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등이 과거에 입격한 사람을 다시 시험보이기를 청하니 의논하게 하다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이종호(李宗灝) 등이 차자(箚子)를 올려 아뢰기를,
"국가에서 배우는 자들이 경술(經術)을 닦지 않고 오로지 사화(詞華)749) 를 숭상하는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초시(初試)에 강경(講經)하는 법을 마련하였으나, 배우는 자들이 학업을 게을리하고 강구하지 않는 폐단이 쉽게 고쳐지지 아니하여, 올해 관시(館試)750) 의 액수가 50인인데 강서(講書)에 입격한 자는 40인이고, 한성시(漢城試)751) 의 액수는 40인인데 강서에 입격한 자는 36인입니다. 인재가 많은 경중(京中)에서 입격한 자가 이처럼 적은데 외방(外方)에서 향시(鄕試)752) 의 액수가 10인이라면 강서에 입격한 자가 혹 수십 인에 이르니, 어찌 경중에 인재가 적고 외방에만 많기 때문이겠습니까? 이는 다름이 아니라, 경중에서는 이미 시관(試官)을 가려 뽑고 또 대간(臺諫)을 시켜 들어가 참여하게 하므로 사사로운 일을 용납할 수 없는 형세이나, 외방에서는 문신(文臣)인 수령(守令)과 교수(敎授)의 수가 적어서 가려서 차출할 겨를이 없고 또 검찰(檢察)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뻔뻔스레 강서를 시험할 즈음에 사정(私情)에 끌리고 위세를 겁내어, 아무는 재상(宰相)의 자제이고 아무는 한때의 수령이고 아무는 수령의 자제이고 아무는 평소의 친구라 하여, 사정을 쓰고 사사로운 일을 행하되 꺼리는 것이 없어서 그러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올해의 향시에 입격한 자는 진부(陳腐)하고 배우지 못한 무리가 아니면 반드시 권세 있는 집의 젖비린내 나는 아이입니다. 그 방목(榜目)을 살펴보면, 충청우도(忠淸右道)의 원액(元額)은 13인데 구숭경(具崇璟)·정승충(鄭承忠)·임희재(任熙載)도 끼었습니다. 구숭경은 구수영(具壽永)의 아들이고 정승충은 정숭조(鄭崇祖)의 아들이고 임희재는 임사홍(任士洪)의 아들인데, 오직 이 3인은 나이가 약관(弱冠)이 못되고 학업이 성취되지 못하였으나, 외람되게 13인의 줄에 끼었습니다. 대저 경학(經學)을 강습(講習)하는 것은 글을 짓는 따위와 달라서 여러 해 동안 강독(講讀)한 뒤에야 정통(精通)할 수 있으니, 본래 구숭경 등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충청도 하나를 보면, 다른 도도 외람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들의 생각으로는, 올해의 향시에 입격한 사람은 서울에 모아서 다시 시험하도록 명하시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죄다 다시 시험할 수 없다면, 구숭경 등 3인을 따로 다시 시험하게 하여 진위(眞僞)를 밝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조(前朝)의 홍분방(紅粉榜)753) 과 같은 것이 여기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하니,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의정부(議政府)에 보이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22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7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註 749]사화(詞華) : 좋은 문장.
- [註 750]
관시(館試) : 성균관(成均館)에서 보이는 문과 초시(文科初試). 생원(生員)·진사(進士)로서, 거재(居齋)한 지 만 3백 일이 되는 자를 녹명(錄名)하여 시험보이되, 50명을 선발하였음.- [註 751]
한성시(漢城試) : 한성부(漢城府)에서 보이는 생원·진시와 문과 초시. 문과 초시는 40명, 생원 초시와 진사 초시는 각각 2백명씩 뽑았음.- [註 752]
향시(鄕試) : 문과, 생·진과(生進科), 잡과(雜科) 등 과거의 초시로서 각도(各道)에서 보이는 1차 시험.- [註 753]
홍분방(紅粉榜) : 권문(權門)의 자제들이 많이 급제한 과거의 방목(榜目). 고려 우왕(禑王) 11년(1385) 감시(監試)에서 시원(試員) 윤취(尹就)가 뽑은 99인 가운데 권세가의 젖내 나고 붉은 옷을 입은 애들이 많았던 까닭으로 비웃는 말임.○司憲府執義李宗灝等上箚子曰:
國家慮學者不治經術, 專尙詞華, 特設初試講經之法。 然學者怠業不講之弊, 未易卒革。 今年館試之數五十人, 而講書入格者四十人; 漢城試之數四十人, 而講書入格者三十六。 以京中人材之多, 入格者如此之少。 而外方則鄕試之數假如十人, 講書入格者或至數十, 豈(人)〔以〕 京中人材獨少而外方獨多乎? 此無他, 京中則旣擇試官, 又令臺官入參, 勢不得容私; 外方則文臣守令敎授數少, 未暇擇差, 而又無檢察之人。 其靦面試講之際, 牽私刦威, 某也宰相子弟, 某也一時守令也, 某也守令子弟也, 某也平昔親舊也, 用情行私, 無所畏忌而然也。 因此今年鄕試, 非陳腐不學之輩, 則必權勢乳臭之子也。 考其榜目, 則忠淸右道元額十三, 而具崇璟、鄭承忠、任熙載亦與焉。 崇璟, 壽永之子也; 承忠, 崇祖之子也; 熙載, 士洪之子也。 惟此三人, 年未弱冠, 學業未就, 濫與十三人之列。 夫講習經學, 非綴文之比, 積年講讀而後, 得以精貫, 則固非崇璟等所能爲也。 以忠淸一道觀之, 則他道猥濫, 可以類推。 臣等以爲今年鄕試中格之人, 命聚京師, 改試爲便。 如不得盡改其試, 則崇璟等三人別令改試, 以驗眞贗。 不然, 前朝紅粉之榜, 恐兆於此矣。
命示領敦寧以上、議政府。
- 【태백산사고본】 33책 22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7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註 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