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15권, 성종 11년 3월 11일 신묘 2/4 기사 /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김흔 등이 삼봉도의 정황을 파악한 후에 초무사를 보내자고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다
국역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시독관(侍讀官) 김흔(金訢)이 아뢰기를,
"삼봉도 초무사(三峯島招撫使)가 이제 장차 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릉(茂陵) 사람 황진(黃眞)이 고기잡이 일로 인하여 우연히 도원(桃源)에 도착하였다가 선대[先世]의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와 있는 자를 보았다고 하였는데, 그 뒤에 어부들이 길을 잃은 자가 한 사람만이 아니었지만 이른바 도원이라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삼봉도(三峯島)의 유무(有無)도 아득하여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순전히 김한경(金漢京)의 말만 믿고서 2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람과 파도를 예측할 수 없는 험한 지경을 범하게 한다는 것은, 신으로서는 매우 위험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청컨대 먼저 물길[水路]에 익숙한 자 2, 3인을 보내어 정확히 안 연후에 초무사(招撫使)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도원(桃源)의 설(說)과는 다름이 있다. 내가 듣건대, 영안북도(永安北道)의 백성으로서 도망해 흩어지는 자가 자못 많다고 하는데, 반드시 이 섬에 몰래 의탁하여 스스로 한 구역을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되니, 만약 불러 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돌아올 이치가 만무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좌우에게 물으니, 영사(領事) 노사신(盧思愼)·지사(知事) 서거정(徐居正)이 대답하기를,
"이 섬에 있는 것을 정확히 안 뒤에야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원문
성종 11년 (1480) 3월 11일
성종실록115권, 성종 11년 3월 11일 신묘 2/4 기사 /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김흔 등이 삼봉도의 정황을 파악한 후에 초무사를 보내자고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다
국역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시독관(侍讀官) 김흔(金訢)이 아뢰기를,
"삼봉도 초무사(三峯島招撫使)가 이제 장차 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릉(茂陵) 사람 황진(黃眞)이 고기잡이 일로 인하여 우연히 도원(桃源)에 도착하였다가 선대[先世]의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와 있는 자를 보았다고 하였는데, 그 뒤에 어부들이 길을 잃은 자가 한 사람만이 아니었지만 이른바 도원이라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삼봉도(三峯島)의 유무(有無)도 아득하여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순전히 김한경(金漢京)의 말만 믿고서 2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람과 파도를 예측할 수 없는 험한 지경을 범하게 한다는 것은, 신으로서는 매우 위험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청컨대 먼저 물길[水路]에 익숙한 자 2, 3인을 보내어 정확히 안 연후에 초무사(招撫使)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도원(桃源)의 설(說)과는 다름이 있다. 내가 듣건대, 영안북도(永安北道)의 백성으로서 도망해 흩어지는 자가 자못 많다고 하는데, 반드시 이 섬에 몰래 의탁하여 스스로 한 구역을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되니, 만약 불러 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돌아올 이치가 만무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좌우에게 물으니, 영사(領事) 노사신(盧思愼)·지사(知事) 서거정(徐居正)이 대답하기를,
"이 섬에 있는 것을 정확히 안 뒤에야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원문
원본
성종 11년 (1480) 3월 11일