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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14권, 성종 19년 3월 13일 정축 11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신시에 중국 사신이 조서와 칙서를 받들고 모화관에 이르니 면복을 갖추고 나아가 맞이하다

신시(申時)에 중국 사신이 조서와 칙서를 받들고 모화관(慕華館)에 이르니, 임금이 면복(冕服)을 갖추고 나아가 맞이하였다. 중국 사신이 조서와 칙서를 받들어 각각 용정(龍亭)에 안치하였는데 그 칙서(勅書)는 장전(帳殿)에 머물러 두게 하였다. 임금이 조서(詔書)를 인도하여 연(輦)을 타고 앞서가고 중국 사신은 말을 타고 조서를 따라서 갔다. 경복궁(景福宮)에 이르러 반조(頒詔)하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는데, 그 조서에 말하기를,

"천명(天命)을 받들고 천운(天運)을 계승한 황제(皇帝)는 조서(詔書)하노라. 생각하건대 우리 조종(祖宗)은 성성(聖聖)이 서로 이으시고 밝은 천명(天命)을 순응하여 중화(中華)와 사이(四夷)의 임금[王]이 되었도다. 그 창업(創業)하고 수성(守成)하신 신공(神功)과 성덕(聖德)은 진실로 왕고(往古)에 도월(度越)328) 하셨도다. 우리 황고(皇考) 대행 황제(大行皇帝)께서 통서(統緖)를 이으심에 미쳐서는 심인(深仁)과 후택(厚澤)이 해우(海隅)까지 덮은 지 이에 2기(紀)329) 가 되었는데 부지런히 노력하여 잘 다스리려고 했던 마음은 오히려 밤낮을 겨를하지 못하셨는데 병환으로 인하여 갑자기 철의(綴衣)330) 를 내보내니 참으며 빙궤(憑几)331) 의 말씀을 듣고 외람(猥濫)되게 신기(神器)의 부탁을 받았는데, 슬픔이 바야흐로 성하여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하였다. 당시에 친왕(親王)·문무 군신(文武群臣)과 아래로는 기로(耆老)·군민(軍民)에 미치기까지 합사(合詞)하여 대궐에 엎드려 권진(權進)한 것이 재삼(再三)에 이르렀도다. 사양하고 거절하였으되 얻지 못하여 이에 유명(遺命)을 좇아서 9월 초 6일에 삼가 천지(天地)·종묘(宗廟)·사직(社稷)에 고(告)하고 황제(皇帝)의 위(位)에 나아갔도다. 이에 부비(付畀)332) 하신 중(重)함을 돌아보건대, 자견(仔肩)333) 의 어려움을 깊이 두려워하여 힘써 널리 구제하기를 도모하고 한결같이 치도(治道)를 널리 베풀기를 생각하며, 은혜를 백성에게 드리워서 성하게 이루게 하고 백성이 화락하게 잘 지내는 데에 올라서, 황명(皇明)이 억만년(億萬年)까지 무강(無彊)한 복[祚]을 넘치게 하기를 바라고, 그 명년(明年)을 홍치(弘治) 원년(元年)이라 하였도다. 대저 체원(體元)334) 하여 거정(居正)335) 하는 처음을 당하여, 의당 백성을 사랑하는 전법을 경신(更新)하여 반포해야 하겠으므로 마땅히 시행해야 할 일의 조목을 다음에 개시(開示)한다. 아아, 조종(祖宗)과 황고(皇考)의 대경 대법(大經大法)이 우리 후인(後人)을 계우(啓佑)한 것이 상세하게 갖추어졌으니, 그 정신을 이어받아 행하는 것은 묘궁(眇躬)336) 에 있으나 그래도 멀고 가까운 종친(宗親)과 내외(內外)의 충량(忠良)이 덕(德)을 같이 하여 일심(一心)으로 맡은 바 일을 충실히 이행해서 나의 미치지 못함을 보필(輔弼)하라. 크게 여러 나라에 고하노니 모두 알도록 하노라."

