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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60권, 성종 14년 11월 2일 신묘 5번째기사 1483년 명 성화(成化) 19년

지중추부사 김종순의 졸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종순(金從舜)이 졸(卒)하니, 철조(輟朝)1209) ·사부(賜賻)1210) ·조제(弔祭)1211) 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 김종순은 본관이 경주인데, 증(贈) 병조 판서(兵曹判書) 김계성(金季誠)의 아들이다. 나이 스물 셋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정통(正統)1212) 정사년1213)문음(門蔭)1214) 으로 충훈사 승(忠勳司丞)에 제수되고 기미년1215) 에 전농시 직장(典農寺直長)에 제수되었다. 이 해에 문과(文科)에 합격하여 중부 령(中部令)에 제수되었다가 승문원 부교리(承文院副校理)로 옮겼다. 신유년1216) 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다가 병조 좌랑(兵曹佐郞)으로 옮기고, 봉상시(奉常寺)·종부시(宗簿寺) 판관(判官), 병조 정랑(兵曹正郞),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전농시 소윤(典農寺少尹), 개성부 단사관(開城府斷事官)을 지냈다. 병자년1217) 에 사간원 지사간(司諫院知司諫)에 제수되었다가 천순(天順)1218) 정축년1219) 에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에 올랐다. 기묘년1220) 에 형조 참의(刑曹參議)에 제수되었다가 곧 이조(吏曹)로 옮기고, 특별히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어 여러 번 올라서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임오년1221) 에 가정 대부(嘉靖大夫)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올라서 호조 참판과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를 지냈다. 계미년1222) 봄에 임금이 경기 고을을 순행하다가 내신(內臣)에게 명하여 행탁(行橐)1223) 을 점검해 보니, 다만 쌀과 콩 두어 말이 있을 뿐이었다. 임금이 곧 불러서 술잔을 올리기를 명하고, 인하여 희롱해 말하기를, ‘청렴하고 간소함이 너무 지나쳐서 관찰사가 거의 굶어 죽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 해에 한성부 윤(漢城府尹)에 제수되고, 갑신년1224) 에는 대사헌(大司憲)에 제수되었으며, 성화(成化)1225) 을유년1226) 에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기축년1227)예종(睿宗)이 특별히 자헌 대부(資憲大夫)를 가하여 경상도 관찰사에 제수하였는데, 10월에 병으로 사직하고 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에 제수되었다. 12월에 임금[上]1228) 이 즉위(卽位)하자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에 제수하고, 신묘년1229) 에는 판한성부윤(判漢城府尹), 임진년1230) 에는 지중추부사에 제수하였다. 병신년1231) 에 나이가 70세에 찼으므로 치사(致仕)1232) 하려고 하니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였으며, 나이가 77세이다. 시호(諡號)를 공호(恭胡)라고 하였으니, 일을 공경히 하고 윗사람을 받들어 모신 것을 공(恭)이라 하고, 나이가 오래도록 장수(長壽)한 것을 호(胡)라 한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김종순(金從舜)은 여러 조정을 두루 섬겨서 시사(時事)에 숙달하고, 비록 드러난 자취는 없을지라도 또한 지나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첩[嬖妾]에게 혹하여 적처(嫡妻)를 업신여기는 데 이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그 단점(短點)이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16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540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註 1209]
    철조(輟朝) : 국상(國喪)을 당하거나 대신(大臣)이 죽었을 때 혹은 재앙(災殃)이 있을 때 근신하는 의미에서 임시로 조회(朝會)를 정지하던 일.
  • [註 1210]
    사부(賜賻) : 부의(賻儀)를 내려 줌.
  • [註 1211]
    조제(弔祭) : 조상하여 제사함.
  • [註 1212]
    정통(正統) : 명(明)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 [註 1213]
    정사년 : 1437 세종 19년.
  • [註 1214]
    문음(門蔭) : 부조(父祖)의 공(功)으로 벼슬을 하는 일.
  • [註 1215]
    기미년 : 1439 세종 21년.
  • [註 1216]
    신유년 : 1441 세종 23년.
  • [註 1217]
    병자년 : 1456 세조 2년.
  • [註 1218]
    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英宗)의 재조(再祚) 연호.
  • [註 1219]
    정축년 : 1457 세조 3년.
  • [註 1220]
    기묘년 : 1459 세조 5년.
  • [註 1221]
    임오년 : 1462 세조 8년.
  • [註 1222]
    계미년 : 1463 세조 9년.
  • [註 1223]
    행탁(行橐) : 행장(行裝)을 넣는 자루.
  • [註 1224]
    갑신년 : 1464 세조 10년.
  • [註 1225]
    성화(成化) : 명나라 헌종(憲宗)의 연호.
  • [註 1226]
    을유년 : 1465 세조 11년.
  • [註 1227]
    기축년 : 1469 예종 원년.
  • [註 1228]
    임금[上] : 성종(成宗).
  • [註 1229]
    신묘년 : 1471 성종 2년.
  • [註 1230]
    임진년 : 1472 성종 3년.
  • [註 1231]
    병신년 : 1476 성종 7년.
  • [註 1232]
    치사(致仕) : 나이가 많아 벼슬을 내어놓고 물러남. 조선조 때에는 당상관(堂上官)으로 치사(致仕)하는 경우에 예조(禮曹)에서 매달 고기와 술을 급여하였으며, 국가의 중대한 정사로 인하여 치사하지 못하는 70세 이상의 1품관에게는 궤장(几杖)을 하사하였음.

○知中樞府事金從舜卒, 輟朝賜賻, 弔祭如例。 從舜, 慶州人, 贈兵曹判書季誠之子。 年二十三, 中生員試。 正統丁巳, 以門蔭, 授忠勳司丞。 己未, 拜典農直長, 是年中文科, 拜中部令, 移承文院副校理。 辛酉, 司憲監察, 遷兵曹佐郞, 歷奉常宗簿判官、兵曹正郞、成均司藝、司憲掌令、典農少尹、開城府斷事官。 丙子, 拜司諫院知司諫。 天順丁丑, 陞左司諫大夫。 己卯, 拜刑曹參議, 尋移吏曹, 特除同副承旨, 累陞爲都承旨。 壬午, 陞嘉靖吏曹參判, 歷戶曹參判、京畿觀察使。 癸未春, 上巡行畿縣, 命內臣, 點視行橐, 但米豆數斗, 上卽招命進爵, 仍戲之曰: "淸簡太過, 觀察幾餓死矣。" 是年, 拜漢城府尹。 甲申, 拜大司憲。 成化乙酉, 拜同知中樞府事。 己丑, 睿宗特加資憲, 拜慶尙道觀察使, 十月以疾辭, 授中樞府同知事, 十二月上卽位, 拜開城府留守。 辛卯, 判漢城府尹。 壬辰, 知中樞府事。 丙申, 以年滿七十致仕不許。 至是卒, 年七十七, 諡曰恭胡, 敬事供上: ‘恭;’ 彌年壽考: ‘胡。’

【史臣曰: "從舜歷事累朝, 練達時事, 雖無顯顯之跡, 亦無過擧。 然惑於嬖妾, 至使陵嫡, 此其短也。"】


  • 【태백산사고본】 24책 16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540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