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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40권, 성종 13년 4월 9일 정미 1번째기사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일본 국왕과 이천도왕 하차가 사신을 보내 《대장경》과 재화를 보내주길 요청하다

일본(日本) 국왕(國王)이 영홍 수좌(榮弘首座) 등을 보내어서 내빙(來聘)하고, 이천도왕(夷千島王) 하차(遐叉)궁내경(宮內卿) 등을 보내 와서 토산물(土産物)을 바쳤다. 일본국(日本國)의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일본 국왕 원의정(源義政)은 조선 국왕 전하(朝鮮國王殿下)께 삼가 회답을 올립니다. 두 나라가 천 리(里)를 사이에 두고 대대로 인호(隣好)를 닦아 온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압니다. 사람이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근년(近年)에는 우리 나라가 혼란(混亂)하여서, 온갖 일을 잠시 폐(廢)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음신(音信)이 막혔으니, 그 동안에 적조(積阻)한 죄(罪)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이 앞서 갑오년202) 에 우리 사자(使者)가 귀국(歸國)할 때에, 〈상국(上國)에서〉 상아(象牙)를 쪼개어 만든 부신(符信) 10개를 주시어 왕래(往來)하는 데 신표(信標)로 삼게 하셨으니, 하사품(下賜品)으로 무엇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겠습니까? 금후(今後)로 빙문(聘問)이 있을 때마다 차례로 주어서, 의심(疑心)이 없는 부험(符驗)을 삼겠습니다.

우리 나라 화주(和州)에 교사(敎寺)가 있는데, 원성사(圓城寺)라고 합니다. 중 명선(明禪)이라는 자가 미타불(彌陀佛) 불상을 봉안(奉安)한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옛날 당(唐)나라에 묘지 거사(妙智居士)라는 자가 미타(彌陀)를 염송(念誦)하여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저녁에 꿈을 꾸니, 신인(神人)이 말하기를, ‘참 부처[眞佛]를 배알(拜謁)하고자 하거든 모름지기 일본국의 원성사(圓城寺)에 가거라.’ 하였습니다. 꿈을 깨고 나자, 상서로운 꿈대로 찾아 우리 나라에 와서, 저 절에 이르러 친히 진용(眞容)을 배알하고 처음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영험(靈驗)을 온 나라가 모두 우러러보던 터였는데, 병술년203) 에 병화(兵火)로 인하여 불각(佛閣)과 승사(僧舍)가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다만 다행하게도 본존(本尊)의 불상 1구(一軀)만이 남아 있으나, 여기에 향화(香火)를 바칠 곳이 없습니다. 절의 일을 주간(主幹)하는 자가 말하기를, ‘진실로 상국(上國)에 도움을 구(求)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금벽(金碧)으로 단장한 옛 절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겠느냐?’고 하기에, 중[釋氏] 영홍 수좌(榮弘首座)를 차정(差定)하여 첫번째의 상아 부신(象牙符信)을 주어서, 〈상국에〉 가서 그 뜻을 말씀드리게 하고, 또 《대장경(大藏經)》을 구하여 절 안에 안치(安置)하여서 일국(一國)의 복(福)을 증식(增殖)하는 땅을 삼고자 하니, 바라건대 법보(法寶)를 나누어 주시어 변방의 백성들에게 이(利)가 되게 하시고, 자재(資財)를 시여(施與)하시어 불법(佛法)의 이(利)를 일으키게 하시면, 상국(上國)의 덕화(德化)가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겠습니다. 변변치 못한 방물(方物)을 별폭(別幅)에 갖추 기록하였으니, 엎드려 채납(采納)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하고, 별폭(別幅)에는, 금장식 병풍(金裝飾屛風) 2장(張), 채화선(綵畫扇) 1백 자루[把], 장도(長刀) 10자루[柄], 대도(大刀) 10자루, 대홍칠 목거안(大紅漆木車按) 대소(大小) 합계 70벌[事], 대홍칠 천방분(大紅漆淺方盆) 대소 합계 20벌, 조자(銚子) 2자루, 제자(提子) 2개, 홍칠 목통(紅漆木桶) 2개이었다.