하였다. 중국 사신이 도로 나와 모화관(慕華館)에 나아가니, 임금이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돈의문(敦義門)으로 해서 나아가 칙서를 맞이하는 위치에 나아갔다. 칙서(勅書)를 인도하여 말을 타고 먼저 행하여 경복궁(景福宮)에 이르러 칙서를 받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는데, 그 칙서에 말하기를,

"황제(皇帝)는 조선 국왕(朝鮮國王) 모(某)에게 칙유(勅諭)하노라. 짐(朕)은 조종(祖宗)의 홍업(鴻業)을 사수(嗣守)하여 만방(萬方)을 통어(統御)하니, 성교(聲敎)가 미치는 곳은 의당 은택(恩澤)이 미치거늘, 하물며 그대 국왕(國王)은 대대로 충성(忠誠)을 돈독히 하였으니, 내려 주는 은전은 더욱 후(厚)하여야 한다. 특별히 정사(正使) 우춘방 우세자 겸 한림원 시강(右春坊右世子兼翰林院侍講) 동월(董越)과 부사(副使) 공과 우급사중(工科右給事中) 왕창(王敞)을 보내어 조칙(詔勅)을 가지고 왕(王)을 효유하고 아울러 왕(王)과 비(妃)에게 폐백 문금(幣帛文錦)을 내려 주니, 이르거든 수령(收領)토록 하라. 그리하여 그 짐(朕)의 권회(眷懷)함을 본받아 예(禮)를 잡고 의(義)를 지켜 더욱 번방(蕃邦)의 보익(輔益)을 융성히 하여 한가지로 태평(太平)의 복(福)을 누려야 하겠기에 유시하노라."

하였다. 임금이 악차(幄次)에 나아가니, 두 사신이 예조 판서(禮曹判書) 유지(柳輊)를 불러 사물(賜物) 주는 것을 마치고 나와 자리[次]에 나아갔다. 임금이 두 사신에게 전(殿)에 오르기를 청하니, 두 사신이 재배(再拜)하거늘 임금이 답배(答拜)하고,

"과인(寡人)이 삼가 칙서(勅書)를 읽으니, 이르기를, ‘성교(聖敎)가 미치는 곳은 의당 은택이 미쳐야 한다.’고 하였으니, 내 그윽이 생각하건대, 사해(四海)의 밖은 무려 만국(萬國)이 되는데, 우리 나라는 대대로 충성을 돈독히 한다 하여 내려 주신 은전이 편벽되게 융성하고, 또 두 대인(大人)을 선발하여 조칙(詔勅)을 받들고 오게 하시어 황은(皇恩)이 답지(沓至)하였으니, 감격함이 망극(罔極)합니다."

하였는데, 두 사신이 말하기를,

"오늘 현왕(賢王)께서 두 번씩이나 번거롭게 거둥하시니 황공 황공(惶恐惶恐)합니다. 우리 두 사람이 강을 건너온 이래로 곳곳에서 잔치를 베풀어 위로해 주심을 거듭 받으니, 현왕(賢王)의 두터운 예우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예의상 당연한 것인데, 어찌 감사함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드디어 자리에 나아가 잠깐 동안 다례(茶禮)를 행하고, 두 사신이 드디어 나가니, 임금이 근정문(勤政門) 밖에까지 전송하였는데, 두 사신은 조서(詔書)를 받들고 나갔다. 원접사(遠接使) 허종(許琮)이 복명(復命)하니, 전교하기를,

"지금의 중국 사신은 예도(禮度)가 엄명(嚴明)한데 경(卿)은 대접함에 실수가 없었으니, 내가 심히 가상하게 여긴다."

하고, 이어서 단의(段衣) 2령(領)을 내려 주었다. 밤 2고(鼓)에 임금이 태평관(太平館)에 거둥하여 하마연(下馬宴)을 행하고 5고(鼓)에 환궁(還宮)하였다. 도승지(都承旨) 송영(宋瑛)에게 명하여 인정물(仁情物)을 유증(留贈)하니, 상사(上使)가 물목 단자(物目單子)를 보고는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송영이 굳이 청하니, 상사가 단자(單子)를 내버려 두면서 말하기를,

"이 단자(單子)를 받으면 이것은 주시는 물건을 받음입니다. 전하께서 조정을 존경하시어 대접함이 이와 같으니,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전하께서 주심은 예(禮)이고 내가 받지 아니함은 조정을 두려워함이니, 각각 그 도(道)를 다함이 가(可)합니다."

하였다. 송영이 또 인정 단자(人情單子)를 부사(副使)에게 주니, 부사가 말하기를,

"전하의 성의(誠意)는 감사하고 감사하오나, 그러나 조정(朝廷)의 법제(法制)를 두려워하여 감히 받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법을 집행하는 관리(官吏)로서 사람의 잘잘못[得失]을 말하는 자이니 어찌 이를 받겠습니까?"

