 호송하여 멀리 국경 위에까지 이르니, 황제의 은혜가 지극히 중하므로 비록 큰 폐단이 있을지라도 말을 하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이제 정문(呈文)의 말을 보건대 싫어하고 꺼리는 자취가 이미 드러났으니, 예부(禮部)에서 힐문(詰問)하면 대답하는 즈음에 말이 어긋나서 대체(大體)에 손상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고,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본조(本朝)의 부경 사신(赴京使臣)315) 을 서반이 호송하는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인데, 한치형이 갔을 때에 비롯되었으니, 이는 황제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야인(野人)의 왕래에도 반드시 서반을 정하여 호송하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그 비위(非違)를 금하는 것입니다. 한치형의 행차에서 서반을 정한 것은 성지(聖旨)가 별도로 있지 아니하였으면 반드시 예부에서 주준(奏准)한 사연이 있을 것인데, 지금 그 원인을 상고하지 아니하고서 갑자기 정지하기를 청하면 사체에 옳지 못합니다. 하물며 서반의 호송을 요동에서 그치기를 청하였으니, 접대하기를 꺼리는 뜻이 매우 명백하고, 또 이 일은 조정에서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절차에 매었으니, 작은 일이 아닌데, 배신(陪臣)이 품지(稟旨)하지 아니하고서 마음대로 예부에 글을 올리는 것은 신은 역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정지하였다가 다시 당초에 서반의 호송을 실시한 원인을 상고한 뒤에 다시 의논토록 하소서."

하고, 홍응(洪應)·노사신(盧思愼)·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보단(報單)의 사목(事目)에 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는데, 명하여 심회 등을 빈청(賓廳)으로 불러서 다시 의논하게 하였다. 심회는 의논하기를,

"앞서 의논에 의하여 아직 정지하게 하소서."

하고 홍응(洪應)·윤호(尹壕)·어세겸(魚世謙)·이경동(李瓊仝)·이숙감(李淑瑊)은 의논하기를,

"본국의 사신이 예부에 보단(報單)을 올린 것이 한 번이 아닙니다. 당초에 서반이 나온 이유는 대개 홍귀달(洪貴達)의 보단으로 인하여 비롯되었습니다. 그 뒤에 노사신(盧思愼)·이숭원(李崇元)·이봉(李封) 등이 일시에 회정(回程)할 때에는 으레 마땅히 세 사람의 서반이 호송해야 하는데, 노사신 등의 보단으로 인하여 단 한 사람의 서반만 보냈으니, 이로써 보건대 예부에서 본국 사신의 보단에 따르지 아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번 보단에 따를는지 아니 따를는지는 미리 헤아릴 수 없지만, 가령 따르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아마 힐책당할 우려는 없을 듯합니다."

하고, 한치형(韓致亨)은 의논하기를,

"신축년316) 에 신이 성절사(聖節使)로 부경(赴京)하였을 때에 예부 상서(禮部尙書) 주홍모(周弘謨)가 하마연(下馬宴)을 하던 날에 신에게 말하기를, ‘전일에 연로(沿路)의 각역(各驛)에서 응부(應付)317) 하지 못하는 일이 있음을 내가 이미 자세히 아는데, 이제 또 듣건대 재상(宰相)318) 이 올 때에도 응부에 게을리하였다 하니, 내가 마땅히 주달하겠다.’고 하였고, 또 태감(太監) 정동(鄭同)이 본국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갈 때에 역로에 응부하지 못하는 일을 주달하자 성지(聖旨)가 예부에서 내렸는데, 이로 인하여 예부에서 제주(題奏)하여 조정에서 특별히 서반을 차출하여 호송(護送)해 지경에 나가게 하고, 각역에서 하정(下程)319) 을 보내고 군인을 내어서 전하여 가며 호송하였습니다. 신이 제주 사연(題奏辭緣)을 보건대 ‘재상 윤필상의 행차에 강도가 몰래 나타났었고, 홍귀달의 행차와 지금 재상이 올 때에 공궤(供饋)를 빠뜨렸는데, 조선은 예의지국(禮義之國)이라 조공(朝貢)을 끊지 아니하니, 관대(館待)를 후히 함은 마땅히 다른 나라의 갑절로 해야 할 것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어 호송하여 지경에 나가게 해야 합니다.’고 하고, 이어 이상(李翔)을 내어 보냈는데, 이상이 신에게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호송하여 압록강 위에까지 가겠습니다.’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관로(館路)는 요동(遼東)에 이르러 그쳤고 우리 나라 영송군(迎送軍)도 요동에 이르러 기다리는데, 대인(大人)이 요동까지 호송하는 것은 바로 국경을 나가는 것입니다. 동팔참(東八站)은 날씨가 춥고 길이 험하니, 왕래에 노곤(勞困)할까 두렵습니다.’ 하자, 이상이 말하기를, ‘재상의 말이 옳습니다.’고 하였는데, 이튿날 이상이 말하기를, ‘예부 상서에게 의논하니, 이미 조정에 주달하였으므로 다시 고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이 예부에 의논한 것은 적실히 알지 못합니다만, 이번 걸음에 예부에 글을 올리는 것은 신은 해로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일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은 예측하기 어려우나 보단(報單)을 올리는 것은 이미 전례(前例)가 있으니, 예부에서 잘못이라고 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제 여러 의논에 의하여 보단을 올리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226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5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외교-명(明)

  • [註 311]
    보단(報單) : 보고하는 글.
  • [註 312]
    행리(行李) : 행장(行裝).
  • [註 313]
    발섭(跋涉) : 산을 넘고 물을 거나너서 길을 감.
  • [註 314]
    성유(聖諭) : 임금의 말.
  • [註 315]
    부경 사신(赴京使臣) : 명(明)나라에 보내는 사신.
  • [註 316]
    신축년 : 1481 성종 12년.
  • [註 317]
    응부(應付) : 요구에 응하여 급부(給付)하는 일.
  • [註 318]
    재상(宰相) : 한치형을 가리킴.
  • [註 319]
    하정(下程) : 사신(使臣)이 사관(使館)에 도착하면 주식(酒食) 등 일상 수요 물품을 보내 주는 것을 말함.