이천도(夷千島)의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남염부주(南閻浮州) 동해로(東海路) 이천도(夷千島)의 왕(王) 하차(遐叉)는 조선국(朝鮮國) 전하(殿下)께 올립니다. 짐(朕)의 나라에는 원래 불법(佛法)이 없었는데, 부상(扶桑)204) 과 더불어 통화(通和)한 이래로 불법이 있음을 알게 되어, 이제 3백여 년이 되었습니다. 부상에서 가지고 있는 불상(佛像)과 경권(經卷)은 모두 구하여 가지고 있으나, 부상에는 원래 《대장경(大藏經)》이 없어서 그것을 얻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비록 귀국(貴國)에서 구하려고 하여도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음신(音信)을 통하기 어려워서 지금까지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듣건대 부상도 원래 귀국의 불법이 전(傳)한 것이고, 짐의 나라도 부상의 불법이 전해진 것이라 하니, 이것으로 본다면 짐(朕)의 나라의 불법도 귀국에서 동점(東漸)한 것입니다. 삼가 《대장경》을 하사하시어 짐(朕)의 삼보(三寶)205) 를 완전하게 하여 주신다면, 귀국의 왕화(王化)와 불법이 멀리 동이(東夷)에게까지 모조리 전파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주실 수 있다면, 거듭 폐백(幣帛)을 후하게 하여 사선(使船)을 보내겠습니다. 짐의 나라가 비록 비졸(卑拙)하나, 서쪽 끝이 귀국과 인접하여 있는데, 야로포(野老浦)라고 합니다. 비록 성은(聖恩)을 입고 있으나, 걸핏하면 반역(反逆)을 합니다. 만약에 존명(尊命)을 받들게 된다면, 〈이들을〉 정벌(征伐)하여 그 죄를 징벌(懲罰)하겠습니다. 짐의 나라 사람들은 말을 통하기가 어려워서, 나라 안에 살고 있는 부상인(扶桑人)에게 명하여 전사(專使)를 삼았습니다. 권련(眷戀)의 정(情)을 다 갖추지 못하고 이만 줄입니다."

하고, 제일선마각(第一船馬角) 1정(丁)과 비단[錦] 1필, 연관(練貫) 1필, 홍도색릉(紅桃色綾) 1필, 감포(紺布) 1필, 해초 곤포(海草昆布) 2백 근(斤)을 진상(進上)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14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15면
  • 【분류】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

  • [註 202]
    갑오년 : 1474 성종 5년.
  • [註 203]
    병술년 : 1466 세조 12년.
  • [註 204]
    부상(扶桑) : 일본을 가리킴.
  • [註 205]
    삼보(三寶) : 불(佛)·법(法)·승(僧).

○丁未/日本國王遣榮弘首座等來聘, 夷千島遐叉宮內卿等, 來獻土宜。 日本國書契曰:

日本國王源義政, 奉復朝鮮國王殿下。 兩國千里, 世修隣好, 天知地知, 人焉瘦哉? 然而比年我國搶攘, 百色暫廢。 是以久阻音耗, 間闊之罪, 不可逭也, 汗愧汗愧。 先是甲午歲, 我使者歸國, 仍剖象牙符十枚, 以爲往來之信, 賜孰加焉? 今後有聘問如次, 授之以爲驗莫訝。 抑我和州有敎寺, 曰圓城。 釋明禪者, 安彌陀像, 而有年焉。 昔大有妙智居士者, 念誦彌陀, 日夕不懈, 一夕夢, 神人告曰: "欲拜眞佛, 須詣日本國 圓城" 云云。 夢乃覺, 追尋瑞夢, 來于我國, 到彼寺親拜眞容, 而成始願。 然則靈驗, 擧國竭仰矣, 爰丙戌歲, 爲兵火, 佛閣僧宇, 悉化烏有之地。 只幸本尊一軀存也, 無所供香華於玆。 主寺事者告曰: "苟非求助於上國, 何以復金碧之舊觀耶?" 故差釋氏榮弘首座, 授第一牙符, 逞諭其意, 且又欲求《大藏經》, 安置寺內, 以爲一方殖福之地, 庶幾分法寶, 以利邊民, 施資財, 以興梵利, 則上國之化, 無所不至也。 菲薄方物, 具于別幅, 伏冀采納。 不宣。

別幅, 裝金屛風二張、綵畫扇一百把、長刀一十柄、大刀一十把、大紅漆木車按大小計七十事、大紅漆淺方盆大小計二十事、銚子二柄、提子二箇、紅漆木桶二箇。 夷千島書契曰:

南閻浮州 東海路〈夷〉千島 王遐, 又呈上朝鮮殿下。 朕國元無佛法, 自與扶桑通和以來, 知有佛法者, 于今三百餘歲。 扶桑所有佛像經卷, 悉求而有之, 扶桑元無《大藏經》, 以此未得之久。 雖欲求之于貴國, 海天遙遠, 難通音塵, 因循至今。 聞扶桑元傳貴國之佛法, 朕國又傳扶桑之佛法, 由之觀之, 朕國之佛法, 亦貴國之東漸也。 俯賜《大藏經》, 以令全朕三寶者, 貴國之王化佛法, 遠衣被東夷者也。 若可賜者, 重而厚幣帛遣使船。 朕國雖卑拙, 西裔接貴國, 謂之野老浦。 雖蒙聖恩, 動致返逆。 若承尊命者, 征伐以罰其罪者也。 朕國人言語難通, 命國中之扶桑人爲專使。 眷戀不宣。

進上第一船馬角一丁、錦一匹、練貫一匹、紅桃色綾一匹、紺布一匹、海草昆布二百斤。


  • 【태백산사고본】 21책 14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15면
  • 【분류】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