하고, 굳이 사용하며 받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21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319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28]
    도월(度越) : 남보다 뛰어남.
  • [註 329]
    기(紀) : 1기(紀)는 열 두해[十二年]를 말함.
  • [註 330]
    철의(綴衣) : 악장(幄帳).
  • [註 331]
    빙궤(憑几) : 유교(遺敎).
  • [註 332]
    부비(付畀) : 부여(付與).
  • [註 333]
    자견(仔肩) : 책임(責任).
  • [註 334]
    체원(體元) : 군주(君主)가 새로 즉위하여 천하(天下)에 임함을 이르는 말.
  • [註 335]
    거정(居正) : 상도(常道)를 따름.
  • [註 336]
    묘궁(眇躬) : 자신에 대한 겸칭.

○申時, 天使奉詔、勑至慕華館。 上具冕服出迎。 天使奉詔、勑, 各置龍亭, 其勑書留于帳殿。 上導詔書, 乘輦先行, 天使乘馬, 隨詔書而行。 至景福宮, 頒詔如儀。 其詔曰:

奉天承運皇帝詔曰:惟我祖宗, 聖聖相承, 膺天明命, 爲華夷主。 其創業守成、神功聖德, 誠度越往古矣。 曁我皇考大行皇帝嗣統, 深仁厚澤, 覆冒海隅, 二紀于玆。 而憂勤求治之心, 猶宵旰未遑, 因臻違豫, 遽出綴衣。 忍聞憑几之言, 猥以神器之屬, 哀疾方殷, 罔知攸措。 時親王文武群臣, 下及耆老軍民, 合詞伏闕, 勸進者至於再三。 辭拒不獲, 乃遵遺命, 以九月初六日, 祗告天地宗廟社稷, 卽皇帝位。 顧玆付畀之重, 深懼(子)〔仔〕 肩之難; 勉圖弘濟, 一惟恢張治道, 惠綏黎元, 用底阜成, 躋于熙皞, 庶衍皇億萬年無疆之祚。 其以明年弘治元年。 夫當居正體元之初, 宜布更新恤下之典。 合行事條, 開示于後。 於乎! 祖宗皇考大經大法, 啓佑我後人者, 纖悉具至, 繹思體行, 在乎眇躬。 尙賴遐邇宗親、內外忠良, 同德一心, 恪恭乃事, 以輔予之不逮。 誕告多方, 咸使知悉。

天使還出, 詣慕華館。 上具翼善冠、袞龍袍, 由敦義門而出, 詣迎勑位, 導勑乘馬先行。 至景福宮受勑, 亦如儀。 其勑曰:

皇帝勑諭朝鮮國王某。 朕嗣守祖宗鴻業, 統御萬方, 聲敎所曁, 宜覃恩澤。 矧伊國王, 世篤忠誠, 錫賚之典, 尤所當厚。 特遣正使右春坊右世子兼翰林院侍講董越、副使工科右給事中王敞齎詔、勑諭王, 竝賜王及妃幣帛文錦, 至可收領。 尙其體朕眷懷, 秉禮服義, 益隆蕃輔, 共享太平之福。 故諭。

上就幄次, 兩使招禮曹判書柳輊, 授賜物, 訖, 出就次。 上請兩使陞殿, 兩使再拜。 上答拜, 曰: "寡人伏讀勑書, 云: ‘聲敎所曁, 宜覃恩澤。’ 予竊念之, 四海之外, 無慮萬國, 而以我國世篤忠誠, 錫賚之恩偏隆。 又遴選兩大人, 擎捧詔、勑而來, 皇恩沓至, 感戴罔極。" 兩使曰: "今日賢王再煩勞動, 惶恐惶恐。 我兩人過江以來, 處處設宴, 以慰重領, 賢王厚禮, 多謝多謝。" 上曰: "於禮爲當, 何謝之有?" 遂就坐。 俄行茶禮。 兩使遂出, 上送至勤政門外, 兩使捧詔書出。 遠接使許琮復命, 傳曰: "今天使禮度嚴明, 卿待之無失, 予甚嘉之。" 仍賜段衣二領。 夜二皷, 上幸太平館, 行下馬宴, 五皷還宮。 命都承旨宋瑛留贈人情物。 上使覽物目單子, 辭不受。 固請之, 上使留單子, 曰: "受此單子, 則是受所贈之物也。 殿下尊敬朝廷, 待之如此, 多謝多謝。 殿下之贈遺, 禮也; 吾之不受, 畏朝廷也。 各盡其道可也。" 又呈人情單子于副使, 副使曰: "殿下誠意, 多謝多謝。 然畏朝廷法制, 不敢受也。 吾等執法之官, 言人得失者也, 何爲受此?" 固辭不受。


  • 【태백산사고본】 32책 21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319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