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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25권, 성종 20년 2월 7일 을미 1번째기사 1489년 명 홍치(弘治) 2년

대사헌 이칙이 이서의 무리는 석방하고 김방을 추국할 것을 건의하다

대사헌(大司憲) 이칙(李則)이 서계(書啓)하기를,

"난신 적자(亂臣賊子)는 없는 시대가 없으나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세상에 발생하는 것인데, 지금 같은 당당한 성명(聖明)의 세상에 이런 일은 만무합니다. 가령 있다고 하더라도 혹은 벼슬을 잃고 불평하는 무리나 혹은 억세고 사나운 무식한 무리일 것인데, 신준(申浚)·노공필(盧公弼)과 같은 이는 의리를 알고 성상의 은혜를 입었으니 반드시 다른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가령 다른 마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무식한 시골 백성과 더불어 같이 꾀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가령 같이 꾀하였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그 자취를 비밀히 할 것인데 문서를 만들어 서명(署名)하여 다른 고을에 전해 보이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문기(文記)의 일은 김방(金方)이 여러 번 말을 변하여 거짓과 망령됨이 이미 드러났으니, 아무리 천백 번 물을지라도 모역(謀逆)한 일의 형상을 김방이 반드시 밝힐 수 없을 것입니다. 이서(李湑) 등은 옥(獄)에 갇힌 지 이미 30일이 지났고, 세 사람이 이미 숨졌는데, 만약 김방의 자복을 기다리면 세월을 기약하기 어려운데 허물없는 사람이 오래 고통을 입게 되니, 진실로 가긍(可矜)스럽습니다. 홍응(洪應)과 금부 당상(禁府堂上)은 그 정상(情狀)을 알지 못함이 없으나 다만 일이 몹시 중대하고 성명께서 통촉하시는 바이므로 감히 계달(啓達)하지 못합니다. 신은 처음부터 국문(鞫問)에 참여하여 정적(情跡)을 갖추어 알므로 감히 아뢰지 아니할수 없습니다. 먼저 이서의 무리를 석방하고 김방은 법에 의하여 굳게 가두어 추국(推鞫)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김방의 말이 앞뒤가 어긋나서 그 허망(虛妄)됨을 내가 이미 알았다. 그러나 그일이 중대(重大)하므로 석방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은 목과 발만 채우고 그 나머지는 석방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명하여 좌의정(左議政) 홍응과 의금부 당상관과 정언(正言) 조구(趙球)를 불러서 이것으로써 물으니, 홍응 등이 아뢰기를,

"상교(上敎)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서 등의 역모[謀逆]한 일의 형상이 드러나지 아니하였으니, 어느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가령 김방의 고(告)한 바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우두머리와 따라서 한 자를 논하여 혹은 가두고 혹은 놓아줄 수 있겠습니까? 김방이 비록 사실을 말하지 아니할지라도 거짓이 모두 드러났으니 법에 의해 굳게 가두고, 이서 등은 모두 놓아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다. 전교하기를,

"재상(宰相)의 의논이 그렇기는 하나, 사람들이 모두 모역(謀逆)의 죄가 중함을 알면서도 난신 적자(亂臣賊子)가 없는 시대가 없으니, 지금 이 죄인은 가볍게 석방할 수 없다. 김방이 병이 낫기를 기다려서 친히 물은 뒤에 내가 다시 침작하겠다."

하였다.

사신이 논평하기를, "이때 대신(大臣)들이 비록 무고(誣告)임을 알았으나 일이 악역(惡逆)에 관계됨으로써 발언하기 어려웠는데, 이칙(李則)이 마음으로 그 억울함을 불쌍히 여겨서 아뢴 바가 이와 같으니, 이른바 언관(言官)의 책무를 저버리지 아니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22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44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사학(史學)

    ○乙未/大司憲李則書啓曰:

    亂臣賊子無代無之, 然發於危疑之世, 若今堂堂聖明之世, 萬無是事。 假使有之, 或是失職怏怏之徒, 或是麤悍無識之輩, 如申浚盧公弼識義理蒙上恩, 必無異心。 假使有異心, 必不與無識鄕民同謀矣。 假使同謀, 當秘其跡, 不宜立券署名, 傳示他鄕也。 況文記之事, 金方屢變其辭, 虛妄已著。 雖千百問訊, 謀逆事狀, 金方必不能白之。 李湑等繫獄已過三旬, 而三人已隕命。 若待金方之服, 則難以日月期之, 而無辜之人, 久被困苦, 誠可哀矜。 洪應與禁府堂上, 無不知其情狀, 但事甚至重, 而聖明所洞照。 故不敢啓達。 臣自初參鞫, 備知情跡, 不敢不達。 先解放李湑輩, 而金方依法堅囚推鞫, 何如?

    傳曰: "金方之言, 前後牴牾, 其虛妄予已知之。 然其事重大, 不可放也。 但爲首之人, 只鎖項足, 其餘放之可也。" 命召左議政洪應與義禁府堂上、正言趙球, 以此問之, 洪應等啓曰: "上敎允當。 然李湑等謀逆事狀未著, 未知何人爲首。 假使金方所告是實, 豈可論首從而或囚或放乎? 金方雖不輸情, 詐僞畢露, 依法堅囚, 李湑等竝放送何如?" 傳曰: "宰相之論然矣。 然人皆知謀逆之罪重, 而亂臣賊子無世無之, 今此罪人, 不可輕放。 待金方差病, 親問後, 予更斟酌。"

    【史臣曰: "時, 大臣雖知其誣, 以事干惡逆, 難於發言。 心傷其冤, 所啓如是, 可謂不負言責矣。"】


    • 【태백산사고본】 35책 22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44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