○御晝講。 右承旨金克儉以聖節使趙益貞齎去報單及言語應對事目啓。 其報單曰:

竊念小國邈在遐荒, 世被聲敎, 執贄之臣, 陸續來往, 深蒙累朝厚恩。 在先本國陪臣韓致亨入朝回還時, 分差委序班一人, 送至本國義州地面, 一路館待諸事, 無不體察, 皇恩之重, 於玆極矣。 目今聖朝其於本國使臣往還, 尤加撫字之仁, 凡諸站路經由去處, 待遇恩禮之重, 有加無替, 一切行李供頓之事, 自無不敷, 經行甚便。 但自遼東直抵義州七八百里六七日之程, 旣無上國館驛支待諸事。 又如遼東護送軍馬, 自有本處百戶。 千戶, 順帶往還, 序班別無所管。 體察事理, 經歷險遠, 勞動不貲, 心實惶懼。 伏望明公, 斟酌時宜, 今次俺等之還, 停八站護送, 俾無跋涉之勞, 不勝幸甚。

上曰: "先皇帝初欲厚待我國而遣序班, 則今不可輕遽請辭也。 且先皇帝時事, 今皇帝必不敢輕改之, 禮部亦不得擅便不遣。 或以遽改先皇帝之法爲難, 而請之, 則言語之間, 不能無錯, 我國厭之之意, 自然呈露矣。 然義州之弊, 不可不爲之慮也。 韓致亨曾知此事首末, 召致亨及承文院提調, 更議便否與其應對節目可也。" 克儉啓曰: "誠如聖諭。 其應對之際, 固不可差誤以露厭之之意也。 寧直奏于皇帝, 以達其情何如?" 上曰: "召領敦寧以上議之。" 沈澮議: "本國使臣序班護送, 所以厚我國也。 以小小之弊, 陳請除之, 恐厭之之跡露而中國厚我之意衰矣。 臣謂歲久則序班護送往來之弊, 必在於中國, 而自然停之矣。" 尹弼商議: "朝廷特遣序班護送,遠至境上, 皇恩至重, 雖有巨弊, 措辭實難。 今觀呈文之辭, 已露厭憚之迹, 禮部若詰問, 則對

之之際, 恐有言錯, 以傷大體。" 李克培議: "本朝赴京使臣序班護送, 前此所無, 始於韓致亨之行, 是皇恩也。 然中國野人往來, 必定序班護送, 此無他, 禁其非違也。 致亨之行定序班, 非別有聖旨, 則必有禮部奏準辭緣。 今不詳考根由, 遽卽請停, 於事體不可。 況序班護送, 請止於遼東, 其爲接待厭憚之意明甚, 且此事係干朝廷, 接待外國使臣節次, 非是細事。 陪臣不稟旨, 擅行呈文於禮部, 臣意亦以爲不可。 姑停之, 更攷當初序班護送, 設立根因, 然後更議。" 洪應盧思愼尹壕議: "依報單事目爲便。" 命召沈澮等于賓廳, 又議之。 沈澮議: "依前議姑停。" 洪應尹壕魚世謙李瓊仝李淑瑊議: "本朝使臣呈報單于禮部者非一。 當初序班出來之由, 蓋因洪貴達報單而始。 其後盧思愼李崇元李封等一時回程, 例當三序班護送, 而因思愼等報單, 只送一序班。 以此觀之, 禮部於本朝使臣報單, 不爲不從也。 今次報單從不從, 未可預料, 借使不從, 恐無致詰之虞。" 韓致亨議: "辛丑年臣以聖節使赴京時, 禮部尙書周弘謨於下馬宴日: ‘語臣曰: 前日沿路各驛, 不能應付事, 我已悉知。 今又聞宰相來, 時亦怠於應付, 我當奏達。’ 且太監鄭同以本國使臣往返時, 驛路不能應付事奏達, 聖旨下禮部。 因此禮部題奏, 朝廷另差序班, 護送出境, 各驛送下程, 差軍人傳護送。 臣觀題奏辭緣: ‘宰相尹弼商之行, 强盜竊發; 洪貴達之行及今宰相之來, 闕於供饋。 朝鮮, 禮義之邦, 朝貢不絶, 其館待之厚, 當倍他國。 可信人差送, 護送出境。’ 乃就差李翔語臣曰: ‘我當送至江上。’ 臣答曰: ‘館路至遼東而止, 我國迎逢軍, 亦到遼東以待之。 大人送至遼東, 卽是出境。 東八站天寒路險, 深恐往來勞困也。’ 曰: ‘宰相之言是也。’ 翼日曰: ‘議諸禮部尙書, 已奏朝廷, 難以更改。’ 之議於禮部未可的知, 今行禮部呈文, 臣意以爲無害也。" 傳曰: "事之成不成, 難以預度。 然呈報單已有前例, 而禮部不以爲非, 今依群議, 呈報單可也。"


  • 【태백산사고본】 35책 226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5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